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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규제에 의해 삭제된 설교입니다.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올립니다.
이 설교는 2022년 9월 4일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천국
7.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요한계시록 21: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https://youtu.be/hurA1OB4M9U?feature=shared
설교 목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고백을 하는 우리,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사람을 어떤 존재로, 이 세상을 어떤 곳으로 설명하는가?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인가? 언약을 깨트리는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계시록에 소개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는가?
나는 이 설교에서 이런 질문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2.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
3.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질 때
4. 하나님의 언약이 회복되다!
5.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는 몇 년 전부터 독특한 인사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먼저 회중을 향하여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라고 선창하면, 회중들은 화답하기를, ‘하나님이 목사님과 함께하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지금도’라고 하면, 회중들은 그 말을 이어서 ‘일하고 계십니다!’라고 받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라는 인사를 매주 주고받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자 우리의 염원입니다. 성경을 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신 사람은 다 형통하고 승리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사람 둘을 들라면, 하나는 요셉이며, 다른 하나는 다윗입니다. 성경은 그 두 사람의 형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2~3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10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으나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집트에서 국무총리가 되었고 마침내 애굽과 온 세상을 7년 환난에서 구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고 요셉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다윗은 비록 작은 마을의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이 다윗의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셨고 다윗을 통하여 그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으로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와 함께하리라’고 약속하셨고(창 17:4), 두려워하는 이삭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26:4, 24). 하나님은 야곱이 결정을 내려야 할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약속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우셨습니다(창 2815, 31:3, 46:4).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약속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그런 약속을 주실까요?
2.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말씀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주실 때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말씀으로 격려하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셔서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도 이루어야 할 어떤 일이 있을까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께서 안식일에 환자를 치료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17).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고 그것을 관리하고 돌보시는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포도원의 농부로 소개하셨습니다(요 15:1). 농부가 자기 포도원을 가꾸고 돌보는 것은 그 포도원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생명 충만한 땅으로 만드시려고 항상 일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신다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자기 지혜와 사랑으로 만드신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가꾸는 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이해합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세상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예로부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를 발견하고 감탄하며, 그 안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신성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자체로 기도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연과 가까이할 때 정서나 건강이 좋아지는 이유는 어쩌면 자연 만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참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를 누리다가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소개합니다(창 3:17).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서 사람은 땀을 흘려야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반역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인간은 서로 시기하고 보복하다가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 바로잡으셔서 생명 가득한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노아 홍수 이야기입니다.
그후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높은 탑을 쌓아 자기 이름을 온 세상에 내자고 한 목소리를 내며 일어났습니다. 그때 온 세상에는 말이 하나였기에 그 탑 건축 사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그들의 일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로 온 세상의 언어가 혼잡해졌습니다. 바벨탑의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을 아름다운 땅으로 가꾸려면 한 사람의 수고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의 노력이 모일 때 세상은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스르는 일을 모의하였기에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사람들을 온 세상에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세상만민에게 다시 복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온 세상만민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충만하게 될지를 하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려고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마음 속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그 비밀을 조금 보여주셨습니다. 그 비밀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창 12:3).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이 자손 이스라엘 민족에게 조금 더 계시되었습니다. 그 비밀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5~6
마침내 하나님은 한 나라와 한 백성을 세우시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소유인 온 세계를 향한 계획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언약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자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과 내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려고 그들 가운데 자신의 집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막이며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왜 어떤 사람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부부와 함께하시려고 에덴동산을 별도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려고 성막과 성전을 별도로 만드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만나시는 곳이므로 회막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들은 형통한 사람이 되어 자기들의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가꾸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할 때 그 자신도 형통하고 그가 가꾸고 돌보는 세상은 번영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을 세상에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고 예배할 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지혜를 받아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모아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거울(angled mirror)에 비유했습니다(Wright, N. T..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혁명이 시작된 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아서 세상에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인간은 세상만물의 감사와 찬양을 모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울입니다. 그런 거울은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의 감사가 찬양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올려지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곳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처소라고 하겠습니다.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는 성막이며 성전입니다. 에덴동산도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려고 거하시는 곳이라는 점에서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성전에 머물러 하나님을 경배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부르시며 자기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온갖 지혜와 은혜를 부어 주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세계를 가꾸고 돌볼 수 있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말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그 동산을 충만하게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이나 성전은 모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이며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이 겹치는 곳이며,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선다는 것은 때로는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담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일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3.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질 때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맺은 언약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한자로 풀어볼 때 성경(聖經)은 거룩한 글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경전(經典)이라는 말은 글이나 법을 뜻합니다.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기록한 글과 법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영어로는 바이블이라고 합니다. 바이블(bible)은 본래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약성서를 영어로 부를 때는 올드 테스타먼트(Old Testament)라고 합니다. 여기서 테스타먼트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을 증거하는 문서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셔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약속을 성경에서는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영어로는 카비넌트(Covenant)라고 하는데 그 말은 함께 간다(L. convenire < con-, together + venire, to go)는 라틴어에서 온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동행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인간에게 맡기시고 그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가꾸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이며, 그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 3:9, 롬 8:17).
아담 부부는 하나님의 동산을 맡아 가꾸는 일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 부부를 격려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야곱과 요셉과 함께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늘 함께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곁에 계심을 늘 보여주셨으며, 특히 성막 위에 솟은 하나님의 구름은 영광의 거룩한 임재를 나타냅니다. 훗날 사람들이 그 영광을 ‘쉐키나’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하나님이 거기 거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하십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언약체결자들과 함께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셔서 그들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충만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이 형통한 자들이 되고 그들이 가꾸는 땅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언약의 책인 성경이 들려주는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를 물려받아 관리하고 다스리는 존귀한 청지기요 대리인입니다. 어떤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섬기고 경배하는 존재입니다. 또 어떤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는 왕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우리를 향하여 말한 것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인간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성경 이야기를 따라 인간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언약의 책인 성경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이 세상이 어떤 곳이며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물려받아 관리하고 누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언약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반드시 생명 가득한 땅으로 만드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서 빨리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로 올라갈 것을 바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존재입니다. 아담도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백성도 다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온 세계를 위하여 봉사할 제사장의 나라가 될 민족이 도리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가나안 땅은 사실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님의 복이 땅 끝까지 미치게 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빛에 비추었을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 깨지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담 부부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어떻게 깨졌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왜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까? 그들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 열매를 볼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느껴졌습니다(창 3:6). 그들이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을 만나 함께 거닐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욕심을 부추기는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진리를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그들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의 기밀을 빼내어 경쟁사에 넘김으로 막대한 돈을 받지만 사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권력에 눈이 멀어 흉악한 얼굴로 바뀐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래도 낫지만 여전히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性)은 인간의 생육과 번성, 그리고 충만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선물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쾌락의 포로가 되고 죄의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를 섬겼고 로마인들은 비너스를 대리석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정과 타인의 가정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그런 가정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쾌락이라는 이름의 우상에 종살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곳에서 돈과 권력과 쾌락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포로로 가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깨닫는 진리입니다.
최근에 저는 빨강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본래 캐나다 어느 섬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때는 19세기 후반, 그 당시에 아직 캐나다라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 땅은 영국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골 마을에 마릴린과 매튜라는 늙은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늙은 남매는 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 열한 살 난 여자아이가 빨강머리의 앤입니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느덧 앤이 성장하여 시골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합니다. 특히 앤은 문학에 소질이 있어서 호텔에서 열린 자선공연에서 시낭송을 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낭송에서 감명을 받은 어느 미국인 부자가 보육원 출신의 고아 소녀 앤을 자기 딸로 입양하고 싶다고 사람을 보내서 알려왔습니다. 만약 앤이 그 미국인의 양녀가 되면 그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신데렐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앤은 늙은 마릴린과 매튜의 집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의 인생은 정말 풍족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앤이라면 이런 제안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빨강머리 앤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보육원 출신의 고아인 자신을 받아준 마릴린 아주머니와 매튜 아저씨의 고마움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의 제안을 전달하러 집에 찾아온 사람의 제안을 앤이 단호하게 거절할 때 그 늙은 남매는 너무 기뻐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저런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받은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그런 사랑의 마음을 느끼며 함께 기뻐하는 곳,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4. 하나님의 언약이 회복되다!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풀면서 말하기를,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합니다(마 1:21). 이제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압니다. 사람들은 흔히 죄를 단지 규칙이나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죄란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트린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간다는 말은 다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또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을 섬기며 열방에 빛을 비추는 모델국가와 백성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을 교회로 세우셔서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복되게 하실 것을 굳게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별도로 열두명을 부르시고 사도(使徒)라고 칭하셨습니다. 제자가 배우는 사람이라면, 사도는 그 배움을 세상에 나가서 실천하기로 거룩한 약속을 한 사람입니다. 그 열두 사도들을 바탕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로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었으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언약백성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언약백성이라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언약백성들은 청결한 마음으로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산상수훈의 팔복 선언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교계에서 대형교회들의 목회세습문제가 세간에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달 8월 29일에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목회대물림방지법 제정과 관련한 좌담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대형교회가 아버지 목회자의 자리를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교단은 2013년에 이미 목회대물림 금지 규정을 교단헌법으로 규정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헌법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그 대형 교회의 목회대물림을 밀어붙였습니다. 제 친구 송영윤 목사(포천중리교회)는 몇 년 전부터 그 대형 교회의 목회대물림이 불법이기에 바로잡기 위하여 여러 목회자들과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좌담회에서도 용감하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하여 나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옳은 일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끈기 있게 그 뜻을 지키는 데는 더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우리들이 돈과 권력과 쾌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정의와 자비, 그리고 신앙을 위해서 용기를 낼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언약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5.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이 구도의 길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인정받기까지 또 십여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야곱도 하란에서 14년을 기다렸으며, 자신의 아들 요셉을 만나기까지 또 이십여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요셉은 17세에 애굽에 팔려갔고 30세에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가뭄을 2년 겪은 후에 부친 야곱과 재회했다). 요셉도 애굽의 감옥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요셉은 보디발의 감옥에서 관원장들의 꿈을 해몽해준 후에도 만 이년을 기다려야 했다-창 41:1).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은 때로는 거절해야 하고 때로는 일어서서 용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늘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욕을 먹고 때로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은 가난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결국 예수님을 팔아먹은 제자 가룟 유다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임을 모르고 살다가는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쉽고 넓은 길을 찾아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다’(눅 9:6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손에 쟁기를 잡고 묵묵히 자신의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쟁기가 자신에게 너무 무겁고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가 쟁기질하는 그 밭에서 바위가 발견되어 쟁기질을 멈추고 그 바위를 파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자기 밭이 크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밭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고 돌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밭에는 수고로이 가꾸고 돌본 결과로 아름다운 열매가 탐스럽게 맺힙니다. 그것을 보면서 농부는 뿌듯함을 느끼며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손에 쟁기를 잡고 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얼마나 왔나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잘 하고 있나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쟁기질을 해야 할 밭이 너무 많이 남았기에 한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지나온 길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쟁기질한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대담하게 나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꾸는 밭이 크든지 작든지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우리의 포도원은 빛나고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에 충실한 사람들과 함께하시면서 하나님의 세상을 가꾸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람과 함께하셨습니다. 성경이야기의 중간에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격려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언약에 끝까지 충실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언약을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성경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아예 이 세상 전체를 하나님의 동산으로 만드시고 거기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라는 거대도시가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 도시는 얼마나 큰지 온 세상을 다 담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침내 하늘과 땅이 하나되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완성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때 하나님의 집은 더 이상 하늘에 자리잡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영원히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그 영광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끝까지 지킨 거룩한 백성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감사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그때 하나님은 각 사람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십니다(계 21:4).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안타까워하며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주시는가 하여 흘리는 감동의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현실은 너무 암담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이 모든 눈물은 우리가 맡은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려는 노력과 수고 가운데 흘리는 사랑과 헌신의 보석입니다.
성경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모든 은총을 누리다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이 우리와 언제까지나 함께하실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새롭게 되는 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하나님의 집을 우리 가운데 지으시고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모든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충성과 사랑은 마침내 해보다 더 빛난 영광 가운데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빛나는 영광을 사모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보람이며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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