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마 4;18-22)
예수님은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시면서 갈릴리 지역을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지역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베드로 형제를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인 안드래는 갈릴리 바다에서 열심히 그물을 던지면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베드로와 안드래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열심히 고기잡이하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조금 더 갔더니 이번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물을 깁는 것은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도 부르셨는데 이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가를 거니셨습니다.
왜 갈릴리 해변가를 다니셨을까요?
우리 동네 호수가에 가면 아침이나 저녁때가 되면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운동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 산책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단위로 오기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연인들끼리 오기도 합니다.
열심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축구장에서 공을 차기도 하고, 앉아서 좌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책하기 위해서, 운동하기 위해서, 좌담하기 위해서 갈릴리 해변가를 거니셨을까요?
왜 거니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목적과 방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공생애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목자없이 허덕이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다니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에게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서 지옥가야 되는 영혼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디든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가를 거닐다가 어떤 사람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까?
열심히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어부들은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래였습니다.
또 조금 갔더니 또 출어하기 위해서 배에서 열심히 그물을 수선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베대와 그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갈릴리 바다에, 해변가에 이들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까요?
저가 예수님께서 거니시던 갈릴리 해변가에 그 시간에 있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을 것이고, 그물을 깁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산책하는 이들도, 운동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운동하는 이들, 산책하는 이들, 베드로와 안드래가 아닌 다른 어부들, 세베대와 야고보와 요한이 아닌 다른 그물 깁는 이들을 향하여 똑 같이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면서 부르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직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건강하기 하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쉬기 위해서 열심히 산책하는 것이고, 고기잡이하는 이들도 열심히 사는 것이고, 그물을 깁는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처럼 갈릴리 해변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넘어갑시다.
베드로와 안드래와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들은 부르시지 않고 베드로와 안드래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이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면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은 부르시지 않고 이들만 부르셨을까요?
여기에 두 가지 답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것은 전적인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가 여기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시자 이들은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심지어는 아버지까지 버리면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한 번 딱 보고 뭐가 그리 좋다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물어봅시다.
예수님과 베드로, 안드래, 야고보, 요한이 오늘 처음 만났을까요?
아니면 그 전에 만난 적이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오늘 만남이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을까요?
여러분, 성경을 한 곳에만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단의 특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들은 성경 한 곳만 열심히 보면서 “봐라. 성경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하면서 유혹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와 정말 그러네. 정말 그런가보다.”하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부분과 다른 성경을 같이 읽어야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저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요한복음도 읽어야 되고, 누가복음도 읽어야 됩니다.
먼저 요한복음에 보면 이들은 본래 누구의 제자였느냐 하면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요단강에 오셨을 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할 때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두 제자가 누구냐 하면 안드래와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두 제자가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두 제자는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와서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계시던 곳까지 가서 10시까지 머물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10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시간으로는 오후 4시입니다.
오후4시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게바가 곧 베드로라는 뜻입니다.
또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 하면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오셨습니다.
바닷가에는 두 척의 배가 있었는데 어부들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습니다.
두 척의 배 중에서 예수님께서 한 배에 올랐는데 그 배가 신기하고 우연하게도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배 위에 앉아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생뚱맞게도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합니다.
평생 어부생활로 이골이 난 베드로입니다.
그물을 수선하는 시간은 대략적으로 아침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밤을 새워가면서 고기를 잡았는데 제대로 잡지 못했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기잡이는 아침 시간에는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가 아침 시간에는 잘 없습니다.
그러니 평생 고기잡이로 이골이 난 베드로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그물을 깊은 데로 가서 던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 시간에는 고기가 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대풍어를 이루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배로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서 이웃에 있는 배까지 불러서 그물을 끌어올려야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무엇이라 합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합니다.
이 모습을 야고보와 요한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 안드래, 야고보, 요한을 만났고,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니까 이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전도방법이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관계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야. 너희들 오늘부터 나를 따라와라. 나를 믿고 내 제자가 되거라”라고 하셨다면 이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버리면서 과연 예수님을 따라갔을까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 아마 따라가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여러분들이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면 역시 이들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고, 알고 있었고, 만난 적이 있었고, 함께 지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시면서 불렀을 때 곧 바로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전도하기 위해서는 관계전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구마 전도법이라고 아십니까?
요즈음 고구마가 많이 나오는 추수의 때이지요.
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삶거나 찔 때 고구마가 익었나. 익지 않았나 하면서 솥투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보잖아요.
찔러보고 익었으면 꺼내서 먹으면 되는 것이고, 만약에 익지 않았으면 다시 솥투껑을 닫고 익을 때까지 더 기다리면서 삶거나 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전도하면서 아는 사람들에게 “야. 누구야. 예수님 믿어야지. 오늘 교회 가자.”하면서 특 특 찔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지각색의 반응들이 일어납니다.
그래 나도 교회 가고 싶다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야. 이 새끼야. 왜 그러냐고, 나 한데 예수, 예자로 꺼내지 말라”고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대해서 싫어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뀐 사람은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이고, 교회에 대해서 반항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계속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계속 만나면서 밥도 같이 먹고, 쇼핑도 같이 가고, 커피도 같이 마시면서 만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계속 만나면서 특 특 예수님을 전하며 찔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교회 처음 나올 때 전도 하는 사람이 한 번 전도 했는데 곧 바로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이리 뺀질 저리 뺀질 하면서 얼마나 전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저리게, 답답하게 만들었는지 몰라요.
어지간히 속을 썩이고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었잖아요.
교회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보니까 그렇게 좋은 것을.....
그 때에는 쉽게 예수님을 믿지 못했잖아요.
오늘날에는 관계전도가 되지 않으면 전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옛날 최권능 목사님이라는 분께서 “불신지옥, 예수천당”하면서 버스에서, 시장에서,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면서 예수님을 전하면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목사인 저도 시끄럽기나 하지 듣고 싶지 않습니다.
목사가 듣기 싫어한다도 모든 사람이 다 듣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사회에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가면서 “불신지옥, 예수천당”하면서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불신지옥 예수천당”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전하면 듣는 사람도 있었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귀를 막아버립니다. 귀찮고, 소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고 있어야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야 합니다.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친구들을 사귀는 목적은 그들을 꼭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친구들을, 벗들을, 이웃들을 사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야기합시다.
오늘 예수님을 따라간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손해 보는 일들이 없었을까요?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처음 교회 나와서 예수님을 믿었을 때 손해 본다는 생각을 안 해 보셨습니까?
손해 본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잖아요.
예수님의 제자인 이들도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손해 보는 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들이 손해 본 것들은 무엇이 있었지요.
그래요. 이들은 배도, 그물도 버렸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그들의 직장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직장을 잃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직업을 포기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진로를 포기했습니다.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또 이들은 자기 가족들도 포기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누구를 버립니까? 예.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가족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같이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고 한 사람은 집에 남아서 아버지를 봉양해야 될 것 같은데 둘 다 아버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저도 7남매의 장자로서 처음에 목사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지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대신에 내 동생들이 저 대신에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이런 기도는 지금도 하는 기도제목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손해 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손해 보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시간도 손해를 봐야 하고, 물질도 손해를 봐야 하고, 마음도 손해를 봐야 하고, 하고 싶은 취미도 손해를 봐야 하고, 만나는 사람도 손해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손해 보는 것이 힘들고 억울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는 하나님께서 몇 갑절로 갚아주십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주님을 위해서 버린 사람은 다시 도로 갚아주면서 100배를 주신다고 합니다.
아울러 영생을 얻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상급도 주십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누구와 함께 포기하고 버립니까?
예, 형제까지도 끌고 갑니다.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가지 꼭 나까지 끌고 가려고 하느냐 하면서 반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은 일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을 바꿀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삶의 풍요와 행복과 즐거움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 혼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형제까지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까지, 가족까지, 친구까지, 이웃들까지 끌고 함께 가야 되는 곳입니다.
나 혼자 가면 너무 억울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지옥은 나 혼자 가면 나 혼자서 끝나지만 천국은 나 혼자만 가면 너무 좋은 곳이기 때문에 억울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까운 형제, 이웃들까지 억지로라도 끌고 함께 가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장소입니다.
그물을 어디에 던집니까? 예. 바다에 던집니다.
고기를 어디에서 낚습니까? 예. 바다에서 낚습니다.
고기는 어디에 삽니까? 예. 바다에 있습니다.
어부가 있어야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예. 바다입니다.
이 바다는 어부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면서 어부의 생활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바다에 대한 생각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닙니다.
무섭고 두려운 곳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좋은 곳입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채워주시는 곳, 하나님께서 먹을 거. 입을 거. 잠잘 곳까지 채워주시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바다에는 각종 고기도 많습니다. 각종 어초들도 많습니다. 곧 먹을 것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바다는 좋은 곳이 아닙니다.
동양권인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바다에는 용왕이 산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도 통통배를 타시고 고기잡이 하러 바다로 나갈 때, ‘기분이 끌끌하다. 찜찜하다. 고기를 많이 잡아야 할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다에 나갈 때는 꼭 제물을 바쳤습니다.
배의 엔진에도, 배의 앞 부분에도, 배의 키가 있는 뒤 부분에도 꼭 제물을 바치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제물 드리는 것이 어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지중해 연얀,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바다에는 두 마리의 큰 붉은 용이라는 ‘티아맛’이라는 신, ‘포세이돈’이라는 신이 살고 있어서 그 신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고기잡이하러 오면 고기를 몰아다 주어서 대풍어를 이루게 하고, 그 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오면 신이 기분이 나빠서 큰 풍랑을 일으키고 배를 파선시켜서 집어삼치고 죽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베드로는 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배에 올라타서 말씀을 전한 이후에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안 될 일인데도 순종해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게 잡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때 베드로는 고기를 몰아다 주는 신은 티아맛, 또는 포세이돈으로 알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실제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잖아요.
그러니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티아맛이라는 신이, 포세이돈이라는 신이 예수라는 사람으로 둔갑해서 자신에게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면서 자신을 떠나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합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티아맛이 아니야. 포세이돈이 아니야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어부들이라고 하면 다 갖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은 바다는 무서운 곳입니다. 두려운 곳입니다. 혼동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하고, 고기를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바다는 어디일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섭다고, 가장 두렵다고, 죽을지 모른다고 겁을 먹는 바로 그 곳에 우리들이 전도의 그물을 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의 그물을 던지고 사람의 영혼이라는 고기를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바로 우리가 전도해야 될 바다라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곳에, 두려운 곳에, 겁이 나서 몸이 오그라들고 바짝 바짝 마르는 곳에, 오금이 저려 오는 곳에, 어떤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지리는 사람에게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순종하여 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고 능력주시고 이김과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우리 다 같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봅시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