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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민요 ‘어업노동요‘ 고기잡이와 해산물을 채취하며 부르는 노동요 >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민요는 그 지역의 역사 지리 산업 풍습 제도 종교 등을 저변에 깔고 있기에 지역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거제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을 고려할 때 ‘어업노동요’는 무엇보다 먼저 연구되어야할 대상이다. 거제도의 어업노동요(漁業勞動謠)는 남성들이 하는 ‘고기잡이요‘와 여성들이 하는 ’해물채취요’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하는 근거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집단의 성격차이 외에도 작업의 성격과 양상에서 어부어업과 채취어업이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업노동의 구분은 어업노동요를 기능상의 종류별로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 해안가 어촌에는 ‘배젓기 노래’ ‘멸치 후리기 놀래’ ‘그물당기기 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물당기기 노래의 경우 그물을 손으로 당기며 부르는 노래와 기계로 당기며 부르는 노래를 포함해, 배내릴 때, 닻을 올릴 때, 입출항 할 때, 그물을 당길 때, 그물의 고기를 퍼 올릴 때, 그물에서 고기를 털 때 등 작업에 따라 다양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어업현장에서 부르는 노동요는 매우 다양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데 바다라는 지역은 초지역성을 띠기 때문에 어업노동요를 통하여 지역적 차별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업노동요는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어부들이 다 같이 뒷소리를 받는데 선소리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하며 선소리꾼은 작업의 선도자이면서 지휘자 역할을 담당한다. 주로 여러 사람이 행동을 통일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율격을 지키는 선후창으로 불린다. 일이 빠르면 노래도 빠르고, 일이 느리면 노래도 느리다. 이렇다 보니 일의 종류마다, 일의 과정마다 노래가 뒤따르는 것이다.
사면이 바다인 거제도는 원래 여성요에 비하여 남자들의 주업인 뱃노래가 더 많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져 오는 남요(男謠)는 아주 적다. 이는 노래가 남성보다 여성의 전유물인 까닭인지라, 어업에 관한 민요도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노동요(勞動謠)는 민중들이 노동의 고됨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민요를 일컫는다.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써 노래를 활용해, 우리가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고자할 때 알맞은 연장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해도 좋다. 노동요의 노래들은 각각 그 일의 성격, 곧 기능에 알맞도록 형성되어 있다. 작업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알맞도록 구성된다. 어업노동요는 남성들이 하는 어부어업과 여성들의 갯가어업으로 나눌 수 있고, 어업민요에는 '그물당기기·배닦는소리·닻감는소리·노젓는소리·그물올리는소리·고기푸는소리·배치기소리·해녀의 노래' 등이 있다. 어업노동요는 어민들의 생활공간인 바다에서 바닷일과 함께 전승되는 노래다. 일노래가 대부분 그렇듯이 일의 종류와 과정에 따라 어로요(漁勞謠)도 다양하게 불리어진다. 노래만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어업노동요가 어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잡이는 종류가 대단히 많지만,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내려 잡는 방식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 위에서 파도와 싸우며 작업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집단성이 강조된다. 일을 위한 행동의 통일이 곧 공동의 장(場)을 형성하고, 나아가 생명공동체를 만든다. 이로부터 비로소 동질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어로요(漁勞謠)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강화된다. 우리 거제도는 예로부터 많은 부분을 바다에 의존해 살아왔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정서가 어린 어업노동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설이 단조로워도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기잡이 노래를 보존하고 계승발전 시켜야하겠다.
◯ 고려시대 대표적인 어구였던 어량(漁梁) 또는 어전(漁箭)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등 여러 문헌에서 많이 기록되어 있다. ‘어전(漁箭)’은 고기가 들도록 물속에 싸리·참대·장목 등을 둘러 꽂아 둔 ‘올(魚兒)‘로써, ‘어량(漁梁)’ 또는 어사(魚沙)이라고도 한다. '어전(漁箭)'은 '어살'(魚沙兒)로 음차 표기되는 단어로 대나무를 물속에 심어 물고기를 몰아 잡는 방법을 말하며, 어조(漁條) '올'(魚兒)로 음차 되는 '어조'는 물고기가 다니는 통로에 그물을 설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의 어업인 어전(漁箭), 방염(防簾), 주목망(柱木網), 수조망(水繰網), 안강망(鮟鱇網), 유망(流網), 대부망(大敷網), 각망(角網), 호망(壺網), 소태망(小台網), 양조망(楊繰網)등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사용하였던 어구이다. 따라서 거제도에도 이와 유사한 어업이 발달하였을 것이다. 조선초기 거제도는 대구, 숭어, 문어, 청어 미역, 우무, 전복, 홍어, 준치, 조기, 농어, 낙지를 토산물로 지정하여 진상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속찬지리지 등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런 수산물이 대체적으로 많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어구로서 명태는 자망(刺網), 연승(延繩 주낙)을, 조기는 지예망(地曳網), 안강망(鮟鱇網)을 사용하였고, 대구는 어장(漁場 정치망)에서, 멸치는 경사가 완만하고 해저가 평탄한 연안에 그물을 쳐서 바로 해변으로 끌어당겨 고기를 잡는 지인망(地引網)을 각각 사용하였다.
조선 영조 때 간행한 경상도 어업에 관한 설명서 "균역사목 (均役事目)"에서 살펴보면 영남의 고기잡이 방법인 ‘어채(漁採)’에는 어장(漁場 정치망의 일종), 어조(漁條), 방렴(防簾) 세 가지가 있었다. 물고기가 모여드는 수십 리 사이를 어선이 둘러싸는 곳은 어장(漁場), 그물을 설치하여 물고기를 기다리면서 어획하는 ‘어장조(漁場條)’, 그리고 방렴(防簾)이란 대나무를 엮어 발(簾)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기둥을 삼아 울타리를 만들어 어로를 가로 막아 고기를 잡는 방법이었다. 한편 어군(魚群)이 먼 바다로부터 폭주하는 길이 있어 노조(路條)와 같은데, 여기에 배를 대어 그물을 설치하고 고기를 잡는 것을 어조(漁條)라 한다. 경상도지방에서는 주로 대구나 청어를 어획한 정치망이었던 어장(漁帳)을 설치하는 어업을 어조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의 자료에 의하면 그러한 어업을 한 어장(漁場)에는 내강조(內江條)·외포조(外浦條) 등의 고유의 명칭이 붙어 있었다.
정조(1777년) 5월15일 좌의정 김상철이 아뢰기를, “웅천(熊川 진해) 지방에서는 바다에 발을 쳐서 물고기를 잡고, 거제(巨濟) 지방에서는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배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다.”고 하였다. 이 당시 거제도는 ‘어장조(漁場條)’ 즉 ‘정치망(定置網)’, 어장(漁場)의 일종으로, 배를 이용해서 일정한 자리에 그물을 쳐 놓고, 고기떼를 그 안으로 끌어들여 잡는 어업 방법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거제도 지역의 어업방법 ‘줄살‘은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경상도지방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대규모의 정치망(定置網)인데 줄시(乼嵬)라고도 한다. 1905년에 발행된 〈한국수산업조사보고〉에는 부장(浮帳)이라 칭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지어진 〈균역해세(均役海稅)〉의 <균역사목(均役事目)>에는 영남지방에서 고기잡이에 쓰던 대표적인 어법의 하나로 어조(漁條)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조는 정치망을 설치해놓고 어선이 어망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기떼가 망중(網中)에 들어가는 기회를 보아 양망(揚網)하여 어류를 잡는 것을 말한다. 1908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 韓國水産誌〉에는 전통적인 주요 어구(漁具)와 어법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줄시의 구조와 어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줄시는 주로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해 경상도 연해, 특히 거제도와 가덕도 부근에서 많이 설치되었으며, 사용한 배는 노와 돛에 의해 이동하는 "떼배" "통구미"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 어망(그물)은 원망(垣網)·수망(袖網)·어포망(漁捕網)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포망은 갈피류(칡)로 제조된 망사, 원망은 새끼(짚), 수망은 갈피와 짚으로 제조되었으며, 어망은 밧줄과 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19세기 말엽부터 일본인들의 지역 내 어업활동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어업은 개항 이전에 비하여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으며 주로 일본식 어구, 어법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재래식 어업법이 쇠퇴해져 갔다. 어망(그물)도 우수한 면사망(麻絲網)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어선의 동력화 기계화를 계기로, 기선건착망, 기선저인망, 등의 근대적 어구가 꾸준히 증가하였다. 192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건착망(巾着網), 타뢰망(打瀨網), 권현망(權現網), 시자망(施刺網) 잠수기(潛水器) 등도 새로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가장 많이 보급된 것은 안강망(鮟鱇網)이었는데 10년 만에 4.5배 이상으로 증가되었다. 이에 일본풍의 후렴구는 안강망(鮟鱇網)어선이 일본에서 들어와 보급되면서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서해바다의 조기잡이, 남해바다의 멸치잡이, 동해바다의 명태잡이는 각 바다를 대표하는 3대 전통어업으로서 이를 배경으로 어업노동요가 대부분 발생했다. 특히 조기잡이가 왕성하던 시절의 서해바다는 풍부한 노동요의 모태였다. 거제도의 어업노동요는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한 정치망(定置網)과 멸치를 잡는 지인망(地引網)에서 풍부한 어업노동요가 발생 발전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일본풍 후렴구 : 세노야(せえの), 시매야(しめる), 마이다(まい(だ)る), 도고야(とうごう) 등이 있다]
(1) 거제민요 "챗배 노래"
거제어업노동요 챗배노래 中, "애야 애이디야" 소리는 그물 당길 때도 부르고 노를 저을 때도 불러 그 기능이 둘 이상인 경우이다. 여럿이 공동작업 할 때 행동을 통일시켜 일의 능률을 극대화한다. "받어라 받어라 연방연방" "받어라 받어라 물캉살캉 실어도라" "받어라 받어라가운데 조아줘라" 노래하는 가운데 사설을 통해 작업을 지시하고 필요한 사항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일하는 요령을 쉽게 터득할 수 있어 편하다. 작업의 성과를 높이는데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는 것으로, 이것이 노동요의 실무적 기능이다. 앞소리꾼(선창자)이 "올리라, 저어라, 불넣어라, 내리라"등의 작업에 꼭 필요한 말로써 지시하면, 뒷소리꾼이 이를 받아 "어어이" 등으로 화답하며 지시에 따른다. 규칙적인 리듬감이 선원들의 행동에 일체감을 심어준다. 노래의 리듬이 서로의 행동을 맞추도록 해주는 구령과 같은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며, 일꾼들이 일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놀이의 일종이라, 일상적인 삶의 밖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놀이 공간은 삶의 긴장이 차단된다. 현실적 삶의 긴장을 벗어날 때 우리 마음은 여유와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다. 몸은 삶의 현장에 있으나 기분은 놀이의 공간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어업노동요는 빠른 동작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 선후창이 같은 길이로 주고받는 1가보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농업노동요는 2가보격을 많이 쓴다. 1가2가보격 노래는 후렴이 반드시 있다. 아래 두 번째 노래 '만선하여 마을로 오며 부르는 노래'에는 농업 노동요가 유입 혼재되어 있다. 어민들은 민요를 부르는 동안 생산의 즐거움을 듬뿍 누리는 한편, 부딪힌 현실과 피어오르는 희망을 노래로써 드러내, 음악과 문학을 동시에 맞보는 희열을 느낀다.
< 챗배 노래 > 앞소리 최태운, 뒷소리 설정규 김덕문 김정식, 일운면 망치리 망치.
① 멸치를 퍼 올리면서 부르는 노래.
[앞소리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받아만 실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방연방(빨리빨리)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자꾸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물캉살캉 실어도라(수면과 뱃전과 가지런 하도록 멸치를 많이 잡아 싣도록 해 달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받어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해연방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조아라. 가운데 조아줘라(그물을 조여서 올려라)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연해연방 [뒷소리군] 받어라
[앞소리군] 올리라 [뒷소리군] 어어이.
② 만선하여 마을로 오며 부르는 노래
[앞소리군] 아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동무는작아도 소리는크네에(‘에’가 저음으로 변하고 여음처럼 소리낸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풍에 달솟는다아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저어라. 이 사람들아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저어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관보야, 불 넣어라. 관보야, 불 넣어라.(관보는 선주 이름. 멸치를 삶아 건포하기 위해서 불을 넣어라).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동해동천 돋은불에 이슬깨줄 내몰랐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오늘해가 다젓는가 골골마다 연기나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관보야, 미수리 산대미 다 내라라. 불 많이 옇어라. 솥에 다 옇어라. 애야 애이디야.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우리네선주가 자수가좋아 대끝에다 기를달았네(우리 선주가 재수가 좋아서 멸치를 많이 잡아 돗대 끝에 만선의 표시인 봉기를 달았네). [뒷소리군] 애야 애이디야
[앞소리군] 애야디야디야 디이~야.
'챗배'란 횃불(뒤에는 카바이트 가스 불로 바뀜)을 켜서 멸치를 모아 키(채이) 같은 들망이란 그물을 놓아서 고기를 잡는 배인데, 오십 년 전까지 망치 마을 앞 바다에서 성행하던 어로 방법이다. 횃불을 달아서 물속에 멸치가 모인 것이 보이면, 선장이 ‘이유하자’하는 명령에 따라 7,8명의 선원이 뱃전을 굴려서 물결을 일게 하여 고기를 몬다. 그 다음 ‘채를 놓아라’하고 고함을 치면, 그물을 놓고, ‘불을 돌려라’하고 명령을 하면, 횃불을 그물 놓은 곳으로 옮기면서 어군(魚群)을 유인하는 한편, 맞은 편 배에 반디라는 잔 그물을 놓고 ‘깃대를 빼라’고하면 채 그물에 꽂혔던 장대를 빼고, ‘그물을 조아라’라고 하면 선원이 모두 그물을 잡아당겨 올리면서 족대로 멸치를 퍼 담는다.
〈챗배노래〉 어업노동요는 주로 멸치를 잡는 챗배에서 그 절차에 따라 부르는 노래이다.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노래는 주로 여음으로만 구성된 2박자의 빠른 노래이다. 멸치를 퍼담는 노래도 “받어라 받어라 연해연방 받어라”고 하는 사설이 단조로운 노래이다. 사설 마지막의 ‘크네에’와 ‘달 솟는다아’에서 ‘에’·‘아’가 갑자기 저음으로 변하고 여음처럼 소리내는 특징이 있다. “아애야 애이디야 애야 애이디야 / 동무는 작아도 소리는 크네에 / 애야 애이디야 /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풍에 달 솟는다아”에서와 같은 여음은 어업노동요의 것이다.
앞소리군은 보통 멸치 몰이꾼 선장이 부르는데 가창력이 뛰어나며, 뒷소리군은 그물을 당기는 사람들이 동작에 맞춰 후렴구를 힘차게 부른다. 이 작업은 낮에도 하지만 보통 자정쯤, 밀물 때, 그물을 놓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업은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진다. 1960년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재는 일과 분리된 민요만이 전승되고 있다.
(2) 조기잡이 그물질 소리 / 장종천, 둔덕면 학산리 큰마을
이 민요는 망선(網船)에서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노래로, 그물을 당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한다. 그물을 거의 다 잡아당길 때까지 이 민요의 전반부는 계속 되풀이 되며, 사설이 약간씩 바뀌어 계속 부른다. 그물의 고기를 퍼 올릴 때, “담아대라 담아대라” “한배실었다 어야디야 네싣고가고 딴넘오이라이” 마지막 부분에서, 운반선에 생선을 가득 채우고 다른 배에 다시 싣는 만선의 기쁨이 전해오는 듯하다. 선창 즉,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뒷소리를 받는 식으로 부른다. 이 민요는 전라도 칠산 앞바다에서 조기잡이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구연자(제보자) 장종천씨가 전한다.
후렴구 ‘어야디야(어야듸야)’는 ‘어기야디야’의 준말로, 뱃사람들이 노를 저으며 흥겨울 때 내는 소리인데 농사나 무거운 돌을 운반할 때 여럿이서 호흡을 맞추는 소리이기도 하다. '세노야(せえの)'는 그물을 당길 때나 노를 저을 때 부르는 소리인데 일본말의 변형이다. 인부들이 힘을 모아 물건을 옮길 때 내는 소리로, 우리나라 ‘영차’와 같은 뜻이다. 후렴구로 사용되는 또 다른 일본말 '시매야‘는 ’しめる(죄다. 조르다)'의 변형이고, '마이다'는 '감다'라는 일본어 'まい(だ)る'가 차용되어 유입된 후렴구이다.
[앞소리꾼] 어야디야 어~헤 땡볕에 다녹는다. 그물깨자 그래 가~ 그물 쌔리보자.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오호 (그물을 당기기 시작함)
[앞소리꾼] 이그물로 때리거등 억수만대 올라오고 (그물을 당기거든 억수만의 고기가 올라오고)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오호
[앞소리꾼] 오동추야 달밝은데 (梧桐秋夜明月 오동나무 잎이지는 가을밤에 달은 밝은데)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앞소리꾼] 고기가안들먼 임생각안날낀데 고기가 든께 임 생각난다.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허 어야디야
[앞소리꾼] 이고기로 싣고서는 짐대끝에다 봉기달고 (돛대 끝에 봉기(鳳旗)를 달고)
[뒷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앞소리꾼] 그물로 다대리다 간다 조라보자~ (조여 보자. 여기서부터 급템포로 노래한다. 고기가 바다 위에 보일 정도로 그물을 올렸을 때다)
<여기부터 앞뒤 소리꾼이 계속 빠른 템포로 이어 부른다>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세노야 세노야 (세노야(せえの)는 우리나라 ‘영차’와 같은 뜻)
[앞소리꾼] 어야디야 어야디야 담아대라 담아대라 담아대라 저거전부싣자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앞소리꾼] 한배실었다 어야디야 네싣고가고 딴넘오이라 (너는 싣고 가고 딴 놈이 오너라)
[두 패로 나뉘어 다함께 반복]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호어~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 어로작업 현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다. 파도와 같은 외부적 조건의 극복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떼를 그물로 가두고 건져 올리는 긴박한 작업은 어업노동요의 사설을 빈곤하게 하기도 하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절대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그물을 당기거나 조이거나 싣거나 털 때에는 단순 반복구를 이어가며 지속적인 흥겨운 리듬이 필요하다. 작업현장을 독려하기 위해 앞소리꾼이 그때그때마다 작업 지시 사설을 힘차게 외치기도 해야 한다. 후렴구가 끊기었다가 이어지기도 하며 나중에는 누가 선소리꾼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고, 선후의 소리가 혼합되어 율동을 맞추기도 한다. 작업자가 많아 각자의 일이 따로 있는 경우에는, 앞뒤 소리가 겹쳐 불러져 마치 이중창, 삼중창의 아름다운 화음이 바다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3) 그물 당기는 소리(세노 시매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앞소리꾼 서승재씨가 먼저 선창하면 뒷소리꾼 7인이 ‘세노야(せえの 영차)‘를 외치며 합창을 했다. 역동적인 가락으로 부르는 후렴구 ’세노야‘는 박자가 정확하고, 선율이 밝으며 명랑하다. 또한 후렴구 ’시매헤‘는 일본말 しめる(죄다. 조르다)의 변형이다. <그물 당기는 소리>는 <멸치 후리는 소리>로도 정리 할 수 있으며, 계속되는 반복구를 되풀이 하다가 가끔 사설이 들어가는데 이 사설은 단조로운 내용일 뿐이고, 그 내용도 작업 지시에 그치고 있다.
[앞소리꾼] 에~요 세노야 어~어~요 [뒷소리꾼 후렴구] 세노야(せえの)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어~야~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에~야 어~허~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어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헤 시매~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어~헤 시매~ 어~헤 [후렴] 세노야 세노야
[앞소리꾼] 오~이~라 [뒷소리꾼] 오이라
[앞소리꾼] 오~이~라 [뒷소리꾼] 오이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에~헤 [후렴] 시매~헤 [앞소리꾼] 어~샤 [후렴] 시매~헤(しめる)
[앞소리꾼] 요~하 [후렴]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후렴] 시매~헤
<이후 앞뒤 소리가 계속 겹쳐져 부른다.>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해넘어간다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아이구야 [뒷소리꾼] 아이구야 [앞소리꾼] 아이구야 [뒷소리꾼] 아이구야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오~이~야 [뒷소리꾼] 오~이~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빨리 노~오~세~ [다함께] 어~~어~~ 시매~에
(4) 그물 당기는 소리(도고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도~고야‘는 일본말 ’とうごう‘ 통일 투합, 즉 ’서로 맞추어라’라는 지시어가 후렴구로 변형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물을 조으는 과정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한데, 이때는 앞소리꾼이나 뒷소리꾼의 구분 없이 저마다 뒷소리를 따라 하거나 순차를 어기면서 후렴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소리가 뒤섞이면서 다성적(多聲的) 선율(旋律) 현상을 자아낸다. 이러한 현상은 작업의 순간성과 집중성, 그리고 통일성의 복합적인 상황을 요구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작업의 특성 때문에 빚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긴박하고 힘든 작업 상황에서는 누구나 저마다 한 소절씩의 소리를 하기 때문에 앞소리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과정에서 소리가 섞이고, 한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소리가 미리 나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농업노동요에서 선소리꾼이 뒷소리를 물고 앞 사설을 전개하는 현상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앞소리꾼] 어~허야 [뒷소리꾼] 어~허야
[앞소리꾼] 어~허 어~야 어에~어이 어쌰! 나가거라 [뒷소리꾼] 어쌰! 어쌰!
[앞소리꾼] 쭉 나가거라 [뒷소리꾼] 어쌰! 어쌰!
[앞소리꾼] 어이~야 어기야야 어~이~여 [뒷소리꾼] 어기~야~야
(여기부터 뒷소리꾼이 계속 앞소리를 물고가고 앞소리꾼도 뒷소리꾼의 소리를 물고 이어간다)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어~어~어~야~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앞소리꾼] 어서 몰아라 어~허 어이야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앞소리꾼] 어기 야야 어~기~어~야 요마이~또 어기야야 [뒷소리꾼] 요마이~또 어~허
[앞소리꾼] 요마이 또 어~허~어 [뒷소리꾼] 어~허 어~이야
(여기부터 계속 앞뒤 소리가 겹쳐 부른다)
[앞소리꾼] 어~샤 어~기자야 (짧고 강하게) [뒷소리꾼] 어~허야~
[앞소리꾼] 쭉~ 잡아주고 어~샤 당겨주고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앞소리꾼] 어샤 당기고~ 어샤 댕기고~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어 예~야~ 오기야야 어싸! 댕기주소 [뒷소리꾼] 어~허야 어~허야
[앞소리꾼] 어싸! 댕기주소 나주기가 나간다 [뒷소리꾼] 어~헤야~
[앞소리꾼] 이쭈기 나간다 탈탈 털어주고 [뒷소리꾼] 어~헤야~
[앞소리꾼] 어~헤야 어어 어허야 어헤야~ 어~어 어~어~ 이히~헤야 [뒷소리꾼] 이히~헤야
[앞소리꾼] 어기야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반복이 이어지면서 앞뒤 소리가 겹쳐 불린다)
[앞소리꾼] 어~허야 어어 어허야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어~어 어~어~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어~이 잘 잡고 [뒷소리꾼] 어허헤야~
[앞소리꾼] 얼씨고 좋다 어헤야 [뒷소리꾼] 어헤야 어기자야
[앞소리꾼] 어~어 허야 어~여야~어허허~ 어~허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어허허야
[앞소리꾼] 어허어허 에어헤야 어~어~어헤야~ [뒷소리꾼] 어기야야 어허허야
[앞소리꾼] 에이 얏노 어~기야야 어허얐노 [뒷소리꾼] 어~어 어어~어허 어~어 야야
(앞뒤 소리가 겹쳐 불린다)
[앞뒤 소리꾼이 계속 물고 반복해서 부른다] 어~어 허야 어~어~어헤허~(반복) 어~허야 어기야야~(반복) 에잇! 야야~ 어~어~어허야~어어 야야야~(반복)
(5) 그물 조우는 소리(시매 소리) / 연초면 서승재 외.
‘시매다(しめる 죄다 조르다)'는 긴박한 어로 현장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행동에 주의하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이 순간이 가장 긴박하게 움직이는데, 순간의 실수로 잡은 고기를 다 놓쳐 버리는 수도 있고, 일꾼이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시매헤’ 소리는 전체의 조화 속에서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어부는 각자 후렴구만을 부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앞사설은 거의 없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일의 박자를 맞추기 위하여 후렴을 지속적으로 부른다. 생선이 많이 잡히는 날에는 하루 8시간 이상을 계속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사용되는 후렴구는 '애이라차 에~야' 이다. 이 소리만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데, 이는 다른 소리와 달리 특히 일의 통일성을 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소리가 없으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최소한 작업의 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앞소리꾼] 어~허 요이라 [뒷소리꾼] 어~허 요이라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요~하~ 시매~헤
[앞소리꾼] 아이~야 [뒷소리꾼] 아이~야
[앞소리꾼] 아이~야 [뒷소리꾼] 아이~야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샤 [뒷소리꾼] 어~샤
[앞소리꾼] 어이~로 요하~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요~하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아~아야 시매~헤 [뒷소리꾼] 시매~헤
[앞소리꾼] 어이~타 앞이 볼록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상살로 지이고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어이타 어이~타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어이타 어이~타 [뒷소리꾼] 어이타~
[앞소리꾼] 어이타 시매로 에~~이~~
(6) 노젓는 소리 / 둔덕면 장종천.
원래 <노젓는소리>는 그물을 싣고 나가 멸치 떼를 둘러싸서 해안으로 돌아오면서 노를 저으며 하는 소리인데, 사공이 뒤에 있는 한 노를 잡고 소리를 메긴다. 노는 모두 다섯 개로 뒤에 한 노가 있고 양옆에 두개씩 있었다. 이때 노젓는 소리는 선후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사설은 선창자가 뒤 후렴구(“어여차 어여차“)를 후창자 여러 명이 함께 합창하였다. 1970년대에 기계선이 나왔지만 경제적으로 모두 기계선을 탈 수는 없어서 그 뒤에까지 노젓는 배가 남아 있었다.
장종찬씨가 구연한 이 노래는 노가 하나 있는 나룻배를 몰고 갈 때나 근해 연안 어업을 할 때 사공이 독창(獨唱)으로 부르는 민요이다. 책만 아는 서생보다 우리새끼 배불리 먹이는 노젓는 일이 훨씬 낫다고 사설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 노젓는 사설은 정해진 것이 없어, 사공마다 전혀 다르게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2음보의 사설과 함께 노래 곡조가 경쾌하고 동적이라 신명이 났다.
“샛바람아 불어라 우리재주 들어간다 이어~샤 이어~샤 어~야샤 어~허 어~야
저기 가는 저 할멈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허~야 허~야
저 양반은 책을 갖고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저거 할라꼬 저거친다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매~이~ 저어라 어~야 어~야 저아라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어야차
우리 새끼 얼릉가자 쌔기 저어라 어~야 어야차 어~야 어야차 어야차
우리 재주 어서가자 어~야 어야차 어야차 어여차 어야차“
(7) 어업노동요(漁業勞動謠) ‘배노래’
어로요(漁撈謠)에서 음악적 특징으로 꼽는다면, 두 음이 따로 소리 내는 다성적(多聲的) 선율(旋律), 또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서로 다른 선율을 부르는 복선율 현상도 이 때 나타난다. 선창자가 음율(音律)에 맞추어 부르더라도 후창자 즉, 대부분의 선원들은 계속 후렴구로 반복하면서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선창자와 후창자의 구분없이 소리를 하는 가운데, 잔잔한 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지는 현상은 어로요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거제도 ‘배노래’는 실제 어업현장에서 불렀던 노래인데, 보통 그물을 당길 때 많이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양식업의 발달과 기계화된 어업방식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는 뱃놀이나, 보통 놀이할 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흥겹게 부르는 노래로 변이 되었다. 이러한 어업노동요가 변천과정을 겪어 여성유희요로 변한 경우가 많았는데, 원래 규칙적인 작업과정에서 부르는 민요였기에 음악적으로도 매우 세련된 곡이 많다. 또한 앞소리보다는 뒷소리 후렴구가 더 발달한 형태를 보인다. 농업노동요에서는 앞소리와 뒷소리가 일사불란하게 이어져 가는데 반하여 어업노동요에서는 가끔 앞소리와 뒷소리가 혼재하거나 앞소리꾼이나 뒷소리꾼이 엄정하게 분리되지 않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그때마다 달라지는 긴박한 작업의 성질이나 구연상황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격렬하고 힘든 동작을 일제히 함께 하면서 부르는 집단노동요(集團勞動謠)는 악곡이나 사설이 단순하게 반복된다. 이와는 반대로 느린 동작을 혼자서 하면서 부르는 개인노동요(個人勞動謠)는 표현이 다채롭고 내용이 풍부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① 배 노래 / 주순선, 신현읍 용산리.
거제도 어업노동요 ‘배노래’는 원래 앞소리꾼에 이어 뒷소리꾼의 후렴구, ‘어~야 어야차‘, ‘어기야야 어이~여‘, ‘어~샤 어~샤‘,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기야 디여~‘등을 열창하는 방식이었다. 앞소리꾼이 한 소절을 부르면 이어 뒷소리꾼들이 합창하듯 후렴구를 박자에 맞춰 부른다. 예를 들어, [앞소리꾼] 강남땅 강제비가 [뒷소리꾼] 어~야 어야차.... / 하지만 오랜 전승과정에서 여성들의 놀이 민요로 그 사설이 변하면서, 여성이 혼자 부르는 여성유희요로 바뀌었다.
아래와 같이 전해지는 거제도의 ‘배 노래’는 전국에서 분포하는 ‘노젓기 소리’와 ‘뱃노래’의 사설과 거의 비슷하고, 단지 몇 구절만 다를 뿐 큰 차이는 없다. 이 노래는 거제도 전 지역에서 여성들이 부른 민요였는데, 놀이나 모임에서도 부르고 바닷가에서 개발할 때나 밭을 매면서도 불렀다고 한다. 특히 이 민요내용의 첫 부분은 민요 ‘성주풀이’와 ‘영남 성주굿‘에 나오는 사설을 가져와, 그대로 옮겨놓고, 배를 만드는 도입부로 활용하여,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갖춘, 즐거운 서사민요로 구현해 냈다. 형식은 4음보가 연속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연(聯)의 구분이 없으며 율격이 단순하다. 또한 보통 4박자, 5박자 계통의 리듬구조에 불려지는데, 그 중에서도 5박자로 불려지는 것이 많다. 이는 노랫말 네 자를 부를 때 한 악구 혹은 악절의 마지막 자를 두 배로 길게 끌어서 종지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서사민요는 "노래로 불려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노랫말을 중시하며 읊조리듯이 불려져도 "민요"로서의 특징을 갖는다.
“강남땅 강제비가 / 솔씨한쌍을 물아다가 / 거제봉산에 던짔더니 / 그솔이점점 자라나여 / 한모디기가 되었구나 / 솔모디기가 되었고나 / 대모디가 되었고나 / 거두로 썩썩갈아 [거두는 ‘톱’의 거제도 방언] / 왼쪽어깨라 걸방거리드럴짊어지고 [왼쪽 어깨에 맬방거리를 걸어서] / 소산에올라서 솔목을내고 / 대산에올라서 대목내여 / 그산에 솔을버여 / 조그마하기 배를모아 / 양금둥실 띄와놓고 / 일등기상(기생)을 뽑아실고 / 술이면안주면 가득이실고 / 이물에라 임사공아 [이물은 배의 머리 부분] / 고올이라도 곰사공아 [고물은 배의 뒷부분] / 물대밑에 화장아야 [화장은 배에서 밥도 짓고 잔심부름도 하는 선원] / 물때점점 늦어간다 / 술렁술렁이 배밀어라“
② 배노래 / 김옥란, 하청면 어은리 장곶.
“한송정 솔을비어 / 조그마하게 배를모아 / 한강에다가 띄어놓고 / 술이며안주며 가득실고 / 소주약주로 많이실고 / 일등미색이 요색을실고 / 소리잘나는 북장구실고 / 일등미색이 요색을실고 / 고올이라 고사공아 / 이물에라 임사공아 / 물때가점점 늦어간다 / 술렁술렁 배띄워라 / 강능경포대 달맞이매간다 / 어라만소 대심이야”
③ 배노래 / 김주악, 동부면 학동리 학동.
“일송정 솔을비여 / 조그만치 배를 모아 / 연양못에 띄워놓고 / 이물에는 임사공아 / 고울에는 고사공아 / 허리깐에는 하장총각 / 물때가점점 늦어가니 / 술렁술렁 배질하야 / 강남경포대로 구경가자”
(8) 어업유희요(漁業遊戱謠)
어업유희요(漁業遊戱謠)는 어부의 노동 작업과 직결되는 노래가 아니고 놀이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설과 리듬이 다양하고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놀이할 때에 독창 혹은 합창으로 부른다. 요즈음은 오히려 유희의 공간에서 흥겹게 불려지는 소리로 전승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물론 개인적 차원의 변이현상일수도 있지만 이전에 잡힌 고기가 더 이상 잡히지 않거나, 그러한 어로행위가 지속되지 않을 경우, 소리는 남아 그 기능적 전이현상을 겪는 과정과 유관하다.
이와 같은 소리를 어업노동요에 포함시키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으나, 사설이 작업 중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논외로 하기에 역시 어려운 점이 있다. 이와 같이 노랫말의 의미가 어로작업 현장과는 무관한 것으로 놀이적 성격이 강한 소리이니 일단 ‘어업유희요(漁業遊戱謠)’로 명명하기로 하자. 사설은 현장 중심의 사설과, 현장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관습적 사설이 있고, 이 둘이 서로 어우러져 소리를 형성해 낸다. 이에 어업유희요는 해안에서 어패류를 채취할 때나 모내기 또는 놀이할 때 어디서나 불리어진 특징이 있다.
① 어장배노래 / 둔덕면 학산리 큰마을 이서운.
“고고마천봉 닐러노 [높고도 높은 수많은 봉우리(高高千峯) 어디러냐?] / 부상(扶桑)에둥실 높이떠 / 양구부로 돌아들고 [두 구비로 돌아들고] / 월봉에는 구름이떴고 / 어장촌에는 개가짖고 / 농사촌에는 북을치고 / 월궁으로 돌아들고 / 치야다보아라 만학천봉(萬壑千峯) [쳐다 보아라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우리] / 내리굽었다 백사장 / 어리컬컬 늙은중아 / 모진광풍을 못유저내던 [모진 광풍을 못 이겨내듯] / 우줄우줄 춤을치꺼나 [춤을 출거나] / 에라~만수~”
② 배노래 / 사등면 사등리 성내 김필연.
“서울이라 이좋아 [서울이라 나무가 좋아] / 쭉질비네로 다리낳아 [죽절(竹節 대나무 마디)비녀로] / 그다리를 건네나가니 / 노양찰칵에 소리난다 [즐거운 국악소리가 난다] / 서울이라 이좋아 / 서른세채로 배를모아 / 나갈짝에 서른세채 / 들올짝에는 다문두채 [나갈 적에는 서른 세 채였던 배를 다 팔고 들어올 적에는 다만 두 채만 남았다. 그 배 중에 하나는 임이 탄 배라는 임의 귀환을 기뻐하는 가사다] / 임탄배는 소리로주고 / 장사배는 장단친다”
③ 배노래 / 김옥란, 하청면 어은리 장곶. 만선의 기쁨을 노래한 민요이다.
“연해욕지 반바당에 [통영시 연화도 욕지도(欲知島) 앞 반반한 넓은 바다에] / 쪽대선이 떠나간다 [작은 돛단배가 떠나간다] / 얖에배는 임탄배고 / 뒤이배는 장사배네 / 장사배는 장단을치고 / 임탄배는 소리하고 / 노래로쩡쩡 내잘만불러라 / 시매장단은 내가치마 [심성에서 우러나온, 흥이 나는 장단은 내가 치마]”
④ "우리집 서방님 조기잡이 갔는데" / 임봉진, 하청면 어은리 장곶
금슬이 좋은 아내는 노래(Ⅰ)을 부르고 금슬이 나쁜 아내는 마지막 말을 바꾸어 노래(Ⅱ)를 부른다고 한다. “통영의 연화도 욕지도 넓은 바다에 우리 낭군이 조기잡이 갔는데, 바람 불어 파도 일어나 위험할까 걱정이다. 북두칠성이 떠 있는 바다에 아름다운 용선이 떠다니고 옥같이 사랑스런 우리 낭군의 모습이 술잔에 비치리라”
노래(Ⅰ)
“연해욕지 반바당에 / 우리서방님 조기잡이갔는데 / 바람불까 걱정이네.
칠성 바당에 용선이 떴고 [북두칠성이 굽어보는 바다에 용선(龍船)이 떠다니고] 우리님 술잔에 옥동자가 떴네.“
노래(Ⅱ)
“연해욕지 반바당에 / 우리서방님 조구잡이갔는데 / 바람아 강풍아 달열흘만 불어라.
칠성 바당에 용선이 떴고 우리님 술잔에 옥동자가 떴네.“
(9) 해산물채취 유희요(海産物採取 遊戱謠)
① 꿀 까는 처녀 / 하청면 어은리 장곶 김옥란.
바닷가에 개발(해산물 채취)하면서 부르던 노래인데 아주 신명나게 불렀다. ‘시내갱빈’은 바닷가를 일컫는 말이고, ‘물레테댕기 꼬시랑머리’는 물레 테를 댕기처럼 곱슬머리에 동여맨 어린 아이란 말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장목면 시방리 양또순 할머니의 거제도 대표민요 <굴까러 가세>의 사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거제도 북부 지방에서 널리 전승된 민요였다.
“시내갱빈에 꿀까는처니야 / 네언제커서로 내친구될라노
물레테댕기 꼬시랑머리 / 네언제커서로 내낭군될라노“
② 굴까러 가세 / 장목면 시방리(矢方里) 양또순.
거제시 자료에 따르면, 거제지방의 대표적인 토속민요인 <굴까러 가세>는 거제시 장목면 바닷가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춘궁기의 어려운 식생활 해결을 위해 아낙네들이 바닷가 주변에 널려 있는 작은 바위섬 등에 자생하는 굴을 캐면서 불렀던 노래로서,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겨 있으며, 가사 또한 익살스럽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이 노래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이곳 갯마을 부녀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던 노래를 민요 발굴팀에 의해 재연케 되었다고 한다. 원창 전승자는 장목면 시방리 양또순 할머니가 불러 거제시 토속 민요로 지정 전승되고 있다.
거제시 북쪽 장목면 구영 농소 유호 시방리 인근에서 해산물이 풍부한 유인도 중에 하나가 진해시 연도(椽島 쇠섬)이었다. 옛날 연도(쇠섬 새섬)는 웅천(現진해)과 부산가덕도 거제부의 경계에 있었던 관계로 관할구역이 뚜렷하지 않아 거제사람들이 마음껏 해산물을 채취하려 다닐 수가 있었던 곳이었다. 장목면 구영등에 영등포진영이 위치하고 있을 때에는 거제부 소속 섬이었다. 거제읍지(巨濟邑志) 1864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각도, 연도는 고을 우측 동북 바다에 있다[角島 椽島右府東北海中]”고 하면서 거제부의 관할지역임을 뚜렷이 밝혔으나 조선말기로 넘어 오면서 소유권이 웅천(現진해시)로 바뀌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굴이나 조개가 많아 어민소득이 높은 곳이다. 또한 연도(椽島 쇠섬)은 고려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으로 조용한 날이 없어, 인근 지역으로 주민을 소개시킨 기록이 전한다.
앞서도 언급 했지만 ”연두(연도 椽島)야 새섬(쇠섬)“은, 조선말기 1895년 5월 8일 탁지부(度支部) 공문에, ”천성(天城)‚ 가덕(加德)‚ 연도(椽島)는 웅천(熊川)의 섬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돈섬‘ 또는 ‘쇠섬‘으로 불리다가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서까래 ’椽’자를 차용해 연도(椽島)가 되었다. 이 섬에는 우물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으나 물의 양이 적다. 하지만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여 지금도 살기 좋은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거제도 시방리에서 연도까지 하루 만에 갔다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돛배나 노 젓는 배로 아낙네들을 싣고 한나절 동안 항해한 후에, 연도에서 굴을 채취해야 하니, 하룻밤 이상은 연도에서 자고 와야 했던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굴까러 가세>는 원래 장목면 아낙네들이 굴을 캐러 가면서 간단히 불리던 노래를 다듬고 사설을 덧붙여 제창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반복구인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쇠섬)에 굴까로 가세“,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는 민요의 흥취를 살리기 위해 새로 다듬어 만든 후렴구이다. 그리고 사설 내용 속, ‘겸사수사(兼事數事)’는 두 가지 이상 즉, 몇 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취한다는 의미로,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뜻이고, ‘물래야 댕기 꼬시랑 머리’는 물레 테를 댕기처럼 곱슬머리에 동여맨 어린 아이란 말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앞소리꾼]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쇠섬)에 굴까로 가세
[뒷소리꾼] 굴도 까고 남도 보고 겸사수사(兼事數事)로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시내 갱변에 굴까로 가세 /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앞뒷집 큰아가 굴까로 가세
[다함께]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우리 일행들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못살겠네 못살겠네 연두 새섬에 못살겠네 / 밤에는 님그립고 낮에는 물기립아 연두야 새섬에 못살겠네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배를 타고 놀러 가세
[다함께]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시내 갱변에 굴까로 처자야 니 언제커서 내친구 될래 / 물래야 댕기 꼬시랑 머리 니 언제커서 내사랑 될래
[다함께]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타박 타박 타박머리 니 언제 커서 내낭군 될래 / 조그마한 타박머리 언제 커서 내사랑 될꼬 /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바다에 갈바람 분다 / 바람이 불고 비올줄 알면 그 누가 굴까로 가나
[다함께]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굴까로 가세 굴까로 가세 이섬저섬으로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시내 갱변에는 벗굴이요 뭍에는 벌굴이요 / 물밑에는 해삼이요 뭍에는 인삼이요
[다함께]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물밑에는 고기가 많아 용될 고기가 몇몇인고 / 각시야 자자 각시야 자자 삼든삼가래 재쳐놓고 / 신랑아 자자 신랑아 자자 보든 책장 덮어 놓고
[다함께]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앞소리꾼] 물을 길러 동천에 놓고 건너산 보고 한숨쉬네 / 새미가 좋아 물길러 왔나 낭군이 그리워 물길러 왔지
[다함께] 얼시구 좋타 절시구 좋타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가~세 가~세 굴까로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로 가세
◯ <굴까러 가세> 거제민요는 1995년 경남민속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준우승, 그 외 수많은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거제도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거제민속 보존을 위해 수고하시는 시방부녀회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리며,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③ 어딤이 노래 / 일운면 망치리 망치 제명순.
거제도에서는 ‘어딤이’는 어리숙하고 푼수인 사람을 말한다. ‘어림이‘는 싸리삼태기를 이르는 말이고 소양은 어린 여자아이를 일컫는다. “깐챙이에게 다 바쳤네”는 까치가 다 물어 가버렸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으나, 여기서 ’깐챙이‘는 지역에서 하릴없이 남의 물건만 탐내는 건달들을 비유한 것이다. 실컷 미역을 채취해 삼태기에 가득해도, 결국 동네 건달에게 다 빼앗길 걸, 뭐하려 애써 개발(채취)하려 다니느냐고 놀리는 대꾸 형식의 민요이다. 제명순 할머니가 선창을 하니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합창을 하였다. 갯마을 노래다운 내용이다.
“어림이 소양은 / 경상도 소양네 / 뭐할로 왔는고? / 미역캐러 왔다네 / 미역닷단 캐였는고? / 신닷단 캐였지 / 나한단 주고가소? / 깐챙이 다바쳤네.”
④ 배선왕 노래 / 현순금, 일운면 망치리 망치
‘배선왕 노래‘는 명절에 놀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하나, 본래 배선왕은 굿할 때 부른 노래가 민요화 된 것이다. 앞사람이 선창하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로 후렴을 노래한다. 후렴은 “부리시라 부리시라”인데 ’선왕’ 즉, 자연의 여러 어진 통치자의 도움으로 무사귀환을 축원하는 굿거리에서 파생된 사설로 이루어진 민요이다. ‘명지마당’은 명주처럼 부드럽고 잔잔한 바다를 말하고 ‘은천돈천’은 銀도 千, 돈도 千, 즉 많은 재화(財貨)를 얻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뱃고사의 대상신을 흔히 ‘배서낭’ 또는 ‘배선왕’이라 하기 때문에 뱃고사 노래를 ‘배서낭굿 노래’ 또는 ‘배선왕굿 노래’라 하기도 한다.
“우리 청년들아 / 먼바당으로 가거들랑 / 바람길도 막아내고 / 구름길도 막아내고 / 명지마당 실바람에 / 안고온다 지고온다 / 부리시라 부리시라.
은천돈천 병조호호조천 / 몸에쌈돈 허리줄돈을 / 만선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장군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 하늘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받을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 이물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고올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 성주선왕을 부리시라 / 부리시라 부리시라.“
바다에서 배를 부리는 뱃사람들의 불안을 없애고 풍어와 무사안전을 위해 선사시대부터 전승된 의례이다. 뱃고사는 섣달 그믐날·설날·정월 대보름·삼짇날·추석 등의 명절에 주로 행하며, 배를 만들어 처음으로 바다에 띄우는 선망 時에도 고사를 지낸다. 또한 당산제를 지낼 때, 출어할 때, 재수가 좋아 만선되어 장원할 때, 자주 배 사고가 날 때, 선주에게 부정이 끼어 우환이 있을 때, 선주나 선장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질 때도 뱃고사를 지낸다. 과거에는 매월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첫 사리 때 그리고 조금 때마다 정성을 다해 고사를 모셨다. 또한 출항할 때마다 고사를 지내는 배도 있지만, 술을 바다에 헌식하는 ‘제향’ 의식만 올리고 출어하기도 한다. 위 사설은 거제도지역에서 무당들이 배선왕굿 무가를 구송(口誦)할 때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⑤ 청어 엮기 노래 / 일운면 망치리 망치, 제명순.
거제민요 <청어 엮기 노래>는 여성유희요(女性遊戱謠)로써 강강수월래·놋다리밟기 등을 하면서 함께 부르는 형식으로 내용이 풍부하다. 강강수월래, 놋다리밟기 등 그 비슷한 것이 전국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세시 의례이면서 여성의 집단 유희이다. 노래는 선후창으로 부르면서 진행된다.
특히 거제도 청어엮기 노래는 전라남도 서남해안 지방에서 유입되어 거제지역 사설로 변형된 노래이다. 대보름이나 한가위 날 밤에 청어엮기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이며, 강강술래 놀이의 일부분으로써, 생선 두릅을 엮듯이 엮어가면서 풍어를 기원하며 부르는 민요로, 맨 앞사람이 왼쪽(오른쪽) 사람과 잡은 손 밑으로 빠지면서 자기 몸을 엮어 계속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놀이이다. 앞에 선 선소리꾼이 “마산포 청에야 두름두림이 엮어라(거제도 지역)”라고 고운 목소리로 구성지게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가 “어이~” 합창하며 청어엮기 놀이로 들어가고 노래에 맞추어 손발의 동작이 시작된다. 열을 지어 서거나 둥근 원을 그려 서로 손과 손을 잡고 서는데, 맨 앞사람이 둘째 사람과 셋째 사람이 맞잡은 팔 밑으로 빠져나가는데 청어를 꿰는 시늉이다. 이렇게 차례차례로 꿰어나가는데, 이 때 오른손은 왼쪽 어깨 위에 감기게 되어 청어를 엮은 형태가 된다. 청어 엮기가 끝나면 선소리꾼이 “대꼭딱 청에야 두름두림이 풀어라(거제도 지역)”를 부르면 엮을 때와는 반대로 풀어간다. (오른손이 왼쪽 어깨위로 감길 경우 왼쪽으로 돌며 푼다) 한 사람씩 팔이 풀리게 되어 다시 둥근 대형이 되는데 청어풀기라고 한다. 어로작업이 무용화한 일종의 모의무용(模擬舞踊)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대관(韓國民俗大觀)4-세시풍속(歲時風俗)·전승(傳承)놀이』. 강강술래의 놀이 가운데 하나인, ‘청어엮기’를 보면서 청어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 수 있다.
“마산포 청에야 두름두림이 엮어라 / 대꼭딱 청에야 두름두림이 엮어라 / 마산포 청에야 두름두림이 풀어라 / [‘여러 사설로 반복’] / 대꼭딱 청에야 두름두림이 풀어라.”
◯ 현재 한국국악협회 거제지부 ‘거제시 전래민요놀이 보존회’에서, 거제시대표 민요놀이로 승화 발전시켜 거제도의 고유문화로 이어가고 있다. 김점례 정삼자 최임숙 김귀복 최미령 전화숙 外 수십 명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13가지 거제도 민요놀이“ 정기 공연을 이어감에,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마음 전한다.
”조개 부르기, 진강강술래(인사)강강술래, 고사리 끊자(서서, 앉아서), 청어엮기, 청어풀기, 지애밝기, 대문열기, 달구새끼 떼어보세, 덕석(몰기, 풀기), 자진강강술래(퇴장) 13개 놀이로 구성되어 약 30분 동안 공연을 하고 있다. 거제도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 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격려를 당부한다.
⑥ 생선 소리(그물놓자) / 류효평 윤경남, 일운면 구조라.
어장에 도착해서 배의 그물을 놓을 때나, 배 안으로 걷어 올린 그물속의 생선을 떼어내 분리하고 그물을 고르면서 불렀던 사설이다.
“그물놓자 그물놓자 저 갱빈에 그물놓자
만경창파에 그물놓자 온갖 괴기 다 걸리라
울고가는 우래기 그물놓자 그물놓자
살살긴다 살가재미 까찰하다 쑤기미
오동포동 볼뽁지 아가리 크다 대구야
꽁지 넙다 광어야 질이 질다 쌍칼치
골고간다 고래기 놀고 가는 놀래기
저코논 살가재미야 살살군다 배가재미
그물놓자 그물놓자 천하잡놈 뿍띠기야~
그물놓자 그물놓자 저 갱빈에 그물놓자“
◯ <생선재담> 최유엽(친정 추자도), 지세포리.
"씨아방 소라고딩 씨어멍 늘근전복 / 남편은 쑤기미 씨누이는 노래미."
----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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