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꾸는 농사

[松庵]

엊그제 내린 비로 개울물이 많이 불어났다. 며칠 동안 뜸하던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개울물소리에 실려 다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날씨가 들 모양이다.

그저께 밤에는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 개울가에 나가 개울에 잠겨 놓았던 김치 통을 옮겨 놓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다. 지난여름, 밤새도록 내린 비로 개울물에 잠겨 놓았던 김치통을 떠내려 보내고 나는 한 동한 허망하고 짠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김치는 우리 한구 사람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부식이다. 다른 음식은 걸러 먹어도 별 생각이 없는데 김치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오랫동안 길들어진 식성에서 일 것이고, 또 우리의 신체 일부 세포조직이 김치의 성분으로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머나먼 두메산골에서 먹는 김치는 누구의 손을 빌렸건 간에 그 은혜가 막중하다.아직은 손수 담그지 못하고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해 가지고 오는 처지인데, 번거로운ㄴ 수고와 네 댓 시간 차로 실고 와서, 또 배낭에 짊어지고 산길을 한참 올라와야 한다. 날씨가 더울 때는 운반 과정에서 시어지기 일쑤이다.

내가 이 산중에 오두막으로 온 것은, 단순히 사람을 피해거나 어떠한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방해 받음도 없이보다 간소하게 내식대로 살며 자연과 함께 같이 있기 위해서다. 어차피 홀로 지내려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자급자족으로 생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김치도 이제는 내 식대로 담가보려고 한다. 몇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 익숙해질 것이다.

다행이 개울가 옆에 비옥한 채전밭이 있어 지난번 집일을 할 때 밭을 일구고 모종과 씨앗을 사다 뿌려놓았다. 감자 세 두둑, 케일 한 두둑, 가지와 고추, 토마토, 오이 도 가가 한 두둑씩, 그리고 호박 다섯 구덩이, 아욱씨는 구하지 못해 뿌리지 못했고, 배추는 이곳이 고랭지라 더 있다가 모종을 하라고 해서 두 두둑을 남겨 놓았다. 가지모와 고추모, 토마토모는 동상에 걸려 주저 않을 거 같더니 햇볕과 비를 받아 소생했다. 추위에 강한 케일은 며칠 전부터 뜯어 먹을 만큼 잎이 무성해졌다.

채소를 가꾸어 보면 먹는 재미보다 가꾸고 기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김을 매고 벌레가 끼지 않도록 보살펴줘야 하는 뒷손질이 따르지만, 세상에 어디 공것이 있으며 거저 되는 일이 있으랴 하면 거들어 줄만하다. 채소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자주 보살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채소를 손쉽게 자라게 하려면 검은 비닐로 덮어 주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검은 비닐로 덮어주면 그 많큼 태양열을 많이 받아들이고 잡초가 자라지 않아 일거양득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만 마음대로 쉼을 쉴 수도 없고, 햇볕도 직접 쐴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흙의 은덕으로 살면서 흙에게 그렇게 차마 할 수가 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석유화학제품의 미끌미끌한 비닐이 우리의 어머니인 대지를 덮고 있는 황량하고 살풍경한 것이 나는 싫었다.

요 근래에 들어와서 우리 농촌에는 생산성 및 효율만 따진 나모지 제초제를 마구뿌리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마구 주어 우리 토양이 죽어가는 흔히 것을 볼 수가 있다. 생태계의 파괴로 보아 심히 우려할 일이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받아 후손에게 이어줄 이 땅을 가꾸고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국가적인 대책이 마땅히 강구되어야할 중대한 사항이다.

내가 정기구독으로 하고 있는 우일한 자지로(녹색평론)이 있는데, 격월간으로 나오는 이 잡지는 잡지라고 부르기에는 좋은 글이 많이 실려 있다. 한 젊은이가 유기 농업을 하게 된 경위와 거기에서 얻은 귀중한 체험, 그리고 피땀으로 이어진 그의 노력으로 수확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까지 연대해 뿌리내리는 과정까지 기록한 수기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대지와 인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머리로써가 아니라 손발과 따뜻한 가슴으로 웅변하고 있다.

나는 현재 전라남도 부안군 변산면의 한 마을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내가 이 마을에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한 것은 10년이 됬다. 다 알고 있다 시피 농사는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자연과 생면의 순환원리를 여렴풋이나마 깨닫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런 말로 시작된 수기는, 농사를 통해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조금씩 캐내면서 인간이 형성되어 가는 모습을 느껴가는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젊은이들이 농촌에 있는 한 우리 농촌의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다. 농사가 수지타산으로 그리 맞지는 않더라도 대지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정성들여 가꾸는 그 공덕은 어떤 길을 통해서건 반드시 돌아온다.

경제성만 따진 다면 이 땅에 농사지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식 및 식량을 손수 땀 흘려 지은 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그자체가 그 어떤 직종보다 거룩하고 당당하고 건강한 생업이 아닐 수 없다. 농부는 농사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이땅에 얼도 함께 가꾸는 몫을 하고 있다.

곡식을 먹고 사는 우리 인간은 그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의 고충과 함께 이해하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한 톨의 곡식을 생산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밥알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자신의 복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 것이다.

f은 음력으로 4월 보름, 불가에서는 여름 안거가 시작되는 결제일이다.아ᅟᅵᆷ나절 방 청소를 하고 불전에 차 공양을 하였다. 내 오두막에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인도에 갔을 때 구해 온 전단향나무로 된 불상이다. 작지만 단아한 모습, 빈 집에 이 부처님과 함께하니 조석으로 게으리지 않게 되는 덕이 있다.

누가 들을 사람이 없으니 아침에 목청껏 예불을 드리고 나면 아주 속이 시원하다.

이 여름철에 나는 아부 감소하게 지내려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서탁에 아주 엄선을 해서 세권의 책만을 골라서 내 놓았다.

입산 출가하여 맨 처음 배우고 익힌 글이, (초발심 자경문)인데 이 글을 대할 때 마다 처음으로 출가했을 때의 풋풋한 초발심으로 되돌아온다. 간소하게 살고자 하는데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줄 것이다. 13세기 일본의 뛰어난 수행자, 도원선사,의 정법안장은, 자칫 안히 해지기 쉬운 수도생활에 준열한 채칙이 되어줄 구도의 서이다. 예전 체제로 75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의 책인데 그 중에서도 내가 즐겨 읽는 책은 16권에 수록된 행지의 장이다. 행지란 수도생활을 계을리 하지 않는 일, dePt 수행자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 자취와 치열한 구도 정신이 오늘에 나에게 크게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혠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강승연번역본)

1845년 3월말 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수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소로우는 그곳으로 22살에 들어가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숲속의 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체험한 기록이 (우러든)이다. 몇해 전 보스턴에 들렸을 때, 메사 추세스 주의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가에 그 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중국 탕황의 욕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 날마다 그대 자신을 온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내일은 채소밭에 김을 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