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회 칠일절 경배식 및 기념식
2007.07.01 (일) 한국 경기 가평 천정궁
(경배의식, 가정맹세, 대표 보고기도, 축하 케이크 커팅, 성찬 드심, ‘제1회 칠일절(하나님 축복 영원 선포식; 1991년 7월 1일 오전 7시)’ 말씀 훈독, 축가, 꽃다발 봉정)
오늘이 무슨 날이라구요? 「칠일절입니다.」 칠일절이라는 말을 내가 다 잊어버렸어요. 오늘 그 말을 들을 때 내가 잊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깨어 가지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축복 영원 보호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 칠일절
그 내용은 간단해요. ‘축복!’ 해봐요. 「축복!」 영원보호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 칠일절이다. 7과 하나를 더한 8, 7과 8이 하나돼야 되는 거예요. 8은 돌아가는 것을 말해요. 7은 뭐냐 하면, 자리를 잡고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 사람을 보면 얼굴 가운데 하나 둘 셋 넷 이건 횡적으로 돼 있어요. 다섯 여섯 일곱 이것이 전부 다 이게 8자를 그려 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왜 목이 가늘어졌느냐 하면 둥그런 것을 배우기 위해서, 깨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땅이 어떻더냐? 둥글기 때문에 그것을 깨치기 위해서 내 목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머리에는 일곱이 있어 가지고, 그 얼굴 자체도 가만 보게 되면 참 아름답게 생겼어요. 이 얼굴 자체가 우로도 가고, 위로도 갈 수 있게 해 가지고 이렇게 들어갈 수 있고 어디든지 평등한 측정을 가지고 자기가 안전한 복 받은 아들이 될 수 있게끔…. 하나님이 찾아와서 자랑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생각하는 자체로도 감사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예.」 아시겠어요? 「예.」
그래, 7자라는 것은 쭉 놓고는 이렇게 되고…. 8에다가 7자를 넣으면 우주 가운데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이 포인트, 7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8자는 돌아야 된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돌 수 없어요.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 ‘축복이다!’ 해봐요. 「축복이다!」 ‘축(祝)’자는 무슨 자냐 하면, ‘보일 시(示)’ 변에 ‘형님(兄)’을 했어요. 형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우주 가운데 슬픔이 뭐냐?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형님의 모든 것을 배워 가지고 형님이 보고 좋아하는 우주의 동위권을 찾지 못한 것이 타락이다. 이렇게 봐요. 그래, ‘축(祝)’자를 누가 그렇게 지었을까? 여러분, 한문이라든가 중국의 역사는 동이족(東夷族)으로 말미암아 됐다는 사실이 이제 역사가 증거하게 됐어요. 고구려라는 나라를 중심삼고 수나라로부터 당나라를 거치면서 없애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남아졌어요. 나중에는 연개소문이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새로운 모든 것을 모으기 위해서….
여러분이 연개소문이라든가 대조영의 역사를 보면 잘 알 거라구요. 그것은 이 시대에 하늘의 뜻이 종착점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산모가 산고의 고통을 겪는 역사적인 이런 표출시대가 왔다. 선생님은 그렇게 봐요.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모든 역사, 지금까지 아시아에 되어진 역사의 배후에 엮어진 모든 사연들은 슬픔의 역사인 동시에 투쟁의 역사이고 피 흘린 역사인데 그 역사의 내용은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거쳐온 수많은 투쟁이라든가 전쟁의 피 흘린 놀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원줄기…. 원동력이 될 수 있고, 원래 근본이 될 수 있는 싸움 모양을 제시한 것이 우리 고구려인들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섭리사와 어쩌면 그렇게 맞는지 몰라요.
‘축(祝)’ 자는 형님(兄)을 보여(示) 주라는 뜻
자,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축(祝)’ 자라는 것은 형님(兄)을 보여(示)줘라 이거예요. 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아담 가정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뭐냐? 형님 자리를 보여주지 못했어요.
아담과 해와가 형제라고 하게 될 때 아담이 형님 자리를 못 보여줬고, 그 다음에 아담 아들딸을 중심삼고 태어난 가정에서 아들딸을 낳는 데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가 보여주지 못한 아들딸을 보여주기를 바랐는데 그것도 못 보여줬어요. 지금까지 어머니시대, 자녀시대에 못 보여 준 것을 수많은 역사를 거치면서도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축복이라는 말이 귀중한 것으로 모셔 온다 이거예요.
‘형님을 보여줘라!’ 해봐요.「형님을 보여줘라!」나는 형님이 아닐 수 없다!「나는 형님이 아닐 수 없다!」아닐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이 없는 거예요. 나는 형님이다!「나는 형님이다!」‘형님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보다도 ‘나는 형님이다!’ 해야 돼요. 어떤 게 좋아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뭐 형님, 무슨 탕감복귀, 무슨 본연의 에덴복귀 기준을 회복해야 된다고 하는데 ‘형님인지 모른다. 형님인지 알 수 없다.’ 이래 가 지고는 안 됩니다. 그걸 지나 가지고, 나는 형님이다! 「나는 형님이다!」 그런 자각을 가져야 돼요.
형님으로서 당당히 보여주는…. 위로는 하나님과 부모 앞에 보여주고, 아래로는 동생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형님이다. 그런 표제가 인류 역사 가운데 제시됐더라면 오늘날 인류역사는 이렇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모든 귀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다시 상치되는 입장에서 찾겠다고 하는 그런 비운의 인류역사가 아니 됐을 것입니다.
형님을 못 보여줬다. 형님을 보여 줄 수 있는,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형님이 참된 부모인데 참된 부모가 있어 가지고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러면 그게 형님 책임이냐, 부모 책임이냐? 이런 문제가 돼요. 형님보다도 더 기가 막힌 것은 ‘부모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구나!’ 이거예요.
그러면 부모를 만들어 준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책임을 했느냐?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책임을 못 했다는 결과가 부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부모가 없기 때문에 형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니 형 될 수 있는 그런 표본이 없으니 그 형이 형님인지…. 자기가 따라가야 할 분인지 모를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왔다갔다하고 자아를 결정하지 못한 입장에서 역사적인 혼란권 내에 출발에 출발을 계속한 후손 후손, 멸망의 후손의 역사를 지고 이어 나온 우리가 아니었더냐! 그들의 결론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형님이 있다 해도, 형님이 나타나서도 구할 수 없습니다. 형님이 책임 못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가 나타났더라도 부모가 책임 다 못 했어요. 형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부모로서 하나된 사랑의 전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나타나도 형님 될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을 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부모 될 수 있는, 부모의 뿌리 될 수 있는 하나님이 있었다면 하나님도 하나님 자체로서 참된 부모의 길, 참된 주인, 참된 어머니, 스승의 기준을 보여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와 참된 주인과 참된 스승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돼요.
그러면 축복이라는 이 말이 얼마나 귀하냐? ‘축(祝)’자는 ‘형님을 보여 다오.’이고, ‘복(福)’자는 ‘보일 시(示)’변에 하나(一)의 큰 입(口)이에요. 하나의 입, 그 다음에 하나의 사방, 큰 밭(田) 위에 심을 수 있는 하나의 씨, 큰 밭 가운데 심어질 주인 될 수 있는 하나의 사랑, 큰 우주 가운데 주인이 되어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 그건 전체가 됩니다.
개인 입장이 되고, 나라의 입장이 되고, 세계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이 큰 입(口)과 밭(田)이다 이거예요. 이 밭은 우주를 말해요. 이 가운데는 ‘십(十)’자가 들어 있어요, 십자가. 십자가를 소화해 가지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랑이다. 그 뜻이 아주 탕감복귀원리의 정수적인 내용을 다 지니고 있어요.
나 자신이 형님이 돼서 보여줘야 돼
그렇기 때문에 복이란 것, 복이 무슨 복이냐? 우주의 대표적 존재 될 수 있는 형님은 형님을 보여주는 것이고, 어머님은 어머님을 보여주는 것이요, 하나님이 창조하기 전부터 보여주고 싶었던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가 돼 가지고 격으로는 남성격 주체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다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 자체를 봐 가지고 알 수 있는 우리 인류의 조상이 됐어야 했는데, 알 수 있는 인류 조상은 어디로 갔는고? 그가 가르쳐줘야 할 참된 형님의 부모, 어머니의 자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그 어머니는 어디에 갔는고? 하나님이 사랑의 보금자리요, 안식처로 씨를 심으려 하던 그 어머니, 천지의 부모 될 수 있는 부모는 어디에 갔는고? 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의 해결점이 어디에 있느냐? 그건 이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우주에 있다고 하지만, 그 본래 장본인 자리에…. 언제나 현실적 자리에 대표로 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나라는 존재다 이거예요.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축복을 찾아서 이뤄야 되는 것이다. 이러면 하늘 부모로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그 다음에 지상에 있어서 부모로서 보여 줄 수 있는 그 부모의 대신자가 내가 되면 좋겠다, 형님으로서 누나로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가 내가 되겠다, 나 아니면 안되겠다 하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역사에….
그런 결정적 자리에 섰으니 “하나님이든가 우주의 모든 가당치 않은 결과를 이루어 낸 모든 주인들이여, 나를 찾아 면담해 봅시다.” 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야 되고, 인류의 참부모가 나타나야 되고, 인류의 참형님이 나타나야 될 이 입장에 있어서 “당신이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고, 내게 가르쳐 줄 것이 무엇이오?” 이렇게 묻게 된다면, 그 내용의 답이 무엇일 것 같아요? 참사랑의 길을 개척해서 나를 중심삼고 전체가 해결될 수 있는 나를 세우는 것이다.
여러분, 다 그렇지요? 자기가 제일 일등 되고 싶지요? 하나님의 동생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의 형님이 되고 싶어요? 부모가 있으면 아버지의 동생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의 형님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가 있으면 어머니의 동생이 되고 싶어요, 언니가 되고 싶어요? 누나면 누나, 오빠면 오빠의 동생이 되고 싶어요, 형님이 되고 싶어요? 전부가 형님이 되고 싶은 자리를 찾아요. 위의 자리를 찾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는 거예요.
내가 하지 않고는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연대적 관계와 연결을 시킬 수 없어요. 그럴 수 있는 나입니다. 내가 동생이다.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아담 가정에 있어서 오빠가 누구냐 하면 아담이다. 여자가 누구냐 하면 동생이다. 그 오빠의 동생은 누구냐 하면 동생인데 누이동생의 오빠도 될 수 있고 누이동생의 동생이 될 수 있지만, 그 모든 전부도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위가 되겠다. 오빠의 위가 되고, 누이동생의 위가 되고, 누나의 위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책임을 해야 되겠다.’ 할 수 있어야만 됩니다. 거기에 정(情)이라는 것이 있어요, 정.
‘정(情)’이라는 것은 ‘마음 심(忄)’변에 ‘푸를 청(靑)’이에요. 언제나 사시장철 푸르러 가지고 좋은 것을 보고는 언제나 좋아하려는 것이요, 슬픈 것을 보고 언제나 싫어하려고 하는 그런 본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예요. 여러분 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나 자신이 무엇을 보여줘야 하느냐? 형님을 보여줘야 되겠다, 형님이 돼서 보여줘야 되겠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역사에 가담한 동참자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 ‘형님 돼야 되겠다!’ 해봐요. 형님 돼야 되겠다! 「형님 돼야 되겠다!」
‘복(福)’ 자는 형님의 상대 될 동생을 보여 줘야 된다는 뜻
왜 그러냐? ‘축복의 ‘축(祝)’ 자는 형님을 보여달라는 것이니 ‘형님이 돼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형님의 자체를 보여줘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 ‘복(福)’ 자는 뭐냐 하면 형님의 상대를 말해요. 큰 말씀을 이룬 대표의 사랑이 우주를 중심삼아 가지고 씨로써 심어질 수 있다. 그게 ‘복’ 자예요.
그러니 ‘축’ 자는 형님을 보여달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복’ 자는 뭐냐 하면 형님 될 수 있는 남자가 있으면 남자 앞에 절대 상대 될 수 있는 동생을 보여줘야 된다. 그 동생을 통해서 우주의 씨를 심어 가지고 만민 본성, 만세계의 우주까지도 그 밭에서 자라날 것이다 이거예요. 둘 다 보여줘야 하는 자리니 형님에서 보여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형님 외에 어머니가 보여줘야 돼요, 어머니. 형님이 낳을 수 있는 어머니의 자리, 그 어머니의 중심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이고, 참부모 두 부부에서 꽃과 같이 향초를 태워 가지고 야밤에 등대와 같이, 사방에 불을 밝히는 등대와 마찬가지로 그 방향성을 따라 자기의 가고 오는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사고 없이 안전 통과시킬 수 있는 그런 등대가 될 수 있다.
그래, 하늘은 지극히 밝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천(天)’ 하게 되면 두(二) 사람(人)이고, 하늘의 명령(命令)을 할 때는 뭐예요? 두 사람의 뭐예요? 하나의 사람을 세워주는 거예요. 명령의 ‘령(令)’은 하나(一)의 입(口)을, 사람을 세워주는 글자다. 그런 기반에서 나온 것이 문화다. 문화(文化)라는 것은 변할 수 있는 개체 개체가 변해 가지고 하나되는 것을 말해요.
문명과 문화는 어떻게 다르냐? 문명은 체제가 갖춰져 가지고 그 질이 변하지 않고 모든 것으로 화할 수 있는 체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문명 된 세계라고 말해요, 문화 된 세계라고 말해요? 과정적 전제가 문화이고, ‘문명’ 할 때는 정착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을 문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인류역사도 문명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와요. ‘문명(文明)!’ 해봐요.「문명!」해(日)와 달(月)이 하나된 것을 말하는 거예요, 문명.
자, 그러면 형님도, 가인도 결국은 몸과 마음이 있어요. 본성적, 근원 된 마음과 근원에 상대 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서 두 사람의 꽃을 피워서 이루어야 할 인격이 있어요, 인격. 인격 위(位), 격위가 있다는 거예요. 인격을 이루는 그 위(位)가, 자리가 있어야 돼요. 그런 격위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내 안팎이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자기 자체의 선조로부터 개성진리체의 본질적 내용의 그 자체를 완전히 결실시킨, 화해 가지고 빛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자가 돼야 돼요. 둘이 하나 되지 않고는 빛이 안 돼요.
둘이 비벼야 열이 나지요? 그거 암만 혼자 해도 열 안 나요. 겨울에도 산에 올라가 가지고 나무 쪼가리를 해 가지고 토슬토슬한 것으로 들입다 비비면, 거기서 불이 나는 거예요. 열이 나는 거예요. 열이 나려면, 하나되기 위해서는 비비고 돌리고 부딪치고 이래야 돼요. 그럴 수 있어야 열이 나는 거예요.
둘이 하나되는 데는 상충도 많고 불가능의 환경도 많지만, 가능할 수 있는 힘이 가중돼서 작동하는 거기에는 이상현상이 벌어져서 불이 붙어 가지고 그 자체의 모습까지 변경하는, 없애버릴 수 있는 놀음도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보다 강하게 하나되는 곳에는 변화를 이룰 수도 있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우주의 전체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서로서로가 자기 존재의식까지도 잊어버리고 비벼대면 거기서 나는 빛은 세상만사가 다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산에 가나 높은 데 가나 낮은 데 가나 어디에 가더라도 좋아할 수 있는 기쁨의 사랑의 화동의 동산이 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다. 이렇게 생각할 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해 모진 수욕의 연단을 거치게 될 때 열이 도수를 넘게 되면 빛을 내고, 빛의 도수를 넘게 되면 불이 나는 거예요.
그래, 불난다고 하지요? 여러분도 자기 속에서 불이 탄다고 하지요, 불? 또 한국말이 재미있는 것이 ‘기가 차다.’ 그래요. 기가 혼자 찰 수 있어요? 찼다는 것은 둘을 말하는 거예요. 기가 찼다, 기가 막혔다. 기막혀 죽겠다는 말을 하지, 기막혀 살겠다는 말을 들어봤어요? ‘기가 막혀 죽겠구만!’ 하는데, 좋아도 그래요. 너무 좋아도 끝이 나는 거예요. 너무 좋아도, 기가 너무 좋게 되면 웃으면서 죽어 간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공중에 날아간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형님을 보여주고 상대를 보여줘서 하나로 합한 것이 축복
내가 모든 것을 제외해 놓고 형님을 보여줘야 되고, 그 다음에 형의 주체 되든가 상대 될 수 있는 것이 어머니 아니면 누이동생인데 둘 자체를 합해서 보여주면…. 어머니도 있고, 동생도 있으면 타락하지 아니한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인이 새로이 형님을 옛날과 달리 모시고 새로이 어머니하고 가인…. 새로 태어난 그와 더불어 절대복종해 가지고 순리적 원칙에 순응할 수 있는 모체를, 근원을 연결시켜 나가게 되면 기쁨의 절정과 더불어 더 큰 세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뭐냐? 형님이 없었고, 형님을 교육할 수 있는 어머니가 없었다 이거예요. 형님이 교육하는 것을 따라가서 감수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자리에 있어서 누이동생을 잘 지도하게끔 감시했으면 타락했겠어요? 타락 안 하지요. 안 그래요? 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렇게 했다면 타락할 수 없어요.
대번에 ‘해와, 야야야!’ 이래 가지고 완성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교시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직접 연결된 자리에 있으니 안 됐으면 안 된 것을 사방으로 알려주게 되기 때문에 타락할 수 없어요. 상하관계가 일치되는, 반드시 상하가 일치되는 그 점은 수직을 중심삼고 수평 위에 정착, 90도에 정착하게 돼 있다구요. 이런 것으로 볼 때 축복(祝福)이라는 말이 형님(兄)을 보여줘라(示), 또 그 다음에 형님의 어머니 될 수 있는 사람, 동생 될 수 있는 같은 존재, 동생의 존재를 보여줘 가지고 그것을 하나로 엮어놓은 것이 축복이다. 만사형통의 근원이다.
거기 찾아가게 되면 가인의 어머니도 있고, 참된 아벨을 사랑할 수 있는 가인도 있고, 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벨도 있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됐으니 아버지가 있으면 하나 되겠으니 자연히 하나님이 그 집에 들어와서 관찰하고 싶고, ‘이거 내가 창조하던 상대적 목적이 완결돼 있으니 나는 여기에서 짐을 풀고 아이고, 피곤했으니까 좀 쉬어야 되겠다.’ 할 때 쫓아내겠어요? 어머니가 쫓아내겠어요, 아버지가 쫓아내겠어요, 형님이 쫓아내겠어요, 동생이 쫓아내겠어요? “이야, 좋습니다.” 하고 있던 방 내 가지고 “전체 집까지도 다 내주겠으니….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압니다.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자유천지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축복에는 그 두 존재, 상하를 중심삼고 모체가 될 수 있는 어머니의 자리는…. 상하만 연결됐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 가지고 가인을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들어 가지고 가인의 사랑이 아벨까지 가게 했으면, 타락이 없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형님을 보여주고, 상대적 존재를 보여줘야 돼요. 그것을 합해놓은 것이 축복이라는 단어다. 아시겠어요?「예.」‘축복!’ 해봐요.「축복!」여기에 다 들어가는 거예요.
타락의 역사성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탄과 해와의 입장
여러분이 인류 앞에 있어서 형님 된 자세를 보여줘라 이거예요. 또 여자들은 어머니의 자세를 보여주고, 가인의 동생의 자세를 갖출 수 있어 가지고 형님을 도울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가정은 평화의 기원의 자리를 타락한 이후에도 우리 인간들이 교시해 가지고 만들어서, 그 자리도 성사시켜서 안착을 자체들이 함과 동시에 하늘땅에 타락의 기원이 돼 있는 가인 아벨의 피 흘린 투쟁의 역사를 무마시켜 가지고 평화의 안착지가 안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어머니예요, 어머니. 어머니, 여자, 동생 여자라구요. 그러면 에덴에서 해와가 한 것이 뭐냐? 아버지를 에덴동산의 문턱 넘어가게 쫓아내 버렸어요. 만약에 사탄이 주관을 해서 가정을 가지고 나갔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말하는 하나님 대신 마음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 가인을 사랑할 수 있고 키울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 그 다음에는 동생 될 수 있는 해와를 길러낼 수 있는 마음 자체를 타락한 해와가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으면 싸움이 벌어졌겠어요, 통일이 벌어졌겠어요?
핏줄이 달라졌을망정, 하나님도 요구하는 것은 그래요. 하나님이 맨 끝에 와 있어요. 시작을 하려고 맨 끝에 갔으니 하나님 자신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사탄아, 비나이다. 내 해와, 아담 동생, 아담 어머니 한 사람을 죽이지 말고…. 나는 죽어도 좋으니 그를 맡아 가지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느냐?” 한다면, 사탄이 지금 핏줄을 남긴 것을 후손을 이어 가지고 발전시킬 수 있으니 그 모체 된 어머니와 동생이 가인 앞에 굴복할 수 있는 놀음을 가르쳐주는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세상이 이렇게 망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원수가 되지 않아요.
중간에 사촌쯤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촌은 거리가 가까우니까 순식간에 사탄과 하나님의 사랑이 달라요. 사랑, 사랑의 물결이 누가 높으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물결이 높기 때문에 해와나 아담이나 아담의 동생 해와나 마찬가지로 사랑의 물결이 높은 것을 따라가기 때문에…. 사탄의 낮은 물결은 포괄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더라도 타락한 이런 역사성은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류를 멸망의 도가니에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끝날에 가서는 하나님도 “야야, 너도 비참한 그런 입장의 아담 해와를 기르고 품고 사랑하던 그 환경을 빼앗겨 얼마나 기가 차겠니?” 이래 가지고 아담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가인을 사랑하고, 아담의 해와를 사랑하고 “너희들, 하나님 앞에 돌아가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놓지 못하고, 하나님의 목을 못 쥐었지만 발을 쥐고서라도 달려갔으면 하나님이 언젠가는 발전하는 역사…. 해와의 가정에서 따라서 사랑하는 마음이 커 나가기 때문에 마이너스이기는 하지만 지옥까지 멸망할 수 있는 자리까지는 안 들어갔다는 거예요.
이것이 극반대, 180도 반대의 자리에 갔기 때문에…. 아담의 아들딸 전부 다 사탄을 중심삼고 아들딸로 만들어 놨어도 3분의 2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했으면 3분의 1권만 지옥이 됐을 거예요. 그것도 하나님 자식이니 해방적 시대가 오면 순식간에 다 돌아온다는 거지요.
그러나 사탄이 그것을 못 했다는 거예요. 계획적으로 했다는 거예요. 갑자기 실수가 아니고, 계획적으로 어린 해와를 기르면서 아담을 근본적으로 미워한 역사가 그 고개를 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넘지 못해 가지고 밀려나기 시작해서 망국지종이 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끝날에 참부모가 해야 할 일
이제 끝날이 됐으니 문 총재가 해야 할 것, 참부모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나님이 아담 가정에 세울 수 있는 내용을 세워줘야 되고, 아담이 세우지 못했던 해와에 대한 오빠의 책임을 하지 못한 것을 가르쳐줘야 되겠고…. 또 오빠뿐이 아니에요. 오빠 될 수 있는 형제지관계가 사탄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돼 버렸어요. 잘못된 부부의 전통을 뒤집어 놔야 되고, 잘못된 부부의 전통으로 이어받은 잘못된 아들, 새끼를 번식한 것이 인류가 됐으니 이것을 전부 다 바꿔놓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바꿔요? 힘으로가 아니에요. 무엇으로 탕감할 거예요? 참사랑을 잃어버렸으니 참사랑을 세울 수 있는, 거짓사랑 가운데서 참사랑의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세울 바탕이 없기 때문에 설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탕감은 참된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 세계의 사랑보다도 더한 자리가 아니면 탕감원칙의 도리가 찾아질 수 없다. 이런 탕감원리를 여러분은 잘 알고 있어요.
그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3분의 1만 나쁘게 하고, 3분의 2만 좋았다면 여기에서 자라고 있으면 말이에요, 그 종대 순이 나왔으면 순이 없어지더라도 가지가 나와 가지고…. 젊었을 때는 모르겠지만 10년 자라게 되면 똑바로 되는 거예요. 7년이 되면 똑바른 나무가 된다는 거예요.
그랬다면 사탄도 도리어 아담이 갈 길을 제시해 주고 하늘 앞에 가까울 수 있는 이런 뜻도 있을 성싶은데, 그런 내용을 못 제시해 주고 망국지종이 됐으니…. 끝날에 가서도 그것을 필요로 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사탄의 구원까지도, 사탄의 모든 것까지도 책임지고 탕감해 줘 가지고 3분의 2의 기준에 돌아가게 되면 사탄은 자연히 굴복해 가지고 하늘나라를 돕는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도 해방될 수 있는 길을 가기 때문에 형님을 보여주고, 형님의 상대 되는 어머니 혹은 그 딸과 하나돼 가지고 둘만 잘 보여주면 복귀 천국은 축복의 은사와 일치될 수 있는 결과의 내용이 아니 될 수 없느니라! 아주!「아주!」아주 뭐예요? 아주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아주 좋다! (박수)
여러분, ‘아주 좋다.’ 할 때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기러기예요, 그 큰 뭐인가? 두루미인가? 아이고, 두루미 타고 여행을 하니 좋다! 나는 모래사장에 뛰기 잘 하는 타조를 타고 달려갈 때 좋다고 하는 줄 알았더니, 두루미를 타고 세계를 유람할 수 있어 가지고 하나님에 가까운 데서…. 하늘나라 가까운 데서 저 위에는 이런 나라가 있고, 아래는 이러니까 이 가운데 너희들은 모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대신 너희들이 나보다 기뻐하기 위해서 만들어 줬나니 복이냐, 화냐? 복중에 복이 있느니라! 천년만년 만대, 억만대 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아들딸, 그런 충효지도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 다 “좋다!” 그래요.
하늘이 찾아와 구경하고 싶은 가정의 형태를 갖춰라
우리 통일교회 아멘이 뭐라구요? 「아주!」 아주…? 「좋다!」 아주, 완전히 주인이 되는 거예요. 탄복할 수 있는 중심존재가 됐으니 이제는 공중으로 날아갈 수 있는 하늘의 천사들을 세워 가지고 중심삼고 하늘땅을 여행할 수 있는 해방적 주인이 아닐 수 없지 않느냐? 그런 것이 축복을 해 준 형제지인연이요, 부부의 인연이요, 가정의 인연이었느니라! 아주 좋다! 박수! (박수)
그래, 축복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세계에 둘도 없는 최고의 것을 보여주고 해결을 지으려는 여기에는 딴 어떠한 탕감조건과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기 때문에 만승의 권한을 갖출 수 있어도 어느 누가 불평을 할 수 없고 그래도 감사, 아주, 아멘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예.」그럴 수 있는 축복으로 모셔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와 구경하고 싶을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 형태를 갖춰야 되겠다구요.
여러분! 결혼하기 전 15, 16세 된 아가씨의 손길이 예뻐요, 미워요? 해와는 산에도 올라가기 싫어했고, 뛰기도 싫어했고, 좋은 꽃을 가지고 장난하고, 재미있는 것을 중심삼고 놀고, 개미새끼라든가 토끼새끼라든가 이런 것과 놀고 그런데…. 복슬복슬한 것을 만지는데, 손이 뻣뻣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빠요? 그거 맞게끔 다…. 주체와도 화할 수 있는 시절이에요. 시집가기 전 15, 16세가 된다면 여자의 얼굴도 예뻐지고 손길도 예뻐지지요?
여자들이 15세만 되면 입술에다가 칠을 하고, 손에다가 칠을 하는 놀음은 옛날부터 있었어요. 봉숭아꽃 알아요?「예.」물 들이는 것 알아요? 요즘에는 발톱까지 하더라구요. (웃음) 발톱을 분홍 꽃으로 하면 좋겠는데, 브라운 컬러를 중심삼고 새까맣게 칠해요. 발이야 어디 감탕이 돼도 바쁠 때는 신발 벗고 뛰고, 도망갈 때에는 어디 발바닥이 칼에 절반 잘라지더라도 살고 봐야 되겠다면 발이 잘라져도 뛰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타나는 데 제일 표시적 존재가 손길하고 입길하고 발길이에요. 발이 먼저 가지요? 어디 갈 때 발이 먼저 가요, 손이 먼저 가요, 입이 먼저 가요? 발하고 손이 먼저 가잖아요? 그 다음에는 입길이 따라가요.
그래, 남자나 여자들이 왜 키스를 해요? 키스예요, 키즈예요? ‘캐너디언 기즈(canadian geese)’ 하게 되면 두루미 패가 되는데 키스예요, 기즈예요? 키스! ‘스’ 할 때는 슬프다는 말이에요, 좋다는 말이에요? ‘에스(S)’ 발음을 하면 스무스(smooth) 하는데, ‘스’ 자는 뭐예요? 평화도 되고 다 그렇잖아요? 세이브도 되고 다 그렇잖아요? 그래, 좋아요.
하나님의 왕자 왕녀의 소명적 책임
자, 스, 스윽…. 기분 좋게 아가씨와 만나게 되면, 나도 그 손을 만져 줄 수 있는데 그 손이 여자 손보다 더 보들보들하고 가늘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나! 처녀들이 면회 갔을 때 남편 될 사람 손을 보니까 자기 손보다 더 예뻐요. 아이고, 가늘고 더 보들보들하다 이거예요. 그거 얼마나 재수 없고, 기분 나쁘겠어요. 그거 뭐 눈을 감고 보지 않고 뛰쳐나온다는 거지요. 그래도 남자답게 털이 있고 다 이래 가지고 북슬북슬하고 자기 주먹의 1.5배를 넘는 게 좋아요, 1.5배 못 되는 게 좋아요?
가미야마! 딸 이름이 뭐야? 「요시코입니다.」 너 어떻게 한국 왔니, 한국을 싫어하던데? 너 신랑을 좋아해? 물어보니까 나 혼자 살겠다고 해 가지고 간호 무슨 치료법이든가 소제 같은 것 해 가지고 살겠다고…. 혼자 살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혼자 살 생각을 하더니 여기 뭐 하러 왔어? 너 이름이 뭐이던가? 네 남편 이름이? 「준호입니다.」 무슨 ‘준’ 자야? 「‘준걸 준(俊)’ 자입니다.」 이야, ‘준걸 준’ 자의 준호! 색시 이름이 뭐야? 「요시코입니다.」 준호하고 요시코하고 맞아, 안 맞아?
여자들은 언제든지 불평하게 돼 있어요. 요시코, 요시! 전부 다 비판해 가지고 내가 배웠던 가정과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이래야 하고 신랑은 이래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데 자기 아버지 중심삼고…. 어머니를 중심삼고 요시코가 좋고, 나쁘다 선택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내용은 준호가 없으니 “전부 다 나 싫다.” 이럴 수 있는 입장에 딱 서 있어요.
그래, 요시코가 예스코 되기 위해 왔어? 예스코 될래, 요시코 될래? 한 단계 차원 높은…. 요시코라는 일본말보다도 예스코 하면 영어로 예스(yes), 오케이(OK) 아니야? 요시코로 살고 싶어서 왔어, 예스코로 살고 싶어서 왔어? 이 요시코야! 쌍놈의 간나 년아, 몽둥이로 후려갈길 거야. 나는 무지한 사람이야. 요시코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 또 예스코가 더 좋아질 그런 방법만 배웠지 예스코가 요시코 되는 방법은 나는 몰라.
통일교회가 그래요. 탕감법을 알아요. 탕감법을 지낸 다음에는 탕감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해방의 좋다…. 공중에 나는 두루미의 왕족이 돼 가지고 세계를 유람하면서 지도하면서 살겠다! 그거 얼마나 좋아요. 봄이 왔으면 봄 절기, 여름이 왔으면 먹을 것이 많으니 소리를 지르고 “이야, 때가 왔으니…. 먹을 때가 왔다. 점심때 내리자!” 해서 휘익 해 가지고 대장이 쓱 내려서면 천 마리, 만 마리가 벌판을 그저 덮고도 남게끔…. 에덴동산에 행복의 왕터가 되게끔 다 노래하고 먹고, 배부르면 저녁때 “야, 이제는 자러 가자!” 해 가지고 소나무밭, 잣나무 밭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서 좋다고 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는 좋다, 아주가 ‘아주 좋다!’ 그런 받침의 말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제일 귀한 말, 귀한 사람, 귀한 물건, 귀한 사랑의 탑, 사랑의 표상체가 은진미륵의 그 이마에 광채 나는 진주가 아닌 다이아몬드를 단 것과 마찬가지로 밤에도 빛나고, 낮에도 빛날 수 있는…. 행방을 잃어버리지 않고 방향을 찾아갈 수 있는 표준 표시체가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복귀를 완성한 형님 자리, 어머니 자리, 동생의 자리였느니라! 그것을 소위 축복이라고 하느니라, 아주! 「아주!」 좋다! 「좋다!」
천상세계로 날아가 영원히 하나님을 친구하고 살자, 그 이상 행복이 없어요. 그럴 수 있는 약속이 돼 있는 것을 알고,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곱게 목적지 환경에…. 지도하는 자들의 품에 사랑을 받으면서 그 세계에 가 가지고, 그 사랑 받은 하나님의 품에 품길 수 있게끔 대체해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안착할 수 있기 위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왕자 왕녀의 소명적 책임이었느니라! 아주! 「아주!」
그런 자리에 가기를 결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쌍수를 들어 새로운 천일국 7년, 희년을 맞이한 칠일절, 칠팔절 다리까지…. 칠일절에 다리를 놓고 새를 타고 하늘에 갈 수 있는 해방적 축복이 우리 앞에 도달했으니 감사 경배하는 아들딸이 아니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마리도 없다고 결심하는 이 시간 되기를 비나이다! 「아주!」(박수) 만복을 받으시옵소서! 「아주!」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의 열매가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빌면서 선생님 말씀을 마치겠어요. (박수)「이제 황선조 회장의 선창으로 억만세 제창하겠습니다.」 「존귀하신 평화의 왕 천지인참부모님을 모시고 천일국 7년 역사적인 칠일절을 맞이했습니다. 이 땅에 종족적 메시아를 선포하신 역사적인 귀한 날입니다.」
황선조, 요즘에 가르치는 종족적 메시아가 됐으니 그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왕자 왕녀를 선택해야 할 책임이 일족 일족, 씨족들이 해야 할 책임임을 선언하고 있다구요. 다 알지요? 「예.」(억만세 사창) 「전체 선 채로 경배를 올리겠습니다.」 여기 좀 보여야지! 선생님이 젊어 보이지요? 「예!」 (박수) 어젯밤에 말이에요, 어머님이 면도까지 해줬어요. 젊어지라고 말이에요. (웃음) 진짜 젊어 보여요? 「예.」 그러면 됐다! (박수)
그러면 됐다, 그림을 그렇게 그렸으니 그러면 됐다. 됐지! ‘됐지’라는 것은 남의 땅이 내 땅이 됐다, 말로 되듯이! 그런 약속을 결심하고 헤어지겠는데 점심때 됐나, 뭐이 됐나? 아침인가? 「조금 있다가 점심 먹겠습니다.」 점심을 정오정착의 시대이니 배부르게 맛있게 먹고 하늘 앞에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고 내일의 천국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내 사랑으로…! 「내 사랑으로…!」 자연정복한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주인이 되기를 빌면서 헤어지자구요. (경배) 정오의 점심은 특별합니다. (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