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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교회 2023년도 시리즈 설교>
- 설교일자: 2023년 2월 19일 주일
개미에게 지혜를 얻으라
잠언 6:6~8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설교 목적:
교회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삶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중에 협동과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잠언 6장에서 언급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설교를 준비한다. 이 설교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설교 개요:
1. 꿈 이야기
2. 개미 박사 이야기
3. 하나님 나라와 국가
4. 개미에게 지혜를 얻으라 – 협력과 공조
1. 꿈 이야기
설교를 준비하다가 잠을 잤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팝콘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습니다. 집채만한 높이로 팝콘이 튀겨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장소는 우리 교회였던 같습니다. 이것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서 교우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가게에 갔더니 검은색의 작은 비닐봉지만 있었습니다. 더 큰 비닐봉지를 구하고 싶다고 했더니 가게 주인은 이웃 가게로 가서 제품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꿈속에서 저는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렇게 허둥대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혼자 가게로 가서 비닐 봉지를 구할 것이 아니라
교우들에게 알려서 좋은 방법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미 좋은 도구가 있는 곳을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저마다 자기 옷을 벗어서라도
팝콘을 원하는 만큼 담아갈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지금쯤은 그 많은 팝콘이 이미 정리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 잠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언 6:6). 게으르다는 말은 아무 일도 않고 빈둥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만, 이 말씀을 보면 개미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함께 일하고 집을 세울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혼자서 무슨 일을 하는 것도 게으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르다는 말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꿈속에서 어떤 지혜를 얻는 경우가 저에게는 적지 않습니다. 꿈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고민하는 일들에 대한 힌트나 영감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설교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는 저에게 꿈은 설교에 꼭 필요한 영감을 주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설교에 영감을 얻는 방법에는 기도도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드리노라면 설교에 필요한 영감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꿈은 이처럼 우리의 일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요셉은 이집트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집트 왕은 자기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염려하고 걱정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그 전에 요셉은 감옥에서 함께 수감중인 왕의 술관원장과 떡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앞날에 대한 예지였습니다.
어떤 과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구조를 꿈에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는 벤젠의 분자구조를 제시한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1829~1896)입니다. 그 과학자도 벤젠이 화학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을까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하던 중에 꿈속에서 뱀이 자기 꼬리를 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케쿨레는 꿈에서 깨어나 오늘날 우리들이 과학시간에 배우는 벤젠의 분자구조를 그렸습니다. 그 일로 화학자 케쿨레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귀족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성경에도 꿈에 대한 조언이 나옵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전도서 5:3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서 5:7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편 73:20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사람의 꿈이 많은 걱정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꿈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헛된 일을 많이 하게 된다고 조언합니다. 꿈에 붙들려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꿈을 꾸고 나서는 그 꿈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꿈이 우리의 걱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그 꿈에는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에 본 것으로부터 설교에 꼭 필요한 통찰을 얻기도 하고, 어떤 과학자들도 과학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정말 꿈보다 해몽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맞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 황금돼지를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복권을 샀는데 모두 허탕을 치고서 다시는 꿈을 믿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몽을 신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태몽이 맞을 확률은 50%나 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태몽을 신기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꿈에만 의지하는 것은 때로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꿈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조언하는 것이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꿈에 보기도 합니다. 저도 돌아가신 아버님의 관을 꿈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꿈에서 저는 시신이 부패한 냄새를 맡은 것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꿈을 꾸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족 중에 누가 죽는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뜻일까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꾸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때는 제가 무언가 걱정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럴 때 저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꿈을 무시해 버립니다. 꿈은 꿈이니까요!
이상하지요? 어떤 꿈을 꾸고 나서는 설교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어떤 꿈을 꾸고 나서는 기도하고 무시해버리니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꿈을 이렇게 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꿈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면 이사를 하는 일에 지장을 받거나 조상의 묘소를 옮기는 등의 일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묫자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손들이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한다고 믿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요새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공이라는 역술인이 국방부를 방문했느냐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뉴스가 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관저를 옮기는 일을 결정하는 공적인 일에 무속인이 개입했다면 많은 국민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대 문명사회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는 합리적인 근거와 공적인 결정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후진국가일수록 공적인 일을 몇몇 개인이 좌우하거나 무속에 영향을 받아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은 역술인이나 무속이 국가의 대소사에 개입하면 그 나라는 이미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꿈과 해몽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꿈은 다 헛것이니 무시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나 또는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저는 꿈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 경우에 대하여 말씀드렸고 또한 꿈에 대한 성경의 조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꿈에 붙들려 집착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꿈은 우리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꿈은 우리의 걱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꿈을 잘 살펴서 우리의 걱정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는다면 꿈은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잘못 이해해서 우리가 걱정하는 그 일에 대하여 정말로 우리가 스스로 망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었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꿈은 우리가 지금 가장 염려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꿈을 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염려를 우선 말씀드리고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지가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권면하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고 했습니다. 잠언에서도 말하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고 했습니다.
꿈을 꾼 후에 하나님께 기도로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이 그 꿈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무엇이 잘못되어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면 그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잠언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언 19:3)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 울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나 아빠가 와서 안아주면서 말합니다. ‘괜찮아! 엄마 아빠가 네 곁에 있잖니? 걱정하지 말아. 우리는 어디 가지 않아. 항상 네 곁에 있을거야.’ 아이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꿈은 꿈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된 후에 심신이 약해지면 꿈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집트의 왕처럼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인이 악몽을 꾸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꿈에 돌아가신 분이나 신령이 나타나는 것을 현몽(現夢)했다고 합니다. 현몽을 제주도 방언으로는 ‘선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지혜를 얻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야고보서에 그것이 잘 소개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3:17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화평을 이끌어내지만 땅에서 난 지혜는 욕심에 끌리고 귀신이 주는 것이기에 시기와 다툼, 그리고 온갖 혼란과 더러운 일이 생기게 됩니다(약 3:16). 꿈은 우리에게 과제에 대한 힌트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힌트를 잘못 해석하고 땅에서 난 지혜 또는 귀신의 꾀임에 넘어가면 일을 그르치고 화평은 깨어지고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몽이며, 올바른 해몽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써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믿음의 사람은 꿈을 통해서 자기의 문제에 대한 열쇠를 발견하고 유익을 얻습니다. 저도 꿈을 통해서 설교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기에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많은 기도를 드리면서 피곤하면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꿈속에서 제게 알려주십시요. 제가 무엇이라고 설교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요.’ 그러면 그동안 제가 읽은 성경과 책의 내용이 정리가 되고 핵심적인 내용이 마음 속에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설교안과 설교를 위한 묵상글을 정리합니다. 그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2. 개미 박사 이야기
오늘 저는 꿈에서 깨어나 개미에게 배우라는 말씀이 생각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꿈에서 팝콘 담을 비닐봉지를 찾으러 혼자 돌아다니다가 애를 태우면서 깼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교우 전체가 함께 일하고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잠언에서 말하기를, 개미들은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고 추수 때에 양식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개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각자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잠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개미에게 무엇을 배우라는 것입니까? 개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같이 일어나 여름에 일하고 가을에 수고합니다. 여기에서 저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개미들을 지휘하는 두령이나 감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개미들에게는 여왕 개미가 있어서 그가 일개미들을 낳고 길러서 여왕 개미의 왕국을 위해 충성하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미박사로 알려진 최재천 박사는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의 강연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KBS 아침마당에서 최박사가 강연을 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개미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미 사회의 생태는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최박사에 의하면 인간의 유전자와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은 침팬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처럼 집단생활을 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며, 분업을 하고, 농사를 짓는 동물은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침팬지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인간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협력하는 동물은 개미와 꿀벌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개미는 분업사회를 이루는 것은 물론 농사까지 짓는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최박사의 강연에 따르면, 나뭇잎을 잘게 잘라서 입에 물고 가는 개미들은 그것을 자기 개미굴에 가져가서 바로 먹지 않고 잘 쌓은 후에 거기서 자라나는 곰팡이를 먹는다고 합니다. 마치 인간이 나무를 쌓은 후에 거기서 자라나는 버섯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개미들은 그렇게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처럼 인간의 사회적 생활방식과 가장 유사한 생태를 보이는 개미는 전 세계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개체를 모두 모아서 저울에 단다면 75억 인구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무겁다고 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정말 개미의 지혜는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세계를 정복하여 가장 우세한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이 정말 옳을까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지구상에는 개미가 인간보다 더 많은 무게의 개체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중심으로 모인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의 앞날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전도를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저런 마음이 모여 우리 교회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서로 힘을 모아 좋은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노력합니다. 그점에 대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중에 이인성 장로님은 우리 교회가 앞으로 두 사람씩 힘을 모아 한 영혼을 사랑으로 돌보아 교회로 인도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전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이 쉽지 않으니 두 사람이 힘과 지혜를 모아 전도를 위해 협력하자는 말씀입니다. 좋은 생각이 아닙니까!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전도보고를 할 때 주님이 크게 기뻐하셨다는 이야기가 누가복음 10장에 나옵니다. 우리도 금년에 이렇게 해 보면 좋겠습니다. 둘씩 짝을 이루어 영혼을 전도하는 일에 나서 봅시다. 아마 우리의 공동체가 금년에 더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가정에 네 식구가 살고 있으니 두 사람씩 힘을 모은다면 두 사람을 돌보고 전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인성 장로님을 통해서 제시된 이 지혜를 우리 교회에 적용해 봅시다. 그것이 개미에게 지혜를 얻으라는 잠언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3. 하나님 나라와 국가
지난 주에 저는 은퇴하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65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하시는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저에게 도전이 된 것은 ‘하나님 나라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정에 임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모두 더 큰 공동체인 국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나라에도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우리나라에 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에 대하여 그 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만남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은 그 자체로 한 나라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듯이 그들은 거룩한 나라요 택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이끌어 주셨고 그 나라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 법에 의하여 세금도 내고 가난한 사람들도 돌보고 병든 사람에 대한 치료를 실시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지침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로 오면서 교회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쓸 것을 공급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교회가 맡아서 하던 교육과 구제, 그리고 의료와 사회보장의 일을 점차 국가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면서 신앙을 독려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며, 나머지 일들은 국가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 일이란 교육과 국방, 의료와 사회보장, 노동과 구제 등 대부분의 삶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라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있는 많은 지침과 역할을 지금은 국가가 맡아서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고 우리가 어떻게 그 운영에 동참하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신앙인으로서 ‘정교분리’라는 말에 갇혀서 교회는 교회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국가의 일은 정치인에게 맡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미굴로 이야기한다면 개미 한두 마리가 들어갈 작은 구멍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개미굴 전체는 다 개미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공동체이며 영역입니다. 이 세상 어느 한곳도 하나님 나라가 아닌 곳이 없을진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받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국가와 세계에 임하도록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국가보다 더 크고 영원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국가는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국가는 사람들이 운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운영하는 국가는 하나님의 청지기처럼 국민들을 돌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봉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국가는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런 국가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원수입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빌라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유대인이 아니냐? 너의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나에게 넘겼으니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6).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에 넘기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세우고 운영하는 나라를 가리켜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맹목적인 애국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언제나 진리의 편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좋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왕이지만, 그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 나단은 그에게 찾아가서 그를 꾸짖고 그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왕이라고 해서 무작정 지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그 정당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껏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했다 하더라도 그 정당의 정신이 하나님 나라의 정신에 어긋나거나 그 정치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그들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덮어놓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다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들의 죄에 동참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단지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며 남북이 통일되고 수출이 잘 되어 국력이 신장되기만을 구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모든 바람은 옳은 것 같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가장 부강하던 시절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의와 불법이 온 나라에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절에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의 궁궐을 상아로 지었습니다(왕상 22:39). 그만큼 부유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합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의인들을 괴롭게 했습니까?
예수께서는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33).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라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있는 교회보다 크고 국가들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니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람을 향하여 ‘당신은 누구편이냐?’고 질문했을 때 무슨 대답을 들었습니까?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 5:14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가는 하나님 나라에 복종해야 합니다. 국가가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나 교회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말은 진리와 정의, 자비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거짓되고 무자비한 정권이나 무법천지의 나라나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결코 행복을 줄 수 없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국민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밝히 깨닫지 못하면 독재자에게 환호하며 함께 나라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일 국민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 국민들과 교회는 히틀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욕구를 이루어지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는 히틀러의 범죄에 동참하고 말았습니다. 독일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오늘까지도 과거의 죄를 반성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4. 개미에게 지혜를 얻으라 – 협력과 공조
오늘 저는 꿈 이야기로 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꿈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꿈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개미에게 지혜를 배우라는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를 위하여 협력하고 희생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개미의 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고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온 땅에 임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는 국가보다 더 크다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전 세계가 국가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이지만 더 큰 공동체인 가정을 위해 희생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지만 자신이 속한 교회 공동체나 가문 또는 국가라는 더 큰 공동체를 위하여 협력합니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의 인간입니다.
인간보다 더 크고 더 날쌔고 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있음에도 인간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혜 때문입니다. 그 지혜를 통하여 우리는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협력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뜻에 한걸음 더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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