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s Adventuerlandres in Wond
루이스 캐럴 (1832-1898)
영국의 동화 작가이자 수학자.
1832년 영국에서 11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학장의 딸인 엘리스 리델에게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게 되었다. 후속편으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있다.
앨리스
신기한 모험 속으로 뛰어드는 꼬마 아가씨.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불쌍한 동물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하얀 토끼
조끼 주머니에 시계를 넣고 다니는 하트 나라의 문장관. 부채와 가죽 장갑을 잃어버리고 늦어서 공작부인에게 혼날까 봐 걱정한다.
공작부인
속담놀이를 아주 좋아하는 인물. 여왕의 크로케 경기에 초대를 받았지만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다.
모자 장수
시계를 잘못 보여서 영원히 티타임에 머물러 있는 사람. 종잡을 수 없는 말로 앨리스를 헷갈리게 만든다.
하트 여왕
카드 중에서 하트의 퀸. 동물들을 초대해 괴상한 크로케 경기를 벌인다. 늘 입에 “목을 쳐라! “ 라는 말을 달고 다녀서 모두를 벌벌 떨게 만든다.
가짜 거북
항상 슬픔에 빠져서 바다 쪽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앉아 있다. 앨리스에게 신기한 바다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Ⅰ. 토끼 굴로 내려가다
앨리스는 언덕에서 책을 읽고 있는 언니 옆에 앉아 있기가 지겨워졌다. 언니가 읽는 책을 한두 번 슬쩍 들여다보았지만 그림도 없고 대화도 전혀 없는 책이다.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보는 걸까?”
데이지 꽃을 꺾어 목걸이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도(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가물가물 졸리고 정신이 몽롱해져서) 귀찮았다. 그 때, 갑자기 눈이 빨간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앨리스 옆을 달려갔다.
"이런! 이런! 너무 늦겠는걸!”
앨리스는 토끼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나중에 생각해 보니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토끼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면서 허둥허둥 달려가는 걸 보고 나서야 앨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지금까지 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입은 토끼도, 시계를 보는 토끼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호기심이 생겨서 토끼를 쫓아갔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빠져 나올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토끼 굴로 따라 들어갔다.
토끼 굴은 얼마쯤 곧게 뻗어가다가 갑자기 밑이 푹 꺼졌다. 그 바람에 앨리스는 미처 멈출 틈도 없이 우물 같은 아주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물이 깊기도 했지만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어서 앨리스는 사방을 둘러보며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해 볼 틈이 있었다. 우선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우물의 양쪽 벽에는 찬장과 책꽂이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여기저기에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앨리스는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병을 집어 들었는데 ‘오렌지 마멀레이드’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병을 던지면 밑에 있는 사람이 맞을까봐 지나쳐 가던 선반 위에 잽싸게 얹어 놓았다.
“음, 이렇게 떨어지면서도 다른 사람이 다칠까봐 걱정하다니! 식구들이 알면 굉장히 용감하다고 할 거야. 하지만 이대로 우리 집 지붕 위에 떨어져도 아무 말 말아야지.”(이건 솔직한 마음이었다.)
계속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떨어질까!” 앨리스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몇 마일이나 떨어졌을까? 아마 지구 중심에 가까워졌을 거야! 지구 중심이라면 대략 4,000마일(약 6,400 킬로미터)쯤 될 텐데······.”
앨리스는 학교에서 이런 걸 배웠다.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아는 걸 자랑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소리 내어 말하면 훌륭한 말하기 연습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아마 그 정도가 될 거야. 그런데 경도와 위도로는 어떻게 될까?”
경도가 무엇인지, 위도가 무엇인지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럴 듯한 말을 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아는 척을 하며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다 지구를 뚫고 나가는 것은 아닐까?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머리를 거꾸로 한 채 불쑥 솟아오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거기는 아마 극척지(대척지 또는 대척점이라고 하는데 지구 위의 한 지점에 대하여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지점. 이 두 지점은 기후가 정반대이고 12시간의 시차가 난다. 이 책에서 앨리스는 대척지라는 말을 극척지라고 잘 못 말하고 있음)겠지······.”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괴상한 일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게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나라가 어디인지 물어봐야지. 아줌마, 여기가 오스트레일리아 인가요? 아니면 뉴질랜드 인가요?” (앨리스는 한쪽 다리를 뒤로 빼고 무릎을 살짝 굽혀 절을 하는 몸짓을 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도중에 정말 가능한 일인가!)
“나를 무식한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냐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아마 어딘가에 그 나라 이름이 있겠지.”
자꾸자꾸 떨어졌다. 떨어지는 동안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중얼대기 시작했다.
“다이너가 오늘 저녁에 나를 몹시 찾을 거야.”
다이너는 엘리스가 키우는 사랑스런 고양이였다.
“티타임에 꼭 우유를 줘야 하는데. 귀여운 다이너! 지금 나랑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공중에는 쥐가 없어서 실망하겠지만, 박쥐를 잡아먹으면 되잖아. 박쥐는 쥐랑 무척 닮았거든. 그런데 고양이가 박쥐도 잡아먹을까?”
이제 앨리스는 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이 중얼대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박쥐도 잡아먹을까? 고양이가 박쥐도 잡아먹을까?”
그러다가 몇 번은 엉뚱하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박쥐가 고양이도 잡아먹을까? 박쥐가 고양이도 잡아먹을까?”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바뀌어도 상관없었다. 앨리스는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다이너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물어 보았다.
“다이너 박쥐 먹어 본 적 있니?”
그 때, 갑자기 쿵! 앨리스는 마른 풀과 낙엽 더미 위로 떨어졌다. 이제 떨어지는 게 끝났다.
다행히 다친데 하나 없는 앨리스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머리 위는 어두컴컴했고 앞에는 긴 길이 나 있었다. 하얀 토끼가 그 길을 바쁘게 뛰어가고 있었다. 앨리스는 망설이지 않고 바람처럼 토끼를 따라갔다.
토끼는 모퉁이를 막 돌아서면서 중얼거렸다.
“아. 거추장스럽게 귀와 수염은 왜 이렇게 길어? 큰일 났다! 너무 늦었어.”
앨리스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 토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기다란 방이 나왔는데 낮은 천장에는 불을 밝힌 램프가 한 줄로 매달려 있었다.
방을 빙 둘러서 꽉 잠긴 문이 여러 개 있었다. 앨리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다시 방 한가운데로 나와 빠져 나갈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문득,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다리가 셋 달린 조그만 탁자가 눈에 띄었다. 탁자 위에는 작은 황금 열쇠가 놓여 있었다. 엘리스는 분명 열쇠로 잠긴 문 중 하나를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자물쇠가 너무 크거나 열쇠가 너무 작아 어느 문도 열 수 없었다. 열쇠를 맞춰 보는데 낮은 커튼 뒤로 높이가 15인치(영국식 길이의 단위로 1인치는 약 2.54Cm)쯤 되는 작은 문이 눈에 띄었다. 그 문에 열쇠를 끼었더니, 신기하게도 딱 맞지 않은가!
앨리스는 무릎을 꿇고 문을 열어 보았다. 쥐구멍만큼 작은 통로 끝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을 빠져 나가 환하고 아름다운 꽃밭과 분수 사이를 거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머리조차 집어넣을 수 없는 작은 문이었다.
“머리가 들어가도 어깨가 걸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 아! 내 몸을 망원경처럼 쏙 집어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까지 하도 이상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앨리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문 옆에 서 있어 봤자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앨리스는 다른 문을 여는 열쇠가 있건 사람을 줄어들게 하는 방법이 씌어 있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탁자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탁자 위에 작은 병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앨리스는 ‘아까는 분명히 없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병목에는 커다란 글씨로 ‘마셔보세요!’ 라고 씌어 있는 종이가 달려 있었다.
당장 마셔 버릴 수도 있었지만 영리한 앨리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독극물’ 이라고 씌어 있지는 않나 살펴봐야지. “
앨리스는 아이들이 불에 데었다든가, 무시무시한 짐승에 잡아먹혔다든가 하는 나쁜 일이 벌어지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었다. 동화 속 아이들은 아주 쉬운 것도 걸핏하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부젓가락을 오래들고 있어서 덴다거나 칼에 손가락을 너무 깊이 베여 피가 난다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앨리스는 ‘독극물’ 이라고 씌어 있는 병에 담긴 것을 마시면 큰 탈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병에는 ‘독극물’ 이라고 씌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앨리스는 마음 놓고 한 모금 마셨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마치 체리파이와 커스터드(우유, 달걀, 설탕 따위로 만든 반고체 과자), 파인애플, 칠면조 구이, 태피(땅콩과 버터로 만든 사탕), 버터를 발라 갓 구운 토스트 맛이 몽땅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앨리스는 나머지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기분이 이상해. 내 몸이 줄어드는 것 같아!”
정말 그랬다. 키가 10인치(25.4센티미터) 정도로 줄어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통하는 작은 문을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앨리스는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키가 더 줄어들지나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어 잠시 기다렸다.
“이러다가 양초처럼 몽땅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몰라.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지?”
앨리스는 양초가 다 타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자 앨리스는 정원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저런! 문 앞까지 가서야 황금 열쇠를 탁자 위에 두고 온 것이 떠올라 다시 탁자 옆으로 가야 했다. 유리를 통해서 열쇠가 빤히 보였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앨리스는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으나 유리로 만든 다리는 너무 미끄러웠다. 앨리스는 그만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 그렇게 울어 봤자 아무 소용없어. 충고하자면 당장 이 곳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앨리스는 대체로 자신에게 아주 좋은 충고를 해 왔다.(그 충고를 따른 적은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어떤 때는 자신을 심하게 나무라기도 하고 한 번은 혼자서 크로케(나무망치로 나무 공을 때려 철주 문 사이로 통과 시켜 속도를 겨루는 경기) 경기를 하다가 속임수를 쓰고 난 뒤 주먹으로 스스로를 때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앨리스는 자기가 두 사람인 척 하는 걸 아주 좋아 했다.
가엾은 앨리스는 궁리를 했다.
“울어 봐야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문득 탁자 밑에 작은 유리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상자 뚜껑을 열자 ‘먹어 보세요’ 라고 건포도로 예쁘게 장식된 아주 작은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까짓것 먹어 주지. 그래서 키만 커지면 열쇠를 집을 수 있고 작아지면 문 밑으로 기어 나가면 되니까. 어쨌든 정원으로 나갈 수는 있잖아. 그러니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어.“
앨리스는 케이크를 조금 먹고 나서 안절부절 못하며 중얼거렸다.
“커질까? 작아질까?”
키가 커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머리위에 손을 얹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키는 여전히 똑같았다. 물론 대게는 케이크를 먹어도 아무 일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상한 일에 익숙해진 나머지 예삿일은 너무 재미없고 따분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앨리스는 케이크를 마저 먹기로 결심했고 눈 깜짝할 새에 말끔히 먹어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