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우리를 시험에 들게.. 대개 나라와 권세와 .. 아멘
12.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
리라 (마6:12-15)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
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
도 할지니라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회계할 때에 일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
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
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同官)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
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
치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23-35)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기도에 대해서는 오늘로 마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몇 주
동안 기도에 대해 배우실 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입으로만 달달 외우는 데 있는 것이 아
니라 삶을 말한다는 것 여러분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삶으로 나
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 거짓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
께 중이 염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의 믿음이 어떠하냐는 것은 곧 기도의 자세가 어떠하
냐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기도요 기도의 삶입니다. 그의 삶으로 기도가 나타나고 믿음이 나타
나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사람이 왜 죄인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제 다 아십니다.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
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죄를 용서받았음을 믿는 처지에서 하는 기도임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우리(공동체,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라는 것이지만, 예수님 오신 이후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통해 죄인인 줄
알았고 또한, 회개하였으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받았음을
믿는 것인데, 그 믿음은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받았다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난다고요? 자기에게 해 끼친 자들을 마음의 옥에 가
두고 용서하지 않고, 원한으로 품고 있던 것들, 미움을 품고 있던 것들을 중심에서부터 다 탕감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용서 못 하
던 것들을 자기 속에서부터 깨끗이 용서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원수 맺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마음에 이런 어둠의 것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옥을 두었던 것을 다 해제해버리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는 곧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의 기도가 실천되었을 때, 우리(나)의 죄가 사하여진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용서받았으니 그들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여 구원받아야 할 이웃이라는 그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자기의 죄가 깨끗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면, 그 믿음은 곧 예수님
의 피로 내 죄가 깨끗게 되어 죄 없이 해주셨으니, 나도 나에게 죄지은 자를 깨끗이 사하여 주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이해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셨지만,
내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은, 곧 나에게 죄지은 자를 내가 깨끗이 다 용서해버리는 것
내 안에 있던 원한과 미움과 용서 못 하던 그 무거운 모든 담을 다 헐어버리는 것이란 말입니다.
나를 해치던 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미워하고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못하던 그 단단한 옥을 두었던
것을 다 헐어버리니 거기에 기쁨이 차고 넘치고, 마음이 산뜻하고 가볍고, 영혼이 얼마나 자유로
운지 자기가 그 경험을 통하여 그것으로 자신이 죄에서 용서받았음을 안다는 말입니다. '아! 이것
이 천국이구나'하고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용서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용서받지 않은
겁니다.
마18장에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러서 빚진 것을
갚게 하려고 보니, 그가 도무지 갚을 능력도 갚을 방법도 없어 그냥 그를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
어 주었습니다. 빚 없는 것으로 빚을 다 탕감해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왜 자기 빚 갚지 않느냐고 목을 잡고 빚 갚으라 한 겁니다. 그 동료가
조금만 참아주면 곧 갚겠다고 사정했음에도 빚을 갚게 하려고 옥에다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그 일
을 임금이 전해 듣고 다시 그 사람을 불러들여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관을 불
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않으냐? 하고 대노하여 그에게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그를 붙였다고 했
습니다. 바로 자기가 갚지 못할 빚을 탕감받은 그 엄청난 은혜에 대한 보답은 동관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은혜의 감사를 모르는 배은망덕입니다. 그것은 곧
사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이 사람을 누구에게 붙였다고요? 옥졸들에게! 옥졸들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에게 넘겨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이어서 본론의 말씀에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
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셨어요. 바로 이것
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말씀하는 것입
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것이 곧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이더란 말입
니다. 알아듣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
하여 주옵시고'에 대해 예수님께서 14,15에 부연 설명을 하셨는데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
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18:35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절대적인 죄인으로 형벌에 놓였던 존
재였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진정으로 인정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진정으로 고백한 것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그 형벌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
도의 피 흘려주신 공로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그 믿음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나를 위해서만 흘리신 것이 아니고 나 외에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흘리신 피로 내가 미
운 사람도, 싫은 사람도, 원수 맺은 사람도 다 해당한다는 것 인정합니까?
그러면 오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와 14,
15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아버지도 용서하시고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아버지도 용
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고, 또 마18:35의 말씀을 직역하면, 네가 지금 네 이웃과 원수 맺은 것이
있느냐? 미워하는 사람 있느냐?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느냐? 너희가 각각 형제를 용서하지 않음이
마음 중심에 있으면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즉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는 말
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하는 것은 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나를 위해서입니다. 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서 피 흘리셨는데, 나를 살리시려고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도 다 내게
내어주셨는데, 내가 용서하지 않으므로 마음에 옥을 두고 있으면 예수님의 용서를 거절하는 것이
되어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수가 없으니, 그러므로 네가 온전한 용서받은 자가 되려면 바로
너를 위해서 사람의 과실들을 용서하라, 원수 맺은 것 화해하라, 마음에 미움을 헐어버려라, 그러
면 하나님의 용서가 네 것이 되어 내가 네 안에 들어가 거하시는 관계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도 믿기를 원하면 죄 용서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네가 용서받은 그 엄청난 은혜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으면 그 감사를 말하고 그 기쁨을 말하기 위해 그들을 향해 화해를 청하고 복음을
주어 하나님과 화해가 되게 하려는 데 마음을 두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입으로만
외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고 말씀드렸으니, 예수님의 피는 아버지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버리신 조
건이 되었지만, 그것을 믿는다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원한의 담, 용서하지 못한 담, 미움의 담
다 용서로 헐어버리고 그들과 깨끗히 화해하고 어떤 것도 마음에다가 담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는 것은 용서가 마음속에서부터 깨끗이 일어나서
다시는 마음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받지 못한다 하니까 그것이 두
려워서 억지로 용서하는 것처럼 하는 위선이 아니요, 용서했다가 또 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한 것
같아 마음속에서 용서하는 것을 꺼리는 이런 요동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 악물고 억지로 용서
해보려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니에요.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감각이 없는 자기 애,
즉 십자가 죽음에 내줘야 할 자기 육을 더 애착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그 은혜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요일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
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분명히 말
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 중심에서부터 용서의 능력이 깨끗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해주
셨다는 그것보다 오히려 저 사람이 내게 잘못하는 과실들이 더 크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놓인 것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그 은혜의 크기보다는 실제로 저 사람이 자기한테 잘못한 것
이 더 크게 느껴지는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지옥
형벌에 떨어질 그곳에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받은 것에 대해 감각이 없으니, 결국은 용서
받지 못한 것임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13에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한 그 시험에 들
어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어있는 것이 영원한 지옥 형벌로 들어가는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기도 말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외우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무엇을
기도하라는 것인지를 알아서 세세히 진정으로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을 땅에서도 이루셨는데' 그 뜻이 자기에게 없으니 그것을 애통하여 기도하고 '나라이 임하옵시
며'하신 나라가 자기 안에 없으니 애통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행
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자기 마음에 경험되게 해주시라고, 진정으로 진심으로 애통하여 기
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이뤄주시라고 성영님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그 마음에 용서의
경험이 없으면, 하나님의 용서보다 저 사람의 잘못한 과실이 더 크게 여겨지는 것이면, 이런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가 아니라 자기의 이런 영적 상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은혜의 그 크기가 깨달아지기만 한다면, 용서 못 할 능력은 죽고 용
서할 능력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런 영적 상태에 대해서 기도하여 능력을 얻어야 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 못 할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죽었다면 그것
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깨끗이 용서해버려야 합니다.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냐? 이것은 영적인 일이
기 때문에 절대로 상관있습니다. 죽은 자에게 저주로 있던 귀신이 미움의 한이 있어 용서하지 못
하는 그에게 쉽게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들어도 감각이 없고 천국을 들어도
감각이 없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도 죄 용서받은 것에 대해서도 감각이 없습니다. 귀신이 들어앉
아서 오직 자기의 억울함만 집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일로 자신을 용서 못 할 자로 여기고 있거나, 또는 자기의
부족하고 무능한 모습들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고 저주하는 것, 이런 것은 다 지금 사단의 저주를
품고 있는 속는 일이요,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기가 자신을 깨끗히
용서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셨으니,
우선 자기 자신부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자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
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신 은혜를 내 영혼이 크게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나 자신과 함께 저들을
깨끗이 용서하는 믿음이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죄에서 용서
받은 것은 내가 잘해서도 아니요, 내 행위가 좋기 때문도 아니요, 예수님이 피 흘리신 공로 때문
이니, 그러므로 내게 잘못한 자를 용서하지 않을 자격은 내게 없는 것을 알아, 내게 죄지은 자를
깨끗이 용서합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참
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살면서 나에게 잘못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신 사랑으로 용서
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도 그를 용서하여주시고, 저 또한 날마다 아버지의 용서가 필요한 자임을
고백하오니 저의 죄도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같이 깨달은 은혜를 기도로 고백
하고 그 기도의 삶으로 살기에 성영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으로 힘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을 소유한 증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다음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아까 말씀드렸지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 하나님의 죄용서
의 가치를 모르고 은혜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그것을 시험에 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인사
안 받아서... 교회 가니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래서...저래서...시험 들었다 이따위를 시
험이라고,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룬 죄 용서의 은혜, 피 흘
려주신 은혜를 가벼이 여겨 용서받은 것에 대해 감각이 없는 그것이 시험에 든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에서 시험을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라고 하는데 이 페이라스모스는
악한 자 사단의 시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받으시며 피 흘리신 그 구원의 뜻을 믿지 못하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도록 속이는 자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가지가 되게 하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는 자에게 속지 않게, 즉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즉,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말씀을 떠나지 말라 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악한 영에 속
지 않도록 말씀으로 깨어있어 기도하라 하셨다는 말입니다. 마귀, 우리의 원수, 우리의 싸움의
대상, 우리의 전투의 대상은 똥파리보다 못한 마귀이니, 그 마귀의 감언이설에 속아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귀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보니까 사람이 원수가 아니
라 우리의 원수는 마귀라고 성경이 정확히 가르쳐주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사
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마귀와의 싸움에서 내가 승리하는 것은 혈기도 아니요, 내 힘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
요, 명예도 아니요, 오직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그 이루심이 곧 사단의 권세를 깨트린 이기신 것이고
그 이기신 것이 나의 이김이 되었을 때, 마귀를 온전히 내 앞에 굴복케 하는 권세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삼위의 하나님을 알아야 했고, 아버지의 뜻과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했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 원해서 예수님을 깊게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성경을 아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
로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배워 알고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니, 마귀의 정체가 한눈에 다 보
여 알게 됐습니다. 이 마귀의 꼬락서니를 보니 똥파리보다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어쩌든지 믿는다
는 사람들을 예수님과 함께 있지 못하게 하려고 속이는 일을 하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마귀와 그
귀신들은 무서운 존재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속이기에 급급한 똥파리 같은 것들로서 시험에 들
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모르면 다 100% 속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확히
배워 알면 속지 않는 것이니 시험에 들 일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말씀을 몰라 시험에 들어
있는 것들에서 건져주시려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
여러분을 시험에서 건져주시려고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시려고 이렇게 아버지의 아는 말씀을 보
내신 것입니다. 알면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오늘 마18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용서를 빚진 자로 비유하여서 우리 자신을 깨달아 볼 수 있도록 하
셨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은 일만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는 100% 갚을 수 없는
빚임을 뜻합니다. 그 빚을 갚겠다고 아내도 자식들도 평생 함께 몸부림 쳐본다 해도 갚을 수 없습
니다. 그것은 그 아내도 그 자식도 다 같은 일만 달란트의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으로 만일 살아서 갚지 못하면 죽음 뒤에도 그 빚은 그대로 따라가서 갚지 못한 형
벌을 받게 됩니다. 오늘 26에 그 종이 엎드려 가로되 내게 참으시면 내가 다 갚겠다고 한 것은, 자
기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어서 갚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빚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갚아
야 하는 것은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갚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죄인임은 아는 거예요. 그러므로 죄를 지었으니 참아주시면 죗값을 갚
겠다고 하니, 자신이 갚아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갚겠다고 했지마는,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가
갚을 수 없는 빚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냥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주셨습니다. 은혜를 베
풀어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빚진 자는 상상도 못 할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 빚을 탕감받
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까? 자나 깨나 그 빚 때문에 자유 없는 영혼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지 않습니까? 갚아야 하는 것은 알지만 갚을 길 없는 그 빚에 눌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고
통을 겪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이 "그래 네가 갚을 수 있는 데까지 갚으라"한 것도 아니
고 아예 빚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탕감해 줘버렸으니 그 상황을 여러분이 상상해보십시오. 주인
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잖습니까?
그런데 빚을 탕감받은 이 사람이 나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여기
서 백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 정도나, 한 달 치의 품삯 정도나, 일 년 치의 품삯 정도입니다. 백 데
나리온이라는 것은 갚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참아주면 갚겠다고 했음에도, 빚진 것
갚으라고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말은 내가 당신에게 어떤 일로 손해를 입혔거나 무엇인가 잘
못하여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주시라고 빌었음에도 용서해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자기의
빚을 탕감해주었으므로 은혜를 입은 이 사람이, 주인에게 자기의 빚을 참아주시면 갚겠다고 말한
이 사람이, 바로 자기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주는 것이 곧 자기가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됨에
도 그는 빚 갚기를 원치 않는 것으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죄 용서받은 이 큰 은혜에 대해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기에게 빚진
자들이 있다면 빚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 탕감해버려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 용서받은
은혜에 대한 그 감사를 보답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용서하지 못한 것들을 다 용서하여 화해
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의 것들에서 빚을 두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도 내게 빚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깨끗이 용서해버리고 또한 내
가 상대에게 죄를 지어서 미움이나 원한을 사고 있으면 속히 잘못을 인정하여 화해를 청하고 화목
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내가 용서받은 빚을 갚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상대가 잘못했으면 그가 내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지, 왜 내가 무조건 용서하느냐? 그
것은 계산이 안 맞다"한다면 마18:35에 하늘 아버지께서도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마6:14,15에 용서하면 용서하시려니와 용서하지 아니하면 용서하지 아니하시
리라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답변입니다. 그러니까 용서는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자기를 위해섭니
다. 죄 용서받은 증거는 용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하나님께 은혜 갚는 것입니다. 용서를 모르면서 은혜 갚
겠다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하면서...,나를 죄에서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하면서
열심히 무엇을 해보겠다고 뛰어다니는 것으로 은혜 갚는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이에요. 용서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 복음을 주기 위한 것 외에는 다른 계산
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용서로 화해를 이루는 것이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난 누구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시험 들었어!"하는 것을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아
니라, 이것은 아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신 여기의 시험은 '페이라스모스'로 바로 용서받은 은혜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그
것이 시험에 든 거예요. 하나님의 용서를 죄인으로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 시험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마음에서 깨끗이 용서하지 않은 것 시험에 든 것입니다. 자기가 영원히 형벌받을 죄인이
라는 것,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감각이 없는 것
시험에 들어있는 거예요.
마18:32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
었거늘 했습니다. 네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한다고 하여 용서해 주었더니
그러면 33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네게
잘못한 것들을 가지고 정죄하여 다투고 마음에 미움과 원한으로 가두어놓고 있겠느냐 하신 겁니
다. 30에서 옥에 가두거늘 한 것이 바로 마음을 옥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일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죄지은 일이 없느냐? 네가 다른 사람에게 죄지은 일은 깨끗이 갚았느냐? 물으시는
겁니다. 만일에 갚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네게서 보인다면 나는 너에게 그 죗값까지도 받아내신
다는 것입니다. 34,35의 말씀이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죗값을 치르도록 사단에게 내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늘 용서가 따라야 나도 따라서 용서받는 것입니다. 육체의 것들로 싸
우고 분쟁하고 붙들고 있으면서 용서해버리지 못한다고 하면, 그래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모
습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비춰주지 않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그렇게 보고 마음을 닫고 실족한다
면, 그도 믿지 않는 자기 책임의 심판을 받지만, 그를 실족케 한 책임도 똑같이 물으신다고 하셨습
니다. 그것이 오늘 마18장 서두에 말씀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
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속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랑하지 말라 세상을 따르지 말라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하나님괴 원수가 된다, 육체의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목숨의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염려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것으로 원수 맺지 말라. 그런 세상의 것이나 목숨의 것
으로 용서하지 못하여 사람을 실족케 하면 그것은 영혼을 구하는 것보다, 영원한 것보다 그것을
더 중히 여긴 것이 되어서 세상과 함께 망한다고 계속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다 시험에
걸린 것입니다. 아버지 나라가 없는, 아버지 뜻이 그에게 없는 것으로서 시험에 들어있다는 말입
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영생 얻는 것이니, 그렇게 살기를 원하여 그 구원과 생명
얻기를 진심으로 원하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21에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하는 일을 심각하게 물어봅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께서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하시니 칠칠
은 사십구 사백구십 번 용서하라는 것인가? 우리 머리는 그런 것에는 재빠르니 그렇게 계산들 하잖
습니까? 물론 사백구십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지요. 믿음은 용서요 용서는 천국이니 그러므로 용서
가 우리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거예
요. 그러나 일곱은 하나님의 수로서 완전수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한 것은, 용서의 완전
함을 의미합니다. 용서의 완전한 것, 용서해야지, 안 해야지 하는 그런 계산 따위가 있는 것이 아
니라, 나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니, 용서하지 못하는 능력이
죽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속에서 계산이 있으면 시험에 걸려 있는 겁니다.
어떤 것은 나에게 해 끼친 무게가 무거우니 그거 용서하려면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느냐?
내가 용서하려면....,이런 잔머리의 계산은 누가 합니까? 인본입니다. 귀신의 것입니다. 그렇지!
얼마나 억울한 일인데 그렇게 쉽게 용서가 되는 것이냐? 맞장구치며, 용서하면 너만 억울할 뿐이
라는 마음으로 힘을 도와서 마음에 옥을 두게 하여 천국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
입니다. 수년 또는 십수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자기 속은 용서하
지 못하는 고약함으로 시험에 들어있는 그런 모습들로 믿는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그러
니 믿는다는 말은 열심히 하면서 실제로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진실로 대하고 귀를 열고 들으셨
는가? 생각해보면 가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
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 결국 중언부언하는 것이었고 거짓으로 기도
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지 않으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거짓된 자신을 보십시오. 자신을 속이는
거짓 믿음을 각자 보시자 말입니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미워하는 것 당연한 것 아니냐? 그것
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이야기이지 복음은 아닙니다. 내게 아무리 해를 끼쳤어도 용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가 시험에 들여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여 책망하시면서 그것을 돌
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떠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는 자신들이 시험에 들
려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한 그 수고와 인내, 행위, 예배, 봉사, 헌신 등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거짓 것들을 시험하여 잘 드러내 주었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책망할 것
이 있는데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여 그것을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아니하면 즉 회개치 아니하면 교회를 따나겠다. 너를 떠나겠다고 하
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열심히 했으나 인간의 열심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사랑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모든 사람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을 왜곡되게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영혼을 망할 길
로 이끌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믿는다는 사람들 또한 모두가 한술 더 떠서 스스로 말씀을 자기
식대로 꿰맞추어 놓았습니다. 처음 교회 나왔을 때 큰 은혜를 받고 너무 기뻐서 기도도 열심히 하
러 다니고, 예배도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 헌금 열심히 하고 목사님 말씀에도 순종 잘하고 새벽기도
도 열심이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그 뜨거웠던 처음 사랑의 열심이 식어서 새벽기도도 안 나오고 기
도 생활도 안 하고 전도도 안 하고 있다. 다시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타당하고 맞습니까? 백이면 백,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할 자 누가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답해보시겠어요? 이 에베소 교인들이 열심도 인내도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칭찬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칭찬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사랑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는 모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이들이 그런 열심이 없다
는 뜻에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
이 아니라는 것 이해하셨나요? 그러면 열심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합니까? 구원과 상관있어요? 없
어요? 열심히 하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관계 두지 않겠다고 하
신 것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처음 사랑이 인간이 처음 교회 나와서 열심히 한 행위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회개하고 그 열심을 찾으라고 하는 것으로 연결이 되는 것인가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처음 사랑에서의 '사랑'은 원어로 '아가펜'인데 아가펜은 하나님 사랑, 하나님
이 자신의 생명(피)을 내주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죄 용서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
려주신 것을 말한다 말입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確證)하셨느니라 해서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주셨으므로 우리가 죄 용서받게 되었으니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요, 나는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니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내가 만나게 된, 이것이
처음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만날 수 있는 처음 시작은 바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서예요. 처음 사람에게 불
순종의 죄가 들어오자 수양의 생명 되는 피를 흘려 그 가죽옷으로 죄의 수치를 가려주셨던 그 처음
사랑, 그 사랑을 확증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그 피로 죄를 사하여
깨끗게 하여주시고 만나주신 그 사랑, 그 피 흘린 그것으로 확증해주신 것, 그것이 처음 사랑이라
고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만날 수 있는 계기, 만날 수 있는 처음, 만날 수 있는 증
거의 처음이 바로 예수님의 피라는 말입니다. 알아듣습니까?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
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맺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기 열심으로 행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시
험에 들려있다는 말입니다. 시험에 들려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당신 무엇으로 구원받았습니까?""예수 믿어서요""뭘 믿어서요?""아! 예수님이 죄
를 담당해주셔서요""그 죄를 담당하신 조건이 뭐였어요?" 그에게 피로 맺은 언약에 대해서는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그 처음 사랑으로 맺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열심이 행하는
것이고 자기 열심이 행하는 것은 곧 자기의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행하고 있게 되는
종교인 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모습들이 시험에 걸려 있는 것이요, 버림받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증거는 자나 깨나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처음 맺은 사랑의 피입니다.
믿음의 증거가 뭐냐? "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아파트 당첨되게 해주셔서 몇억 남았어요""하나님
이 내 자식을 최고 명예를 얻는 복을 주셨어요!"하는 이런 것이 증거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
은 받은 증거 많도다. 여러분 받은 증거 뭐예요? 예수님이 나를 살리시기 위해 흘려주신 생명의 피
그 피가 내게 증거가 되었다고 그 믿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왜 피를 흘리
셨는지 그 처음 맺은 사랑을 회개하여 찾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하신 두려운 말씀을 하셨
다는 것을 눈을 열어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하라고 하셨지마는
사실은 참으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고 악에, 악한 자에게서 구원되기를 원하는 그 소원이 있느
냐? 속지 않기를 원하는 소원이 네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뜻대로 살기 원해서 예수
님 따르기 원해서 그것이 진정이면 자기 속에서 그 소원이 간절하면 이제 하나님의 용서를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는 것에 속지 않게 해주시라고, 이런 악에서 구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에게 말씀으로 깨닫게 하셨으니 이제는 시험에 든 것, 이제부
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 회개하고 용서합니다. 이제 악한 자에게서 속지 않도록 도와주시라고 기
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진심이면 성영님이 분별케 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
와 능력이 되어주셔서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인간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에게서 오는 시험을 말합니다. 악의 영들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세상을 좋아하도록 세상 것을 좇아가도록 끊임없이 유혹하기 때문에 이런 악
에서 구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도록, 그
들의 생각과 도모와 꾀를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
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와 생각과 의견이 맞으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감각 없게 되어 있습니
다. 그래서 멍에를 같이 매지 말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그다음 교회 안에서 당을 짓는 자들에게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1:19에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영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당을 짓는다 말
입니다. '당을 짓는 자'라는 것은 '지식이 분산된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악한 자
성영님 없는 자들이다 그 말이에요. 그들이 뭐합니까? 교회 안에서 분쟁 일으키고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 목사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을 분리시키고 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바울에게, 나는 게바에게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그것을 듣고 깜짝 놀라서 너희가 어찌하여 사람을 자랑하느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편 가르는 것, 분리시키는 것, 다른 사람 허물을 자꾸 들추어내는 것, 다 육
에 속한 자요, 당을 짓는 자로 성영님이 없는 자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 같은
악한 자로 있다면 자신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여 돌이켜 성영님의 지배를 받기를 원해야 할 것이
지만, 또한 이런 자들에게서 속지 않게 해주시라고 다만 이와 같은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라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도했더니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어도 병의 나음을 얻었어도 죄에서 용서받은 그
은혜를 용서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 다 성영님이 없는 자인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
고 다만 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더 나아가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악에서 건짐 받는 것이니, 악한 자에게 속임과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다만 나를 그런 것에서 구하여 주시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니 제가 진정으로 바라니, 오직 그렇게 되기를 온맘 다해 원하니 저를 그런 것
에서 구하여 주시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여기서 '대개'의 사전적인 뜻은
'대강''대체로'라는 것인데, 그런 뜻이 아니고 '오직''절대로'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이렇게 기
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
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신 그 모든 뜻을 이루신 아버지께만 오직 그
모든 영광이 절대로 있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나에게 또 온 땅에 이뤄지니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권세와 영광이 영원무궁토
록 있습니다"하는 우리의 찬양이요,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직 영광은 아버지께만 있습니다.
절대로 모든 영광은 아버지께만 있습니다. '아버지만 영광 받으실 분이십니다'라는 말입니다.
이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깨달아 보았고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지
금까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게 하시며 아버지 나라가 임하여 삶이
되게 하신, 그래서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서 갚아주시는 삶으로 큰 은총과 사랑을 베푸시는 우
리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영님께 오직 절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음을 고백하여
감사드립니다. 아멘!!
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우리를 시험에 들게.. 대개 나라와 권세와 .. 아멘.p195-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