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열어 둔 창문으로 어디선가 울어대는 닭울음 소리에 잠이 일찍 깹니다. 새벽은 선선합니다.
주섬주섬 대충 옷을 챙겨 입고는 차를 타고 죽림 해안길로 향합니다. 가는 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잔잔하고 깨끗한 거울같은 바다는 순간이지만 가슴 트이게 반가이 나를 맞아 주는 듯합니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넘어 다니지만 이 포인트에서 눈에 들어 오는 바다는 내가 갖는 순간의 선물입니다.
청소년센터에 주차하고 이어진 바닷가 길로 향합니다. 사람들이 걷고 있습니다.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걷기 시작합니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왼편 상가들은 아직 불켜진 곳이 없습니다. 지난밤의 고단한 흔적들만 있습니다. 길,바다,도로,상가가 모두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이,바다가,걷고 있는 사람들이 좋고 쉬고있는 상가들이 편안해 보입니다.
걷기 쉬운 길이 좋습니다.
시인 백석의 '통영'이란 시의 한구절이 떠오릅니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라고 말한 그대목, 통영은 곳곳에 쉽게 찾고 걸을 수있는 바다가 있습니다. 지금 걷고있는 죽림 해안산책로, 용남동암 바닷가에서 세자트라 숲까지, 세자트라숲에서 이순신공원까지 해안 산책로, 산양일주로, 통영대교에서 인평 평림노을길 따라 북신만 입구까지, 남망산 동포루 서포루 북포루 통영운하교 미륵산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통영항, 배를 타고 여러 섬들로 향하는 바다길도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자다가도 일하다가도 놀다가도, 보고 놀고 웃고 소리 지르고 걸을 수있는 바다를
곁에 갖고 있습니다.
어릴적 할머니 집도 바닷가를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갔을때 할머니는 네댓살된 어린 손녀를 데리고 집뒷편 밭에 올라 채 피지않은 목화솜을 따서 주시며 씹어 보라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입에 넣어 씹으니 달큰함이 입안에 퍼지고 맛있는 맛이었습니다.
애들이 변변히 먹을게 없던 시절 집에 다니러 온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그렇게 피지않은 목화솜 봉우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달큰한 맛에 웃음 짓는 손녀딸을 보고는 할머니도 미소 지으며 다시 목화솜을 따서 손녀딸의 고사리 손에 가득 쥐어 주셨습니다.
기억 한켠이 떠오르고 지나갑니다. 그대로 걸어 나갑니다. 숲길 산길처럼 발을 밟고 느끼는 자연, 머리 위를 덮어 주는 나무 그늘의 자연은 없지만 접근이 수월하고 펼쳐진 바다를 옆에 끼고 보면서 걷는 이길도 좋습니다.
타지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여름방학에 집에 오면 여름날 이른아침에 아버지랑 용화사 길을 자주 걸었습니다. 힘들지 않게 짧은 길을 우리만의 아침 산책 코스로 만들어 걸었습니다
가끔씩 동생들도 같이 걸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용화사 광장에 내려 관음암으로 향하는 길을 올랐습니다. 흙길 산길 이었습니다. 지금도 오르막길 오르는걸 힘들어 하지만 그때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앞서며 재촉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옆에서 거친숨을 헥헥거리며 따라가는 나에게 천천히 따라 오라 합니다. 그렇게 관음암에 닿습니다. 계단을 올라 절문에 들어서면 절마당 작은 연못에 잉어들이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헤엄치고 있습니다. 아침에 예쁜걸 보는 눈은 즐겁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관음암에 이 연못이 메워져 없어진것같습니다.
법당은 들어 가지 않고 밖에 선 채로 삼배만하고 돌아섭니다. 계단을 내려와 정상으로 향하는 윗길로 가지 않고 용화사로 가는 옆길로 접어듭니다. 길 중간에 제법 큰 저수지를 지납니다. 여름 아침의 산공기는 시원함을 줍니다. 용화사에 다다릅니다. 절엔 들어 가지 않습니다. 절 앞 연못에 자라를 찾아 보고는 잘 있었나 잘 있어라 낼 또 보자 하고 광장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엄마의 여섯식구 아침상 준비 냄새가 배를 더욱 고프게합니다. 얼른 손을 씻고는 상차림 마무리를 돕고 여섯식구가 식탁에 둘러 앉습니다. 엄마의 솜씨와 정성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습니다.
오래된 일기 속에서 꺼내 본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 한켠들을 떠올리며 걷습니다. 딴생각을 하며 걸어도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계절에 따라 쉬는 낮시간 잠깐 햇볕쬐며 걸을 수 있어 좋고 지인들과 식사 만남을 하고 소화시킬겸 남은 얘기를 나누며 걷기도 좋은 쉽고 편한길입니다.
햇볕이 비치고 커피숖 상가들이 오픈 준비를 합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갈등합니다. 여기서 커피 한 잔 하고 집에 갈까? 아니다. 집에서 마시자. 걸음을 마치고 집으로 항합니다. 집으로 오는 차안 산란했던 머리속이 말금해집니다.
오늘 이른 아침의 바닷가 걷기가 내 몸과 머리속에 좋은 약이 되었나 봅니다. 기분이 가벼워 집니다. 집에 도착. 커피 원두부터 갑니다. 뜨거운 물의 증기를 타고오르는 커피향이 나에게 오늘의 여유를 줍니다.
202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