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신앙은 ‘거룩’(holiness)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앙은 궁극적 관심이고 궁극적 관심은 거룩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에 따르면, 신앙의 영역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삶의 거룩한 장소”로 들어가는 것이고 신앙이 있는 곳에 “거룩에 대한 자각”이 있다. 그는 “거룩에 대해 자각한다는 것은 거룩한 것의 임재 즉, 궁극적 관심의 내용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 자각은 구약성경 안에 “광범위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루돌프 오토가 묘사한 것과 같이 “거룩의 성격에 매혹되면서 동시에 거룩의 성격으로 인해 요동치는” 신비와 통한다.
하지만 틸리히는 이 거룩이라는 개념이 신성한 것과 악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것을 신앙의 문제와 다음과 같이 연결시켰다:
“악마적이고 파괴적인 거룩의 내용은 맹신의 내용과 동일하다. 하지만 맹신 역시 여전히 믿음이다. 악마적인 거룩 역시 여전히 거룩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호한 성격을 가진 것이 종교이며 가장 위험한 성격을 가진 것이 믿음임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위험은 바로 맹신에 있으며 거룩의 모호성은 바로 악마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우리를 치료할 수도 있으며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을 경험할 수조차 없게 된다.”
거룩과 신앙에 대한 이런 틸리히의 분석은 우리에게 신앙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경고한다. 신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겉으로는 신앙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궁극성을 잃어버린 신앙은 일종의 ‘가짜’(pseudo) 신앙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