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빠삐용
빠삐용.
빠삐용하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떠오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나이쯤의 사람이라면 주말의 명화에서 보여주던 스티브 맥킌,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던 영화를 떠올 릴 것이다. 하얀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죄수복을 입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 빠삐용.
우리 집에도 그런 빠삐용이 있다. 하얀 털에 검은 색 줄무늬가 있는 스노우 뱅갈이라는 품종 이름을 가진 6살짜리 고양이가 있다. “슈가” 라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 우리집 빠삐용이다.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반대하던 내가 어쩌다보니 다섯 마리나 되는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 마리를 키우다보니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친근해지다 보니 자연히 길거리에 버려진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 하나 늘다보니 예쁜 녀석들이 다섯이나 되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아주 무섭고 무거운 일이다.
슈가, 라떼, 돌체, 까망, 후추.
슈가는 우리 집 대장 고양이다. 슈가만 가정입양을 받은 아이고 나머진 모두 길에 유기된 아기들을 구조했다. 까망이 같은 경우는 추운 겨울 날 새벽 가게에 물건을 넣어 주시는 분이 왔을 때 추위를 피해 숨어들어온 녀석이다. 모든 녀석들이 다 사연은 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집 빠삐용 슈가다.
슈가는 뱅갈이라는 품종묘답게 아주 도도하고 씩씩한 근육형 고양이다. 조상이 살쾡이와 집고양이의 교배종이라 상당히 야생성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호기심도 많고 왕성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 많이 놀아 주어야만 하는 아이다.우리 집에서 가장 열심히 캣 휠을 달리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래도 발산하지 못해 남은 에너지 때문에 항상 문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슈가는 빠삐용답게 쉴 때도 항상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밖을 향한 염원의 눈동자를 하고, 나가고 싶어 호시탐탐 틈을 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밖에 왔다 갔다 키우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야생성이 강한 녀석은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고양이의 경우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지키기위해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보면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나 다른 짐승들을 자주 보게되기 때문에 밖에 내보내는 것은 절대 불가다. 그리고 로드킬이 아니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곳을 다니다 보면 질병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말 못하는 짐승의 아픔도 문제지만 애완동물은 데리고 동물병원을 다녀 본 분들은 아실꺼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병원비와 약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남편의 실수로 슈가의 탈출을 막지 못한 때가 있었다. 일주일이 다 되도록 돌아올 기미도 안보이고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는 녀석 때문에 집안이 초상집처럼 변한 적이 있었다. 집나간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탐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선수금을 미리 받아야 와준다고 못찾아도 돈은 돌려주지 않는 단다. 지방이라고 시세의 두배 금액을 제시하는데 그 금액이 자못 커서 선듯 탐정을 부르지 못했다.
남편은 자신의 실수라서 뭐라 말도 못하고 첫날은 괜찮을 거라고 곧 돌아올 테니 그냥 기다리라고 적반하장격으로 걱정하는 나에게 되려 소리를 쳤었다. 하지만 시간이 하루 이틀 사흘, 지날 수록 본인도 속이 타는지 저녁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슈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작은 딸이 연차를 내고 내려오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집안은 말 그대로 초상집 저리 가라가 되었다. 고양이가 야행성이라 밤에 찾아다녀야 하는데 남들 자는 시간에 민폐를 끼치며 부를 수도 없고 그저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온 가족이 동네방네를 찾아다녔다. 로드킬 당했다는 신고는 없었는지 파출소도 찾아가보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도움 요청글도 올리고 속이 타들어 가는 나날이 일주일쯤 이어지던 밤. 내일이면 작은 딸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 기적처럼 목걸이를 하고 있는 줄무늬 고양이를 봤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보를 받은 장소는 집에서 꽤 먼거리였고 거기까지 갔으리라고는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던 곳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반신반의 했었다. 차를 주차하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돌며 슈가의 이름을 불렀다. 한 쪽에는 다른 길고양이들이 우리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딸이 슈가야 하고 부르자 어디선가 “야옹” 하는 작은 대답이 들려왔다. 희미한 소리에 긴가민가 하는 쯤에 확실하게 슈가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컨테이너 밑에서 슈가가 고개를 쏙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섣불리 잡으려고 들면 달아날까 싶어 인내심을 가지고 간식으로 유인을 했다. 가까이 다가와 간식을 먹기 시작하자 도망가지 못하게 꼭 끌어안았다. 처음엔 버둥거렸으나 이내 녀석도 폭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허겁지겁 사료와 물을 먹는 것이 집나가서 고생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알수 없어 서둘러 씻기고 털을 말리자마자 녀석은 항상 제가 앉아 있던 자리로 가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은 헛웃음을 웃었다. 마음 고생을 이렇게나 시켜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잠이 오냐고…… 그런데 저 모습이 저 녀석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는 안전한 곳이라고 마음 놓고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 슈가가 우리에게 주는 미안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날 밤 오랜만에 우리 가족도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탈출 이후 밖에 나가서 고생고생 그 고생을 하고도 우리의 빠삐용 슈가는 오늘도 탈출을 꿈꾸며 밖을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문제다. 밖에 공기가 아주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 어여쁜 암컷고양이가 있었던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우리 빠삐용은 오늘도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퇴근을 하면 아무도 없던 거실에서 고양이들이 달려온다. 자식들은 커서 이제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나고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고양이들 뿐이지만 이 녀석들이 있어 행복하다 느낀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내 손길이 필요한 녀석들이지만 내 수고로움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뻔뻔함도 귀엽다. 내가 열심히 돈벌러 나갈때도 녀석들은 햇볕아래 느긋하게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배도 살짝 아프고 부럽지만 내게 오롯이 의지하는 녀석들이라 더 예쁘다. 지금처럼 아프지말고 사료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랬으면 좋겠다. 나와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날까지 이렇게 내 옆에 있어 주었으면 싶다.
우리 빠삐용 슈가는 오늘도 창밖을 볼 수 있는 곳에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탈출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