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음 자료를 읽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상략)… 3. 국가의 군비를 국내 안전에 적합한 최저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적절한 보장을 교환한다. …(중략)… 8. 프랑스의 모든 영토를 해방하고, 침략 지역을 수복하며, 또한 거의 50년간이나 세계 평화를 뒤흔들었던 ( ㉠ ) 문제와 관련해서 1871년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행한 부당한 조치는 평화가 만인을 위해 다시 정착될 수 있도록 시정되어야 한다. …(하략)… - 「윌슨의 14개조 원칙 연설」 1918년 1월 8일-
(나) ( ㉡ )의 규약 초안에서는 아메리카 문제와 유럽 문제, 아시아 문제와 아프리카 문제 모두가 ( ㉡ )의 통제와 관할 아래에 놓입니다. …(중략)… 나는 미래의 평화를 위해 영국 제국의 자치령과 식민지, 발칸반도의 국가들, 중국이나 일본 또는 아프리카의 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 식민지들의 영토를 미국인들이 보장해 줄 시점이 아직 안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아주 심각하고 아주 위험한 약속이라는 점을 알리고자 합니다. …(하략)… - 「상원의원 헨리 로지의 의회 연설」 1919년 2월 28일- |
<작성 방법> ◦괄호 안의 ㉠에 해당하는 지역을 쓰고, 이 지역이 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된 계기가 된 사건의 명칭을 쓸 것. ◦자료 (가)의 제안으로 설립된 기구인 괄호 안의 ㉡에 해당하는 명칭을 쓰고, 미국 의회가 괄호 안의 ㉡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한 이유를 자료 (나)를 참고하여 서술할 것. |
해설 :
∙ ㉠알자스 로렌, 사건 : 보불전쟁
∙ ㉡국제연맹
∙ 미국의회 ㉡가입 반대 이유 : 먼로 선언 유지(고립주의). 국제무대에서의 경험부족, 미숙함. 즉, 미국인들이 세계 평화를 책임질 수 없다(자료 내용).
[세상의 모든 역사 서양사 김종권 p.241]
⑤ 임시정부의 제3공화정 선포
㉮ 프로이센의 파리 점령
㉯ 국민의회 선출, 보수파 장악
㉰ 독일에게 알자스와 로렌 일부 양도와 배상금 지불
[서양사개론 p.464∼465]
나폴레옹 3세는 곧 비스마르크의 술책에 넘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프로이센과 전쟁을 하게 되고 개전 6주도 안 된 9월 초에 황제와 프랑스군은 세당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하였다. 9월 4일에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파리의 민중이 봉기하여 입법원으로 하여금 제정의 몰락을 선언하게 하고 파리 시청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제3공화정을 선포하였다. <464쪽>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이미 주력부대가 붕괴하였고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된 파리의 저항은 완강하였으나 1871년 1월 말에 파리도 항복하였다. 임시정부를 대신할 국민의회가 새로 선출되었으나 왕당파를 비롯하여 평화를 원하는 보수파가 다수를 점하여 3월에 독일에게 알자스와 로렌의 일부를 양도하고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강화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노동자와 소시민층은 이에 불만을 품고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국민의회는 파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베르사유에 자리 잡고 파리의 국민방위군의 급료지불을 중지하고 무장을 해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하자 7월왕정기에 수상을 지낸 바 있고 이번에 다시 임시정부의 수반이 된 왕당파 계통의 티에르는 정부와 군대를 파리로부터 철수시켰다. 이러한 정치적 공백상태에서 파리의 국민방위군은 3월 18일 파리의 행정권을 장악하여 파리 코뮌을 수립하고 26일에 코뮌의원 약 90명을 선출하였다. 의원 중 다수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급진적인 자코뱅주의자와 폭동과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블랑키주의자였고 소수의 제1인터내셔널 계통의 사회주의자들도 마르크스보다는 프루동의 추종자가 주류를 차지하였다. 그들은 곧 사회개혁에 착수하였으나 그 내용은 즉각적인 부의 재분배나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을 포함한 마르크스적인 사회주의라기보다 노동조건의 개선, 소유자가 포기한 공장의 접수, 협동적 생산과 급진적인 교육개혁 등 종전의 노동운동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코뮌에 대하여 티에르는 파리를 포위한 채 코뮌이 식량부족으로 지치기를 기다렸다. 코뮌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것을 알아차린 정부군은 5월 21일 공격을 개시하고 코뮌의 결사적인 저항으로 5월 28일까지 ‘피의 일주일’의 처참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파리 중심가의 대부분이 불탔다. … 약 2만 명의 코뮌투사가 처형되고 수만 명이 체포되었으며 7만 명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활동가들이 박해를 피해 파리를 탈출하였다. <464∼465쪽>
[사읽서 5권 p.103] (나)사료
[사읽서 5권 p.103, 104] 먼로선언 유지(사료)
1919년 2월 28일 매사추세츠 출신 상원 의원 헨리 캐벗 로지(Henry Cabot Lodge)는 윌슨 대통령이 베르사유 회담에서 전 세계에 약속한 국제연맹 수립과 미국의 참여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했다. 그의 논리는 국제연맹에 미국이 가입하고 그 규약에 얽매이면 미국은 뜻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릴 것이며, 이는 워싱턴의 가르침과 먼로 선언의 정신을 벗어나는 미국 국시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로지의 비판이 계기가 되어 국제연맹 가입과 유럽 방위 동맹과 같은 윌슨의 정책은 미국 상원에서 비준을 받지 못했다. 미국의 이 같은 약속 위반(?)은 자연스럽게 유럽 국제 정치의 위기로 이어졌다. 다음은 로지가 미 상원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
먼로 독트린의 본질은 미국의 문제가 미국인들만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에서 분리되어야 하고, 순수 아메리카 대륙 문제에 대해서는 유럽의 간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로 독트린의 핵심 원리입니다. … 먼로 독트린은 오로지 아메리카 반구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며, 아메리카 반구로만 제한됩니다. 그것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 한다면, 그 독트린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메리카 반구와 나머지 세계와의 구분을 전제로 성립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연맹의 규약 초안에서는 아메리카 문제와 유럽 문제, 아시아문제와 아프리카 문제 모두가 국제연맹의 통제와 관할 아래에 놓입니다. 유럽은 아메리카 문제의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물론 우리도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문제의 결정에 지분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는 아메리카 대륙과 파나마 운하의 치안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우리는 발칸반도와 소아시아를 경비할 권리를 그들이 요청할 경우에 갖게 되겠죠. 아마도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정말 중차대한 행보이며, 나는 우리 미국인들이 완전히 확신하기 전까지는 워싱턴의 정책과 먼로 독트린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