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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더위가 최고조에 이르는 6월중순(음력)
그리고, 가을 가뭄이 심하던 지난달
이 대화로 인해 마누라의 선암사 타령이 또 다시 이어진다
그래서 참견 들어간다
사실 마누라의 바램은
칠전선원 달마전 마당에 있는 돌확 수조는
조형미와 소박한 아름다움이 급보급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4개의 원형 돌확은 위것이 제일 크고 차례로 작아지는 모습으로
사이사이를 대나무로 연결하여 산에서 솟아나는 물을 끌여들여 차례로 물을 채운다
지하에서 용출한 물의 음기를 햇빛에 중화시키고자 했던 기철학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달마수조의
첫번째 수조는 "부처님께 올리는 물"
두번째 수조는 "스님들이 차를 끓여 마시는 물"
세번째 수조는 "스님들이 과일을 씻는 물"
네번째 수조는 "손과 얼굴을 씻는 물"
이 달마수조를 못보고 돌아옴이 못내 서운타...
누가 뭐라해도...."걍~~강대고 들어가 구경했어야 했는데!!!
그래서!그래서!!
선암매가 휘날려 달마수조에 그 꽃잎이 적시며 흐를땐.....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고 어떻게든 걍~~돌진!!!
선암사에는 매화· 동백· 철쭉· 산수유· 영산홍· 수국· 물푸레나무 등 사시사철 꽃나무로 넘처나는데....
특히 각황전과 대웅전 뒤편의 가람들로부터 운수암에 이르는 담장 사이의 홍매화는
"선암매(仙巖梅),천연기념물 제488호)는 수령 약600년으로 추정되는 매화나무 약50주가 만발하면
홍매화를 보러 찾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서 이곳이 사찰인지 수목원인지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
이렇듯 선암사는
자연스런 가람배치가 소박하고 아담하고 지붕과 지붕이 줄지어 이마를 맞댄 모습이
넉넉한 부잣집처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세속에 찌든 마음을 차분히 달래주는 보기 드문 사찰이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선암사의 내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는 일반적 시각으로는 그리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외형상으로 바라볼때 잘 정돈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1989년 3월22일 동아일보 기사내용이 선암사 내부문제를 잘 보여준다
천년고찰 선암사가 35년간 계속되는 천태종과 조계종의 분규에 휘말려 절과 문화재 모두 황폐화 되고 있다
도립공원 조계산에 위치한 이 절은 신라 경문왕 원년에 도선국사가 중건한 사찰로 삼층석탑과 승선교를 비롯
석탑유물과 도 지정 문화재11점,문화재 자료2점등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또 이절에는 논 41필지 71,600 평방m, 밭 8필지 50,000평방m
대지 19필지 40,000평방m, 잡종지 9,400평방m, 건물 41채, 석조물 38점,
동산75종 1,142점등 적지않은 부동산과 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사찰림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편백들이 빽빽히 들어차
뛰어난 주위 경관 때문에 해마다 이곳을 찿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
그러나 이절은 등기부상 소유자가 비구승 종단인 조계종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실제 점유자는 대처승 종단인 태고종으로 되어 있어 양 종단간에 사찰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사찰의 실질적 소유를 둘러싼 분쟁은
지난 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모든 사찰은 비구승이 수호해야 한다"는 유시로 부터 비롯된다
당시 이절은 대처승이 관리하고 있었고
70년 조계종과 천태종이 분리 되면서 조계종이 이 절의 관리권 인도를 요구 하면서 시작된다
그 이후 양종단은 이 절을 놓고 지금까지 소송사건 10여회 이외
실력 행사만도 17회나 벌이는 등 치열한 다툼이 계속되어 왔다
지난해 4월(1988년) 조계종 측에서 이 절을 점거하기 위해
승려등 25명이 새벽을 틈타 경내에 들어 갔다가
태고종측 승려들과 집단 편싸움을 벌여 일부가 구속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양 종단간에 사찰 주도권을 둘러싼 분규가 계속 되고
신성한 수도장에서 폭력이 난무해
절과 이곳의 문화재들이 관리및 보수 소홀로 자꾸만 퇴락및 원형을 잃어 가고 있다
대웅전 앞의 보물 395호 삼층석탑은 탑신에 금이 가고
옥개석이 깨져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며 부속건물인 남암과 북암은 이미 붕괴되 옛 자취를 찿을수 없다
또 칠전을 비롯 달마전,지장전,창파전,해전당등 부속건물들도 지붕 기와가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썩어 붕괴의 우려가 크나 6억5천만원이나 되는 보수비를 마련할수 없어 손을 놓고 있다
승주군 측은 현재 선암사의 재산 관리인이 승주군수로 되어 있으나
빠른 시일내에 분규가 매듭지어져
사찰측이 직접 재산을 관리하고 낡아 허물어지는 건물들도 서둘러 보수하여
훌룡한 불교유산을 제대로 보존해야 할것이라고 밝혔다(1989년3월22일,동아일보)
산행길에 옆으로 새도,한참을 새 벼렸드만 일행들이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참고로 2015년 현재
천태종과 조계종의 선암사 소유권 분쟁은 아직도 원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지만
해남 대흥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등
국내 7개 전통사찰은 "한국의 전통산사"라는 이름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다.
이젠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 잡으려면 서둘러야한다
선암사 경내로 들어가기전
전통찻집 선각당 옆으로난 등산로 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보일듯 말듯한 선암사 마애불과 대각암을 지나면
조계산,장군봉(887m)까지 약1시간 남짓의 가파른 등산로는 가쁜 숨을 내쉬어야 한다
원래 조계산에는 소나무가 많아 송광산으로 불리기도 했었다는데
오르다 보면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참나무등 활엽수가 대부분인 대표적인 육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장군봉 정상의 이정표를 보면 특이한 안내....보리밥집 2,1Km
누군가가 우수갯 소리로 표현한
"보리밥집이 송광사에 세를 많이 내서 선전겸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흔히 보통의 산행에서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는 풍경도 하나의 그림을 만들기도 하지만
조계산에서 점심을 먹는 팀은 단 한팀 밖에 보이질 않는데
이는 거의 모든 산행팀이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때문
하산길 2,1Km면....40분 정도 후에는 우리도 꿀맛 같은 보리밥을 맛 볼수 있다!!
산행중 맛있는 식사는 마음을 즐겁게 하지만
누구가 그길을 같이 걷느냐에 따라서 그 행복감은 배가 되기도 하는데....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삶의 멘토로 삼을 만한 두분이 앞서고 있어
감히 정중히 부탁을 올려 봅니다...."두 분 잠시 되 돌아 보시지요!!"
한분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세탁소를 운영하시다가 후에 자영업을 하시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둡는데 인색함이 전혀 없는 후덕함을 보이시어
충청남도 개도 100년을 기념해 자랑스런 충남인 100인으로 선정되셨고....
다른 한분은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히실때 제가 곁에서 약15년간을 지켜 보면서
최고의 성실성과 청렴도를 보이신 분이라고 자부할수 있는 분이기에 실례을 범하고 말았다
장군봉에서 약40여분 하산하면 평 분지에 보리밥촌이 나타나는데
하산길 첫번째 집이 조계산 보리밥집이고 그 다음이 원조 보리밥집,그리고 저 아래 조계산 보리밥 아랫집
분지의 보리밥집 평상에 배낭을 내려 놓고 보리밥을 맛 있게 먹는 모습에
문득 이태의 "남부군"에 등장 하는 빨치산이 떠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낮이면 군군과 경찰에 쫓겨 이리 피하고 저리 도망 다니던 빨치산들이
편안히 휴식 할수있는 공간을 해방구라 표현했다
그 해방구에서 빨치산들은 밥도 해 먹고
따스한 햇살아래서 속옷을 뒤집어 이를 잡기도 했으며
때때로 모여서 오락과 여흥을 즐기기도 했었는데
식사후 해바라기 누님의 하모니카 연주는 그때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하게 끔 구성졌다
사실 우리가 걷고 있는 조계산은
1948년부터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있다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군경에 의해 회복되자 좌익 반란군들은 조계산 속으로 퇴각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여 벌교가 다시 좌익에 점령되었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무장투쟁한 빨치산 루트
원조 보리밥집에 버스를 송광사에 주차한후 역으로 올라온
전회장님의 일성은 조계산 산행의 아쉬움의 절반을 단박 해결해준다....
"식사후 산행은 천자암 쌍향수 쪽으로...!!"
원래 산행도에는 점심식사후 송광 굴목재에서 대피소를 거쳐 송광사로 하산하는 걸로 되어있어
천자암으로 돌아서 하산하면 약1시간 정도 시간이 추가될듯 해서 어찌 해야 하나 고민중 이였다
천자암으로 향하려면
마지막으로 호흡을 한번 더 몰아 쉬면서 천자봉(755m)을 올라야 한다
천자봉에서 집단 촬영 한컷!!
천자암은 송광사의 산내암자
송광사의 제9세 국사인 담당국사가 창건하였으며
담당이 금나라 왕자였으므로 천자암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천자암에는 법당을 비롯해서 나한전·산신각·법왕루·요사 등이 있으며
암자의 뒤쪽에는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쌍향수(雙香樹)가 있다
이 두 그루의 곱향 나무에는 창건자인 담당국사와 연관된 전설이 전한다
보조국사가 금나라 장종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하여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왕자 담당을 제자로 삼아 데리고 귀국한 뒤
짚고 온 지팡이들을 암자의 뒤뜰에 꽂아둔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한다
과연 명불허전
이 향나무를 보고 싶어 안달했던 것이 전혀 서운치 않다
아 이 작품이 누구의 작품인가....
이 곱향나무 쌍향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선정되었다
지난 1962년 12월3일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승천을 준비하는 두 마리의 용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쌍향수는 천자암 뒷뜰의 성산각 옆에 자라고 있는데
수령은 대략 8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5m, 가슴 높이의 둘레가 3.98m, 3.24m라고 한다
곱향나무는 원래 백두산에서 자라던 귀한 나무
잎이 모두 바늘처럼 뾰족한 침엽수이며 잎 길이가 아주 짧은 것이 특징이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해서
예의 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은 움직임이 신기하며
한번씩 손을 대 흔들어 보면 틀림없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았었다
사람들이 설악산의 흔들바위를 흔들어 보듯 이 나무를 찾는 사람들이면
모두 한 번씩 밀어 보곤 해서 요즘은 나무의 뿌리가 상한다며 ‘나무 밀기’는 물론 근접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천자암에서 송광사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둘이서 같이 걷기도 어려운 오솔길이지만
두툽하고 폭신한 활엽 낙엽이 발걸음을 부드럽고,가볍게 만든다
등산로 막바지는 선암사와 달리
송광사를 옆으로 관통해 자연스레 송광사를 관람 할수있다
대가람 송광사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
승보사찰은 불교 교단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 불·법·승 가운데
승, 곧 훌륭한 스님이 많이 배출된 사찰을 말한다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고봉국사까지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하였다
국사는 나라가 인정하는 최고의 승직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승려를 일컫는데
그런 국사가 한 절에서 열여섯 분이나 배출되었으니 세세손손 사찰의 자긍심이 될 만 하다
하지만 대단히,대단히 개인적 옹졸한 소견이지만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잡은 두 거찰의 오래된 반목은 매우 안타깝다
위세가 비슷했던 두 절집은 라이벌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쪽에서 법당을 새로 지으면 저쪽에서는 더 좋은 불사를 하려 했고
저쪽에서 빼어난 탱화를 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쪽에서 탱화작업이 시작됐을 정도였다
더 오래전의 시간 저편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200여 년 전부터는 그래왔었다
송광사 사고에 실려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날 송광사에서 스님들이 다 잠든 야밤에 불이 났는데
누군가 홀연히 나타나 "불이야!!" 라고 소리쳐 불난 사실을 일러주고는 관음전으로 사라져 버렸다
불을 끄고 난 송광사 스님들은 기이한 일이라 생각하고는 향나무로 동자상을 만들어 봉안했다
마침 그 무렵 선암사에도 불이 나서 큰 피해를 봤다
송광사에는 영험한 동자상이 있어 불길을 잡는다는
소문을 들은 선암사 스님들은 고심 끝에 급기야 송광사의 동자상을 훔쳐갔단다
그런데 훔쳐 온 동자상도 별소용없아 얼마 되지 않아 선암사에 다시 큰 화재가 났다
이에 실망한 선암사 스님들이 동자상을 산골짜기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다
이제 우화각과 삼청교 사진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
이 우화각 전경은 송광사의 대표적 풍경으로
우화각 안에는 이 수려한 경치를 읊은 옛 시인 묵객의 한시가 빽빽이 걸려 있는데
이 또한 선암사의 승선교와 비교 하기도 한다
참고로~~불임암에는 무소유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의 혼이 잠들어 있는데
두 거찰의 분쟁이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조금이라도 받아 들이면 또 다른 지혜가 생길지도 모른다
첫댓글 난지님! 매번 산행후엔 카페에 산행 후기 기다려 지는데 역시! 산행기에 자세한 설명까지 늘 고맙습니다. 다음 산행때 쏘맥한잔 더 드리겠습니다.
깜솨 합니다 ㅛ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