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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차 산행 (2/16)] ♣ 원주 치악산(雉嶽山) 향로봉-남대봉 (1,182m)
* [산행 코스] 원주 행구동 <샘골>→ 국형사(주차장)→ (포장도로)→ 보문사→ 향로봉[치악산맥 비로봉-남대봉 중간지점]→ 금두고원[점심 식사]→ 치마바위→ 남대봉→ (상원사)→ 갈림길→ 금대계곡→ 영원사→ 금대분소 주차장(12km. 6:00)
* [해발 1,182m 남대봉(南台峰)] — 오롯이 솟아있는 눈 덮인 만경봉
☆… 오후 2시 7분, 오늘 산행의 두 번째 포인트인 남대봉(1,182m)에 도착했다. 산중초소 아래 널따란 빈터가 있는 곳이다. 남대봉은 치악산국립공원의 남쪽에 솟아있는 봉우리로 그 남향받이 산록에 유서 깊은 상원사(上院寺)을 안고 있다. 남대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조금 아래로 내려오는 길목, 나목 사이의 보이는 벼랑을 지나다가 그야말로 독야지존(獨也至尊), 혼자서 우뚝 솟은 암봉이 눈길을 끌었다. 동행하는 지평 대장이 남대봉 옆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그 암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바로 만경봉입니다.” ‘아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로고!’ 탄사를 발하는 사이, 지평 대장이 말하기를 ‘지금 남대봉이라고 불리는 이 산봉이 원래 만경봉이고, 남쪽으로 저 만큼 떨어져 솟아있는, 지금의 시명봉이 원래 남대봉인데, 일제 때 잘못 이름 붙인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시정을 원하지만 모든 공적 기록과 지도를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유서 깊은 고찰 상원사(上院寺)] — 상원사에서의 풍경과 치악산 설화
☆… 오후 2시 15분, 상원사 갈림길, 지평 대장이 상원사 길을 안내했다. 앞서 가는 대원들을 모시고 상원사를 찾았다. 산사는 능선에서 동쪽으로 0.4km 내려간 아늑한 산록에 위치해 있었다. 사찰로 들어가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작은 일주문이 당그라니 통행로 위에 올라앉아 있는데, 건너편 상원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확 트인 시야, 치악산 남쪽의 길게 이어지는 깊은 성남골과 그 좌우의 첩첩산군이 장엄하게 포진하고 있다. 왼쪽의 산줄기는 영월지맥이요 오른쪽은 시명봉의 산줄기이다. 상원사는 치악산 남쪽의 모든 산곡을 한 아름에 안고 있는 형세이다. 그 조망이 아주 장관(壯觀)이다!
☆…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 해발 1,100고지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100평 남짓한 돌바닥 위에 세워져 있는데 절 앞 바위틈에서는 시원한 샘물이 솟아오르고, 그 앞에는 40여m의 벼랑이다. 지금은 계단식 축대를 쌓아놓았다. 벼랑 끝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3그루가 서 있는데 그 중 한 그루는 이미 고사목이 되어 있었다. 이 상원사에는 치악산의 유래가 된, ‘보은(報恩)의 꿩 이야기’[上院寺緣起說話]로 유명하다.
* [상원사 연기설화(緣起說話)와 치악산(雉岳山)의 명칭(名稱)의 유래]
☆… 옛날 한 젊은이가 무과 시험을 보려고 집을 떠나 며칠을 걸어서 적악산(오늘의 치악산) 고갯길을 넘게 되었는데, 깊은 산골짜기에서 꿩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길 옆 바위 밑에서 큰 구렁이가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어린 꿩들의 둥지를 응시하며 입을 벌려 막 잡아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어미 꿩이 애타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등에 메고 있던 활에 화살을 걸고 힘껏 시위를 당겼다. ‘팽’ 하고 날아간 화살이 구렁이의 몸에 박히고 큰 구렁이은 꿈틀거리다가 죽어버렸다. 위기를 넘긴 꿩들은 날개 퍼드덕거리며 어미에게 다가갔고 옆에서 울부짖던 어미꿩은 고맙다는 듯이 ‘꿔웡 꿩’ 울면서 새끼들에게 그윽한 눈길을 주고 나서 먹이를 구하러 날아올랐다.
꿩을 구해준 젊은이는 고갯길을 서둘러 걸었으나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하룻밤 머물 곳을 찾던 중 산 속에 집 한 채를 발견하고 그 집에서 묵어가게 되었다. 젊은이는 소복차림의 젊은 여인으로부터 밥까지 얻어먹고 잠이 들었는데, 큰 구렁이가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구렁이는 “당신이 오늘 내 남편을 활로 쏘아 죽였소. 나와 남편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는데 탐욕이 많아 벌을 받아 구렁이가 되었소.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했으니, 저 산 위의 빈 절 종각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당신을 살려주겠소.”
젊은이는 ‘이젠 죽었구나!’ 낙담하고 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댕~, 댕~, 댕~’ 세 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가 나자 구렁이는 감았던 젊은이의 몸을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날이 밝아 젊은이가 종각에 올라가 보니, 종각 밑에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어진 채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죽음으로 보은(報恩)을 하였구나. 내가 그 영혼을 달래주어야겠다.’ 하고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꿩들을 묻어주고 빈 절을 고쳐짓고 거기서 살았다. 그 절이 바로 지금의 상원사요, 그때까지 단풍색이 고와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던 산 이름도 ‘赤’ 자 대신 꿩 치(雉) 자를 넣어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불려졌다.
☆… 상원사의 창건은 정확치 않으나 절에 있는 석탑 등의 유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 다고 한다. [상원사의 유적] 현존하는 건물로는 1984년 6월 2일에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大雄殿)과 심우당(尋牛堂)·심검당(尋劒堂)·범종각(梵鐘閣)·산신각(山神閣) 등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 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 기단 위에 3층 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법당 앞의 이 석탑 2기(지방유형문화재 25호)는 고산사찰의 운치를 더욱 장엄하게 해준다. …
* [하산길 : 영원사계곡] — 급전직하(急轉直下)의 미끄러운 산길
☆… 오후 2시 45분, 상원사를 탐방하고 다시 능선 길로 올라와 영원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다다랐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계속 가면 ‘시명봉’으로 가는데,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등산로를 금지해 놓았다. 우리는 잠시 뜨거운 숨을 가라앉히고 행장을 수습했다. … 오후 2시 50분, 금대리(영원사 계곡) 방향으로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치악산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그 급전직하의 경사면으로 가파르고 험난한 산길로 악명이 높다. 특히 구룡사에서 정상 비로봉에 오가는 사다리병창이나 입석대 코스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 영원사 계곡의 길도 거기에 버금가는 험로(險路)이다. 더구나 오늘 같이 눈이 쌓이고 또는 그것이 얼어서 빙판을 이루어 아주 위험한 곳이다.
☆… 그런데 치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관리되면서부터 등산로의 안전장치나 편의 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다. 위험하고 가파른 곳에는 나무테크나 철제를 이용하여 만든 계단이 설치하고 철봉이나 보조자일 등을 시설하여 안전 산행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오늘 같이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눈과 빙판이 덮여 있으면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삐끗하면 큰 사고가 날 수가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눈이 녹아 아이젠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고 아래로 쭉쭉 미끄러져 내렸다. 저 거대한 산을 짊어진 듯한 몸의 무게를 두 다리로 지탱해야 하니 관절이나 근육에 심각한 압박을 준다.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내려왔다.
☆… 산곡(山谷)은 백설의 천지, 상당한 두께의 적설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힘들게 내려오는 사이 잠시 발길를 멈추고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면 심신이 아주 편안해진다. 우선 설산(雪山)의 이 고요가 좋다. 차갑지만 맑은 기운(氣運)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사유의 문을 연다. 청량한 기운이 더운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내리니 그 청량감을 무엇에다 비기리오? 청정산곡 망중한(忙中閑)의 행복이다. 발길은 바쁘지만 마음은 더없이 넉넉하고 편안한. 그렇게 내려오면서도 몸에는 거대한 치악산의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그 산의 무게는 뻐근한 어깨 죽지에서부터, 하체의 허벅지나 종아리 근육에 내려 앉아 그 강도를 실감나게 한다. 아래의 계곡에는 철제통행로를 여러 곳에 시설해 놓았다. 눈이 두껍게 쌓인 깊은 계곡에는 백설의 웅덩이가 깊고, 눈 덮인 얼음장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청랑하다. 영원사 계곡물은 섬강의 상류이다. 한강기맥과 치악산맥 사이의 모든 계곡의 물은 섬강으로 흘러들고, 그 섬강은 다시 여주의 남한강으로 합수한다. 그렇게 얼굴에 열기를 뿜으며 산곡을 빠져 나오니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안겨든다.
* [영원사(鴒願寺)-금대분소 주차장] — 금대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조용한 산간도로
☆… 오후 3시 50분, 영원사 앞에 도착했다. 그 앞서 길목에 ‘영원산성’이라는 커다란 표지와 해설판을 설치해 놓았다. 치악산의 주능선에 있는 치마바위에서 뻗어 내리는 산줄기의 중턱에 ‘영원산성’이 있고 그 산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창건된 절이 ‘영원사’이다.
해설판에 의하면, 절 뒤쪽 산 위에는 4㎞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석성(石城)은 문무왕 때 축성하였으며, 892년(진성여왕 5) 후고구려의 궁예가 이 성을 근거로 하여 부근의 여러 고을을 공략하였다는 사실이『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1291년(충렬왕 17)에 원(元)나라의 합단적(哈丹賊)이 침입하였을 때는 원충갑(元沖甲)이 항전하여 적을 무찔렀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는 원주목사 김제갑(金悌甲)이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곳이기도 하다. … 영원사는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영원산성의 수호 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永遠寺)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 1664년(현종 5)에 인환(仁煥)이 중건하면서 ‘영원사’로 바꾸었다.
☆… 영원사에서 금대리까지는 산간도로이다. 비록 산곡을 따라 휘돌아나가는 비포장 도로이지만 노반이 잘 다져져 있고 주변의 수림과 계곡과 잘 어울러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은 도로와 주변의 산록에 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조용히 걷기에 아주 좋았다. 이렇게 하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금대분소 주차장까지 장장 2.5km를 걸었다. 금대계곡을 따라 지루하게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걸았다. 새로 건설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오후 5시 정각, 치악산국립공원 금대분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5시 20분에는 후미 대원들 까지 모두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 [에필로그] — ‘산이 나를 따라와서’
☆… 상원사 능선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영원사까지 가파르게 쏟아지는 2,5km의 산길을 내려오고, 영원사에서 금대분소까지 이어지는 2.5km의 비포장-포장 산간도로를 걸어 내려오는 동안 ‘몸은 천 근(千斤)인데, 마음은 깃털 같이 가벼웠다.’ 돌아보지 않아도 ‘산이 나를 따라와서’ 내 온몸에 실렸으니 몸은 산처럼 무겁지만, 산의 기운이 스며든 마음은 청랑하기 그지없음이다. 이렇게 산이 내 몸에 실리는 느낌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과 같은 장대한 산을 타고 났을 때 늘 체감하곤 한다. 이는 ‘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이니 그 ‘고단한 행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보람이요, 생명이 누리는 은총이다.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도 이렇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앞서 인생의 모든 시간은 바람이 아니라 생명의 나이테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므로, 우리는 ‘하늘의 뜻’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中庸』(중용)에 이르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 바로 그것을 적시(摘示)한 것이요, 맹자(孟子)는 그 천명(天命)을 ‘인성본선(人性本善)’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하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상존(常存)한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천명은 자연의 순리이요, 본질적으로는 우리 마음의 순수성이다. 오늘의 치악산 산행은 산뜻한 보람과 즐거운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우리의 그 순수성을 빛나게 했다. 그래서 산길을 동행한 모든 산우들이 더욱 든든하고 정겨운 것이다. 산이 우리를 따라와서 함께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몸에는 그 ‘큰산’의 여운이 묵직하게 남아있다. … 게다가 귀경(歸京) 후의 뒤풀이! 구의동 <민속집>에서 따끈한 칼국수를 들면서 정담을 나눈 것도 별미의 행복이었다. 선뜻, 저녁자리를 마련해 준 크로바 서옥희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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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나 산행후 산행기를기록해주셔서감사합니다
또한산행기를기다리는마음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산행보다산행기읽는것이더재미 있습니다
잘읽고갑니다.이렇게 산행 이마무리됩니다
저도 지평대장님과 같은생각에 빠짐닙다 언제나 사진과 글이올라오나 기대를하고 자주창을봅니다 오늘은새벽에 연어봐더니 좋은 산행기록이 너무감동깊게 읽고갑니다 고생하셨고요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행복한하른되세요
가끔글씨가 잘못썼드라도 용서하세요 ㅎ ㅎ ㅎ
언제나 산행후에 반드시 훈훈하고 정감있는 산행기를 올려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옛말에 (결혼)잔치에는 국수를 먹어야 오래 잘 산다는 해서 우리아들 행복하게
자ㅡ알 살아갈겁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복마이받으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