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수년 전 고향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고향 장례식장에 갔을 때, 한 고령의 여성 노인분이 다가와 내게 ”누구 아들이요?“하신다. ”네.“ 라고 하니, 활짝 웃으시며 ”난, 평렬(고향친구)이 고모예요. 어린 시절 고주물(고향 마을)서 자라서 서울로 시집왔어. 6,25 피난 시절에 어머니와 고주물서 함께 살았어. 당시 아버지는 전쟁터로 끌려가셨고, 어머니 혼자 시부모 모시고 피난살이 했는데, 다들 형편이 말이 아니었지. 어머니가 기거하사던 움막은 가마떼기로 대충 얽어맨 거적문이었어. 어머니와 친했지. 어머니는 그 난리 통에도 기품이 있으셨어.“ 60-70년 전 일을 마치 어제처럼 떠올리시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치 어머니를 만난 모습이다.
전쟁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있으려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난 충분히 짐작이 간다. 나나 동생들이나 자라면서 어머니께 욕을 먹거나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어머니는 타인을 늘 인격체로 대하신다.
마을 제일 부잣집 장녀로 태어나셨지만 어려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계모 슬하에서 크셨다. 한번 ”어머니가 도시락을 안 싸주셔서 읍내 여학교까지 5년동안 점심에 물만 마시고 십리 길을 걸어다녔어.“가 계모에 대해 말씀하신 전부다. 여학교 졸업하고 공주 사범 나오셔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셨지만, 어머니 입으로 한 번도 자랑하시는 걸 본 적은 없다. 과묵하고 겸손하신 분이다. 친구 고모가 느낀 기품이 그 비슷한 것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신 일은 타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동네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매일 음식을 준비해가는 일을 참 좋아하셨다. 어디나 모이면 차별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도 형편도 어렵고 귀머거리 할머니를 동네 할머니들이 무시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귀머거리 할머니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점심을 드시고 어머니와 함께 경로당에 가져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말로 그분은 표정과 몸짓으로 나누는 대화에서 그 어떤 소통보다 진실함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의기소침해 있던 그분도 날이 갈수록 몸에서 생기가 돌았다. 친구가 이렇게 소중하고 인격체로 대접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겨울이면 우족탕을 한 통 끓여놓고, 집에 들리는 행상들이나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걸 참 좋아하셨다. 저희 4남매가 지금 모두 그나마 밥 먹고 사는 것도 모두 어머니 우족탕과 귀머거리 할머니 친구와 함께 만드신 음식 덕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인연을 맺고 어떻게 사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어느 분이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머니와 인연을 맺고 어머니 흉내를 내며 살고 싶게 해주셔서 어머니 너무 고맙습니다.
첫댓글 어머니 ᆢ
단어만 봐도 그냥
눈물이 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