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나란을 둘러보기 위해 산책에 나선다. 산골이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호텔에서 어제 왔던 길을 되집어 내려가니 머리 설산 봉우리들이 새벽 여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깨어나고 있고 막 잠에서 깨어 난 듯한 당나귀 두 마리가 길가를 서성이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이곳이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장작을 쌓아 놓은 모습이 많이 보이고 강변으로는 래프팅장비와 물놀이기구를 파는 상점 및 숙박업소, 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어제 본 빙하를 보기 위해 조금 더 내려갔는데 빙하가 녹아 미끄럽고 약해져 빙하 위를 걸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호텔로 돌아오니 다른 곳은 전등이 켜져 환한데 우리 호텔만 어둡다. 로비에서 자고 있던 호텔직원을 깨워 호텔에 전등이 안 켜진다고 하니 부랴부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점검해 봐도 전기가 안 들어오자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10여분 후 외부에서 사람들이 와 지하실로 내려가고 잠시 후 전기가 들어온다.
아침식사 후 8시 30분 오늘의 목적지 길깃(Gilgit)을 향해 출발한다. 나란에서 길깃까지는 298km로 바부사르패스를 넘고 칠라스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만나 길깃까지 가는데 10시간~11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한다. 바부사르 패스를 향하여 가는 길은 쿤하 강을 따라 난 길로 계속 오르막이다. 쿤하 강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 길이 나 있는 것은 이 쿤하 강이 바부사르 패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산에 나무들과 풀이 풍성한 곳을 지나왔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높은 산봉우리마다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저 봉우리들은 해발 4,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라고 한다. 골짜기엔 아직 녹지 않은 눈더미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 길은 눈이 오면 길이 막혀서 눈이 녹을 때까지 통행이 금지되는 곳이라 하는데 통행이 막히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스럽다. 좀 더 오르자 빙하의 일부인지 얼음덩어리들이 도로 양편에 즐비하고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 차량통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강 건너편에는 산 아래쪽을 깎아 조성한 계단식 밭이 강을 따라 많이 있고 군데군데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보인다. 강 건너 언덕에 자리한 집들, 처음엔 유목민들의 여름용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확대해서 보니 사람이 30여명 정도 보인다. 밭과 집이 있는 위쪽 산에는 풀 사이로 가로로 이어지는 수많은 자국들이 보이는데 좀 넓은 것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고 자잘한 자국은 수백년 동안 염소와 양들이 풀을 먹으러 다닌 길이라고 한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살까 궁금하다.
도로 우측 산기슭은 지반이 약해 보이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비가 많이 내리면 금방이라도 토석류가 무너질 것 같다. 건너편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자갈과 돌들을 보면 이 지역의 산들은 옛날 하천바닥이 융기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반이 약하니 비에 취약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버스는 산허리를 끼고 도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강바닥도 점점 깊어 보인다. 강바닥엔 자갈과 돌들로 뒤덮힌 것이 아득하게 보이는데 그 강바닥의 조그만 틈이 있는 곳에는 밭이 있고 채소 같은 것이 자라고 있다. 길옆에는 벌통들이 많이 보이는데 산에는 벌들이 꿀을 딸 만한 나무나 풀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바닥에는 돌 자갈 사이로 붉은 꽃이 핀 풀들이 보이는데 거기에서 벌들이 꿀을 따오는 듯하다. 산중턱에 벌통이 있는 것은 꿀을 채취하거나 벌통을 이동할 때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텐트 같은 집이 보이는데 이 집들은 아마도 가축을 기르거나 양봉을 하기 위해서 머무는 집인 것 같다.
쿤하 강을 낀 잘칸드(Jalkhand)란 마을을 지나는데 강변에 숙소와 가게, 음식점, 래프팅 장비 등이 보인다. 아마 이곳이 래프팅을 즐기는 명소인 모양이다. 나란을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난 10시 30분 바부사르 패스 아래 Moon Restruant Besar 주차장에 버스가 정차한다. 나란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면서 본 제일 넓은 장소로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과 화장실,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레스토랑 내부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식사를 하고 차도 즐기는데 식탁과 손님들 좌석이 아랍식으로 장식된 점이 내 눈을 끈다. 레스토랑 옆을 흐르는 쿤하 강이 주변 산들과 조화를 이루는 View Point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무료 화장실도 가고 주변을 돌아보며 View Point에서 기념사진도 촬영한다. 지반이 약해 산사태로 도로가 자주 매몰되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주차장에는 중장비가 항시 대기 중이다.
Moon Restruant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으로 바부사르 고개를 오른다. 얼마 가지 않아 Lulusar 호수가 보이고 버스가 산기슭을 따라 난 도로를 오르자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설벽(雪壁) 사이를 지나가는데 7~8년 전 형제들과 일본 도야마 알펜루트를 갔을 때 5~6m 높이의 설벽을 지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휴게소에서 바브사르 고개까지는 20㎞로 평시라면 30여분이면 올라간다. 해발 4,170m 정상 부근에 이르자 도로는 겨울철 엄청나게 많이 내린 눈이 녹지않아 간신히 차량이 교행할 정도로만 제설기로 뚫어 놓았는데 그나마 이곳의 눈을 즐기러 온 여행객들의 차량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 통행하기 매우 어렵다. 버스에서 하차해 정상을 구경하고 싶지만 버스가 정차할 공간도 보이지 않고 정상 부근까지 모르는데 한시간 이상 걸려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일행 중 한 명이 고산증을 호소한다. 보통 해발 3,000m가 넘으면 고산증이 시작되는데 적응하면서 올라왔지만 나도 머리가 좀 띵하다.
바부사르 고개 또는 바부사르 탑(해발 4,173m)은 파키스탄에 위치한 산악 고개로, 길이 150km(93마일) 카간 계곡 북쪽에 위치하며, 타크 날라를 통해 카라코람 고속도로(KKH)의 칠라스와 연결된다. 바부사르 패스는 카간 밸리에서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으로 파키스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중 하나다. 매년 이 산악 지형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있는데, 사고의 가장 흔한 원인은 이 가파른 지형에서 경험 부족으로 인한 차량 브레이크 고장이다. 바부사르 탑은 원래 바부르 탑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16세기 초 무굴 황제 바부르가 이 지역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바부사르 패스는 연중 6개월, 4월에서 9월 사이에만 열리는 길로 현지인들에게는 휴양지이자 여행자들에게는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로 해발고도가 높은 이 길은 탁 트인 산맥과 초원의 풍광이 인상적이며,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색채가 여행객을 매료시키는데, 특히 봄과 여름에 펼쳐지는 드넓은 초원과 청명한 하늘이 지역 특유의 웅장함과 섬세함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한다.
고개 정상에는 가게들이 도로 양 옆으로 몇 채가 늘어서 있어서 뜨거운 음료수와 음식들을 파는데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런 것을 사 먹을 여유가 없다. 이곳에서 낭가파르바트 산이 50㎞ 정도로 혹시 보일까 하여 창밖을 살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