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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머나, 판문점을? 판문점이 외국인들에게 관광 명소가 됐다더니 한국 사람도 거기에 들어갈 수 있대요?”
“신원조사하느라고 석 달이 걸렸지.”
“신원조사까지 한 걸 보니 관광할 마음이 있었구려?”
“당신이 가지 말라면 안 가겠소.”
“다녀오세요. 우리의 눈물이 쌓여 있을 거예요.”
“당신과 함께 못 가서 미안해요.”
“다음에 가면 되지요. 여보?”
아내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러만 놓고 얼른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해 봐요.”
“사고 내면 안 돼요. 당신 말이 맘에 켕겨요.”
“이놈의 나라 싫어서 북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말? 하하하 설마 내가……”
“금 하나 넘으면 북한땅 아닌가요?”
“군사분계선 얘기군. 당신이 굳은 결심으로 돌아섰던 그 다리를 꼭 봐야지. 거기 흘린 눈물도……”
“당신을 좋아했어요.”
“꿈 같은 얘기야. 우리가 언제 사랑할 틈이나 있었던가?”
“당신의 애인은 기업이었어요. 내 애인도 기업.”
“북한군 포로들이 기업의 합치점에서 만났소. 그게 사랑이었소.”
“……”
“사랑은 하나. 하나의 애국심. 그런 우리에게 신은 왜 넘어갈 수 없는 시련을 안겨 주는 거지?”
“……”
“정부에서 아첨 잘하는 기업 편만 들고 진정 헌신해 온 애국자를 몰라주니 화가 나오. 우리에게 이 시련은 너무 커요.”
“넘어갈 수 있어요. 해낼 거예요. 흐흑!”
“바보같이 울긴. 내가 쓸데없이 당신의 수채화같이 고운 감정을 건들었군. 내가 전화한 것은 부천 아파트 공사장에 다녀와야 할 것 같기에. 밤에 좀 늦을 거야. 밥은 아무데서나 먹겠소.”
“잘 다녀오세요. 밥은 전자밥통에 항상 있으니까 맛없어도 집에 와서 드셨으면 해요. 식당 밥이 제가 차려 올리는 밥만 하겠어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내는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통화하고 난 후에 그는 마음이 좋지 않아서 비서와 함께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그때 또 오정수의 전화가 왔다. 내일 버스가 출발할 지점과 시간을 알려 주었다. 고마운 여자였다.
지금 옆에 함께 앉아 별 얘기는 없으면서도 항상 따뜻한 기업인, 마음의 동지였다. 그 여자에게 갚을 부채도 있었다. 그 여자는 돈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현재가 미수금 결재를 빨리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여자 회장은 향기나는 손으로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돈이 실수하지 사람이 실수한 게 아니라고.
“죽으면 우리는 함께 죽는 거예요. 한국전쟁이 함께 죽는 전쟁 아니었던가요? 우린 이렇게 살아서 돈 벌고 호의호식하지만 그때 명멸한 별들은 조국이 잘 되기를 빌겠죠. 뽑힌 대통령마다 나라를 위하지 않고 그 장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백성을 돌보지 않으니까 탈이지. 쥐방울 만한 땅덩이 안에서 삼팔선 말고 지역주의란 동서남북 경계선 사방으로 갈라놓게 하고 말이야.”
7
날씨는 십일월 하순 같지 않게 포근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늦가을 정오의 햇살이 군용버스 차창으로 청량하게 비춰 들어왔다. 민간인 주택은 보이지 않고 군인들이 경작하는 자그만 논밭만 숲 사이로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글과 영문으로 쓰인 공동경비구역의 표지판이 보이고 판문점 초소 건물들이 편편한 평지에 서 있었다. 이쪽에 있는 것이 한국군 초소이고 저쪽에 있는 것이 북한군 초소였다.
이름하여 평화의 집, 통일각이란 현대식 건물이 군사분계선 남쪽과 북쪽에 서 있고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과 중립국감시위원회 사무실, 남북적십자 연락사무소로 쓰이는 자유의 집 등 24개 동의 건물이 8백 미터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었다.
평화의 집과 통일각 그 사이에 남북회담 장소로 쓰이던 단층 건물과 초소 건물이 몇 채 서 있었다.
초소 건물 앞에는 국군 헌병과 미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원명 널문다리)는 사십 년 전처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서쪽 비무장지대 안에 있으나, 도끼 살인 만행이 있은 뒤로 남북 통행 도로로 쓰이지 않고 북한이 만든 새다리가 다른 곳에 세워졌다.
사천이란 하천이 흐르는 그 다리의 중간까지가 우리 땅이고 그 너머는 북한군 초소가 있는 북한땅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달려서 넘어갈 수 있는 장벽 아닌 경계선이다. 초소 회담장 안에서만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 기업 회장단과 함께 온 다른 버스의 관광객들도 열심히 사진을 촬영했다.
몇 평 안 되는 실내의 광경이란 검은 군복을 입은 경비대 헌병과 장방형의 회담용 탁자, 마이크 스탠드, 의자, 유리창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삭막한 풍경뿐이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옆 초소 건물과 푸른 하늘이었다.
회담장 밖에서는 북한 통일각 초소를 향해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군용버스에 함께 탔던 안내원 병사가 남측 경비대 초소를 향해서 사진 찍지 말란 것과,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자유의 다리’를 견학할 때, 군사분계선 너머의 북한군을 향해서 불필요한 제스처를 보내지 말 것을 재차 당부했다.
사천을 남과 북으로 연결하면서 단절시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목제 다리에서 길이 83미터, 폭 3,4미터의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고 양쪽 끝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투철한 국방 정신이 없다면 남한도 북한도 얼마든지 이데올로기를 바꾸어 넘나들 수 있는 고립된(자유가 막힌) 위험 지역이었다.
이 다리를 통해 수만 명의 북한군 포로가 김일성 만세를 외치고 환호하며 북한 공산치하로 돌아갔다.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남한군 포로들이 같은 사천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자유의 품으로 돌아왔다.
유선정은 드물게, 특이하게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부모형제가 있는 북한행을 포기하고 자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기적의 히로인이었다. 그렇게 만든 사람은 마현재란 북한군 포로 출신 국군 대위였다. 이 얼마나 기막힌 연극 아닌 전쟁인가.
지금도 북한에서, 철의 장막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동포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북한 독재자는 호시탐탐 6.25 불법 남침과 똑같은 침략의 기회를 노리며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데 남한 정부는 뭔가. 똘똘 뭉쳐도 부족한 판국에 이조 때와 똑같은 썩은 당파싸움만 하고 있으니.
8
정치 지도자와 정부 관리들은 재벌들의 돈으로 부를 축적하며 권력 투쟁에 눈이 멀어 있다. 그 희생자는 국민이었다. 기업인도 국민 속의 한 사람이다. 부패한 기업가들은 국민 편이 아니고 대통령과 관리들을 위해 존재한다. 울고 싶다. 죽고 싶다.
아내와 나는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정일토건에 모든 걸 쏟았다고 자부한다. 북한군 포로인 우리를 따뜻이 맞아 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시련을 딛고 정말 뼈가 바스러지게 일했다.
재벌 총수가 작업복 입고 작업모 쓰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한 기업인은 나밖에 없을 게다. 회장님 체면에 호화 저택은 아니라도 자기 집 하나는 있어야 할 게 아니냐고 간부들이 월급 모아서 준 돈을 회사 부채 갚는 데 썼다. 내 집 사는 데 드는 돈이 아까웠다. 어려운 서민들 생각하면 좋은 집 가지고, 좋은 옷 입기가 죄스러워서였다.
아파도 약 한 첩 사 먹을 돈이 아까워서 고통을 참고, 병원비가 아까워서 의사에게 가지 않고 아내에게 주사 맞고 아내 처방으로 건강을 지탱한 나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영리해서 대학도 가고 외국 유학도 가서 다 잘 되었지만, 대기업 총수이면서 월세 아파트에 사는 부모를 도와 주려 하지 않는다. 생활비에 보태라고, 엄마 예쁜 옷 한 벌 사 입으라고 돈을 보내 주면 그 돈을 회사 자금으로 쓰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 부부는 우리가 가난하게 산 것을 떳떳하게 생각하고 기업인이 된 걸 후회한 적이 없다. 이제 나이도 늙어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자랑스럽게 은퇴하려고 했더니 정부에서 기업 비리 조사한다고 표적 수사를 하고 엄청난 세금을 추징시키고 기업을 강제로 도산시키려 하고 있다.
정말 억울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날 좋은 회장님이라고 믿고 있는 사원과 간부들에게 미안하다. 난 국가를 위해 충성한 죄밖에 없다. 대기업 회장이면서 월세 아파트에 사는 내 신조가 내 결백을 입증하리라. 검찰 수사가 두렵진 않다. 인간의 의리를 저버린 정부가 미울 뿐.
회장단 일행이 차내에서만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도끼 살인 만행 현장을 촬영하고 임진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군용버스가 정차했다. 버스가 노후되어 기관이 꺼진 것이었다. 검은 제복(경비대)의 운전병은 시동을 걸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안내원 병사가 힘센 승객 몇 분이 내려서 버스를 좀 밀어 달라고 했다. 마현재 회장은 젊은 회장들과 함께 내려서 버스를 뒤에서 밀었다. 버스는 움직이고 부릉 시동이 걸렸다. 마현재는 버스로 다시 올라가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 쪽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다리 중간에 유선정이 울며 서 있었다. 그녀가 언제 여기에 왔을까? 다른 버스의 승객들 속에서 아내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믿을 수 없었다. 그날 그 순간에, 남한 귀순을 결정하기까지 그 짧은 찰나에 그녀의 눈앞에는 고향 부모의 얼굴이 어른거려서 도저히 발길을 남으로 돌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현재 대위가 절뚝거리고 뒤따라오며 돌아오라고 애원하던 그 통렬한 절규가 부모의 얼굴을 지워 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렸으면 했다. 아니 시간을 그 시점으로 되돌려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패한 정부도 자유 민주주의도 다 그녀의 것이 아니고 허상이었다. 통일은 허상이었다. 그렇다면 부모형제가 사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서 죽으리라. 민주주의면 어떻고 공산주의면 어떤가? 잘날 것도 없는 그 민주주의.
내 한평생 내가 태어난 그 땅에서, 조상이 묻힌 고향에서 숨쉬고 생을 마감하면 그만인 것이다. 마현재 회장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향해 달렸다. 군인들이 소리치며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남편더러 어서 오라고 발을 구르며 북한 초소를 항해 월북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현재 회장이 절뚝거리는 느린 달음질로 겨우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도착했을 때 “탕!” 총성이 울렸다. 한국 초병이 뒤에서 쏜 총탄이 정확히 마현재 회장을 명중시켰다. 마현재 회장이 다리 중간에서 큰댓자로 넘어지기 전에 북한군도 남쪽으로 사격했다.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콩볶듯한 교전이 벌어졌다. 마현재는 피 흐르는 가슴을 움켜쥐고 유선정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그가 붙잡은 것은 유선정의 손이 아니고 피 묻은 나뭇가지였다.
유선정은 먼저 북으로 넘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피 흐르는 남편을 버려두고 혼자 월북했을 리는 없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마현재가 본 것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아내를 찾으며 다시 남쪽으로 돌아볼 순간 북한군이 그를 또 쏘았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아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기업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음을 깨달았지만 이젠 그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때리고 흔들어대서 마현재 회장은 꿈에서 깨어났다. 임진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신이 나른해지면서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기업가 마현재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웃고 있는 오정수의 빨간 입술이 보였다. 루지를 너무 많이 칠해서 꼭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드라큐라의 입같이 느껴졌다.
9
임진각 기념품점에서 회장단 회원들이 눈요기 쇼핑도 하며 쉬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아내의 전화가 왔다. 법원에서 정일토건 그룹의 법정관리 판결이 확정되어 다른 대기업에서 인수 합병 없이 기업이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가 방금전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보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채권단과 대주주들이 최악의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파산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기업 회생의 마지막 보루인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기업이 파산되어 채권 은행과 채권자들이 다량 보유하고 있던 정일토건 그룹의 채권들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보다 기업을 살려서 회생의 기회를 주고 채권단이나 기업체, 국가 경제에도 이익이 되도록 시간을 벌자는 것이 법정관리였다.
기업의 회생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서 법원에서 기업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그룹 총수 일가의 은닉 재산이 있는가, 그리고 사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 등을 조사하는데, 거기엔 법관들의 자의적 판단이 작용 안할 수가 없었다.
또 거기엔 정부 실세의 입김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결국 정부의 힘이었다. 법원은 암암리에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에 의한 사법권 독립은 현 정권하에서 먹히지 않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정부의 실세인 경제정책국장의 힘이 필요했다. 김모 국장은 정일토건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었고 대선에서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던 현정부의 실세였다.
그 사람은 북한 태생이고 아내 유선정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선정이 병원 간호사로 있을 때 뇌진탕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그 사람의 부친을 극진히 간호하여 살린 인연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 실세라도 그 위에 상관이 있고 대통령의 측근들이 또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마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선정의 노력이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법정관리로 부도를 면하게 됐지만 조건이 붙여졌다. 기업 총수 부부가 기업을 부실하게 운영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예측컨대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인 모 대기업 총수가 실질적인 운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운영의 걸림돌인 정일토건 회장 부부가 뒷전으로 물러나도록 퇴진을 요구했으리라.
그것은 치욕적인 퇴진이고 파산보다 더 비굴한 양보지만 마현재 회장은 국가를 위하고, 직장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퇴진 요구를 받아들였다. 아내와 이미 약속한 바였다. 이미 예견한 바이기에 섭섭하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마현재 회장은 다소 씁쓸하고 공허한 심경으로 홀로 벤치에 앉아 창공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리고 선글라스를 낀 뚱보 여인이 벤치로 향해 걸어왔다. 오정수 회장이었다.
“한 잔 합시다.”
오 회장은 마현재 옆에 앉아 부스럭거리며 자루 같은 큰 핸드백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내었다. 육포 안주도 있었다. 여행 출발하기 전에 슈퍼마켓에서 산 거라고 자랑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된 심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실패한 기업가에게 오 회장의 상큼한 체취는 아내의 위로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오늘처럼 인간의 체취가 따스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정일토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하자 오 회장은 놀라며 혀를 쯧쯧 찼다. 국가 경제를 위해 마치 스스로 자원한 것처럼 기업 일선에서 물러난단 말도 했다. 오정수는 기업의 동지를 잃게 됐다고 가슴 아파했다.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는 것은 너무한다고 자기 일처럼 울먹거리는 그 여인의 어깨를 다둑거리며, 이제 내 할 일을 해야지 하고 태연히 너털웃음을 날리는 마현재 회장.
10
그가 쓰려고 했던 한국전쟁의 아픔을 소설과 같은 한 권의 책으로 집필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그는 전쟁 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부유층 자손이었다. 전쟁은 그의 모든 행복을 앗아갔다.
김일성이 마현재의 가정과 가족에게 선물한 것은 가난과 강제노농, 질병뿐이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와, 아파도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실명하신 아버지는 지금도 북녘 하늘 아래 잘 계신지. 고향 가족들을 생각하면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아픔을 숨기고 살아왔다. 기업이 아픔을 잊게 했다.
“기업에서 은퇴하면 뭘로 먹고 살겠수? 모아논 돈도 없이 월세 임대 아파트에서 사신다던데.”
“몸만 건강하면 사는 방법이야 다 있겠죠. 이 공기와 대자연이 내 재산이오. 하하하”
“속도 좋으셔. 난 마 회장님이 부러워요. 아내가 있잖아요? 함께 살 동반자가 있다는 건 행복이죠. 난 서른 살에 남편 여의고 홀로 되어 대기업 총수가 됐지만 항상 쓸쓸해요. 없어요 아무 것도.”
“알고 보면 똑같이 빈 인생들이지. 한쪽이 채워지면 다른 쪽이 비고……그러나 오 회장은 여성이면서 빈틈없이 충실한 인생을 살아왔지 않소? 그래서 존경해요. 비울 땐 비우더라도 충실하게 자기 과업에 몸 바치는 것이 성공한 인생 아니겠소? 나처럼 도중하차하지 말고 마무리 잘하시오. 홀로 된다는 것이 불행은 아닙니다. 오 회장 곁에는 기업이란 동반자가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오정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벤치 한쪽에 놓여 있는 캔맥주 두 개를 소리내여 톡톡 텄다. 하나를 그에게 내밀며,
“우리 부라보해요.”
“그럽시다.”
“승리를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캔을 부딪치고 웃으며 마셨다. 승리였다. 아내 유선정의 덕이다. 돌아가서 힘껏 안아 줘야지. 오정수가 유선정이었더라면.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기업에서 떠난다는 게 꼭 실패는 아니다. 또 하나의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 하하하하 배를 쥐고 아내와 함께 맘껏 웃으리라.
“우리 인간은 사업의 동지다 직장 동료다 둘도 없는 파트너입네 하면서 마음속으론 미워하고 비무장지대 같은 견고한 군사분계선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그 파트너가 나를 잡아먹을 판이니.”
마현재의 말에 오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허욕과 적대감이 한국전쟁이란 큰 전쟁으로 발전한 거예요.”
“휴전은 됐지만 지상에서 가장 고립된 초소가 우리 인간벽 사이에 인구의 숫자만큼 첩첩이 가로놓여 있다는 말이지. 여기 와서 그걸 재확인했어요.”
“그 초소를 지우도록 인간 스스로가 노력해야겠죠.”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지만 쉽게 부술 수 있는 그 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래서 또 전쟁이 터지고 끝없이 분단의 불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노력이란 과제가 있을 뿐이다. 그 노력에 두 사람은 공감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가 돼 가고 가을 해는 서녘으로 설풋 기울었다.
멀리로 보이는 판문점 숲 위로 가을 철새들이 떼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남쪽으로 왔다가 도로 북쪽으로 날아가는 걸 보면 비무장지대의 안전한 평화를 버릴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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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마현재(28)……북한군 반공포로 출신 정훈장교, 정일토건 회장으로 성공함
유선정(24)……북한군 포로 간호장교, 마현재와 결혼함
오정수(철강회사 그룹 회장)
북한군 포로들
포로송환위원회 군인들
안내병들
경비병들
기업인협회 회장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