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암은 신라시대의 고찰로 583년(진평왕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사찰의 면모를 갖춘 시기는 1838년(헌종 4) 해운우홍(海運宇洪) 스님이 법당을 창건하면서부터이다. 1839년에 작성된 「영산대흥사 삼성암 법당창건문(靈山大興寺三成庵法堂創建文)」에 의하면, 1838년에 법당을 새로 짓고 이듬해 단청을 완료하였으며, 관음상(觀音像)과 칠성성상(七星聖像)을 조성하여 봉안했다고 한다.
또한 이 창건문에는 삼성암을 대흥사(大興寺)의 암자로 적고 있다. 대흥사는 영산의 영취산에 자리했던 신라의 고찰로 원효스님이 창건했으며, 조선후기의 기록인 『가람고(伽藍考)』나 『범우고(梵宇攷)』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에 폐사되어 그 사적을 살피기는 어렵다.
삼성암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울산의 문수암(文殊庵)ㆍ미타암(彌陀庵)과 함께 통도사(通度寺)의 3대 기도도량으로 불리고 있다.
삼성암 입구 정자
삼성암 입구
보광전앞 거목
삼성암 요사채
삼성암 명부전
삼성암 명부전내 지장보살상
보광전앞 맷돌
보광전앞 석등
보광전 좌측에 모셔진 나한들
삼성암 목조관음보살좌상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광전의 주존불(主尊佛)로, 목조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어깨와 무릎의 폭이 적당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얼굴을 앞으로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은 무릎 위에서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역시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있다.
사찰에 남아 있는 '법당창건문(法堂創建文)'과 '법당상량문(法堂上樑文)'의 기록에 이 관음보살상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1839년(헌종 5)에 쓴 창건문에는 우홍(宇洪) 스님이 1838년에 법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관음상(觀音像)과 칠성성상(七星聖像)을 조성하여 안치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1866년(고종 3)에 쓴 상량문에도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다만 칠성성상을 칠원군존상(七元君尊像)으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관음보살상은 1838년 삼성암이 중창되면서 법당을 새로 짓고, 그 이듬해에 칠원군존상과 함께 조성하여 봉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법당에는 함께 조성된 칠원군존상은 남아 있지 않다.
보광전 우측에 모셔진 나한들
보광전내 모셔진 불상
삼성암 동종
삼성암 삼성각
삼성각내
삼성각내 탱화
삼성각내 탱화
삼성각에서 바라다본 전경
삼성암 찾아가는 길
삼성암을 찾아가는 길은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창녕IC를 통해 창녕읍을 거쳐 계성면으로 들어서는 길과, 영산IC를 빠져나온 다음 계성면으로 들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우선 창녕IC를 통해 창녕읍으로 들어섰을 경우 5번 국도를 이용해 함안 방향으로 약 10Km 정도를 가다보면 계성리가 나오는데, 이 마을 어귀의 다리를 지난 다음 좌측으로 진입한다(진입로에 삼성암 표지판 있음). 그 다음 계성천을 따라 나있는 1080번 지방도를 타고 관룡사(觀龍寺) 방향으로 2.9Km 정도 가면 왼편에 작은 다리가 나타나는데(삼성암 표지판 있음), 다리를 건너 산으로 1Km 정도를 더 올라가면 삼성암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