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버린 몸이 견무1)의 늘거가니
속세와 대비되는 공간
밧겻일 내 모르고 하는 일 무슨 일고
속세의 일
이 중(中)의 우국성심(憂國誠心)은 년풍을 원하노라
화자의 소망을 직접 제시
<원풍- 1수>
세상일에 서툴러 버림받은 이 몸이 밭이랑 사이에서 늙어가니
세상 밖의 일은 내가 알 수 없고, 또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고.
이 속에서도 나라 위한 붉은 마음은 풍년을 원하노라.
농인(農人)이 와 이로되 봄 왔네 밭에 가새
압집의 쇼 보잡고 뒷집의 따2) 보내네
두어라 내집부터 하랴 남하니 더욱 됴타
<봄: 농사의 시작 - 2수>
이웃 농부가 찾아와 이르되, 봄이 왔으니 밭에 나가세.
앞집에서 쟁기 잡고 뒷집에서 따비(농기구)를 보내네
두어라 내 집 농사부터 하랴, 남부터 먼저 하니 더욱 아름답구나.
여름날 더운 적의 단따히 부리로다
밭고랑 매자하니 땀흘려 땅에 돗네
농사의 노고
어사와 립립신고(粒粒辛苦)3) 어늬 분이 알아실고
농사일에서 느끼는 보람이 나타나 있다
<여름 : 노고 - 3수>
여름날 한창 더울 적에 햇빛에 달아있는 땅이 마치 불같도다.
밭고랑 매자하니 땀이 흘러 땅에 구르네.
아아! 곡식 한 알 한 알의 고생을 어느 분이 알아주실까?
가을희 곡식 보니 됴흘도 됴흘셰고
내힘이 닐운 거시 머거도 마시로다
결실의 보람
이밧긔 천사만종4)을 부러 무슴하리오
속세의 부귀영화
<가을 : 결실 - 4수>
가을이 되어 곡식을 보니 좋기도 참으로 좋구나
내 힘으로 이룬 것이니 먹어도 맛이 유별나구나
이 즐거움 외에 천사만종을 부러워하여 무엇하리오
밤으란 사츨 꼬고 나죄란 뛰5)를 부여
초가(草家)집 자바매고 농기(農器)졈 차려스라
추슬러라(정비하라)
내년희 봄온다 하거든 결의 종사(從事)하리라6)
<겨울 : 준비 - 5수>
밤에는 새끼를 꼬고 낮엔 띠풀을 베어
초가집 잡아매고 농기구를 손질하여라
내년에 봄 온다 소리 들리거든 곧 농사일 시작하리라.
새배 빗나쟈 백설(百舌)7)이 소뢰한다
일거라 아해들아 밭 보러 가쟈스라
불특정 다수의 농부들
밤사이 이슬 긔운에 얼마나 길었는고 하노라.
<아침 - 6수>
새벽이 돌아와 날이 밝아지니 온갖 것(때까치)들이 소리하는구나.
일어나거라, 아이들아. 밭을 살펴보러 가자꾸나.
밤사이 이슬 기운에 얼마나 곡식이 길어났는고 하노라.
보리밥 지어 담고 도트랏 갱8)을 하여
농부들에 대한 화자의 애정
배골는 농부(農夫)들을 진시(趁時)예 머겨스랴
제 때
아해야 한 그릇 올녀라 친(親)히 맛봐 보내리라
농부들을 위하는 마음
<점심 - 7수>
보리밥 푸짐하게 지어 담고 명아주 국을 끓여
배를 곯는 농부들을 제 때에 먹이어라.
아이야! 한 그릇 가져오너라. 내 친히 맛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 보내리라.
서산(西山)에 해 지고 풀 긋테 이슬난다
호뮈는 둘너메고 달듸여 가쟈스라
농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모습
이 중(中) 즐거운 뜻을 닐러 무슴하리오
<저녁 - 8수>
서산에 해 떨어지고 풀 끝엔 이슬이 묻어난다.
호미를 둘러매고 달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가자꾸나.
이런 생활의 즐거운 재미를 남들에게 말하여 무엇하리오.
- 이휘일, <전가팔곡(田家八曲)>
[어휘 풀이] 1) 견무(畎畝) : 밭이랑 사이 2) 따 : 따비(농기구) 3) 립립신고(粒粒辛苦) : 곡식 한 알 한 알에 담긴 괴로움. 농사일의 고통 4) 천사만종(千駟萬鐘) : 천 대의 마차와 만 섬의 곡식. 부귀영화 5) 뛰 : 띠풀 6) 종사하리라 : 힘을 쓰리라(시작하리라) 7) 백설(百舌) : 온갖 새들 8)
▪ 해제 : 1664년(현종 5) 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국문필사본. 작자가 45세 때 지은 이 작품은 농촌의 풍경과 농민의 노고를 소재로 하여 8곡의 단가(短歌), 곧 평시조 8수가 연첩(連疊)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서전가팔곡후 書田家八曲後〉에, “나는 농사 짓는 사람은 아니나, 전원에 오래 있어 농사일을 익히 알므로 본 것을 노래에 나타낸다. 비록 그 성향(聲響)의 느리고 빠름이 절주(節奏)와 격조(格調)에 다 맞지는 않지만, 마을의 음탕하고 태만한 소리에 비하면 나을 것이다. 그래서 곁에 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노래하게 하고 수시로 들으며 스스로 즐기려 한다(存齋集 권4).”라고 하여, 이 시조의 저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 성격 : 전원적, 향토적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농촌의 일상일
* 특징
① 청유형 어미를 사용하여 농부들과 함께하는 동류의식도 있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들의 일상을 소개한다는 화자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나타냄
② 세상에서 ‘천사만종’을 누리는 사람을 우회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세속에서 달관한 화자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나타남
③ ‘세상의 버린 몸’에서 중앙 정계로의 진출이 통제되고 있음을 암시
* 주제 : 향촌(鄕村)에서의 노동의 즐거움, 초야(草野)에서의 농사일의 즐거움
* 구성 :
① 첫 곡은 서문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고, (대상의 나열)
② 두 번째 곡에서 다섯 번째 곡까지는 춘(春)·하(夏)·추(秋)·동(冬) 사시(四時)에 걸쳐 농민이 해야 할 농사일 의 노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③ 그 다음 여섯 번째 곡에서 여덟 번째 곡까지는 하루를 새벽·낮·저녁으로 나누어 일하는 즐거움을 구성지게 노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