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음주계 수지에 얽힌 이야기/ 정안正晏 거사
앞으로 21일 동안만 우선 금주하자.
그래도 꼭 마시고 싶으면 마시되, 일단 3주 동안만큼은 철저하게 금주해 보자!
이 결심으로 필자의 불음주계 수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껏 5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 동안 계속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지만 적당하게 핑계를 대면서 자의로는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가족들도 이제 필자의 불음주계를 확실하게 믿는다.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니까, 이제 대상 경계에 걸리더라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음주계 습관화의 성공을 계기로 3ㆍ7의 법칙에 의거해서
많은 권계(勸戒)와 금계(禁戒)를 습관화시킬 수 있었고, 이처럼 좋은 습관이 형성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고 여긴다.
아울러 스스로를 신뢰하는 자신감(自信感)이 생겼다.
남 앞에 나서는 경우에도 떳떳하고 당당해졌다.
이제 오계의 철저한 수지로 인해서 이른바 계체(戒體)가 형성되어서
어기려야 어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선도회의 입실점검을 통해 깨달음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터다지기 작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남들이 필자한테 술을 권하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생에 내가 받은 주량은 이미 다 채웠고, 따라서 더 이상 마시면 그 업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다음 생에 새로 주량을 배당 받아서 그 때 마시겠다”고...
그러면 대개 웃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막걸리는 얼마든지 사주겠으니 실컷 마시고, 내 앞에서는 망가져도 전혀 나무라지 않겠다.”
그러면 그들은 매우 조심하는 것 같았다.
상대가 맨 정신으로 지켜보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망가져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필자가 스스로 평생토록 불음주계를 지킬 수 있겠다고 자신하는 것은
혹시라도 실수로 술을 입에 넣었을 경우 깜짝 놀라서 뱉어낸다는 사실이다.
마치 삼키면 죽기라도 하는 독약을 입에 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어휴! 큰일 날 뻔 했다.”고 안도하는 자신을 보고
불음주계의 계체가 확실하게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실감나고, 모든 습관은 삼칠일 만에 형성된다는 말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사실임이 분명하였다.
- 본문에서 발췌
불음주계 수지의 상징: 엎어버린 술잔
불음주계(不飮酒戒) 수지(守持)에 얽힌 이야기
선도회 독립문모임 정안(正晏) 손병욱 거사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1
필자는 오늘(2019. 12. 15)로서 불음주계를 수지(守持)한지 1,965일을 맞았다.
얼추 5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이 계율을 실천해 오고 있는 셈이다.
당장 목표는 2,100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습관화에 필요한 3ㆍ7일 곧 21일을 100회째 거듭한 날이다.
5개월을 채 못 남겨두고 있으므로 조만간 달성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불음주 시행의 날짜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일기에 기재하기 때문이다.
일기에 이런 것도 다 쓰나?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도 계시겠지만, 필자로서는 몇 번 불음주계 수지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 때문에
이 계율의 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서 매일 일기에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불음주계를 수지한 뒤에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건강을 되찾았고, 가족의 신뢰를 회복했으며, 나아가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었다.
아울러 이 계율수지를 바탕으로 다른 계율, 즉 오계의 다른 계율도 수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오계수지는 깨달음의 집을 짓기 위한 기초 작업이자 터다지기 작업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깨달음의 목표에 도달하는데 불음주계는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셈이다.
이제 필자가 이 계율을 수지하기까지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지난 11월 25일(월), 정안헌에서 입실점검을 받기 위해 상경하였을 때, 법문 시간에 법경(法境) 법사께서
《시사위크》에 실린 ‘음주(飮酒)의 멋진 쓰임’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특히 ‘주입설출(酒入舌出)’이라는 말이 아프게 와 닿았다.
과거의 필자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때 술에 얽힌 필자의 이야기를 했더니 음주와 관련해서 글을 한 번 써 보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에 본고를 작성하게 되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2
시골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막걸리를 마셨다.
3대 독자였던 필자는 철들고 나서부터 증조부님과 함께 생활했는데,
당시 80 가까우셨던 증조부께서는 어머니가 집에서 담아서 드리는 막걸리를 즐겨 드시곤 했다.
그때마다 조금 남겨서 옆에 있는 어린 필자에게 마시라고 주셨다.
어머니가 어린애한테 술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증조부께서는
“우리집안이 애주하는 것은 내림[유전]인데, 술버릇이 중요하다.
어른 밑에서 술을 배우면 술 먹고 술주정하는 일은 없다고 하니까 마셔도 된다.”
고 하면서 계속 술을 남겨 주셨다. 막걸리 맛을 일찍 알았던 셈이다.
이후 중학교부터 진주에서 생활한 필자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대학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양조장에서 만든 밀가루 내지 옥수수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가 시골에 가면, 중학교 1학년 때 별세하신 증조부를 이어서
조부께서 집에서 쌀로 담근 막걸리를 즐겨 드시면서 필자에게도 권하셨기에
맛 좋은 막걸리를 계속 마실 수 있었다.
중학교 교사로 울산시 근교에 첫 발령을 받아서 간 1976년 가을쯤부터
쌀 막걸리가 시중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과도하게 마셨고,
간혹 가다가 필름이 끊어지는 현상도 생겼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후 1983년에 경상대학에 자리를 잡은 뒤에 술자리가 자주 있었는데 필자는 유독 막걸리만 찾았다.
필자에게는 어린 시절 맛들인 막걸리를 능가하는 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아무리 마셔도 화장실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흡수율이 좋다는 증거인데 대신 빨리 취하였고 나중에는 필름이 끊어졌다.
이런 경우, 그 후유증이 1주일을 갔다.
정상상태를 회복하는 1주일 동안 과거, 미래, 저기, 그기에 자꾸 걸리면서
제 자리에서 제 할 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막걸리 먹고 정신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턱을 크게 다쳐서
몇 달 동안 입원하여 수술 받느라 고생한 적도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 술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명한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자고 생각하였다.
당시 전라남도 곡성군의 성륜사(聖輪寺)에 계시던 청화(淸華: 1923~2003) 큰스님이 떠올랐다.
두어번 친견을 한 적이 있기에 직접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큰스님의 유발상좌로 알려진 경상대학 철학과 박선자 교수에게 요청하였다.
박 교수는 좋다고 하면서 자기가 주선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 교수의 주선으로 날을 잡아서 둘이서 성륜사로 갔다.
요사채에서 유숙한 뒤에 새벽 같이 일어나서 박 교수와 함께 큰스님의 주석처 조선당(祖禪堂)으로 올라갔다.
큰스님께서는 상좌 스님의 보좌를 받으면서 수계식(授戒式)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1대1의 수계였다.
정식으로 오계를 받고 연비(燃臂)의식을 거행 하였다.
그런데 그 때도 불음주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게 지키겠다고 하지 못했다.
큰스님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면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평소 매우 자애로웠던 큰스님께서 필자의 대답이 분명하지 못하자,
큰 소리로 “(불음주계를) 지키겠느냐”고 다시 물어서 얼떨결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정말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필자는 마시되 다만 절제하면 된다고 여겼다.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 이것은 범계(犯戒)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후, 다시 술을 마시면서도 취하기 전에 그만두기가 어려웠고,
그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늘 큰스님에 대한 죄송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명이 정안(正晏)이었다.
다시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제 다음날 아침이면 가족들로부터도 싸늘한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내가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생각은 안 나고, 그렇다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고,
속은 쓰린데 주머니에는 엊저녁까지 분명히 있었던 수십 만 원이 온 데 간 데 없었다.
아니면 어떤 때는 내가 주점에서 결재한 카드와 영수증이 나왔다.
역시 수십만 원의 돈이 찍혀 있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몇 모임의 멤버들한테도 선언하였다.
“앞으로는 술 안마실테니 권하지 마라.”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술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안 마신다고 했기에 스스로 마시지는 않지만 남들이 권하면 못 이기는 체 다시 마셨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가 보니까 필자는 술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신용이 없었다.
지인들이 돌아서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필자에게 술은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회갑을 맞이하던 해 가을에 굳게 결심하였다.
앞으로 21일 동안만 우선 금주하자.
그래도 꼭 마시고 싶으면 마시되, 일단 3주 동안만큼은 철저하게 금주해 보자!
이 결심으로 필자의 불음주계 수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껏 5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 동안 계속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지만 적당하게 핑계를 대면서 자의로는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가족들도 이제 필자의 불음주계를 확실하게 믿는다.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니까, 이제 대상 경계에 걸리더라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음주계 습관화의 성공을 계기로 3ㆍ7의 법칙에 의거해서
많은 권계(勸戒)와 금계(禁戒)를 습관화시킬 수 있었고, 이처럼 좋은 습관이 형성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고 여긴다.
아울러 스스로를 신뢰하는 자신감(自信感)이 생겼다.
남 앞에 나서는 경우에도 떳떳하고 당당해졌다.
이제 오계의 철저한 수지로 인해서 이른바 계체(戒體)가 형성되어서
어기려야 어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3
앞으로 선도회의 입실점검을 통해 깨달음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터다지기 작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남들이 필자한테 술을 권하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생에 내가 받은 주량은 이미 다 채웠고, 따라서 더 이상 마시면 그 업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다음 생에 새로 주량을 배당 받아서 그 때 마시겠다”고...
그러면 대개 웃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막걸리는 얼마든지 사주겠으니 실컷 마시고, 내 앞에서는 망가져도 전혀 나무라지 않겠다.”
그러면 그들은 매우 조심하는 것 같았다.
상대가 맨 정신으로 지켜보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망가져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오랫동안 필자는 매번 여름방학이면 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화개동천(花開洞天)에 있는
필자의 우거 흥명선암(興命仙庵)에 가서 3박 4일간 있다가 오곤 했는데,
올라갈 때 화개장터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두어말 사서 차에 싣고 갔다.
이곳은 물이 좋아서 막걸리 맛이 좋았다.
첫날 저녁부터 대충 일과가 끝나면 마시는데, 필자가 막걸리를 권하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 ‘술과 담배는 인류의 적! 마시고 태워서 없애버리자’고 하는데,
담배는 너희들이 태워 없애고 술은 내가 주로 마셔서 없애겠다“고 하면서 밤늦도록 호기롭게 마시곤 했다.
학생들은 첫날 저녁부터 막걸리에 빠져서 다음날 일정이 차질을 빚기 일쑤였고,
필자는 다음날 다시 새 막걸리를 사러 13킬로 떨어진 화개장터로 내려가곤 하였다.
이제 불음주계를 지키기 시작하고부터는 흥명선암에 갈 때 술을 사 갖고 가되,
대신 마지막 날 저녁에만 학생들이 마시도록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학생들이 술 마실 때 필자는 음료수를 마셨다.
학생들도 곧 적응하였고, 대신 일과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필자가 스스로 평생토록 불음주계를 지킬 수 있겠다고 자신하는 것은
혹시라도 실수로 술을 입에 넣었을 경우 깜짝 놀라서 뱉어낸다는 사실이다.
마치 삼키면 죽기라도 하는 독약을 입에 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어휴! 큰일 날 뻔 했다.”고 안도하는 자신을 보고
불음주계의 계체가 확실하게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실감나고, 모든 습관은 삼칠일 만에 형성된다는 말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사실임이 분명하였다.
2019년 12월 15일 정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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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9.12.19]불음주계 수지에 얽힌 이야기/ 정안正晏 거사(링크수정!)|작성자 통보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