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머무는 절이란 이름을 가진 성주사는 경남 창원시와 김해시 사이에 있는 불모산(해발 801.7m)의 서편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말사이다.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2년(82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최근에 찾아진 1746년에 지은 ‘성주사사적문’에 따르면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신라 말기에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스님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처음 귀국한 곳이 바로 이곳 창원이었고, 선문(禪門)사찰을 여시고, 이후 충남 보령의 오합사(烏合寺)의 이름을 고쳐, 또한 ‘성주사’를 개창하셨다는 것이다.
외부 벽화 가운데 왼쪽 면 두 곳에 곰의 그림이 있는 것은 진경 대사가 1604년 성주사를 중창할 때 도움을 준 곰을 그린 것이다. 최근에 중수하면서 기단부 앞에는 대웅전 앞으로 오르내리기 위한 출입 계단을 두고, 오른쪽에는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경사로를 두었다.
성주사는 ‘곰절’(웅신사.熊神寺)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절이 소실(1592. 선조25년)되고, 1604년 진경대사가 절을 다시 중창을 하려고 불이 난 옛날 절터에 목재를 쌓아 두었는데, 곰들이 밤사이에 지금의 자리로 목재를 옮겨 놓아, 이를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내용이 전설로 전해 오고 있었다.
몇 년 전 신축된 지장전으로 지장보살상을 이운하면서 발견된 복장에서 ‘康熙二十 辛酉年 四月’(숙종7년/1681년)에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등 여러 권속을 시주한 시주자 명단과 함께 ‘불모산 웅신사’라는 절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성주사의 창건에 대하여 불모산의 유래와 함께 가야시대 때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불모산(佛母山)은 부처님의 어머니 산이란 뜻으로 옛날 가야시대 때 서역인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허보옥(許寶玉)과 사촌오빠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해변에 도착하여 뒷날 허보옥은 김수로왕의 부인이 되고, 이때 함께 온 장유화상은 산으로 들어가 수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남방불교전래설)하였는데, 이렇게 이 땅에 처음으로 불교를 잉태시킨 산이란 뜻으로 불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주사에는 이런 설화를 뒷받침하는 ‘어수각’이라는 우물이 하나 전해져 오고 있다.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10왕자 중에서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불모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왕께서 왕자들이 보고 싶어 절을 찾아 왔을 때 마신 우물이라 하여 ‘임금이 마신 우물’이란 뜻으로 어수각(御水閣)이라 이름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이러한 오랜 역사와 더불어 성주사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경상남도 지방문화재인 대웅전과 삼층석탑과 감로왕탱, 용화전 미륵보살, 동종을 비롯하여 등록된 문화재와 이 밖에 등록되지 않은 소중한 문화재들이 다수가 있으며 성주사 주변에는 창원시 문화재 자료로 등록된 옛날 절터인 성주사지(聖住寺址)를 비롯하여 많은 암자터들이 산재되어 있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이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漢譯)한 것으로 위대한 영웅, 곧 부처님을 의미하는 말이다. 부처님에게는,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큰 힘이 있어서 마군(魔軍)의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부처님이 되었다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인데, 특히 석가모니부처님을 일컬어 ‘대웅’이라 한다. 따라서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놓는 곳으로, 대부분의 경우 사찰의 중심에 위치한 가장 큰 법당을 대웅전으로 조성하고 있다.
내부 좌우 벽에는 무염국사 진영(1907년), 포암당 대총스님 진영, 등암당 찬훈스님 진영, 서봉당 의정스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목조 소원화통 1점(1661년:순치 18년), 청동금고(반자) 1점(1758년:건륭 21년), 대고 1점(연대미상), 상단후불탱 1점(1991년), 닷집및 좌대(1992년), 신중탱 1점(1991년)등을 소장 하고 있으며,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주련
世尊坐道場 淸淨大光明 比如千日出,照耀大千界
세존좌도량 청정대광명 비여천일출 조요대천계
대웅전 후면
앞뒷면에만 공포를 짜 올리고 옆면에는 생략하였다. 공포는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뒷면 내부의 공포만 간략한 교두형(翹頭形,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대웅전 전면
성주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부처님과 오른쪽에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부처님을 삼존으로 모시고 그 전각을 대웅보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3세계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 부르는데, 조선시대에 조성된 큰 사찰에서는 대웅보전 내에 삼세불상과 함께 삼세불화를 봉안한 곳이 많다. 처음 1681년(숙종 7)에 지은 뒤 1817년(순조 17)에 중수하였다. 건축 양식은, 앞뒷면에만 공포를 짜 올리고 옆면에는 생략하였다. 공포는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뒷면 내부의 공포만 간략한 교두형(翹頭形,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패(불명패,전패,위패)
불·보살의 명호를 적은 것을 ‘불명패’라고 하고, 국태민안, 소원성취 등의 발원과 함께 왕족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내용을 적은 것을 ‘전패’라고 하며, 영가의 신위를 모신 것을 ‘위패’라고 한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단순히 패의 아래쪽에 연화대좌만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또는 그 위에 구름, 용, 연화 등의 문양을 조각하여 비석이나 탑의 옥개석처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위패의 양쪽에 작은 문을 설치하는 것도 있고 당초 문과 같은 문양을 장식하기도 한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를 적은 위패는 시연의식에서 영단의 중앙에 놓고 그 좌우에는 각기 향로와 다기 및 1쌍의 촛대를 세운다. 의식에 사용되는 위패는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법당이나 사당, 원, 절 등에 모시며 목주, 영위, 위판, 신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자좌
문살무늬의 종류
1. 날살문
매우 간단하고 깔끔한 멋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무늬이다. 주로 禪을 닦는 수행승의 선방에 어울리며 바라지(窓)로도 많이 쓰이는 무늬이다.
봉정사 극락전(1363년 이전, 국보 15호), 부석사 조사당(1377년, 국보 19호), 은해사거조암,영산정(1375년, 국보 14호),송광사 하사당(15세기, 보물 263호)들의 옆칸 바람벽에 난 창에서 볼 수 있다.단촐한 짜임의 주심포 맞배집 창으로 나타나 초기에 쓰인 무늬임을 알 수 있다.
2. 띠살문
날살문에서 한단계 더 나아간 모양새로 일반집 쪽에 많이 쓰였다.초기에 나타나며 단출하고 깔끔한 주심포 맞배집의 문살로 쓰였으며 봉정사 대웅전(13-14C) 보물 55호) 3칸 모두, 송광사 하사당(15C, 보물263호)의 문살들이 띠살문이다. 단출한 주심포 맞배집의 문살로 날살이 창에 세로로 놓이면 띠살은 가운데의 문살로 들어선다.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체에는 일체의 사치를 배격하는 검소함을 보여준다.
3. 우물살문
날살과 씨살을 서로 똑같은 칸으로 짜나가 우물무늬를 만들어가는 무늬살문이다. 살칸이 많아지고 촘촘해졌으며 문짝도 더 튼튼해졌으며 일반집에서 흔하게 많이 쓰는 문살이다. 아름다움은 별로 없지만 규칙적인 이음이 단아하게 보인다.부석사 무량수전(13C, 국보 18호), 범어사 팔상전이 대표적이며 범어사 팔상전에서는 네잎 꽃송이를 새겨놓아 꽃문살이 더욱 아름답다.
4. 빗살문
빗살은 두 살을 서로 어긋나게 짜나가 마름모 무늬를 만들어나가는 문살이 다. 우물살을 모로 뉘어 약간의 멋을 부린 문살이라 할 수 있다.두 살이 만나는 교점에는 꽃무늬를 올려 돋보이게 하고 금강저(金剛杵:불법,부처, 보살을 보살피고 '慘'을 지키는 무기)를 꽃송이 대신 새겨 날카롭고 힘찬 모양으로 꽃의 잎을 대신하기도 한다.남장사 극락보전(1635-1776), 신흥사 극락보전, 내소사 대웅보전, 쌍계사대웅전(17-8C), 불갑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5. 소슬살문
씨날살과 모든 빗살에 다양한 무늬를 짜넣어 아주 복잡하면서도 규칙적이고 화려한 문살무늬를 말한다. 소슬이란 솟은 즉 돋아낸, 돋우어낸, 도드라진의 뜻으로 이 문에는 거의 모두 꽃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있어 소슬이라 붙인 것같다.소슬꽃문, 소슬민꽃무늬, 소슬모란꽃문, 국화문, 연꽃문, 잎사귀문, 금강저문등이 있다. 꽃문이 새겨진 바탕살은 네모나 마름모 혹은 육모, 팔모로 짜임새가 되어있다.
범어사 독성전 어칸, 신흥사 민꽃살문, 운문사 대웅전, 용문사 대장전 마곡사 대광보전 옆칸, 대승사 대웅전등에서 볼 수 있다.불상을 모신 법당 대부분은 이렇게 화려한 꽃으로 문살을 장식했다.
6. 꽃나무살문
씨날과 빗살로 짠 만나는 점에 꽃무늬뿐만 아니라 꽃나무를 통째로 새겨 문을 짠 것을 말한다.
정수사 대웅보전과 선암사 원통전 어칸 그리고 용문사 8모윤장대등에서 볼 수 있다. 연꽃이나 모란꽃들을 앞사귀, 줄기와 가지채로 길 게 새겨 올린것으로 보다 실물적이고 자연스럽다 하겠다. 더욱이 정수사 꽃문은 백자꽃병에 꽃꽂이 형태의 꾸밈으로 눈길을 끈다.
7. 기타살문
문에 만(卍)자꼴을 넣어 문살을 짠 것으로 남장사 금륜전과 산청 율곡사 대웅전을 들 수 있다. 중국 발음의 완자문으로 불리우며 문짝 가운데 8모틀로 짜고 그 바깥 모서리에다 卍자꼴의 꾸밈새를 하고 있다. 사찰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으나 궁궐을 비롯하여 양반집과 일반집의 마루와 방사이에도 있으며 네모, 육모, 팔모 또는 둥근모양새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이런 무늬는 단아한 선비의 멋을 한껏 느끼게 만든다.그 밖에도 아(亞)자살, 용(用)자살, 귀(貴)자살 그리고 귀갑(거북)무늬살, 숫대살의 꾸밈새도 있다. 숫대살은 담에 세워진 사립문에서 온 것으로 곧 나무나 대가지로 엮은 기초적인 짜임새이다.
우리 문살 무늬의 아름다움은 전국 각지의 여러 사찰건물에서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 박물관장은 "이조 목수들의 손으로 가누어진 한국 창살 무늬의 아름다움은 때때로 몬드리안의 작품들을 능가할 만큼 세련된 면의 분할을 적잖이 보여 주었다.....한국의 창살무의가
지니는 아름다움의 차원은 사뭇 눈맛의 후련함을 맛보게 해준다....은근하게 둥글고 알세라 모를세라 모를 죽이면서 후련한 분할을 즐기고 있다"며 우리 창살 무늬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결국 궁궐이나 사찰의 문과 창등은 그 시대의 문화의 화려함과 세련미 그리고 정신세계까지 가늠하게 하는 것 같다.
대웅전 꽃문살(앞에서 봤을때 좌측)
대웅전 꽃문살(중앙)
대웅전 꽃문살(우측문)
대웅전 꽃문살은 3곳의 꽃의 문양이 모두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