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11) 제1 부: 제2 장 뷔소네의 우리 집 - 축일과 주일 외 1편

[햇살]

축일과 주일

축일! 아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지요! 축일, 저는 이날을 참 좋아했습니다.....! 당신께서 각각의 축일이 갖고 있는 깊고 미묘한 의미를 잘 설명해 주셔서 모든 축일이 제게는 천국의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특히 성체거동이 좋았습니다. 하느님의 발자국마다 꽃을 뿌리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그러나 꽃잎을 하느님의 발자국마다 떨어뜨리기 전에, 그것을 있는 힘껏 높이 들어 올려서 장미 꽃잎이 거룩한 성광을 스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었습니다.

축일! 큰 축일은 드물었지만 주간마다 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날이 돌아왔으니 그것은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이란 얼마나 기쁜 날인지요! 그것은 하느님의 축일이자 휴일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날보다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면 폴린 엄마가 침대로 초콜릿을 가져와서 막내딸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여왕처럼 예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저는 머리를 빗겨 줄 때 양순하게 굴지 않았지만, 폴린 언니는 그런 저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온 집안이 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아빠와 손을 잡고 미사 드리러 갈 때면 아주 즐거웠습니다. 주일에는 보통 날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저를 안아 주셨지요. 길 가는 도중이나 성당 안에서까지 ‘아빠의 작은 여왕’은 아빠의 손을 잡고 곁에 앉았으며 강론을 들으러 내려갈 때에는 의자 두 개를 나란히 얻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그토록 어린 소녀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이를 누구나 아름답게 여겨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위원석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우리가 오는 것을 보면 기뻐하시며 저를 당신의 작은 햇살이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남들이 쳐다보는 것에 조금도 불만이 없었고, 비록 강론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최초의 강론은 뒤셀리에 신부님이 하셨던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강론이었는데, 그때부터 다른 모든 강론의 뜻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강론에 데레사 성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빠는 제게 몸을 굽히고 가만히 “작은 여왕님, 잘 들으렴. 네 수호성인의 이야기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강론도 잘 들었지만, 사실은 강론하는 신부님보다 아빠를 더 자주 쳐다보았습니다. 아빠의 아름다운 얼굴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빠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진리 속에 즐겨 잠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빠에게는 목적지까지 아득히 먼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의 눈앞에 아름다운 천국이 열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하신 손으로 그 충실한 종의 눈물을 닦아 주실 때까지는 아직도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다시 주일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던 그 즐거운 날에도 우울한 점은 있었습니다. 주일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는 제 기쁨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드리는 동안 저는 이 휴식의 하루가 끝나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세상살이가 다시 시작되어 공부하고 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땅에서의 생활은 귀양살이임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쉬는 날을, 영원히 저물지 않는 참된 본향의 주일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뷔소네로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늘 하던 산책까지도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때는 아빠가 외삼촌을 즐겁게 해주시려고 주일 저녁마다 외삼촌 댁에 마리 언니나 폴린 언니를 남겨 두었기 때문에 온가족이 다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도 남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초청받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덜 집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삼촌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재미있게 들었으나,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은 싫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우렁찬 목소리로 ‘푸른 수염’을 노래하실 때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저를 데리러 오시면 아주 기뻤습니다.

아빠와 집에 가는 길에 부드럽게 반짝이는 별을 올려다보면 기분이 몹시 좋아졌습니다. 특히 금빛 진주처럼 빛나는 한 무리의 별들이 T자 모양으로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아빠에게 제 이름의 첫 글자가 하늘에 쓰여 있으니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속된 것은 아무것도 보기가 싫어서 아빠에게 저를 데리고 가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를 딛고 있는지 보지도 않은 채, 자그만 머리를 한껏 젖히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따뜻하지만 엄격한 교육

겨울밤, 특히 주일 밤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체스 놀이가 끝나고 셀린 언니와 함께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아빠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시거나, 영원한 진리가 담긴 시를 읊으셨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 가족은 기도를 바쳤는데 작은 여왕은 그녀의 임금님 곁에 앉았습니다. 성인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아빠에게 저녁 인사를 드리고 키스를 받았습니다.

막내인 여왕이 제일 마지막에 인사를 드리면, 임금님은 저의 팔꿈치를 잡고 입을 맞춰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이런 일은 매일 저녁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두 번째 엄마인 폴린 언니가 저를 품에 꼭 껴안고 셀린 언니의 침대로 데려다 주면, 저는 “폴린 언니, 오늘 나 얌전했어? 작은 천사들이 내 옆으로 날아다닐까?”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언제나 “그래.”였습니다.

만약 언니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면, 저는 울면서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폴린 언니가 저에게 입 맞추고 내려간 후에, 저는 캄캄한 곳에 혼자 남아야 했습니다.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을 작은 천사들’을 상상해 보려고 했지만, 어둠속에서 금세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제 침대에서는 정답게 별들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어릴 때부터 무서움을 이기는 습관을 얻은 것을 큰 은혜로 생각합니다. 당신은 날이 어두워졌을 때 가끔 멀리 떨어진 방에서 무엇을 찾아오라고 저를 혼자 보내고는 하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잘 지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겁쟁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겁먹게 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가끔 당신께서 그렇게 사랑해 주셨고, 다정하게 대해 주셨으면서도 어째서 응석은 받아 주시 않으셨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저의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그대로 두지 않으셨으니까요. 당신께서 까닭 없이 꾸짖으시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정한 일이라면 도중에 변경시키신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께서 한 번 금하신 것은 하지 않았고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까지도 당신의 의견에 따라야 했지요.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는 산책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산책하러 가자고 하시면 “폴린 언니가 좋아하지 않는걸.”하고 대답했지요. 그러면 아빠가 언니에게 허락을 받으러 가셔야 했습니다. 가끔 아빠를 즐겁게 하려고 폴린 언니가 “좋아.”하고 대답했지만, 어린 데레사는 언니의 표정에서 그것이 마음에 내켜 대답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언니가 “좋아.”하고 말하며 따뜻하게 입 맞춰 줄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데레사는 겨울마다 아팠는데, 그럴 때마다 폴린 언니는 어머니 같은 따뜻한 애정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언니는 큰 호의를 베풀어 저를 자신의 침대에 눕혀 주었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주었습니다. 하루는 폴린 언니가 베개 밑에서 작고 예쁜 칼을 꺼내어 그녀의 어린 딸인 저에게 주어서, 커다란 행복에 잠기게 했습니다. “아! 언니,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 별 무늬 자개가 박힌 예쁜 칼을 주는 거지? 그렇게 나를 사랑하니, 내가 죽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시계도 줄 수 있겠네?”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네가 곧 낫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희생은 즉시 할 수 있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그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여름에는 때때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때도 폴린 언니는 다정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 중에 제일 좋았던 방법은 저를 손수레에 태워 정원 주위를 산책시켜준 다음에 아름다운 들국화 한 다발을 가져와서 제가 앉은 자리와 정원까지 화려하게 꾸며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가장 깊은 비밀까지 알고 있고, 제 모든 의심을 풀어주는 사람도 폴린 언니였습니다. 하루는 하느님께서 천국의 모든 성인들에게 똑같은 영광을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성인들이라고 모두가 행복한 것만은 아닌지 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아빠의 큰 컵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제 작은 컵 옆에 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큰 컵과 작은 컵에 각각 물을 채우게 하고는 어느 것이 더 가득 찬 것 같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둘 다 똑같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랑하는 폴린 엄마는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에게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에 제일 작은 성인이라도 제일 큰 성인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폴린 엄마는 제가 가장 숭고한 깊은 뜻까지도 알게 하셨고, 제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주실 줄 아셨던 것입니다.

해마다 상을 받는 날이 오면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요! 저는 받을 자격이 있는 상만을 공정하게 받았습니다. ‘점잖은 관중’인 가족들 가운데 홀로 서서 ‘프랑스와 나바르 임금님’인 아빠가 읽으시는 선고를 들었습니다. 상과 화관을 받을 때에는 가슴이 사뭇 두근거렸습니다. 그것은 제게 마치 심판의 모상처럼 생각됐습니다! 수여식이 끝나면 작은 여왕은 바로 흰옷을 벗어 버리고 큰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변장을 했습니다.

[햇살]

어린 성녀님은 온 가족의 사랑 안에서 사시면서도 늘 아버지가 계시는 본향을 그리워하셨네요.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요? ㅎㅎ

[모나리자]

폴린언니...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자식이 아닌 동생을 정말 그 어떤 엄마보다도 사랑과 지혜로 키워 주신 그 사랑이 대단하십니다. 그 사랑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늘 하느님 뜻대로 사시어 그 언니의 권유로 자서전을 쓰게 되고 정말 성인 가족들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