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이 좋은 이유
조 성 민
오래 전 어느 가을에 네 식구가 설악산 단풍구경을 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구룡령 옛길을 넘게 되었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들고 도는 험준한 산길이었지만, 산야의 풍광에 도취 된 마음은 여유로웠다. 산 중턱을 오르자 냇가에 서 있는 식당 간판이 손을 내저으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순박한 얼굴의 주인 아낙이 반갑게 맞으며, 산채비빔밥이 일품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산채비빔밥을 아주 좋아하는 나는 그게 괜찮겠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는데 설악산에서 뜯어말린 여러 가지의 나물들이 상위에 그득하다. 밥에 산채를 골고루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기 시작했다.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있다고 먹기도 전에 눈이 마냥 즐겁다. 산채비빔밥 한 숟가락을 뜨자, 입안에서 산나물의 향이 서로 어우러져 내는 맛은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넉넉해진 마음에 산골짜기를 응시하니,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계절의 맛을 더해주어 산채비빔밥의 맛이 배가 되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말을 오랜만에 느끼며 칡차를 한잔 들고 비탈길을 다시 올랐다.
단풍구경을 다녀온 후에 아이들이 산채비빔밥이 아주 맛있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첫눈이 내린 어느 주말에 비빔밥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환호성이다.
여러 가지의 나물을 갑자기 만들 수가 없어, 집에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양파를 썰어 프라이팬에 볶아내고 애호박을 볶아냈다. 감자를 볶아낸 후 김치를 볶아냈다. 그리고 스팸을 예쁘게 썰어 볶아냈다. 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커다란 양푼에 담고, 여기에 볶아낸 양파·애호박·감자·김치·햄과 고추장을 넣은 다음에 참기름을 부어 가족이 서로 돌아가며 큰 주걱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비빌 때 잘게 썬 돌김과 깨소금을 뿌렸다.
드디어 “아버지표 비빔밥(?)”이 완성되어 양푼을 식탁에 올려놓자,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냄새가 군침을 돌게 한다. 서툰 솜씨로 만들었지만 강원도 깊은 산골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을 때처럼, 환상적이 맛에 식구들의 얼굴에 미소가 묻어나더니 이내 함박웃음이 집안을 꽉 메운다.
식사후에 품평회가 열렸는데, 이다음에 비빔밥 식당을 차리면 대박이 터질 거라고 가족이 놀려대며 박장대소한다. 식구들이 설거지를 먼저 하겠다고 하니 금방 주방과 싱크대가 깨끗해졌다. 그 후로 식구들이 비빔밥을 만들어달라고 조를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비빔밥을 만들다보니까 이제는 솜씨가 조금 숙달되었다.
어느 날 비빔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고 난 후에, 사람들이 왜 비빔밥을 좋아하는지에 관해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반찬을 따로 먹으면 그 맛이 비교가 된다. 그러나 비빔밥은 어려 종류의 나물이 섞이어 맛을 내기 때문에 반찬 맛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이는 만인평등사상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빔밥의 원리는 양반사회를 평등사회로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로 모를 일이다.
둘째, 비빔밥은 재료가 되는 여러 가지 나물들의 독특한 맛과 향이 어우러지고 스며들어 융합효과를 내기 때문에 그 맛이 일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협동정신을 발휘하여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우리 선조들이 상호의존하며 살아가는 향약의 지혜를 여기에서 터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셋째, 비빔밥은 특별한 요리솜씨가 없어도 웬만하면 누구나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다. 식사준비를 하려면 누구나 반찬 걱정을 많이 하게 되는데, 비빔밥은 이런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비빔밥은 요리하는 방법이 간편할 뿐 아니라 상차림 시간도 절약되고 또한 먹는 시간도 다른 음식보다 단축된다. 그러므로 비빔밥은 핵가족시대에 걸 맞는 음식일 뿐 아니라 성격이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에 맞는 음식이라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비빔밥은 최근에 산업 전 분야에 불고 있는 융합기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웅합기술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선두 주자로 달리고 있는데, 이는 필경 비빔밥 속에 숨겨진 비밀에 있는 것 같다. 여러 기술이 결합 된 결정체가 바로 융합기술인데, 이는 조그만 힘들을 한곳으로 모아 시너지효과를 내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그 초석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어우러져 우아함과 단결력을 더하는 강강술래처럼, 비빔밥은 우리 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음식이기에 먹을 때마다 독특한 그 맛의 매료가 물씬 묻어나오는가 보다.
첫댓글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