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김용태시집
아버지의 호야등
철없던 때, 결국
막차를 놓쳤다
잔별들 바람에 쓸리어 가자 잇대어 비가 내렸다
쉼없이 걸었다
낮에도 혼자 넘기 꺼려하는 진고개
노망든 귀머거리 여자가 얼어 죽었던 움막이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낚아 챌 것만 같은
카랑카랑한 욕지거리와 함께
굶은 짐승처럼 오도카니 도사리고 있었다
몇 해 전인가, 아랫말 춘식아재가
술에 취해 돌아오던 길에
도깨비에 밤새 씨름을 하다 살아 왔다던 애장터,
칠흙 같은 이 소나무 숲이 끝나면 그곳인데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그 때
불 빛
오, 멀리서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은 만다라처럼 인연을 만들어냅니다 인연들은 서로 윤회하며 포옹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를 비장한 관계의 시간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철없던 시절 바람이 빛을 끌고 간 자리에는
비가 내리칩니다 우산도, 우산을 줄 인연도 없습니다
삶은 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터전입니다
한번 쯤 굶은 짐승의 밥이 될 듯한, 되고 싶기도 한
오싹함에 몸서리치기도 함니다
이제는 불끈 주먹을 쥐고 일어서야만 할 때입니다
소문에서만 무성한 도깨비라는 보이지 않는
최강의 적과 만나야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뒷걸음치고 싶어집니다
나폴레옹은 워터루 전투에서 그토록 맹렬히
기다렸던 그루시의 지원군이 오지않았습니다
인연의 윤회가 비껴갔던 것입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애장터, 그 때 막강한
지원군인 정예부대가 나타납니다
그 때
불 빛
오, 멀리서 흔들리며 다가오는
어떤 소풍
들떠 부르던 소리도
짐짓 못들은 척
뒹굴던 웃음소리마저
휩쓸어가, 텅빈
겹쳐 보이던 씨알
두발 가지런히 모으고
아버지 따라 옥수수를 심었다
**어제 쁘띠 프랑스에 갔는데 인형극을 하는 원형광장에 한 아이가 구석에 비스듬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자세히보니 관람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몆 안 되는 점포 집의 아이일른지 아니면
누가 놓고 간 아이인지 몇 마디 말이라도
걸어볼걸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정겨운 광장에 쓸쓸한 모습의
소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 어른 둘러앉아 손벽치는 광장벽에 홀로 기대어
있던 소년과 옥수수를 심던 소년이 오버랩됩니다
소풍은 설레이는 날입니다
계란 삶고 김밥싸고 사이다도 넣고 용돈도 몆푼
주머니에 넣는 날입니다
용태야 부르던 소리도 발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허탈함으로 어린 마음은 텅텅 빈소리만 납니다
옥수수 씨알들이 눈물을 애써 참아줍니다
시인은 두발 가지런히 모으며 옥수수를 심고
어른을 배웠을 것입니다
존재의 아픔속에서 옥수수가 영글고
시의 꽃이 핍니다
눈물 어머니 누나 아버지 사랑 그런
마음들이 화폭으로 들어가 언어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내었습니다
시의 감상과 여행길을 베풀어주신
김용태 시인에게 감사드립니다
<신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