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담과 다인은 수요일 어린이날이 지난 목요일 서울에서 만났다. 월화 재량휴업일을 거쳐서 꽤나 오래 쉰 것 같아도 늘 8살짜리 만나는 일은 익숙치 못해 피곤한 다인과 한달동안 무려 4키로를 빼는 와중에 빽빽한 생업을 해낸 (그것도 멋지게!) 보담은 7시에 신논현역 7번출구에서 만난다. 우린 다인이 선택한 4월의 책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이야기 나눌 것이다.
7번 출구 위에서 만난 보담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매고 있다. 테니스 채가 반쯤 드러난 에코백은 보담이 여전히 테니스를 열심히 치고있다는 걸 알게 한다. 언제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다인은 움직임, 그것도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심지어 소심하게 움직일 수도 없는 구기종목을 꾸준히 하는 보담이 신기하다. 다인은 언젠가 수요일마다 학교 선생님이랑 함께 가던 배구동호회 이름이 생각난다. 배즐사였다. 배구를 즐기는 사람들. 사실 다인은 배구를 즐기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깨닫고 만다. 앞으로 세터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던 코치의 만류를 뿌리치고 석달만에 그만뒀다. 그 후로 운동은 다인에게 그저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최소한의 처방전에 불과했다.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운동은 없었다. 보담은 그와중에 회당 4만원짜리 피티까지 받는다고 했다. 놀라웠다.
월요일 시작 전 다가올 일주일치 계획을 미리 짠다는 '계획보담'의 추천으로 저녁 먹을 장소를 추렸다. 첫번째 방앗간 떡볶이, 두번째는 이름만 들어도 배가 홀쭉해질 것만 같은 샐러디. 프로 다이어터 보담이 제시한 두 개의 저녁 메뉴 사이는 간극이 크다. 소스만 500칼로리를 넘을 것만 같은 떡볶이와 샐러드라니. 목표가 선연히 다른 가게 사이에서 보담과 다인은 의미 없는 고민만 반복했다. 허무하게도 걸어가다 먼저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기로 한다. 그렇게 우리는 샐러디에서 파는 샐러드 볼을 선택했다.
샐러드라고 풀만 잔뜩 들었을 거라 착각했던 다인에게 샐러드 볼은 새로운 세계다. 꼬들꼬들한 보리밥 한 덩이와 바싹 구운 베이컨, 매콤한 소스가 듬뿍 들어있을 줄이야. 풀 따위가 아니다. 이 정도면 칼로리가 괜찮을까 싶었다. 역시나 그렇게까지 괜찮지는 않다. 480칼로리. 다인과 보담은 이리저리 포크를 찔러대며 샐러드 볼을 깨끗하게 비웠다. 배 부른듯 부르지 않은 느낌은 허전하긴 해도 공허한 느낌은 들게 하지 않았다. 480에서 어설프게 50칼로리가 더 없었으면 다인은 분명히 보담에게 방앗간 떡볶이로 달려가자 졸랐을 것이다. 적당하게 포만감 있는 칼로리. 더 이상 어디로 달려가지 못하게 할만큼의 적절한 맛과 열량. 샐러디 만의 전략이라면 두 명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보담과 다인은 본래 목적에 맞게 책 이야기를 하러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계획 보담"에 따르면 오분 근방에 다인이 수원 본가로 갈 수 있는 광역버스가 온다고 한다. 지하철 역 근처라 보담의 집으로 가기도 편한 곳이다. 매사 느슨한 연결과 우연을 꿈꾸는 다인은 일주일치 옷차림마저 미리 정해놓는 보담이 신기하다. 다인은 보담이 철저하다는 건 이미 모르지 않았다. 다만 변신과도 같은 변화가 미덕인 세상에서 서른 넘게 고요하게 유지되는 보담의 여전함이 경이로웠다. 순간 할머니가 된 보담이 여전하게 큼지막한 글씨체로 일주일 계획을 적고 있는 모습이 스쳐 웃음이 나왔다. 변화가 무서운 다인은 보담의 여전함에 오늘도 마음이 놓인다. 내일도 마음이 놓일 것이고 아마도 친구가 된 30주년에도 마음이 놓일 것만 같다.
저녁 7시가 넘어가는 시간, 우린 디 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칼로리를 줄이면서도 깊은 잠은 놓치고 싶지 않다. 보담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도 들이켜기도 전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담의 영업 성과로 질투를 한 동료와 관계회복을 한 이야기였다. 보담은 곽정은이 운영하는 명상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온 뒤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에 감명 받거나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류의 반전 드라마는 없었다. 그저 '잠시 멈춤'의 미덕을 알아왔을 뿐이다. 잠시 멈춰서 상대의 말에 왜 내가 발끈 했는가, 그럴 수 밖에 없는가를 분석하다보면 종잇장처럼 뒤집히는 허무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린 순간 감정이 내린 결론으로 부단하게 관계를 속단해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멈춰서 그와의 관계를 다시 살피기보다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게 더 편리하다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거울로 생각했지만, 거기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울을 탓했다.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거울이 아니고 엄마 눈에 결점으로 보이는 것들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에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42쪽)
거울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 오로지 거울 자신만 빼고. 거울이 되는 일은 에코나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나오는 에코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한 것은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44쪽)
리베카 솔닛은 관계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책 속엔 아픈 엄마에 대한 원망의 감정에서 연민으로, 때론 엄마의 행동에 불복하다 이해로 넘어가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스스로 엄마에게 거울 역할을 했음을 인지하고, '더 이상 거울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그가 얼마나 자주 '잠시 멈춤'을 실행했는지 알게 해준다. 평생 하나의 감정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면 관계는 뻔하게 단편적으로 흘러갔으리라. 보담이 연습한 잠시 멈춤의 기록은 멀지 않은 곳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다.
다인은 알면서도 너무 싫은 상대를 만나면 더 이상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나이가 들수록 노련하게 관계를 이끈다는 건 착각이었다. 나이가 아니라 실천의 경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손에 잡히는 실천의 이력. 사실 다인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도무지 요즘따라 뭘 이루고 있는지 그걸 왜 하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허무주의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 댔다. 그렇게 좋아하던 글쓰기도 쓰지 않은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굳이 고통받아가면서 쓰는 이유가 뭔가,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쓰는 이유는 또 뭔가. 그럼 안하면 되지 왜 하는가. 안하니까 후련한데 빈껍데기 같이 서운하다. 뭐 이런식의 삐그덕 대는 회로를 돌리는 중이었다. 도대체 이런 자신이 너무 싫어서 다인은 본인과 눈 마주침을 여러번 실패했다. 눈을 바라보고 마음을 알아채야 했고 때론 적절한 해답을 내려줘야겠지만 지쳐만 갔다. 마음이 그리고 몸이.
보담은 미생 대사를 꺼냈다. 대충 기억나는 건 목표를 이룰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체력의 문제였을까. 다인의 허무주의가 몸에서부터 나오는 거였다면 해결은 간단했다. "움직여 보자, 운동하자!" 어디가 간지러운 지도 몰랐던 다인의 고민에 책에서 여러번 밑줄그었던 문장이 제법 어울린다. "느끼지 못하면 돌보지 못한다(151쪽)" 엉켜버린 자아의 경계를 몸의 움직임으로 먼저 알아챈다면 실마리가 풀릴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세요." 언젠가 들었던 요가 영상 마지막 멘트가 떠오른다. 몸의 긴장을 풀고 누워있다가 정신을 깨울 때 항상 발가락 부터 움직이라 했다. 다인은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무기력 보다는 발가락이라도 꼼지락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잘하지 않아도 해보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 뭐라도 해 보려고 한다. 사실 다인은 언젠가부터 '기록 생활자'가 되고 싶다. 아직 뭘 기록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96쪽)
다인은 보담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미 작은 성취감에 들떠 있는 상태다. 후기도 그 기운을 받아 이어서 쓴다. 혼자 우주선에서 지구로 신호를 띄우는 상상을 하며, 글을 마친다. 다인은 보담처럼 나중에도 여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