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끝없는 물욕
김철성 자유기고가
예전 동구청에 근무할 때다. 늘 떠나온 고향 남원을 생각했다. 몸은 인천에 있지만 마음은 남원에 가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내 학생 서너 명이 구청을 방문했다. 이유는 인천(동구)향토자료를 구하러 온 것이다. 정리된 책자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인천시사에서 필요한 부분을 사본해 건네줬다. 그때 생각 하나가 머리를 때렸다. 그 학생들은 고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인천은 태어나 살고 있는 고향일터다. 이런 생각을 내게 돌려 봤다. 만약 인천에 살다가 남원에 가면 남원에 대한 향수병은 치유되겠으나, 인천에 대한 향수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 라고, 그랬더니 “있을 때 잘해”가 자답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어떻게 잘할 것인가 그 방법이 문제였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막고 품는 식’을 택했다. 고향을 사랑하려면 우선 고향의 마음을 알아야 했고 그 것은 곧 향토사 공부로 연결됐다. 그때부터 인천(동구)의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고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치 “산은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멀리 한다”는 말처럼, 살고 있는 땅은 늘 우리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땅을 걸어 보라”고, 그러면 당연히 애향심은 생겨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살았던 인천을 떠나왔다.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귀향의 기쁨은 잠시뿐, 우려했던 인천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향수를 달래야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인천향토지를 읽고, 사이버 공간에서 인천 냄새를 맛는 것이었다. 어쩌다 인천의 낮 익은 지명 하나만 봐도, 마치 빈속에 막소주 한잔 집어넣은 것처럼 그냥 취했다. 때로 감정이 복받치면 두서 없는 글을 쓰곤 했다. 최근 배다리를 생각하며 짧은 글 한 편을 썼다.
〈태어난 고향 남원에도 배다리가 있다. 한국지명총람은 “배다리와 창활 사이에 있는 당앞내를 건너는 다리”라고 한다. 살았던 고향 인천에도 배다리가 있다. 인천의 지명유래를 보면 “경동 큰 길에서 철도 길을 빠져 나오게 되면 중앙시장, 금곡동 입구가 된다. 19세기 말까지 이 곳에 큰 갯골이 통해 있어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 지면서 배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만큼 배다리엔 인간의 역사가 얽혀 있다. 남원의 배다리는 잘 보존돼 있다. 인천의 배다리는 산업도로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도로는 인간의 끝없는 물욕을 상징한다. ‘천사는 시골을 만들고 악마는 도시를 만들었다’ 말이 있다. 악마는 바로 욕망의 다름 아니다. 어느 현자도 “나라 발전의 척도는 물질이 아니라 순결”이라 했다. 배다리는 이미 고향이다. 고향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머님 품이다. 고향의 순결을 팔아 부를 꾀하는 자, 호래자식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한 것 중 고마운 것은 인천의 달동네 골목을 사진에 담은 ‘골목길에 바투 서다’ 발간 소식이다. 이 책은 ‘굿모닝 인천’ 편집장인 유동현님이 낸 책이다. 보고 싶었다. 마음이 통했을까? 얼마 전 책이 배달돼 왔다. “꼭 보내고 싶어 (중략) 골목에 대한 뜻은 같은 듯해서 졸작을 보냅니다”라는 사연도 함께 담겨 있었다. ‘골목에 대한 뜻이 같다’에서, 인천에 첫발을 내딛던 지난 1981년 동인천역에서 굴다리를 지나 송현동 산비탈 올라 지금은 송현라이프 아파트가 들어선 돌산까지 판잣집 담벼락 바투 선 골목길 바삐 걸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집은 사진집 만이 아니었다. 촌철살인의 경전이며 시집이었다. 어느 경전치고 이렇게 쉽게 ‘말씀’을 풀이 해놓을 수 있으랴. 님도 개발이란 미명 아래 흔적 없이 사라져만 가는(간) 여린 문화생명들의 고통에 가슴 아팠을 것이다. 아! “고향의 의미는 기억과 역사가 산과 들과 집과 물건과 사람들에 의탁되어 보존된다는 데 있다. 그 도움 없이는 사람들은 허공에 뜬 것과 같이 된다. 사회 불안의 하나도 여기에서 온다”(김우창)가 떠오른다. 사진집을 덮으며 묻는다 “어떻게 인천을 바투 세워야 할까”를.
인천신문(2008.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