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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2장 13 ~ 17절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세상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모든 것이 경쟁 사회로 열려 있습니다. 경쟁에서 지면 도태되는 것이고 경쟁에서 이기면 남보다 우월권을 갖는 것이 현 세상입니다. 가만히 보게 되면 우리가 어렸을 때 있었던 과자가 지금도 있는 과자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도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것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물건이 경쟁력이 없으면 벌써 없어졌을 것입니다. 수많은 과자가 나오고 수많은 이름을 통해서 나와도 거의 다 없어지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얘기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사 제품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겼다는 뜻은 끝까지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해서 졌다는 뜻은 중간에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남는다는 말 곧 남은 자라는 뜻은 굉장히 큰 축복인데, 그 남은 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때 남았다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되면 반드시 그것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겼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보면 다 경쟁입니다.
우리가 길을 지나가다보면 '뽑기'라는 기계를 종종 봅니다. 그 안에 보면 집게가 있는데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못 집어내도록 무거운 찰흙이 들어 있습니다. 뽑는 입장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것을 걸리게 해서 주인이 못 뽑게 하려는 그것을 끄집어냅니다. 우리는 백 번을 해도 끄집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뽑는 사람을 보면 선수입니다. 집에 가보면 없는 게 없습니다. 다 거기서 뽑아 온 것입니다. 주인과의 싸움에서 그 사람은 이긴 것입니다. 이기니까 그만큼 많은 것을 갖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사람을 못 오게 합니다.
남았다는 말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로마서 9장 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는 선택받은 자입니다. 이 선택받은 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자, 오늘 말씀은 남은 자의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뭐만 받습니까? 남은 자만 받는다는 것입니다. 남았다는 말의 의미는 그냥 오래 남아 있다고 남은 것이 아니고 벌써 그것이 남았을 때는 삶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남은 자 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남아 있다는 것은 다 이긴 것입니다. 벌써, 못 남았다는 얘기는 중간에 다 없어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뭐만 구원받습니까? 그러면 남은 자라는 것은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고 지금 나는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8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남은 자만 구원시키겠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대로, 기록된 대로 행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 뭘 보고 계십니까? 남은 자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를 보는 게 아니고 구원은 남은 자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들어 올 때는 예수를 믿는 자가 들어오는 것이고, 하나님은 맨 마지막에 보게 될 때 남은 자를 보게 됩니다. 왜? 믿는 자 중에서 남은 자가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9장 29절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 남은 자라는 뜻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씨라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씨. 그래서 추수하고 나면 씨가 옵니다. 씨가 남습니다. 참깨를 추수하면 참깨가 남습니다. 그 중에 내년에 심기 위해서 한 되를 남기고 나머지는 볶기도 하고 기름도 짜고 팔기도 하는데 다 죽은 깨입니다. 살아 있는 깨는 한 되입니다.
성경은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고기를 다 잡은 후에 나쁜 고기는 버리고 좋은 고기는 담는다. 그러면 교회는 뭐하는 장소인가? 교회는 들어와서 끝나는 장소가 아니고, 좋은 고기를 만드는 장소이고 남은 자를 만드는 장소이며 하나님 앞에 알곡이 될 수 있도록 하늘의 것을 공급하는 장소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이 완전히 다른 점은, 교회는 왔다 가는 장소가 아니고 알곡으로 변화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채우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왔다 갔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사람은 남아야 되는데, 그 사람은 남음으로 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되, 즉 씨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름 짜는 깨가 될 것인가의 결정이 남은 자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씨 속의 씨는 다 생명을 갖지 않습니다. 없어지는 씨 다시 말해서 죽는 씨가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로마서 9장 6절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이스라엘의 선택된 자라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왔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7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씨는 있지만 반드시 남은 씨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씨들, 안의 씨는 조그마하게 보여도 뭐가 들어 있습니까?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로마서 9장 7절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이스마엘 씨는 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씨는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씨이고, 오직 산 씨는 이삭의 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 누구만 남았다는 겁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많았어도 구원의 여정 속에 남은 게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등 이런 자만 남았지, 나머지는 다 죽은 씨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8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이 들어 있을 때만 하나님은 씨로 여긴다. 그러면 씨가 결론적으로 내년까지 심을 수 있게 매달려 있다면 앞의 많은 씨는 다 죽은 것이고 매달려 있는 씨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다른 씨에 비해서 이 씨가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둘 때에 종자를 좋은 걸 둡니까 아니면 나쁜 걸 둡니까? 종자가 좋은 걸 매달아 둡니다. 종자가 좋은 것이 다른 종자보다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일이 언제부터 일어났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7장 23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하나님께서 노아의 때에 심판하셨습니다. 물로 심판해서 지면의 모든 생물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남은 자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나머지는 똑같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물속에 들어가서 다 죽었고, 누구만 남았습니까? 노아와 일곱 식구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와 일곱 식구가 남은 이유는 그냥 안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아니고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믿음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떤 경쟁에서 이겼습니까? 아까, 남은 씨는 반드시 약속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노아 속에는 들어 있는데, 이것을 히브리서 11장 7절 말씀에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하심을 받을 때, 이것을 다른 사람들은 헛되이 들었으나 노아는 그 홍수가 있을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방주에 남았던 것은 방주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방주를 지으려고 하는데, 마귀는 방주를 짓지 못하도록 지금 방해를 합니다. 이 방해 장면, 다시 말해서 왜 심판이 왔고, 왜 노아는 방주에 남았고 나머지는 방주에 못 남았는가에 대한 사건이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지금 방주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방주에 못 남은 자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럼 방주에 못 들어가서 남지 못한 자는 무엇 때문에 남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1절
사람이 땅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선 설명할 말이 있지만 다 내려놓고 일단 이들은 영적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쪽의 사람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는 것은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아담 첫 번째 사람으로부터 일부일처제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무얼 삼았습니까? 다 아내를 삼는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을 행하는 이유는 사람이 자기 선택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자, 뭐가 되어 버렸습니까? 하나님의 신이 떠나는 육체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 결정을 했을까? 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모든 일을 했을까? 이 일은 그 사람만이 잘못이 아니고 벌써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을 자기가 미리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적인 개념으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직접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아까 아브라함에게 씨가 있어도 이삭 씨가 진짜이고 나머지는 죽은 씨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씨를 뿌립니까? 좋은 씨를 뿌렸으므로 반드시 좋은 것이 나와야 됩니다. 어느 밭에? 제 밭에. 그래서 교회는 세상과 비교할 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은 장소입니다. 세상은 세상 방법으로, 지옥 가는 방법으로 살지만, 교회는 천국을 갈 수 있는 것으로 모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은 장소는 세상 속의 교회가 남은 장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왔다고 해서 남은 장소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그 중에 말씀의 씨로 남은 자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24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제 밭은 하나님 밭입니다. 하나님 밭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제 밭이라는 것은 택한 자의 마음에 뿌려지는 밭입니다. 즉 가장 남은 장소는 교회이고, 거기에 더 남은 장소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남았다는 말은 이겼다는 뜻이고, 남았다는 뜻은 택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남은 자라는 뜻은 택함을 받은 자인데 왜냐하면 제 밭에만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에게는 이 시간에 말씀을 뿌립니까? 안 뿌립니까? 안 뿌립니다. 다 제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제 밭에 불렀다는 얘기는 택함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미 택함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린 것입니다. 무슨 씨입니까? 좋은 씨.
마태복음 13장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잤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의 시험에 깨어 있으라고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잤습니다. 잘 때 누가 왔느냐면 마귀가 와서 이상한 다른 씨를 그 위에다가 덧뿌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혼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생명의 씨를 다 뿌려 놓으셨습니다. 능력을 뿌려 놓았는데, 자기가 인생의 자는 속에 있을 때에 마귀가 와서 다른 생각을 거기에 덧뿌리고 간 것입니다. 덧뿌리고 가므로 그 생각이 박혔습니다. 씨가 자랍니다. 그래서 한 쪽에서는 하나님의 씨가 자라고, 다른 쪽에서는 육신의 것, 방해되는 것들이 자라고 있어서 이 둘이 속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줄 알면서 사랑이 안 되고, 용서할 줄 알면서 용서가 안 되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면서 공경이 안 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할 줄 알면서 충성이 안 되듯이 속에서 부딪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씨가 이미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육신에 의해서 영적인 것이 지게 되면 남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냐면 다른 것이 뿌려졌다는 것 즉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의 것이 뿌려진다면 갈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것이 일단 뿌려지면 이루고 필하고 끝내시리라. 반드시 그 말씀은 결론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일으킬 것이고, 그 사람을 채울 것이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런데 갈등이 있다는 것은 다른 씨가 뿌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았다는 뜻이 무엇이냐면 첫 번째가 이겼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택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 택함을 받은 자에게 지금 뭐가 왔습니까? 다른 씨가 같이 뿌려진 것입니다.
다른 씨가 뿌려지면 교회 와서 어떤 일을 하느냐? 다른 씨가 목회자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뿌려지는데, 믿음이 좋든 부족하든 그 나름대로 믿음은 100%입니다. 연약한 만큼 100%이고 강한 자만큼 100%이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80%이다 70%이다 하는 말은 안 맞는 것입니다. 아이가 공부 못하는 만큼 100%인 것입니다. 산수가 30점이라도 그 아이에게는 그 점수가 100%입니다.
남은 자라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에 지금 택함을 받았는데 누구든지 그 안에 가라지가 뿌려진 것을 교회는 알곡을 만들고 남은 자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은 호미를 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우리 마음 밭에 농사를 지으십니다. 내 마음 밭에 네 가지 밭이 있잖습니까? 길가 밭을, 돌밭을, 가시덤불밭을 옥토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씨만 자라게 하기 위해서, 나머지 밭에 떨어진 것을 김매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딴 사람은 하나님을 김빠지게 하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김매시면 그래 내 마음에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김매져서 뽑아져야 되는데 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나고 빨리 가서 누구를 만나고, 점심은 어디서 먹어야지 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리는 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오늘 그릇된 것들, 하나님을 막으려고 하는 것들을 김매는 일이 시작되면 하나님이 심어 놓은 것들이 쑥쑥 자라게 됩니다. 쑥쑥 잘 자라는 것이 결국은 추수하게 될 때에 남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남았다는 뜻은 하나님이 추수할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심어 놓고 다 추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김매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풍랑도 이겨야 합니다. 해충도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가을 추수할 때까지 남았다는 뜻은 결론적으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될 수 있는 자가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잠잘 때에 마귀가 무얼 했는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같이 덧뿌려진 것입니다. 덧뿌리고 가니 다른 씨가 자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끝까지 남지 못하도록. 그래서 주변에 가라지가 많으면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농부는 곡식이 잘 자라도록, 끝까지 남도록 김을 매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의 밭에 김을 매는 것입니다. 김매서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고 바라지 아니하는 것들, 즉 염려가 자랐으면 뽑아내고, 걱정이 자랐으면 뽑아내고, 두려움이 자랐으면 뽑아내고, 안 된다는 생각이 자랐으면 뽑아내어 하나님이 된다는 말씀으로 바꿔 가는 것이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남지 않으면 끝에 가서 추수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용이 땅으로 내어 쫓긴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용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용은 하늘에서 내어 쫓기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은 마지막에 이 용은 지옥을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창세기 3장 15절에 이겨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뱀의 머리를 쳐버렸습니다. 뱀의 머리를 쳤기 때문에 이제 그 뱀은 모든 힘을 잃은 것입니다. 어디 앞에서 힘을 잃었냐면 예수의 이름 앞에서. 따라서 예수의 이름을 세워야 힘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 안하면 마귀는 아직도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용이 뭡니까? 지금 여기서 용이 나왔는데,
요한계시록 12장 9절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뱀이란 단어 앞에‘옛’자가 붙어 있습니다. 앞에 이 관사가 붙어 있는 이유는 뭔가 지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뱀은 전에 있었던 뱀입니다.
언제 있었는가 보니 에덴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꼬였던 것입니다. 그 뱀이 변신하면 용이라는 것입니다. 용을 잡으니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더라. 이들 이름이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용으로 나오고 뱀으로 안 나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뱀으로 나왔고 신약 성경에는 마귀요 사단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과나 능금이나 같은 것입니다.
9절 보니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래서 이 뱀이 내어 쫓긴 곳이 땅입니다. 그럼 어디서 쫓겼습니까? 하늘에서 쫓겼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마음을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땅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의 마음을 영이라고 하고, 땅의 마음을 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이 하늘이 어떻게 해서 생겼냐 하면 예수 이름을 믿는 순간에 하늘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아직도 처리되지 못한 옛사람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세상 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있는 이 하늘이라는 터전은 예수님이 장악하고 있는 예수님의 영역이고, 내 마음이 ‘육’일 때는 항상 이 땅을 마귀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 시대에 하나님이 뱀에게 말할 때에“뱀, 너는 평생을 흙을 먹고 살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결단코 뱀은 다니엘을 못 먹습니다. 다니엘은 하늘 사람이기 때문이며, 다니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또한 사자도 다니엘을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의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면 다 먹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되고 있다는 의미는 남은 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천국을 들어 갈 수 있도록 지금 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씨가 보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매일 삶에서 큰 싸움이 아니더라도 오늘 삶에서 이겨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이것은 설명할 게 많습니다. 남자는 누구며 여자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오늘 얘기할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뱀의 무엇을 봅니까? 뱀의 낯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뱀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마귀를 피할 수 있는 곳이 광야이며, 이것을 주님이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를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마귀의, 사단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래서 원래 교회가 하나님이 계신 생명의 교회라면 절대로 마귀가 이기지 못합니다. 따라서 광야라는 것은 교회이고, 그 교회에 하나님 백성들이 피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피난하는데 그냥 먹고만 있는 게 아니고 양육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잡을 수 있는 것을 주님이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 속에서 나타나게 될 때에 “말씀에 기록되었으되”처럼 말씀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말씀으로 양육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심을 내가 느낌도 있을 수 있고, 방언도 말할 수 있고, 환상도 볼 수 있고, 예언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다 열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그것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을 가진 자가 말씀을 못 가지면 반드시 푼수 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천국 갈 수 있도록, 남은 자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이길 수 있도록 지금 말씀으로 양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그럼 양육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설명할 말이 많아서 다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5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들에서 양육 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뱀은 물을 토하여 떠내려가게 해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홍수에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은 지금 홍수입니다. 예전에는 노력해야 하나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하나만 치면 뭔가 희한한 게 다 뜨는, 뱀이 뱉어 놓은 홍수의 시대입니다.
자녀를 내가 지킬 수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10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도 어느 날 하루 잘못되면, 그 자녀는 영원히 잘못됩니다.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를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뱀이 강같이 토해내므로 무수히 많은 자가 휩쓸려가지만, 이미 모터보트를 탄 사람은 거슬러 올라갈 줄로 믿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 이게 산 자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6절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돕는 역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도 설명할 게 많아서 오늘은 남은 자만 하기로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남은 자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곧 말씀을 지키는 자이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곧 남은 자는 이미 하나님의 증거를 갖고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 마귀, 뱀이 싸우려고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 신명기 8장 2절로부터 3절에 기록된 대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해서 네가 말씀대로 사나 안 사나 하나님은 시험을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는 환난입니다. 왜냐하면 옛사람 즉 땅의 것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싸움을 나가면 항상 지는데, 이 사람을 하늘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서, 땅을 처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환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환난이 없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환난이 온 후에 하나님의 율례(계획)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뭘 하시는지 말씀 보겠습니다.
미가서 4장 6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저는 자와 쫓겨난 자, 그리고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으사 하나님은 남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다 보면 절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환난을 받기도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일이 있음을 통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남은 자를 만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는 점점 육이 빠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적 존재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가서 5장 7 ~ 8절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를 말하며, 그 남은 자는 많은 자 속에 있으며, 사람을 의뢰하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맨 먼저 시작할 때는 우리에게 양이라고 하다가 요한계시록에 가서는 사자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양인데 자라면 사자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는 양이었고, 재림하실 때는 사자이듯이 우리도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자가 새끼를 낳았는데 양이라면 말이 되겠습니까?
사자와 같이 강한 자들로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양으로 지나갈 때는 아무도 겁을 안 먹었는데, 이제는 사자로 지나간즉 밟고 찢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는 이기는 자가 남은 자이고, 이긴다는 것은 곧 하나의 씨가 떨어졌는데 주인이 열매를 거둘 때까지 자란 게 이긴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17장 4 ~ 5절
4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야곱의 영광은 하나님의 구원의 처소인데 거기가 쇠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죄를 지음으로 흥했다가 망했을 때에도 거기에 남은 자 곧 열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것이 얼마큼 남았느냐하면 다 추수를 한 후에 밑에 떨어진 이삭처럼 조금밖에 안 남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믿음가진 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7장 6절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삼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오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 속에서 씨로 있는 자를 보면, 환난으로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 붙어 있는 자가 남은 자이며, 열매를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이사야 6장 13절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세상의 문화, 돈, 방법에 의해서 다 베어져도 하나님의 씨는 남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니엘이 남았고, 믿음의 사람들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것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남은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이 구원 속에는 우리의 세 가지 구원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죄 사함의 구원과 환경의 구원과 육체의 구원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남은 자의 구원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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