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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혼자 다닌다.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는 여행을 못 다니는 사람들처럼 나는 혼자가 아닌 여행을 못 다니는 것뿐이다. 혼자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여행도 있다.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이웃과 더불어 살지만 그 안에서 붙밖지 못하는 부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붙밖지 못하는 부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혼자만의 여행은 별스런 일이다. 사람은 붙밖지 못하는 부분을 못본 체 한다.
혼자만의 여행은 추적일 수 있다. 이번 여름, 이십 일정도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흑산도로의 여행
흑산도 예리항에 내려 少砂里로 향한다. 걸으면 두 시간쯤 걸린다. 저 멀리 수평선 쪽에 외롭게 떠 있는 영산도 위에 커다란 황금색 보름달이 떠오른다. 낚시용 의자에 앉아 밤바다를 지켜보다가 물이 들어오면 뒤로 후퇴하기를 몇 번인가 하다 텐트로 돌아왔다. 시계가 없으니 몇 시쯤 잤는지 모르겠고 물안개가 자욱한 아침은 몇 시나 됬는지 알 수 없다. 개운하니 충분히 잔 것이다. 소사리 백사장은 낮에는 그래도 간간히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밤에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 영화를 촬영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장소다. 수영을 즐기고 나면 소사리 고개 넘어 개울에 몸을 씻든지, 아니면 백사장 왼편 숲속에 작은 샘이 있으니 거기를 이용하면 된다. 수풀에 가려 쉬 눈에 띄지 않으니 촘촘히찾아야 한다. 먹는 물은 소사리 마을에서 구하면 되는데 소사리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동네이니 물 걱정은 안해도 된다. 배가 정박하는 번잡스러운 예리항이나 큰 마을인 진리나 사리와는 달리 십 오호쯤 되는 少砂里는 인심이 무척 좋다. 쌀이 없어 민가에 한 이틀 먹을 쌀을 팔라 했더니 쌀은 주면서 기어이 돈을 안 받는다. 그럼 김치를 이틀 먹을 만큼 주고 이 천원 받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낚시 도구를 챙겼다면 방파제에서 하면 좋다. 레이다 기지에 근무하는 아들을 면회왔다는 목포에서 온 목수는 나와 한 이틀을 어울려 다녔는데 오전 중에 손바닥만한 우럭을 이십 마리 낚았다. 걸어 흑산도를 일주하자면 여덟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여기저기를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 이틀에 걸쳐 일주를 했다. 예리항에서 출발하면 예리 2 구, 별 이름이 없는 칠팔호의 작은 마을, 천촌리, 소사리, 사리, 심리, 관촌, 비리, 마리, 진리 1, 2구 해서 도합 열두개의 마을이 있다.
가거도 들어 가기
파랑주의보나 태풍주의보를 만나면 가거도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파랑주의보를 만나 삼일을 못 들어 가고 파랑주의보가 풀린 뒤에도 못들어 간 사람들이 많아 표를 못 구해 들어가는데 이틀이 걸렸다. 흑산도가 고향인 사람들은고향에 오다 일기가 나쁘면 아예 목포에서 지내다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나올 때 주의보가 내리면 쉽게 나올 수 없어서다. 가거도로 여행을 가자면 일정도 열흘 정도로 잡고 이주간 정도의 날씨 예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거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만제도 등의 섬을 지나게 되는데 흑산도에서 만나 가거도로 함께 들어가게 된 기자 말로는 상태도가 원시 상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좋다 한다. 여유가 있다면 상태도나 중태도에 들려 가는 것도 좋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싫든 좋든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건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여행의 색다른 맛이기도 하다. 기자는 사십대 초반의 사람으로 몸집이 비대하고 안경을 끼었다. 바다와 인간이란 홍보회사의 대표이사란 명함을 내밀며 자기가 하는 일을 대충 설명해 준다. 사진이란 무엇을 찍어야 하는 것인지 강의 한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왜 사진기를 갖고 다니지 않느냐 묻는다. 마음속에 사진을 찍어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했다. 무슨 일에도 소득이 있어야 한다며 카메라를 한 대 사 주고 기술을 가르쳐 줄 테니 사진을 찍어 자기 사무실로 보내 주면 어떻겠느냐고, 필요한 사진이 입수되면 합당한 보수를 주겠다고 내 의향을 묻는다. 여행에 무슨 목적을 갖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그럼 여행기는 적어 두느냐 묻는다. 여행 중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했다. 그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더니 그럼 여행을 왜 하느냐, 반문이다. 내가 웃기만 하자 그는 혹 자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묻는다.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름을 언뜻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고 해서 글자를 애써 보려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는다 했더니 자기는 글 몇 줄 읽고 내 세우는 사람들보다는 그런 사람을 더 좋아한다며 껄껄 웃는다.
가거도의 세 마을
가거도는 1구, 2구, 3구 해서 마을이 세 개가 있다. 가거도는 산이 높아 물이 풍부하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저장하지 않고 흘려 보낸다. 1구에서는 발파장 뒤 해안가 자갈밭 위에 텐트를 치고 2구에서는 마을 언덕 위 헬기장에 텐트를 치고 3구에서는 숲속 저수탱크 옆 시멘트 바닥에 텐트를 치고 하루씩을 보냈다. 1구에서 2구로 산을 걸어 넘어가면 두시간이고 2구에서 3구로 산을 넘어 걸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네 시간이다. 2구는 절벽가에 세워 진 마을이기 때문에 한 발만 물 쪽으로 내딛으면 대개 수심이 5, 6m 가 된다. 3구는 파도가 거칠고 해안가가 수심이 3, 4m 로 역시 물에 들어가는 것이 적절치 않다. 각 마을이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는데 1구는 큰 마을이고 2구는 가장 절경이며 3구는 평화롭다. 2구에서 수경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자연 수족관이다. 삼십대 후반의 내 나이 또래의 남자 일가족과 한 나절을 그 곳에서 보낸 적이 있는데 남편이고 아내고 열 살 무렵인 두 여자 아이고 모두 수영을 잘해서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까지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물속에 잠수해 들어 갔다 나오기도 하며 지낸다. 딸 아이중의 한명이 무섭다고 물밖으로 나오는데 오십 센티쯤 되는 농어가 곁을 지나 상어줄 알고 기겁을 한 것이다. 수경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면 오륙십 마리쯤 되는 물고기 떼들이 지나 다니는 것을 쉬 볼 수 있는데 사람을 만나도 도망치지 않는다. 3구는 경치도 좋고 덜 위험하지만 숲이 우거지고 소나 염소를 숲과 초지 사이에 방목해 그들의 배설물이 사방에 널려 있고 모기며 벌레들이 많은 것이 흠이다. 밤에 텐트 창을 열고 소변을 누러 나갈라 치면 엄지 손가락만한 거미며 벌레들이 수십 마리가 텐트를 덮고 있다. 3구에서는 민박을 하는 편이 났다. 3구에서 자던 날 모기에 물린 자국이 오십군데도 넘는다. 아주머니가 텐트 앞을 지나 흑염소를 몰고 가며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길래 왜 땅을 치느냐고 물었더니 독사 때문이란다. 가거도에는 독사가 많아 위험해 사람들이 산을 넘지 않고 마을 간의 이동은 배를 이용한다. 2구에서 3구로 산을 넘어 오는 길은 풀들이 허리를 넘어 사람이 다닌 기척이 없다. 홍도에서도 기슭을 타고 몰촛대봉에 오르다가 독충에 물려 보건소 신세를 졌는데 독사 이야기를 들으니 끔찍하다. 세 시간 정도 산행을 하며 풀 숲을 지나는 동안 독사때문에 긴장한다. 가거도는 외국의 휴양지에 비교해 손색 없을만큼 조용히 휴가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스킨 스쿠버
가거도는 스킨 스쿠버들의 천국이다. 법으로 금지된 것이지만 작살총을 들고 물속에 들어가면 돌돔을 여러마리 꿰 나오는 것은 스킨 스쿠버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다. 2구에서 오십대 쯤 되는 남자가 수쿠버는 없이 스킨만으로 작살총을 들고 물 속에 들어가더니 두 시간쯤 지나 여섯마리의 돌돔을 꿰고 나온다. 물이 맑아 기슭에서 내려다 봐도 4, 5m는 물속이 환히 들여 다 보이는데 바위에 붙어 있는 녹색, 검붉은 색, 고동색, 갈색의 온갖 해초들이며 그 사이를 점잖케 유영하는 갖가지 물고기떼들이 그야말로 평화롭다. 자연 수족관이란 말도 아이들 엄마가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태공장에는 스무살쯤 되는 처녀와 사내 고등학생 오누이가 있는데 그들이 한 번 물질을 하면 반시간 정도에 전복이며 소라를 수북히 따 나온다. 처녀의 물질을 구경하는데 물에서 나온 처녀가 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가다 듬으며 ' 아자씨 뭔 구경이다요, 여그는 낚시줄만 던지믄 고기가 잡히는디 고기나 잡지.' 한다. 구경한다고 성화다 했더니 손톱 밑에 성게 가시가 밖혔다. 그래 신경질인 모양이다 싶어 웃고 말았다. 낚시로 식량을 조달하자 했지만 막상 물속에서 무리지어 한가롭게 노니는 물고기 떼를 보니 잡을 마음이 싹 달아난 것이어서 구경만 하기로 마음을 되잡았다. 해녀가 아닌 사람들이 전복이나 소라를 따는 것도 스쿠버가 물고기를 작살총으로 잡는 것도 법으로 금지 되어 있고 어기면 벌금이라지만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다섯시쯤 된 듯 한 데 배가 한 척 들어오더니 사십대에서 오십대 중반의 남자 일곱명을 내려 주고 사라진다. 모두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있다. 아마 근처에 있는 섬에 스쿠버를 하러 갔다 돌아온 모양이다. 산에서 흘러 내려 오는 물을 받아 놓은 커다란 고무 통에 장비들을 집어 던져 넣고 몸을 씻는다. 그들 앞에는 일미터쯤 되는 아이스밖스가 놓여 있다. 그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주변을 내쳐 보며 연신 호방한 웃음을 날린다. 담배를 피워 문 사십대 중반의 남자에게 ' 많이 잡은 모양이죠? ' 했다. 그는 아이스밖스를 가르키며 한 밖스 꽉 채웠죠 한다.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 아이스밖스 뚜껑을 연다. 농어며 돌돔이며 갖가지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 대단하네요. ' 하고 일어 섰다. 넘칠 정도로 너무 많이 잡았다. 작살이 물고기를 꽤 뚫을 때마다 저들의 가슴을 꿰뚫었을 희열을 짐작한다. 그보다는 물고기들의 평화로운 노님에 나를 붙밖아 둠은 어떨까? 3구는 마을이 한이십여 호쯤 되며 2구보다는 경사가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는데 스쿠버를 배우는 초심자들에게 좋은 위치다. 건대 스쿠버 팀이 훈련하는 것을 구경하다 건대 스쿠버 대장과 스쿠버에 관한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스쿠버를 하다 보면 싱싱한 바다 고기는 실컷 먹겠다 했더니 작살은 금지고 잡더라도 겨우 맛볼만큼만 잡는다 한다. 나는 농담삼아 마을 위쪽 저수탱크 옆에 텐트를 치고 있는데 거의 굶다시피 여행을 하고 있으니 몇마리 보내 달라 했다. 여덟시가 넘은 시각에 그가 돌돔이며 우럭이며 자리돔이며 꿰서 한 꾸러미를 들고 텐트 문을 두드린다. 낚시를 안하기로 해 고기 맛은 못 볼 것이다 했더니 남이 잡아 다 준 고기를 보는 순간 입안에 침이 돈다. 그래 회칠 것도 없이 껍질만 벗기고 즉석에서 우걱우걱 뭉텅이로 씹어 먹기도 하고 잘라 코펠에 담아 놓았더니 큰 코펠에 사분의 일쯤 되는 양을 한웅큼씩 집어 먹기를 그날 밤 내내 하였다. 건대 스쿠버 대장의 사내다운 얼굴을 떠 올리며 그들이 먹을만큼만 잡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한 목적지와 모호한 목적
섬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목적했던 것은 무인도같은 곳에서 혼자 한달 정도를 지내자 하는 것이었다. 완전한 무인도라면 물이 있기 쉽지 않고, 그래 물은 구할 수 있으되, 사람들을 피하여 혼자 지낼 수 있는 섬을 찾고자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해방된 그런 공간을 상상했다. 사람들로부터 일탈되어졌을 때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추자도로의 여행
목포항에서 추자도 가는 화물선을 찾으니 있다. 그래 배삯이 너무 비싸다고 좀 태워 달랬더니 나를 태웠다 들키면 자기들 영업정지란다. 게다가 이틀 걸려 한 번씩 추자도에 들어 가는데 오늘은 배가 나가는 날이 아니란다. 목포에서 가자면 배가 첫번째로 들리는 곳이 상추자의 대자리항인데 대자리는 큰 마을이다. 태풍 커크 2호 때문에 배들이 들어와 정박해 있을 때 보니까 정박한 배가 얼추 백여척이 넘는 듯 하다. 대자리 위쪽으로 후포가 있고 상추자와 하추자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하추자의 양쪽 해안으로 길이 갈린다. 버스가 다니는 길은 남동쪽 해안이고 그 버스 길을 따라 가면 묵리가 나오고 그 다음에 신양 1리와 2리가 나온다. 신양리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예초리가 나오는데 하추자의 끝 마을이다. 걸어서 섬을 한바퀴 일주할라치면 네 시간이 걸리고 버스로는 한 시간이 걸린다. 대자리와 예초리는 서로 바라 보이는데 그쪽 해안으로 섬이 대략 십오개쯤 있고 뒤쪽 묵리와 신양리쪽으로 섬이 십여개가 널려 있으니 추자는 약 삼십여 개의 섬에 둘러 싸인 셈이다. 대자리에 내려 텐트를 칠만한 장소를 물으니 후포해수욕장으로 가란다. 해서 가 보니 자갈 해수욕장인데 규모가 적어 해수욕장이랄 것도 없는 곳에 아이들이 십여명이 놀고 있다. 텐트가 언덕 위에 두 개가 보이는데 전혀 텐트 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텐트를 치지 않는데 그 때문에 밤새도록 산과 계곡을 헤매다 날이 새기도 한다. 길을 따라 십여분을 오르니 그럴듯한 장소가 보인다. 언덕 아래 자갈밭이 보이기는 하는데 자갈밭이 짧아 물이 차면 텐트를 덮칠 것 같다. 내려가 보니 간신히 물은 면하고 텐트를 칠 수 있을 것 같아 그 곳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세 사람의 남자가 오더니 내 곁에 텐트를 친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면하지 못하나 보다 생각했다. 텐트를 치고 물이 빠져 나간 갯바위에 올라 가 앉아 있으니 곁에 텐트를 쳤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다가 온다. 그의 손에 1.5L 플라스틱 소주병이 들려 있는데 그가 대뜸 소주병을 내밀며 혼자 왔소, 한 모금 하쇼, 한다. 냉큼 받아 한 모금을 먹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둘이서 소주 한 병을 홀짝 홀짝 다 들이키고 말았다. 안주는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고동 이십여개다. 성이 이씨라는 그는 잠수할 때 입는 물옷의 상부를 허리 아래께까지 말아 내리고 있었는데 상체가 검다 못해 아예 붉다. 서울에서 혼자 내려 와 섬을 돌아 다니며 여행한 지 십여일이 넘었다고 하자 그는 뱃일이며 물질이며 물고기며 이런 저런 바다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쓰는 용어가 색달라 그의 말을 절반쯤밖에 이해 못했지만 그는 조개를 캐러 물속 40m 까지 에어 호스를 물고 들어 갔던 이야기며 같이 작업하던 그의 친구가 입에 문 에어 호스줄에 목이 감겨 죽어 그 뒤로 잠수질을 그만 두고 배를 타게 된 이야기며 추자 조기와 장어를 잡던 시절 이야기며 늘어 놓는다. 사위가 어둑해 지자 세 사람이 텐트 주변에 더 온다. 그들은 삼겹살을 굽고 팔뚝만한 장어를 가져 오고 소라와 전복를 끓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의 회를 친다. 이씨에게 끌려 그들 술판에 참석했다. 네 사람은 추자 태생으로 28 살 국민학교 동창들인데 신씨 ( 그는 국민학교 졸업하고 바로 고기잡이 배를 탄 사람인데 체구는 작지만 몸은 바늘 들어갈 구멍도 없을만큼 단단하다. ) 와 고씨 ( 그도 뱃일을 하는 사람인데 사람이 말 수가 적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는다. ), 그리고 제주도에서 일을 한다는 또다른 고씨, 추자에서 낚시 가이드 ( 연예인인 이덕화나 이용식이 낚시를 즐기는데 추자에 오면 포인트 안내를 한다. ) 를 하는 성을 알 수 없는 사람, 기웅이라는 신씨 꼬붕과 내게 이야기를 걸었던 서른 한살인 이씨과 그래 여섯이었다. 그들은 나이는 사십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서울에서 혼자 여행을 와 이 섬 저 섬 십여일을 떠돌아 다녔다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모양인지 내가 재미있어 할만한 바다 이야기를 다투어 해 준다. 얼마쯤 지나 다방 아가씨도 한 명 와 장단을 맟추고 술이 부족한 듯 해 내가 만 원을 내 놓았더니 기웅이 술을 사 왔다.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이씨가 내 텐트에 들어 와 몰옷을 입은 채 자고 있고 지갑을 뒤져 보니 만원이 빈다. 술을 더 사오라고 또 만 원을 줘서 보낸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 나니 신씨가 식사를 하라고 부른다. 어제 저녁 술파티가 벌어지기 전에 쳐 두었던 그물을 아침에 거뒀는데 고기가 꽤 걸렸는지 회판이다. 무슨 회, 무슨 회 하는데 전혀 알아 듣지를 못하겠고 농어와 쥐치회란 소리만 알아 들었다. ( 신씨말로는 자기 입맛에는 쥐치회가 제일 맛이 있단다. 그 다음이 고등어 회고 그 다음이 멸치 회고 그 다음이 물메기회고 자기는 돔이나 우럭을 무슨 맛에 먹는지 모르겠다 한다. ) 추자 장어국에다 이런 저런 회로 ( 회를 뜨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신씨 일이다. 그는 배의 화장 - 주방장, 뱃사람들은 일본말로 도모장이라고도 한다 - 이다. ) 아침을 거나하게 먹고 숙취에 몰려 언덕 위 우물가 그늘에 누워 잠을 자는데 누가 흔들어 깨운다. 눈을 떠 보니 어제 말이 없던 고씨라는 사람이다. 혼잣말을 하듯이 주섬주섬 이야기를 한다. 어제 밤에 술도 별로 안 마시고 말이 없다 했더니 사연이 많다. 나이 열 여덟에 상해 치사죄에다 조직 폭력죄까지 걸려 꼬박 십년을 감방에서 살다 올해 일 월에 만기 출소했단다. 좀 무섭다. 그가 떠나고 한 시간쯤 지나 이번에는 어린 여자애가 왔는데 카세트를 켜고 갯바위에 앉아 있다. 담배를 꺼내 붙여 문다.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가 노래가 흘러 나오는 카세트를 들고 떠나 간다. 드디어 혼자다 싶었는데 소녀가 떠나 버린 갯바위가 서운하다. 해그늘이 선들선들한 저녁 무렵이 되자 해안으로 내려오는 소나무 숲에서 다시 카세트 소리가 들린다. 소녀가 다시 나타나고 소녀는 갯바위에 앉아 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소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침내 찾던 곳을 찾다.
텐트를 걷고, 소녀를 뒤에 남겨 두고, 무작정 출발했는데 도착한 곳이 하추자의 혜초리다. 주변 해안이 방파제를 제외하고 온통 불쑥불쑥 튀어 나온 갯바위군들로 들어 차 있다. 그런 갯바위에 갈매기가 수백 마리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 해는 벌써 수평선에 늬웃늬웃하고 이삼십 분을 둘러 봐도 텐트 칠 자리가 없다. 마을 뒷 편의 언덕을 넘어가니 폭 100m 쯤 되는 자갈밭이 보이는데 바람이 심하고 자갈밭에 들이 치며 부서지는 파도머리가 높은 것이 최악이나 사람을 피하기는 최고다. 그 곳에 텐트를 치고 마을에서 식수를 구해다 밥을 해 먹고 누웠는데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다. 나가 보니 물이 벌써 텐트에서 오 미터 앞에 들어 있다. 어제 만조가 열 시쯤이었으니 오늘은 열한 시쯤이 만조일 것이고 추측으로 열한 시쯤 되었을 것 같은데 추측이 틀려 열 시쯤이라면 물이 더 들어 올 것이고 그럼 텐트를 뒤로 물려야 하는데 자갈밭의 끝에 텐트를 친 지라 더 물릴 자리도 없다. 부표며 나무 조각들이며 해초가 밀려와 있는 자리가 오 미터 앞쯤이고 물이 거기까지 찼으니 틀림없이 만조일 것 같은데 오늘이 사리라면 물이 더 들 수도 있다. 그래 밤바다도 느낄 겸 물이 들어오는 것도 지켜 볼겸 하고 자갈밭에 나가 앉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물이 더 드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물이 좀 나간 듯 싶어 안심하고 들어와 잠을 잔다. 아침에 사위가 환하길래 눈을 떠 보니 텐트 창으로 내다보이는 수평선이 붉다. 공기 베개 머리를 높이고 누워 수평선의 일출을 구경했다. 아침을 해 먹고 자갈밭을 둘러 싼 양쪽 해안을 돌아보고 갯바위틈에 용변을 해결하고 물이 많이 빠져 나간 자갈밭을 걸어 나가 물속 구경을 나섰는데 높은 파도와 거칠은 갯바위 때문에 구경이 쉽지 않다. 한 삼십분쯤 수영을 즐기다 텐트로 돌아 와 낮잠을 잤다. 점심을 해 먹고 좀 쉬었다가 만조 쯤 되서 다시 수영을 한 삼십분 하고 다시 언덕 위의 소나무 그늘을 찾아 낮잠을 잤다. 언덕 위에서 해가 서쪽 대자리 뒤 섬으로 넘어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내려 와 저녁을 지어 먹고 물이 다 들도록 바닷가에 나가 앉아 있었는데 오늘 하루도록 내내 한사람도 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중에 마을에 들어가 우물에서 3L 들이 플라스틱 통에 가득 식수를 채워 왔다. 어쨌거나 민가 신세를 지지 않아도 맑은 식수를 구할 수가 있으니 그도 다행이다. 다음날 아침에도 텐트창으로 일출을 보고 수영을 하고 누워 수평선만 바라보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하고 다시 소나무 그늘 아래로 가 낮잠을 즐기다가 일몰을 지켜 보고 내려와 저녁을 먹고 누웠는데 내내 한 사람도 못 보았다. 마침내 찾는 곳을 찾았구나 싶어 한 열흘 쯤 여기서 묶으리라 했는데 저녁 여덟시 무렵이 되자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일몰 때 서쪽 바다가 유난히 잔잔하고 저녁놀이 몹시 붉었다. 태풍이다 싶었는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돌아오던 마지막 날까지 내내 바다가 잔잔했다. 바다가 잔잔하니 물 속을 드려다 보기가 하루 종일 바닷 속을 구경하는데 보냈다. 가거도의 바다는 경사가 급했지만 여기 혜초리의 바다는 경사가 완만해 꽤나 멀리까지 나가 바닷 속을 구경할 수 있다. 가다 보면 중간 중간에 서서 목을 물 위에 내고 쉴만한 갯바위가 물 속에 잠겨 있다. 바닷속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물고기 떼며 춤추는 해초들과 벗하다, 지치고 추워지면, 가까이에 있는 갯바위에 올라 숨을 고르고, 햇빛에 몸을 덥히고, 그러다 졸리면 소나무 그늘을 찾아 낮잠을 즐기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기에 옷을 다 벗고 일 년 내내 햇빛을 받지 못하는 부분에까지 햇빛 구경, 세상 구경을 나가게 하고 …. 추자도 혜초리 바다속으로의 여행을 떠나 볼만도 하다.
엉터리 아웃사이더
내 여행의 궁극적 목적은 나를 추적하다가 어딘가에 있을 안식처로의 다다름을 꿈꾸는 듯 하다. 그 안식이 자유로움 속에 아직은 적을 두지 못한 듯하지만. 평소에 아웃사이더라 자평을 하지만 막상 작은 자유라도 주어질라 치면 그걸 누리기보다는 그것이 두려워진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한 십 일이 지나자 사람의 그림자가 그리워진다.
1996 년 08 월 24 일 김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