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1일(일) 오전 10시 04분에 경의 중앙선 팔당역에서 서류바 조단스 위짜츠 씨모우 또파파 까토나 여섯명이 출발을 합니다. 예봉산 입구 팔당2리 표지석 건너편으로 들어가서 한강공원으로 진입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패노노로부터 전화벨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 합류합니다. 팔당대교 북단 밑을 통과하며 바라본 한강 상류 쪽으로는 맑은 물결이 새파아랗게 일렁이고 있습니다. 청둥오리와 몸집이 크고 새하얀 깃털을 가진 우아한 고니(백조)여러 마리가 강물을 유유히 헤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조금 더 하류 방향으로 내려와 보면 한강 물은 모두가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햇볕에 반사되는 빙판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팔당대교는 팔당댐의 공도교를 제외하곤 한강 본류의 제일 첫 번째 다리이며 31개의 한강 다리 중에서 18번째 완공된 다리이기도 합니다. 팔당대교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이 되기 까지는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팔당대교 하면은 떠오르는 단어는 부실 공사의 전형적인 모델로 인식 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30 여년 전인 1986년도에 착공하여 91년도에 준공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완공 단계에서 힘 없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공법에 문제가 있다고 다시 시공을 했으나 역시나 교각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또 다시 공법을 변경하여 마침내 1995년도에야 비로소 지금의 팔당대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팔당대교 건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 업계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Y건설 회사는 건설 수주 당시부터 건설 공사 기준 단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덤핑 낙찰로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부실 공사는 불 보듯 예견되는 명약관화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발마추어 부실 공사등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공권력의 공무원들은 오로지 뇌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안 무너지고 안 갈라지고 안 다치고 안 죽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계속 되어 오는 한국인만의 고질적인 병폐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며 늘걷회 회원 일곱명은 서해로 뻗어 내려 가는 한강 줄기의 아름다움에 새삼스레 탄성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강가에는 곳곳에 갈대 숲을 이루며 겨울 바람으로 하여금 추위에 흐느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가에 있는나무들은 전체를 휘어 감은 풀숲으로 마치 위장한 방공망처럼 기기묘묘한 작품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우리 길손 일곱명은 영하의 매서운 강바람을 폐포 깊숙히 흡입하며 양지 바른 풀섶 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서로가 준비해 가져온 김밥 영양떡 고구마 초코렛 카스테라 그리고 뜨거운 물에 곁들인 견과류 차로 차가워진 가슴을 녹여줍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강 얼음판 위에서 조심스레 없는 폼 있는 폼을 잡으며 스마트폰에 담아보기도 합니다. 미사대교를 지나서 강동대교 북단 가까이에서 오른 쪽으로 왕숙천을 끼고 40여분 동안 구리 농수산물 센터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벌써 네 시간째나 걷고 있으니 우리들 연세에는 무리이며 건강에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녀석의 푸념을 귀에 흘립니다. 오후 3시가 거의 다 되어서 드디어 계획한대로 수산물 활어 센터로 들어 갑니다. 방어 5KG을 회로 주문하고 2층의 식당으로 올라갑니다. 식당에 많은 식객들이 벌써 자리를 거의 메우고 있습니다.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우리들 필수 메뉴인 쐬주 각 1병과 막걸리도 주문하여 푸짐한 방어회로 완샷합니다. 투덜대던 불만의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푸짐한 차림에 연거푸 권주가로 떨어진 혈당도 올리고 주치(酒値)도 올립니다. 파르스름 하게 얼었던 얼굴에는 어느새 불그스레 화색이 돌며 서로 엉키는 이야기에도 연신 웃음 꽃이 터집니다. 무겁고 무디어진 팔 다리 근육이 이완 되고 심장 박동 소리는 힘차게 달음질하며 삶의 희열을 한 잔 술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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