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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충성된 사람 / 3~7전도자에 대한 은유적 표현 / 8~13주와 함께 동거동락 /14~19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 20~21자신을 경결케 하라. /22~23디모데에 대한 권면/ 24~26주의 종의 자격 |
2장 좋은 일군의 자격 요건
Ⅰ. 복음을 가르치라. 1~2
A .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 (1)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한 사역자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강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첫째 마음이 약한 사람 또한 육신이 연약한 사람에게 강한 것이 필요 합니다
디모데는 육체적으로 약한 면이 많았습니다.
[딤5:23]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비위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속병이 있다고 하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역자로 심신이 연약하다고 하는 것은 큰 결점인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한 연약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마26:41]에서 이 세상 마지막 밤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육신이 연약하면 마음에 먹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심신이 건강하고 담대한 것이 첫째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본문에서는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 있으면 강하고 담대해 질수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 안에 있는 은혜>란 성령하나님께서 사역자들에 주시는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것은 복음의 확증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것은 복음에 확신을 주어 사역자들에 담대하고 강하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은혜>란 또한 대속의 은혜에 대한 확신입니다.
자기가 구원받은 확신이 있다면 사역자들은 더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B .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 하라. (2)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딤전6:20]에서도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내게 들은 바>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 즉 바른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중심 되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관한 행적 ,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예수그리스도의 승천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과 하나님의 심판 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하였습니다.
이 뜻은 내가 너에게 가르쳐준 하나님 말씀을 너도 지키고 또한 충성된 성도들에도 가르치고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충성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성>이라고 하는 원어는 [헬.πιστοι̂ς 티스토이스]라고 하는 단어로 “믿을 만한 , 미쁜 , 신실한 ”등을 뜻하고 있습니다. 명령의 수행이나 공무수행에 있어서 성실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충성되지 못한 사람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 더 나아가 게으른 사람을 가리키겠지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주실까요? 성실한 사람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 십니다.
Ⅱ . 전도자에 대한 은유적 표현 3~6
여기서 하나님의 일을 맡겼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은유적 방법으로 거론하고 있는데 “좋은 군사 , 경기하는 자 ,수고하는 농부” 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A . 좋은 군사의 조건과 사명 (3~4)
<3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4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좋은 군사의 조건은 첫째 건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군인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까?
우선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조건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선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건강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인내심이 강해야 합니다.
군에 처음 입소하면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 모진 훈련 과정을 무난히 거쳐야 만이 군인 계급장을 달게 됩니다. 그래서 군사 된 자는 어떤 고난도 견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 된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과 핍박에 처해도 기꺼이 인내하고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세 번째로 군사 된 자들은 자기 사생활이 없습니다.
그것은 군사로 다니는 사람이 자기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몰두하게 되면 군인으로서 그에게 부여된 임무를 다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은 개인의 사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능력 ,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6:33]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군인의 의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사 된 자의 유일한 목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는 오직 한 가지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를 군사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B . 경기하는 자의 규칙(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복음 사역자들을 경기하는 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경기하는 자와 같이 복음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을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과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경주하는 선수들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있어 규칙을 지켜가며 경기 합니다.
경주장에서 경주하는 달리기를 하는 선수들이 경기 트랙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 규칙을 벗어나 달리게 되면 탁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선수에게 차징을 하게 되면 퇴장하는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달리기를 잘하여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우승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군사 된 복음전도자의 삶에 있어서 정직한 삶의 경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경기 중 규칙을 잘 지키고 1등을 하게 되면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지켜 가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계2:10]에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C . 수고하는 농부 특징 (6)
<6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 하니라 >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을 논밭에서 <수고하는 농부>에 비유하고 있다.
첫째농부의 특징은 근면성입니다.
농부의 특징은 근면성입니다.
농사는 부지런함과 땀 흘리는 수고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땅을 일구어 고르게 하고 그 위에 씨를 뿌리고 , 적당하게 물을 공급해주고 ,때로 잡초를 제거하며 , 병충해를 막아내고 , 마침내 잘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기까지 뙤약볕을 쬐며 많은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드립니다.
수고하는 농부에 대한 비유를 든 것은 복음 사역자들도 복음의 결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농부의 특징은 인내심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7]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봄에 비가 내리 후 파종을 시작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대입니다.
씨를 10월에서 11월에 씨를 뿌립니다. 이 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며 추수기인 4월 5월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이른 비”가 내 내려야 땅을 경작하여 씨를 뿌립니다. “늦은 비”는 추수 직전에 오는 비로써 이 비는 곡식의 열매들을 알차고 기름지게 하는 데 절대 필요한 비로 서 농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비는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사명자 들은 복음을 전하기 어려워도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열심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농부의 권리입니다.
농부가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은 의식주를 위해서입니다.
본문에서 충성된 일군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를 언급한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역자는 교회로부터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목회자가 사례비를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고전3:9]에서 모세의 글을 인용하여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목회자의 사례비에 대한 정당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D . 생각하라
<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바울은 내가 네게 말한 것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훈으로 준 가르침을 생각하고 열심히 사역을 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총명을 더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이해가 안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1:5]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합니다.
Ⅲ.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10
A . 나의 복음(8)
<8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바울은 본 절에서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데 <나의 복음> 무엇을 말할까요?
<나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 두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 계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두 번째 는 하나님께로 부터 직접 복음의 반포자와 또한 사도와 교사로 임명은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분에 대한 것이지요.
다음은 <다윗의 씨>에 대해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데 “씨”라고 하는 것은 모든 식물에 있어서는 종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 있어서는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로 사용하고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다윗의 씨>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신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 증명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고전15:20]
이에 대해서는 [고전15:23] 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언급하는 것은 부활 신앙을 각인 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B . 자유 하는 복음 (9)
<9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사도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2차 로마감옥에 억울하게 죄인의 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잊지 않고 계속 복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행28:30~31]에 사도 바울의 그때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31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주 예수를 증거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기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지만 복음은 전하는 일을 누구든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은 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심 있는 전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C . 택한 자를 위한 고난 (10)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지금 사도 바울은 어려운 상황들을 참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은 죄인의 신분 이였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당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참아가며 계속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만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영접한 성도들과 함께 구원을 얻은 후에 누릴 수 있는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영광을 언급한 다른 곳이 또 있습니다.
[롬9:18]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 땅에서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만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복음이 자기의 생명을 사망에서 구원 할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광을 자신과 자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까지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모든 고난을 감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언급한 구원받은 후에 도래할 영광이 우리에게도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후3:13]에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Ⅳ . 미쁘신 하나님의 약속11~13
<11미쁘다 이 말이여 ,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1절~13절 사이에 <미쁘다>라고 하는 단어가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미쁘다>라고 하는 말은 [헬.πιτὸσ 피스토스]라고 하는 단어 인데 그 뜻은 “신실하다 ” “믿을 만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믿을만한 진실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실들을 4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여 주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것이요 라는 것입니다.
[롬6:8]에서도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로는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는 성도들은 내세에서 주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후사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롬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주를 위한 고난은 어떤 어려움도 감내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10:32~33]에<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 주를 부인 한다는 것은 배도 해위인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배도행위를 한다면 얼마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히6:4~6]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5하나님의 2)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전하는 일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불성실하고 우리의 믿음은 보잘 없이 약하고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항상 성도들에 대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도들과 언약을 져 버리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주의 성도들의 본분을 잊지 말고 복음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 11절~13절의 구절의 중심 되는 사상은 성도들이 주님께 충성하면 상을 받게 되지만 불성실하게 살면 벌을 면치 못한다는 사상입니다.
Ⅴ . 무익한 말다툼 14
A . 참된 일군이 되려면 말다툼을 피하라 .
<14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본 절의 <저희>라는 대명사는 앞의 2절에서 말한 <충성된 사람> 즉 참된 일군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 일>이란 바울이 교훈한 것을 가리킨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바로 3절,4절에 언급한 “좋은 군사”에 대한 비유와 또한 5절에 나오는 “경기하는 자” 에 대한 비유 또한 6절에 나오는 “수고하는 농부”의 대한 비유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이 비유들은 충성된 일꾼들이 꼭 갖추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게 하라고 하는 입니다.
<기억하게 하여>라고 하는 원어의 뜻은 [헬 ,ὑπομίμνησκε휘포미므네스케]라고 하는 단어로 현재 명령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간단하게 말하면 “계속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다툼에 대해 엄격히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로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전에서 말다툼은 [딤전1:3~4]에 나오고 있는 “끝없는 신화와 족보이야기”와 [딤전4:7]에 나오고 있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이야기”때문인 것 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 침투해 있던 이단들의 그르침과 그들의 변론에 대해서 경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과의 논쟁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듣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낙심하게 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믿음에서 떠나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그들과의 쟁론을 피하라고 엄격히 하나님 앞에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일군이나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가급적 다투지 말고 평화롭게 해결 하라는 것입니다.
Ⅵ . 참다운 일군의 자격 15
A . 진리를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15상)
<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
교회에는 참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참된 일군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일군으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참된 일군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흑백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옳게 분변하다.>에 해당되는 단어는 [헬 , ὀρθοτομου⃔ντα오르도문타]라고 하는 단어로 “바르게 자르다”또한 “진위를 잘 분별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대해 명확한 바른 해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그 뜻을 근거 없이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다른 곳의 명백한 진리와 상충되게 해석하는 것과는 정 반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다.
[눅6:39]<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일군은 하나님 말씀을 옳게 정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B .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가 되라.(15중)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참다운 일군은 하나님 앞에 부끄럼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받는 자가 되어한다는 것입니다.
[롬14:18]에서 사도 바울은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전11:1]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일군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성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사람으로 부터도 칭찬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C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15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참된 일군이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 즉 헌신하는 자를 말합니다.
구약 시대 때는 짐승을 사람대신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은 흠 없고 정결한 짐승이어야 했습니다. [말1:4~6]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참된 일군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할 때 스스로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자신을 성결케 하여해야 합니다.
[고후10:18]에서 사도 바울은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고 자신을 하나님의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Ⅶ . 이단들이 범한 오류들 16~18
A .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16)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망령>이라는 원어는 [헬, βεβήλους 베벨로스]라고 하는 단어로 그 뜻은 “속되고 종교적이지 않은” 또한 “거룩하지 않은”, “세상적인” 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헛된 말>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 , κενοφωνιά 케노포니아]라고 하는 단어인데 “헛된 지꺼림” , “헛된 논쟁” , “ 헛된 변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말들을 예를 든다면 불경건하고 불신앙적인 말과 거짓되고 불결한 말들 또한 중요한 의미가 없는 헛된 논쟁들과 변론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것을 버리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들은 진리의 말씀을 보수하고 바른 해석을 해야 하는 것 당연하지만 반면에 속되고 헛된 말들 , 또는 불경건하고 무의미한 변론들과 논쟁들은 피하고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더 경건치 아니함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경건과 믿음에 유익한 말씀이지만 , 헛된 말들은 점점 더 불경건과 불신앙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B . 불 경건에 속한 대표적인 인물 (17~18)
<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불 경건에 속한 대표적인 인물을 거론 하면서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에베소 지역의 교회에 있는 교사들로 헛된 변론을 좋아하며 자신들의 엉터리 논리를 전개하고 전파하는 자들 이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딤전1:19~20]에서도 그들에 대해 호명하면서 그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 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로 교회에서 출교를 당한 자들 입니다.
그들의 교회 안에서 퍼뜨린 잘못된 교리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고 하는 엉터리 가르침 이였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를 본절에서 독한 창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독한 창질>이란 원어로 [헬 , γάγγραινα 강라이나]라고 하는 단어로 악종의 창질로써 주위로 급히 번져 살을 썩히고 불과 수 시간 이내에 죽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을 말하는데 오늘날의 암과 비슷한 병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전파하는 잘못된 교리들은 독한 창질과 같아서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자들로 그 영혼들을 급속도로 죽음과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교리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잘못된 교리는 기독교 교리와 극도의 대치되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라고 하는 내용으로 부활의 역사성을 정면 부인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 및 죄와 허물로 부터의 영적 구원은 인정하나 육체의 실제적인 부활은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불완전한 부활의 교리를 퍼뜨린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Ⅷ. 하나님의 견고한 터 19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교회안에는 불경건하고 헛된 교리를 퍼뜨리는 이단들이 있지만 ,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 기본교리들은 훼손되지 않은 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히6:1~2]에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 갈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16:16]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서 터는 바로 우리 즉 교회의 신앙고백인 것인 것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부정하고 왜곡시키지만 , 하나님의 진리의 터 즉 바른 교리의 체계는 견고하게 확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이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세워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터 위에는 두 가지 내용의 인침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라고 하였다. 여기서<자기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1:21]에서 천사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6:39]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은 확실하여 그들은 다 예수를 믿게 되고 , 바른 믿음에 굳게 설 것이며 , 마침내 다 영광스런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인침심의 내용 중 다음 두 번째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명백한 진리인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는 모든 참된 성도들은 불의에서 떠나합니다.
불의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참된 성도의 표를 가지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불의에서 떠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불의 인 것인가?
그것은 도덕적 악 뿐만 아니라 , 또한 종교적 비 진리와 이단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둘 모두가 다 불의에 속합니다.
진리의 말씀과 도덕적 선이 옳은 길이므로 참된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도덕적 선을 선택해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 14절~19절까지의 본문은 진리의 말씀과 헛된 말이 서로 다른 두 길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말씀인 반면에 , 말다툼이나 속되고 헛된 말들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아 결국 사람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길은 완연히 다른 길입니다. 모든 진실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어느 길을 택하고 어느 길로 가야 행할지는 너무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다툼이나 망령되고 헛된 말 즉 잘못된 교리들을 버리고 , 오직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Ⅸ.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20~21
A .큰 짐에 있는 그릇들 (20)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단독주택이나 큰 아파트에서 살지만은 , 가난한 사람은 국민임대 아파트나 ,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기 마련입니다.
본 절에서는 큰 집을 비유를 들어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그릇들이 나오는데 이 그릇은 인간의 전 인격을 상징합니다.
금과 은그릇은 아마도 고급인력을 말하는 것이며 나무와 질그릇은 보통사람들을 말한 것 같습니다.정부가 중요 요직에 사람을 등용할 때에 어떤 사람을 등용하겠습니까?
그들의 기준은 고급인력을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에서 사람을 쓸 때는 인간의 기준과는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롬2:11]에서 사도바울은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 [약2:1]에서 야고보 선생은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하였고 [약2:5]에서는 <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1:27~28]에서 사도바울은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 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고전1:29]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다양한 계층 가운데 사람을 뽑을 때도 사람들의 생각과 상반 되게 뽑습니다.
부자집의 다양한 그릇가운데 사람들은 제일 값나가는 고급그릇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을 세울 때에는 돈 많은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 세상에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21)
<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
<이런 것>이란 앞에서 말한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말한 것과 같은 불신앙적인 요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후메네오와 빌레도의 사상은 무엇이였 습니까?
18절에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하는 잘못된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무엇보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귀히 쓰시고자 하는 종은 그의 바른 말씀 , 순수한 말씀을 가진 종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 된 자들인입니다.
Ⅹ . 주의 일군들이 피해야 할 것과 좇아야 할 것 22~26
A . 은 주의 종이 피해야 할 것 두어 가지(22~23)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첫째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정욕을 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정욕이란 불건전한 성적인 여러 가지 욕심들을 말합니다.
“욕”이라고 하는 한자는 욕심욕 자를 사용합니다.
[갈5:16]에서 사도 바울은<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정욕이란 육체의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꼽아 본다면 성욕 , 식욕 , 명예욕 , 권세욕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2:16] 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군은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두 번 째 어리석은 변론을 버리라.
<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주의 종들이 취해야 할 것이 있고 그 반대로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버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무식한 변론은 다툼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란 , 명칭 문제로 다투는 말다툼이나 불 신앙적 , 비성경적 변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B . 거듭난 성도들이 좇아야 할 세 가지 덕목 22)
<22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목회자 와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깨끗한 마음>은 인간의 내면적 변화 즉 인격의 변화를 말합니다.
“순수한 마음”이란 뜻입니다 . “사심이 없는 마음” 또한 “정직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자연인 이였을 때는 우리마음에 허망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막7:18~20]에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거급 난 성도는 자연 이였을 때 인격의 의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4:22~24]에서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하였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거짓되고 방탕하고 허망한 것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습니다.
여기에서 <의>는 모든 죄와 불의와 악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의는 성경적 행위 , 즉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세상 적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활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믿음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신앙과 의심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참된 믿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자를 기뻐 하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에 속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 하나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을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셨습니다.
[요13:34] 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는 것입니다.
[요14:7~8]에서 사도 요한은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화평>입니다.
주의 종은 화목해야 하며 화평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 속엔 싸움의 씨앗이 되는 미움이나 교만한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해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좋은 일에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5:18]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직책을 하나님께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2:18] 에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14]에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C . 주의 종이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 (24~26)
<24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26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첫째 주의 종은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주의 종으로 강조되는 영성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온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였습니다.
온유에 반대 대는 성품은 어떤 성품입니까?
온유의 반대 되는 상품은 포악하거나 과격한 성품입니다.
교회 지도자의 마음은 온유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 모세는 [민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들과 잘 다투지 않습니다.
다음은 주의 종은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 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바른 신앙의 길로 잘 잘 인도해야 하고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화내지 않고 온유한 말로 권면하며 징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징계 한다”란 교훈 “교훈하다.” “교정하다” 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의 종들은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교훈하고 교정하고 징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역하는 자를 징계함으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회개함을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26절 에서 징계의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을 짓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일군 되기 위해 힘써야 할 몇 가지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종들은 교리적으로 사상적으로 깨끗해야 함을 말하고 있고 또 나아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간직하고 오직 그 말씀만을 전파해야 하며 두 번째로 는 하나님의 종들은 윤리적으로 인격적으로 깨끗 해야 하고 온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과 육신의 정욕을 피해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 금기시 되는 것은 다투지 말고 온유함으로 성도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말씀을 거역하는 자가 있을 때에 그들을 온유함으로 교훈하고 교정하고 징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사상 , 바른 인격, 바른 성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종들과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며 힘써야 할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모든 성도들에게도 영적 성장의 목표가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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