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의 착각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손주는 앞꼭지보다 뒤꼭지가 더 예쁘다.” 손주 이야기다. 손주가 오면 얼마나 반가운가. 그런데 엄마빠가 손주를 집으로 데리고 가면 더 좋고, 가는 손주 뒤꼭지가 그렇게 예뻐 보인다는 뜻이다. 노년에 손주 재롱을 보는 것은 대단히 크고 중요한 행복일 터이다. 아들 내외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니, 자연적으로 손자와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하루 종일을 몇날 며칠씩 우리 나이로 네 살짜리 손자와 함께 보내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지만, 오후에 퇴근하여 아이 빨리 보려고 후다닥 들어오는 며느리가 한없이 더 반갑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이면 노래 부르고 노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안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자형이 우리 집에 오면, 어머니는 술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술상을 보신다. 자형이 술을 드실 때, 우리도 안주를 집어 먹는 재미로 술상 옆에 같이 앉았다. 그러다 조금 무료하면, 어머니는 항상 “창가 하나 해 봐라.”라며,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러면 내가 꼭 먼저 나섰고,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를 유행가를 불렀다(당시의 우리 동네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기계나 음향시설을 좀 다룰 줄 아는 동네 아저씨가 자기 집에 라디오와 앰프를 설치하고,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한 여러 마을의 집집마다 유선으로 연결된 스피커를 달아,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집 대문에는 유선방송국이란 소박한 나무 간판이 걸렸고, 동네 사람들은 그 아저씨를 국장이라고 불렀다. 물론 해마다 일정한 이용료를 곡식으로 내었다. 대부분의 집은 마루의 기둥에 스피커를 달아놓아 온 집안에 라디오 소리가 들리도록 하였다. 나의 유행가는 사실 이 아저씨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위에게도 노래를 권한다. 약간 취기가 오른 자형은 스스로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멋들어지게 유행가를 뽑는다. 우리도 젓가락을 쥐고 술상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무척 재미있어 하며 즐기셨다(그러나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외삼촌도 이모들도 노래 부르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믿기 힘들겠지만, 초등학생 처남들과 20대 후반의 자형이 함께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뽕짝 노래를 불렀다(나는 8남매의 다섯째인데, 큰 누이와 나이 차가 많다. 내가 세 살 때 열아홉 살의 큰 누이가 시집을 갔는데, 나는 그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훌륭한(?) 집안 분위기 덕분에, 중고교 시절에도 늘 유행가를 입에 달고 살았다. 중학생 땐 저녁을 먹고 나면 자취집 방안에서 이불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한 사오십 분씩 목 놓아 유행가를 불렀다. 매일 그랬다.
할배가 하도 심심하여 손자 앞에서 유행가를 불렀다. 애 버린다고 제지하는 할매의 말도 무시했다. 시작은 이랬다. 손자가 어디서 영어를 배웠는지 무엇을 부정할 때, "노(no), 노“라고 하길 래, 국문과 교수인 할배가 시범을 보인다고 ”아니야, 아니야“라고 하다가 그만, 유행가가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에 취해 하는 말이야
아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70년대, 김상진이란 가수의 ‘고향이 좋아’ 라는 노래 중, 이 부분을 할배가 손자 앞에서 주저없이 불러 제꼈다. 손자가 까르르 넘어가며 자꾸 다시 부르라고 한다. 앵콜 연발이다. 어린이 집에서 동요를 부르다가 요상한 노래를 들으니 그렇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앵콜을 받으니 안 부를 수가 없다. 한 서너 번씩 불렀다. 며칠을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아 ! 그런데, 손자 녀석이 그걸 그대로 따라한다. 할배가 하는 폼과 모션까지 그대로 흉내를 낸다. 한 발을 앞으로 내민 채로, 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며 장단을 맞춘다. 며느리가 뭐라 하겠냐며, 할매가 핀잔을 주며 걱정을 한다. 아들이 어느 날 동영상을 보내왔다. 열어 보니 손자 녀석이 엄마빠 앞에서 고걸 그대로 재연하고 있었다. 아들 며느리도 얼떨결에 아이의 독특한 재롱을 보니, 반갑고 귀여워서 막 웃고 있었다.
나는 아들 며느리도, 옛날의 우리 어머니처럼,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손자가 우리 집에 오면 늘 이 노래를 같이 불렀다. 참 즐거웠다. 거실 가운데서 할배와 손자가 장난감 마이크를 들고 온갖 폼을 잡으며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을 목청컷 불렀다. 그런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아들 며느리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손자가 심각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그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할배가 이유를 물었다.
손자가 답했다 : “엄마가 부르지 말라고 했어.”
며느리는 아이가 할배를 닮아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학생이 될까봐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어, 주책 없는 할배는 후회막급이었다.
작년에 둘째 손자 돌잔치 날이었다. 사돈 내외분과 아이의 외삼촌들도 오셨다. 예나 지금이나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돌잡이다. 아이가 무얼 잡을지도 궁금하고, 잡고 나서도 온갖 희망의 해석과 덕담을 주고 받으며 행복해 한다. 할배 할매와 아이 엄마가 손님들이 모여들기 전에 미리 돌잡이 함에 무엇이 들었는지 구경삼아 살피는데, 그 안에 장남감 마이크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며느리가 말했다 : "이건 치워야 되겠지예."(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