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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법화리(法禾里). 일명 버구실에서 보은군 마로면(馬老面)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고개가 있다. 이 고개가 "효자고개"이고 고개 정상에는" 정재수 효자비"가 있다.
정재수가 경북 상주군 화서면 사산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다. 고향은 청산면 법화리이고
그의 조부모와 큰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며, 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상주군 화서면에
살고 있었다.
평소 어린이답지 않게 과묵하고 침착했으며,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 1974년 1월22일은
구정(음역설)을 하루 앞둔 섣달 그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연일 계속
내려 쌓였고, 마침 중부지방에 폭설주의보가 내려 있었다. 기온도 15도에서 20도 사이의
혹한이었다.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이는 날,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고향인 청산면 법화리 할아버지댁에 설을 세기 위하여 떠났다.
尙州郡 화북면에서 옥천군 청산면을 가자면 보은군 마로면을 거쳐서 효자고개를 넘어야만
한다.
이 길은 험준한 산고개 길이라서차는 탈 수 없고 걸어만이 다닐수 있다. 정재수 父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험한 산길을 혹독한 강추위와 싸워 가면서 걷고 있었다.
이윽고, 회북면을 거쳐서 마로면에 왔을 때는 눈보라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며,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 부자는 어느 술집에 들려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 술집에서 정씨는 꽤 많은 술을 마셨고,
정재수군은 "아버지 빨리가요, 이제 눈이 좀 덜내리니 이때 가시지요"하며 일어나 가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정씨는 계속 술만 마시고 있었으며 상당히 취해 있었다. 그래서 정재수군은 "아버지
이제 술 그만 잡수세요. 술취하면 못가요. 술 그만 잡수셔요."하고 몹씨 근심스럽게 조르고
있었다.
또 그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눈보라와 추위 속에 어떻게 그 큰고개를 넘어 가겠느냐고 가지 못하도록
극구 말렸다.
그러나, 술이 많이 취한 정씨는 술기운에 추위도 모르고, 오직 내일이 설날이니 오늘밤에 꼭
고개를 넘어서 고향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혹한과 눈보라 속을 뚫고, 정재수 부자는 청산을
향하여 길을 떠나고 말았다.
천신만고 길을 잃기 몇 번, 눈이 무릎 위까지 빠지는 산길을 술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정재수군은 밤이 깊어서야 고개마루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 정씨는 "이제 더 못 가겠다."하더니 쿡 쓰러지고 마는게 아닌가? 너무 술이 취했고, 눈길도 눈길이지만 밤이 깊어지니
기온이 급강하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재수군은 "아버지! 아버지!"부르면서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꼬마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술취해 쓰러진 아버지에게 덮어주고, 극진히 보살폈다.
그러나 아버지도 또 그의 아들 정재수 효자도 함께 동사하고 말았다.
그 다음날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된 이들 부자의 시체는 차마 눈뜨고는 못볼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린 정재수군이 아버지를 죽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가 자기도 죽게 된 그 상태가 너무도
역력 했기 때문이다.
그후 어린 정재수군의 효행을 길이 교훈삼고자, 그리고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산마루에
'효자 정재수 잠들다'하고 쓴 정재수 효자비를 학생들의 정성으로 세워서 지금도 전하고 있다.
그후부터 이 고개를 '효자고개'라 이름하여 부르고 있다.
출처 : 헬프로드 청산사랑 (http://www.helproad.com/chungsan/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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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호야 자전거 타고 있는것이 너냐 울동창들도 자전거타고 청산면 전체 하이킹도 좋을듯 싶은데 열차도 자전거 실어 주는데 영동에서 청산까지 가서 청산면을 다돌아 보는것도 멋진 여행 될거야 청산에 살어도 청산면 다돌아 본 친구들 없을거야.......
그거참 좋은 생각이네, 청산이 효자동네라는 좋은 소식 올려주어 고맙다 광호야~ 어머님 살아계실 때 나두 매일 전화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