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88) 시인이 2024년 5월 22일 오전 8시 별세했다. 암으로 투병하던 시인은 이날 오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신경림 시인은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와 '묘비' 등의 작품이 추천돼 등단하였으며, 농민과 서민 등 기층 민중의 고달픔을 따뜻하고 잔잔한 감정으로 달래는 시들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한국의 대표 시인 중 한명이다.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전후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에 뜻을 두지 못해 낙향한 뒤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한국일보에 ‘겨울밤’(1965)을 실으며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내 문학은 사람을 좋아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 고인은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시를 길어냈다. 민족과 민중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거목으로 자라난 그의 시는 한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73년 첫 시집 ‘농무’는 그의 시집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또 오래 읽히며 사랑받았다. 당시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민요적 정서에 얹은 시로, 모더니즘과 서정시가 주류였던 당시 문단 분위기를 바꿔낸 시집이다. ‘농무’는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 1호로 1975년 증보 출간되면서 한국 시집의 상업 출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창비시선은 올해 3월 500호를 펴내며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신경림 시인은 ‘새재’(1979)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뿔’(2002) ‘낙타’(2008) 등의 시집을 남겼다. 마지막 시집은 2014년 펴낸 ‘사진관집 이층’이다. 제1회 만해문학상과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상, 심훈문학대상 등을 수상했고,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등을 지내며 문학계의 어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에 대한 기준도 늘 꼿꼿했다. 최근까지도 젊은 시인들을 향해 “시인은 자신의 감성과 맨가슴으로 우리 시대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