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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대로 사는 사람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세기6:22),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세기7:5), "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민수기17:11),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여호수아1:9~11)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16~18)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쉬운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힘든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라면 자신의 아들까지도 바치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노아와 모세, 여호수아와 다윗 등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목숨보다도 더 중히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 수 있었고 오늘의 우리들은 왜 그들과 반대되는 행로의 여정에 서 있게 되었을까요?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구별된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입니다 우리가 듣거나 읽거나 보거나 하는 가운데 그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도래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명확한 카테고리라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이고 간단명료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때로는 논리적으로는 부족한 모양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논리와 정리된 공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미 차원을 달리하는 하나님의 속성상 우리와 이해관계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말 그대로 명령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사람들의 한계와 이성적 판단능력과 실행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거나 할수 없는 일,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 들일 때가 있습니다
산마루에 방주를 짓는 일과 방주에 들어가야 할 목록과 그것을 모두 방주안에 담아내는 일들, 아무런 조치도 없이 홍해를 건너가는 일과 광야에서 음식하나 만들지 아니하고 만나를 먹으며 40년을 생존하는 일, 철옹성같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려 하는데 무기도 필요없고 전략도 필요없고 오직 성을 돌고 도는 일들, 요단강을 건너가는 전략적인 일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복종하였던 이스라엘의 삶과 여정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로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는 사람의 생각과 전혀 다른 차원의 명령으로 다가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성취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은 그 복종을 통해서 그것을 성취하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되 그것을 직접 이루시지 않으셨습니다 보통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을 지정하시고 그 사람을 통하여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모든 명령은 그 사람에게 주어졌고 그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그 명령의 내용이 그것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보편적이고 타당성의 여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절대 순종으로 화답함으로서 그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현되어졌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생각하고 하나님이 계획하였으며 하나님이 성취하시는 역사들에 대하여 사람은 단지 "순종" 이라는 것으로 무임승차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종이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상식밖의 명령, 전혀 타당성 없는 주장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종이 쉬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에게 가서 의논하거나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분석하고 타당성 여부를 치밀하게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전적으로 신앙하고 그 분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도 결과도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 명령을 받은자가 그것을 완전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것을 명령어로 순종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그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관계는 순종과 복종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사이에서 존재하는 그러한 수직적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와 수평이 되고져 높고 높은 보좌위에서 직접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위대한 것으로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결국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역할이라고는 거의 무의미하거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며 모세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그 모든 역사를 이루어낸 주인공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와 동행하였던 모든 기적의 역사는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이 혼자서 걸어갈 수 없을때 유일하게 지탱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지팡이 하나였습니다 지팡이는 두 발로 바로 서서 걸을 수 없을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나약하고 아무런 힘이없는 모세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였을때 그는 이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산위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애 가운데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방주를 지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방속에서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 내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데는 무려 1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는 그가 생존해 있는 인생의 대부분을 방주를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일례로 그 방주가 나중에 아무 필요없는 것이 되었다 할지라도 노아는 그것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켜왔던 한결같은 믿음의 자세였고 복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라면 자기의 생각을 한치라도 포함시키지 않는 정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선한 삶의 태도였습니다
노아가 지금의 세상에 태어났어도 마찬가지의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만 보였을 것이고 세상은 결코 그를 움직일 수 없는 나약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항상 기뻐하며 살아라고 명령하였다면 노아는 항상 기뻐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다면 그는 쉬지않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앞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노아에게서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가 우리와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앙하고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또한, 그것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명령하고 있지만 우리는 순종의 자세로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순종도, 복종도 모두 잃어버린 채 기독교인이라는 명분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에게 더 많은 관용과 여유를 주고 진리의 영역을 허물어 스스로에게 더 많은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유연성과 탄력성, 융통성?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특권이며 면죄부 같은 것일까요? 그것만 있으면 웬만한 것이 허용되고 면죄부가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유연성과 탄력적 융통성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인가요? 자신인가요? 그리고 그만한 허용성을 가질만한 자격의 신앙인이라고 스스로도 자부하며 생각하는 것인가요?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도 유연성과 탄력적 융통성을 적용해 가며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그 어떤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가능한지 그 여부조차 생각하지 않은채 곧 바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실천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달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하나님 스스로에 의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였지만 정작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명령이 사람이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와같은 명령을 하신 까닭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계관과 그에 따른 순종을 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그들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성취하신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라 그 안에 들어갈 목록을 실천하였고 그 또한 방주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홍수가 났으며 그 홍수는 하나님이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을 돌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명령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따라 온갖 의견과 생각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결론을 내어놓고 그것을 많은 논란 가운데에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해 내었다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외치지만 정작 기도는 부수적인 것이 될때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회의와 회의, 정보의 취득과 자료수집 등 세속적인 모양들로 모든 것을 채워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가장 위험한 사기가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앞에 복종을 내세워야 합니다 믿음을 세워야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자세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변해야 합니다 현재의 신앙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허물고 있고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의미있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 신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인생의 지침서나 지혜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뼛속깊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어도 되고 않읽어도 되는 선택의 교양도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경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는 이것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야 하며 또한, 묵상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는 그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과 우리의 복종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의무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천하면 더 좋고 않해도 죄사함이 있기 때문에 그만이라는 인식이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일만 성수하며 대충 살아도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해 주실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문이 전달되며 학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자신만만한 신앙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요? 무엇을 믿고 영원한 세상의 천국을 마치 티켓 구입하듯이 받았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 계속 살면서 그들 나름의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짐을 싸고 기약조차 할 수 없는 길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인 것입니다 그들은 말로서 행위를 대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200만명에 이르는 메가폴리탄형 국가의 이동이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앞에 복종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순종은 역사이래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신약의 시대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류의 죄를 위해, 우리와 나 자신의 죄를 위하여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그 고귀한 십자가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세속화의 대속적 전유물로 사용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고 그것을 통하여 용서를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지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죄를 위한 방패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인해 분주해진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령앞에 귀를 닫고 문을 닫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결코 영원한 나라를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관용을 베풀어서도 않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살기가 어렵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을 안타까워 하고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드리는 자세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와 그것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전적인 신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적인 삶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가까워져 버린 세상의 삶 때문입니다 세상의 삶이 우리에게 가까워진 것은 우리의 죄의 속성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가 모여서 고인 곳이 바로 죄악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죄악된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지 우리와 구별되게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별된 삶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회개는 기도이며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는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철저히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한치의 미련과 재물에 대한 과욕을 가지고 동참해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세상에 쌓아둔 일과 가족과 재물과 미래의 희망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돌아간 부자청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근심하며 돌아간 세상은 결국 종말을 초래하는 물거품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높고 넓게 쌓아도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도 세상에서 기인한 모든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소금기둥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대로 모든 것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믿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더 늦기전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사람,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장 위험한 생각입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재탄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명령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권유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명령하셨습니다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예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결단할 위치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두개의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도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고, 천천히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사탄의 유혹일 뿐입니다 고민하지 말고 더 이상 생각하지 말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우리는 불순종의 잔을 깨뜨리고 순종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미련을 가지고 돌아갈 길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노아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모세가 특출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분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준 순종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의 힘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준 말씀도 우리안에 임하여 있고 그들이 취할 모든 나라도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안에는 우리 자신도 있고, 우리의 생각과 철학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천국이 있는가 하면 세상도 함께 영토를 확장해 큰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는가 하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도 있습니다 순종이 있는가 하면 불순종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도 함께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안에 있는 두가지의 전혀 다른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것과 세상에서 복제된 것을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두가지가 모두 비슷하고 매우 흡사하게 보이나 하나님이 주신것과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어느 누구하나 예외없이 모두에게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사용자가 어떤 것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규정하지만 그것이 무슨 용어로 정의되든지 우리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는 우리가 새로운 무엇으로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무 어렵고 힘든 무엇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구하고 기도함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노력과 경주를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서 도달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는 벤쳐와 챌린저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앞에 주어진 길을 내 디딤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이 실천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넷째, 예배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수 있고 그분에게 다가 갈수 있으며 그분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식의 옷을 버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귀에 들려올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을때 하나님에게 복종하고저 하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안에 가득차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는 분주한 사람들에 의해 엄숙함과 거룩함을 상실하였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가 오늘날에는 조롱을 당하고 교회안에서 엄숙함과 고요함이 낯선풍경처럼 느껴질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배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건강성을 회복하고 치유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예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를 통하여 선포되는 것입니다 예배안에 기도가 있고 찬양과 경배가 있으며 말씀과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떠나서 살수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가치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를 사모하였고 하나님을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결코 살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고 예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은 새로워지고 유지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예배를 통하여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울왕의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셨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회복하고 그 예배를 통하여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던 사람들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고 우리와 동일한 모양의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말씀에 목숨을 걸었으며 예배를 회복함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선택사항이 아닌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시대에 적용되었던 한시적인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외면하려고 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겠다는 선포와 선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잘 실천이 않되어도 우리는 그것을 주장하고 선포하며 우리 자신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녀를 원하고 있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도우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으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 우리는 한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은 종말을 향하여 시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을 미루는 변명의 여지가 되고 하나님은 당신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결코 넘어가서는 않됩니다 잠에서 깨어나 어둠속에서 방황하던 당신의 영혼을 흔들어야 합니다 빛이 보인다면 주저하지 말고 뛰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세상으로 부터 180도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