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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반월호수 | 반월호수 주변 | 군포 철쭉동산 |
경기도 중부 서남쪽에 있다. 수리산(修理山)을 비롯한 여러 산이 고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전체 면적의 절반이나 된다. 수리산에 신라 때 창건된 수리사(修理寺)가 있다. 반월저수지는 풍광이 좋다. 철쭉이 많이 피는 철쭉 동산이 있다. 철쭉축제를 한다. 평지는 대부분의 지역이 도시화되었으며, 교통이 편리하다.
1) 군포
2) 금정
3) 수리산
4) 검바위
5) 노랑바위
6) 감투봉
7) 부자가 망한 내력
1) 군포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패해 후퇴하던 승려, 의병과 관군이 군포 지역에서 군장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굶주린 병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사기를 북돋워주어 힘을 얻은 관군과 의병, 승병들이 왜병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은 굶주린 관군이 배불리 먹은 지역이라 하여 배부를 포(飽)자를 써서 군포(軍飽)라고 했다. 그 뒤에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 배부를 포(飽)자가 물가 포(浦)자로 바뀌어 군포(軍浦)가 되었다고 한다.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인들이 군함을 타고 한강을 거쳐 안양천을 경유 이곳에 머물러, 군포(軍浦)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 모든 지명에는 유래가 있다. 어떤 유래를 가져다 붙여서도 지명을 풀이해야 한다. 제시하는 내용 하나 하나가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앞뒤의 연결은 그리 긴요하지 않다.
2) 금정
금정(衿井)은 옷깃 금(衿)자와 우물 정(井)자를 쓰는 지명이다. 어디를 파든지 우물 물이 잘 나와 여인들이 물을 길으면서 옷깃을 적시므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 시대 정조(正祖) 임금이 수원으로 행차하는 길에 우물물을 마시다가 옷깃이 젖어 그 곳을 금정이라고 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 지금 금정역이 있는 곳을 “衿井”이라고 하는 것은 흔하지 않게 아름다운 말이다. 애초에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망각되었으므로, “옷깃+우물”의 유래와 의미를 풀이하기 위해 후대인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두 가지 착상이 모두 미흡하다. 상상의 폭이 더 넓은 사람이 시인이 되어 나서야 한다.
3) 수리산
천지개벽 때에 이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이 산의 꼭대기에 수리가 앉을 만큼의 공간은 남아 있어서 수리산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이 지금은 경기도 도립공원이다. 수리산의 바위나 봉우리에도 전설이 있는 것들이 있다.
군포 금정역 | 수리산 등산로 이정표 | 수리산 등산로 |
4) 검바위
마을 세도가 집에서 일하던 종이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아 죽자, 그 아들이 지관이 되어 나타나, 옛 주인의 선친 묘소 앞에 있는 복을 주는 검은 바위를 부수도록 해서 결국 그 집이 망하게 되었다.
5) 노랑바위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임금이 명산대천에 기도하여 왕자를 얻었다. 왕자가 세 살 때 전란이 일어나 강화로 피란하게 되었다.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난파되고 말았다. 물속에서 거북이 나타나 왕자를 구해 관모봉에 데려다 놓고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 왕자는 거북이 자기를 버린 줄 알고 화가 나 곁에 있던 큰 바위를 내려쳤다. 그 바위가 무너져 내리면서 왕자가 깔려 노란 피를 흘리며 죽었다. 거북도 굴러 내린 바위에 깔려 죽어 바위가 되었다. 왕자가 죽으면서 흘린 피가 바위를 노랗게 물 들여 노랑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감투봉: 별개의 항목으로 다시 소개한다.
=> 산 하나를 두고 갖가지 곡절이 포함된 많은 상상을 해서 바라보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고,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6) 감투봉
출가한 딸이 친정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가, “흰 나무 세 그루가 있는 북서쪽 바위에 무덤을 쓰라”는 유언을 들었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보다 먼저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은 그 자리에 묘를 쓰고, 친정아버지도 작고해 같은 곳에 묘를 썼다. 그 뒤부터 새벽이면 그 곳에서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 싸우기 시작했다. 친정오빠가 여동생이 그 곳에 무덤을 쓴 것을 알고는 옮기라고 했으나 여동생이 듣지 않았다. 친정오빠가 낫을 들고 두 용이 싸우는 데로 가서 한 용을 베었는데, 죽은 용이 자기 아버지 모습으로 변했다. 이후 용이 승천하려고 싸웠던 봉우리를 감투봉이라고 불렀다.
군포2동(부곡동) 삼성마을은 옛날부터 과거 공부하는 소년들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등과를 위해 정성을 올리는 마을로 유명했다. 한양이 가깝고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신령스러운 기가 있다는 수리산을 뒤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마을 샘물 우물가에는 천년 가까운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항상 모여들었다. 과거 공부를 하러 온 청년이 우물가에서 물을 얻어마시곤 하다가 한 예쁜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랑하게 되었다. 청년은 아가씨에게 꼭 합격하여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하고는 한양으로 떠났다.
아가씨는 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샘물을 떠놓고 뒤뜰에서 빌고, 우물가 옆 은행나무에 절하며 서낭당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그것도 모자랄 것 같으면 뒷산의 높은 산본(山本)마을로 향한 중턱에서 물이 철철 흐르기로 유명한 원수(元水) 물을 떠가지고 감투봉으로 올라 달님에게 빌며 소년이자 장차 낭군이 될 청년이 꼭 장원급제하기를 매일 기원했다.
그런 정성이 통하였는지 청년은 드디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노란 옷에 화관을 쓰고 삼일유가를 하며 행차를 하고 삼성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가씨는 청년의 장원급제 소식에 너무 기뻐 이는 하늘의 달님이 도우신 덕이라 생각하고 샘물을 떠서 높은 감투봉에 올라 정성을 들여 감사의 기도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때 산기슭 용호리 마을에서 힘겨루기를 하느라고 다투던 호랑이와 용이 샘물가에서 아가씨를 보고 그 마음씨와 외모를 탐내어 사람으로 변해 서로 차지하겠다고 감투봉 아래까지 따라 올라가 무섭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아가씨는 마냥 달님에게 빌고 있었고, 한편 과거에 합격하여 돌아온 청년은 아가씨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예전에 같이 달님에게 소원을 빌던 감투봉으로 항하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역시 아가씨는 감투봉에서 물을 떠놓고 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앞에 사람처럼 보였던 사내 둘이 싸우고 있다가 갑자기 용과 호랑이로 변하여 싸우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소리쳐 아가씨를 불렀고, 아가씨는 외쳐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청년은 보이지 않고 웬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용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모습만이 앞을 막았다. 그 모습에 아가씨는 그만 기절하고, 청년은 나뭇가지와 돌로 호랑이와 용을 처치하고는 아가씨 앞으로 다가갔으나 아가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동안 지나치게 정성을 다하느라 몸이 쇠약해지고, 흉악한 짐승들이 싸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깨어나지 못했다. 청년은 아가씨를 밤새도록 껴안고 흔들며 울어댔다.
다음날 마을사람들은 장원급제 축하잔치를 준비하고 청년을 찾았으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감투봉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밤 추운 날씨에 두 남녀가 꼭 부둥켜안고 얼어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이 마을에서는 이 봉우리가 마치 장원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관모봉 또는 감투봉이라고 했다.
이후 정월 보름이 되면 젊은이들은 쇠가죽 큰북을 밤낮으로 치며 악귀와 도둑을 내몰기 위해 마을 안을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감투봉에 올라 옛 전설을 생각하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그 해 장가를 갈 수 있다고 하며 풍성하고 떠들썩한 보름행사를 즐겼다.
=> 감투봉이 있는 곳에서 두 마리의 용 또는 용과 호랑이가 싸웠다는 것이 공통된 내용이다. 이 싸움은 (가) 번개와 천둥이 치고, 물이 넘치고 비가 오는 등의 현상, (나) 겨울과 여름의 싸움으로 이해되는 계절 변화, (다) 신앙물을 내세운 마을끼리의 충돌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가)는 자연 현상 자체이고, (나)와 (다)는 사람과 관련된다. 앞뒤 두 이야기에서 모두 용들끼리 또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사람과 관련된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용이 되어 싸웠다. 뒤의 이야기에서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사람에게 충격을 주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 싸움이 사람과 관련되어 인생문제에 관한 것으로 이행한 양상이 판이하다.
앞의 이야기는 여주인공이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둘 다 명당에다 매장해 용 싸움이 일어나게 하고, 오빠가 나서서 죽인 용이 자기 아버지인 비극을 말했다. 시집과 친정의 다툼이 심각한 인생문제이다. 뒤의 이야기에서는 과거를 보러 떠나간 총각이 장원급제해서 돌아와, 급제를 기원하면서 기다리던 처녀와 행복하게 재회하도록 예정되어 있어 인생문제는 심각하지 않은데, 용과 호랑이의 싸움 때문에 파탄이 생겼다.
예정된 행복과 닥쳐온 파탄은 유기적인 관련이 없고 따로 논다. 별개로 독립된 사안을 가져다 붙였다. 산봉우리가 관모와 같이 생겨 관모봉 또는 감투봉이라고 한다. 정월 보름이 되면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굿을 하는 젊은이들이 감투봉에 올라가 달맞이하면서 장가가도록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이런 것들도 독립된 사안인데, 대충 연결시켜 긴 이야기를 만들었다. 완성도가 모자라는 덕분에 독립된 사안의 상이한 문화요소가 보존되고 있다.
7) 부자가 망한 내력
예전에 학자골이라는 마을에 커다란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고 한다. 큰 부자가 살 던 집이다. 부자는 날마다 찾아오는 손님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하루는 중이 시주를 왔길래 도대체 귀찮아서 못살겠으니, 손님을 그치게 할 방도를 알려 달라고 했다. 중이 선심을 베푸는 일이 마땅하다고 타일렀지만, 주인이 계속 졸라대자 학자골 넘어가는 골짜기에 돌담을 치면 손님이 그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주인은 귀찮은 마음에 당장 일꾼들을 시켜 돌담을 쳤다. 그 이후로 집안이 홀랑 망하여서 찾아오는 손님도 없어지고, 와도 줄만한 양식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흔한 이야기에 많은 의미가 있다. 손님을 싫어하면 망한다. 소통을 거부하는 자폐증에 사로잡히면 정신이 빈곤하고 황폐해진다. 생산은 일정하다고 전제하고 소비를 줄이면 생산이 더 줄어들어 한층 빈곤해진다. 작은 이익을 바라고 무리한 짓을 하면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닥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