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개인과 자아에만 영향을 미칠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 Carl Rogers, 롤로 메이Rollo May는 자존감은 개인적인 차원의 자기 가치이자 평가이며,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견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기 가치감을 평가한다. 만일 한 사람의 자기 가치감이 타인의 견해에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조건부 자존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몸속 장기처럼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으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리 구조로서 필터 역활을 하는 자존감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행위와 사물을 주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인지는 자존감이 결정한다. 또한 자존감은 우리의 경험이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도 해석해 준다. 한마디로 자존감은 선글라스처럼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특정한 색체를 덧입혀 준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 개인주의적이다. 자존감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시각에서만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의 주된 기능은 대인 관계를 맺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대인 관계에 영향을 받고, 또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존감 자체가 바로 대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해도 관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개인의 내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 작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관점은 자존감이 개인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보다 현실 생활에서 어떤 역활을 하는지에 관심을 둔다. 자존감을 정의하거나 이해할 때도 그 기능에 주목한다.
대인 관계에 이론에 따르면, 개인 내면의 자아 경험 구조는 타인과의 상호 작용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내면 구조와 대인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자기 개념self-concept 은 마음속 타인의 이미지와 떼러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처럼 자아는 타인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내면 구조는 독립적인지만, 반드시 대인 관계에서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인 관계 역시 내면 구조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대인 관계와 따로 떼어 놓은 자아는 추상 명사에 지나지 않으며, 자아가 주도하지 않는 대인 관계는 맹목적이다. 사회 척도 이론 social scale theory에서도 자존감이 대인 관계를 이어 주는 역활을 한다고 주장한다. 자존감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자존감이란 한 사람이 과거, 현대, 미래의 대인 관계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인 뿐이다.* 자동차의 연료 게이지처럼 자존감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기능이다. 자존감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당한 상황, 과거의 유사한 경험과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대인 관계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다. 혼자서는 고독하고,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을 잃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생존조차 할 수 없다. 함께 힘을 합쳐 자연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므로 인간에게는 협력과 신뢰가 필수적이다. 협력해야만 자연을 정복할 수 있고 서로 믿어야만 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무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정하고, 남들이 자신을 받아들이는지 혹은 좋아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이다.
요컨대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바로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받아들이는지 배척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점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무리에서 배척당하거나 조롱당할까봐 걱정하고, 남들이 자신의 선의를 거절할까봐 두려워한다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대인 관계를 조절하는 역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남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호의적이며 자신과 기꺼이 협력하려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남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고, 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동료로서 얼마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고,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고 믿는다. 남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무시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소속 집단에 대해 애착감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고 모두 믿고 협력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 남들이 자신을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으며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는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다.
자존감은 형성 과정에서부터 대인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년기에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분한 안정감을 준다면, 아이는 타인에 대해 비교적 안정된 신뢰감을 가지고 대인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이런 아이는 친화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이든 남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자신한다.
반대로 유년기에 부모가 자신의 성격이나 그 밖의 원인으로 아이를 소홀이 대하거나 심하게 나무라면 그 아이는 타인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협력할 수 없는 경쟁 상대로 여기게 된다. 타인에 대한 이런 두려움과 의심이 행동 방식으로 굳어지면 자존감이 낮은 인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방어하고 자아를 보호하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를 원만하게 맺지 못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너무 의심한다. 또한 남들의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렵다.
사회 척도 이론에서도 자존감이 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지, 그리고 왜 자존감 때문에 교만해거나 수줍음을 타는지 설명해 준다. 이 이론은 자신만 사랑하고 자아만을 인정하며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한다. 이런 불안감을 품고 있으면 자존감이 대인관게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없다.
자존감은 형성될 때부터 대인 관계에서 영향을 받지만, 일단 형서된 뒤에는 반대로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이 그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을 좌우한다. 이는 대인 관계에서 곧 일어날 상황을 어떻게 예상하는지 보여 주는 잣대다. 현재의 대인 관계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이 달라지고, 상호 관계에 대한 이런 평가와 예측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면접관도 내 부모처럼 호의를 가지고 대하고 쓸데없는 트집은 잡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면접관은 해당 업무에 적합한 직원을 고르는 데만 집중할 테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안감 없이 면접에 임할 수 있다. 긴장을 할수는 있지만 불면증이 생길 만큼 과도하게 초초하지는 않는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면접관은 모두 대단한 인물이며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리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고 아는 것도 많은 그들이 자신을 앝볼까 봐 걱정한다. 자신의 경험과 경력으로는 다른 지원자들을 물리치고 협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므로 남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원래 능력보다 훨씬 잘 보여서 면접관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긴장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면접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도 면접관이 어떤 태도로 자신을 대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낮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날마다 낯선 사람을 만나지만 한 번도 두렵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면접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와 정반대다.
자존감에 대한 이런 두 가지 관점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우선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집단과 이익을 공유하면서도 독립적인 관념을 가져야 한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약속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만 타인과 평등한 관계에서 교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를 포기하고 상실하게 된다. 또한 독립적이고 자주적일수록 남을 믿고, 남도 자신처럼 독립적이고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일수록 사교적이고 남과 원만하게 소통한다.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욕구가 이미 충족되었기 때문에 대인 관계는 안정적이고, 대인 관계로 인해 곤란을 겪지 않는다. 대인 관계가 긍정적일수록 더 마음껏 잠재력을 발휘하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 이처럼 안정되고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되려면 개인의 자주성과 원만한 대인 관계가 모두 충족되어야 하며,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된다.
출판사:비바체 지은이: 류샹핑 옮긴이:허유영
첫댓글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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