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사나이
석등 정용표
어느 날 뜬 구름 잡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 사나이는 하얀 와이셔츠 차림에 참모들을 거느리고
원두커피를 한 잔씩 든 채 청와대 앞뜰을 보란듯이 거닐었다
더러는 팔을 걷고, 양복을 걸친 표정은
세상을 다 거머쥔 듯 호기에 찬 희열을 발산했다
그 자들은 한평생 베짱이처럼 노래만 부르며
그늘 진 이념의 궤적에 절절이 절어 살아온 사사邪思한 족속들이다
세상물정 매명昧冥한 자들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처박아
이 세상을 거꾸로 보며 한사코 외돌아 모질게 판을 갈아엎는다
사람이 권력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가
망치로 사정없이 얻어맞아 실신한 못처럼
일평생 직립으로 처박혀 삭아 문드러져야 했을 족속들이
세상 빌어먹을 세월호인지 네월호인지 모를
골수骨髓의 적선赤船을 앞세워 세상을 모조리 적폐積弊로 몰아
뇌를 다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리곤 "소득주도성장"이니 뭐니 해대싸며
국보國寶인 원전原電을 갈아엎고
성전聖殿의 터전인 기업을 불구대천 원수인양 매굿을 치더니,
이념의 강길을 실성한 듯 오가며 곳간을 퍼내고 있다
그 틈을 노린 민노총의 붉은 혈충血蟲들이
눈빛의 갈기를 세워 가슴에 휘발유를 지른다
도처에서 매굿을 당하는 성전의 기업은
메마른 하상에 파닥이는 물 천어川魚처럼
목마른 숨을 할딱이다 못해 화병火病까지 덮쳐 줄줄이 절명한다.
퍼내면 퍼낼수록 목이 타는 세상이여!
보면 볼수록 억장 무너지는 세상이여!
버들처럼 바람을 불러
삼단머리 풀어 이 세상을 쓸어내어야 하리라.
싹쓸이 세상을 쓸어야 하리라.
오늘도 누군가는 분노의 시대를 구할 구주救主의 칼을 갈고 있다
백정이 소를 잡기 위해서 칼을 갈 듯
어금니 불끈거리며 밤낮으로 칼을 갈고 있다
그 칼끝에 우리 모두 무너진 억장을 딛고
이 세상 구원救援의 꽃을 피워낼 수 있으리라.
// 뜬 구름 잡는 사나이._ 석등 정용표._
5월 초엔 동기들과 "탯자리 팔공산 종주산행"이 예정돼 있어서 사전에 관악산을 찾았다.
산문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하얀 여인들이 꽃가루같은 웃음을 뿌리며 앞서 가는 모습이 봄바람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오름길 한동안 가슴을 씻어 주는 경쾌한 계곡물 소리와 맑은 톤으로 떨어지는 새소리에 잡다한 세사도 사라진다.
그 산길에서 문득, 작년에 이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여인이 떠올랐다.
관악산 연주암 뒤편 윤장대 삼층석탑 곁에 자리를 펴고, 산정의 연주대戀主臺를 향하여 하염없이 절을 올리던 여인이었다. 그날 나는 산정에 들어 몇 천년 쯤 돼 보이는 넉넉한 큰 바위에 등을 맡긴 채 오수午睡를 즐긴 뒤, 터벅터벅 하산길에 들면서, 오름길에서 봤던 그 여인이 궁금하여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그때까지도 그 여인은 하염없이 없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저 만치서 조심스럽게 보니 퉁퉁 부어오른 여인의 얼굴은 절을 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온 몸을 하염없이 사르고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절박한 사연을 안고 저토록 절절한 배를 올리는 것일까.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절절한 절박함이 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것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를 일 같았다.
오늘 산길도 예외 없이 연주암 뒷편 윤장대로 향했다. 혹시나 그날 온 몸을 사르며 배를 올리던 그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고, 이 윤장대에 서면 관악산의 불꽃같은 형상과 천길 절벽에 둥지를 튼 연주대의 조망을 압권으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몸뚱아리를 하염없이 사르던 그 여인은 뵈질 않고, 그 자리엔 정갈한 봄볕이 가득 고여 있었다.
*관악산 산정의 풍경*
*KBS 기상관측소 및 중계탑*
* 사당역 산 능선 및 서울시 풍경*
*과천향교 입구*
과천 관악산 산길에서._석등 정용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