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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상처는 두고두고 쓰라렸다. 싯달타는 자식을 동반한 길손을 수없이 건네 주어야만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볼 적마다 부러웠다.
"이처럼 많은,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이, 이처럼 가장 큰 복을 타고났건만, 나는 어이해서 그것이 없단 말인고. 아무리 나쁜 인간, 도둑이나 강도조차도 자식이 있고,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의 사랑을 받는데, 나만이 그렇지 못하다니!" 그는 이렇게 단순한, 이렇게 지각 없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제 그만큼 소인배들을 닮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을 보는 그의 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전처럼 슬기롭고 자랑스러운 눈이 아니었다. 그 대신 그의 눈은 보다 따뜻하고, 보다 관심 있고, 보다 동정적인 눈으로 남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예사로운 나그네, 소인배들, 상인들, 군인들, 여자들을 배에 싣고 노를 저을 때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이제까지와 같이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남 사이로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색이나 이성에 의하여 행동하지 않고, 단지 충돌과 욕구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그들의 생활도 잘 이해가 되어, 자신도 그들과 같은 심정을 느꼈다.
그는 자기를 그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완성의 경지로 다가가면서, 그 마지막 상처의 아픔을 견디는 몸이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이들 소인배들이 자기와 동기간처럼 여겨졌다.
그들의 덧없는 허영이나, 끝없는 탐욕, 우스꽝스러운 작태도, 이제는 비웃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을 자기도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존경까지도 할 수 있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아들에 대한 미련한 아버지의 어리석은 자랑, 사나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몸을 치장하는, 허영심 강한 여인의 미친 듯한 노력 ―― 이 모든 본능, 이 모든 철부지 같은 짓,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으면서도, 무섭도록 강렬한, 강렬하게 살려는, 맹목적으로 돌진하려는 충동과 욕망은, 이제 싯달타에게는 결코 유치한 짓거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것들로 해서 삶을 이어가고, 이루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루어내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하고, 무한한 고뇌에 시달리고, 무한한 고뇌를 참고 견디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는 그들의 모든 고뇌 속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 속에서, 생명을, 생동하는 모든 것, 불멸적인 것, '범'을 보았다. 그들은 그 맹목적인 성실, 맹목적인 힘과 강인성 때문에 사랑스럽고도 경탄할 만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지자(智者)나 사색가에게만 있고 그들에게 없는 것이라고는, 단지 지극 사소한 한 가지 즉 '모든 생명은 단일' 하다는 의식과 의식된 사상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싯달타는 가끔 '생명은 단일' 하다는 이 지식, 이 사상이 그토록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일까? 그것도 혹시 하나의 유치한 작태에 불과하지 않을까? 사색적인 인간, 사색적인 소인배의 유치한 작태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의혹마저 품었다.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세속인은 지자나 사색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떤 점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나았다 ―― 마치 짐승이 그 생활에 필요불가결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조금도 방향을 틀리지 않고,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오히려 인간보다 나아 보이는 수가 있듯이.
애당초 '예지'란 무엇인가? 구도(求道)를 위한 나의 기나긴 편력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지극히 서서히 싯달타의 마음 속에서 성숙되어 갔다.
그것은 곧 생활의 와중에서 언제나 항상 '단일'의 사상을 생각하고, '단일'을 느끼고, '단일'을 들이마실 수 있는 그 능력과 정신의 준비와 비술(秘術)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서서히 그의 마음 속에 꽃피고 그리고 바즈데바의 늙은 동안(童顔)에서 그에게로 반사되어 왔다 ―― 조화가,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인식이, 미소가, '단일'이.
그러나 그의 상처는 여전히 쓰라렸다. 싯달타는 밤이나 낮이나 애틋하게 아들을 그리워했고, 마음 속에 사랑과 정을 길렀고, 고통으로 하여금 자신을 좀먹게 하면서, 자식에 대한 정 때문에 갖은 어리석은 짓을 다 하였다. 그러나 그 불길은 저절로 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상처의 아픔이 다시 심해졌을 때, 그는 아들이 그리운 나머지 정신없이 강을 건너 배를 버리고, 도시로 가서 아들을 찾으려 했다.
강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마침 건조기(乾燥期)였다. 그러나 강물 소리는 이상하게 울렸다. 강이 웃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강은 웃고 있었다. 강은 홍소(哄笑)했다. 그는 분명히 이 늙은 사공을 비웃었다.
싯달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강물에 몸을 굽히고 더 똑똑히 들으려 했다. 그러다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강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는 그 어떤 잃어버린 것, 그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었다.
그는 곰곰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 그 얼굴은 자기가 옛날에 보았고, 사랑했고, 또한 두려워하던 어떤 얼굴과 비슷했다. 그것은 그 바라문, 그의 아버지의 얼굴과 흡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생각났다.
"오랜 옛날에, 젊은 내가 고행자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 허락을 얻으려고 얼마나 아버지를 졸랐던가? 나는 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던가? 그리고 그렇게 헤어진 이후,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갔던가? 나의 아버지 역시 나 때문에, 지금 내가 내 아들 때문에 겪는 고통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 나의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아들의 얼굴을 다시는 못 본 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싯달타 역시 그와 똑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것은 하나의 희극이 아닐까? 이상하고도 어리석은 하나의 희극이 아닐까?―― 이 되풀이는, 이 돌고 도는 숙명의 윤회는?"
강은 웃었다. 그렇다! 고통의 극복에 의하여 해결되지 못한 것은 모두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똑같은 고뇌에 거듭거듭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싯달타는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자기 아들 생각을 하면서, 강물의 비웃음을 받고, 자기 자신과 싸우고, 절망에 빠지면서, 동시에 강물과 함께, 자신과 세상을 소리 높이 웃어 주고 싶은 심정에 빠지면서 배를 다시 돌려 오막살이로 향했다.
아, 아직도 그의 상처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운명에 항거하는 것이다. 그의 고뇌에서는 아직도 광명과 승리의 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오막살이로 돌아가면, 바즈데바 앞에 모든 것을 털어놓고, 모든 것을 보여 주고, 경청(傾聽)의 명수인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가 없었다.
바즈데바는 오막살이 안에 앉아서 바구니를 겯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나룻배를 젓지 않았다. 그 눈은 물론이요, 팔과 손도 쇠약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나 다름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것은, 오직 그의 얼굴에 어린 환한 기쁨과 선의(善意) 뿐이었다.
싯달타는 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까지 서로 피해 오던 화제에 대해서―― 자기가 아들을 쫓아서 도시에 갔던 일, 타는 듯이 아픈 상처, 행복한 아버지를 볼 적마다 느끼는 부러움, 또 이와 같은 욕망이 어리석은 것임을 알면서도 그 욕망과 부질없는 싸움을 하는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는 가장 아픈 데를 건드리는 사실까지도 죄다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상처를 드러냈다. 오늘 있었던 일도 숨김 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강을 건넜으며, 강이 어떻게 그를 비웃었으며, 어떻게 홍소했던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바즈데바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 이야기를 듣는 바즈데바의 태도가 그 어느때보다도 더 진지하다는 것을 싯달타는 알 수 있었다. 자기의 고통이나 우수가 얼마나 막힘 없이 그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갔는가를 알았다. 그와 동시에 자기의 은밀한 희망도 함께 그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갔다가 다시 자기에게로 흘러온다는 것도 알았다.
이와 같이 그에게 자기의 상처를 보여 준다는 것은, 마치 그것을 강물에 식히다가 마침내는 강물 자체와 융합시키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같이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고백하고 참회함에 따라서, 싯달타는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즈데바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꼼짝도 않고 듣고 있는 사람은, 마치 나무가 빗물을 빨아들이듯이 나의 고백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이 늙은이는, 사실은 강 그 자체이며, 신 그 자체이며, 영원한 것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싯달타가 자기 자신과 그 상처에 대해서 생각을 않게 되자, 바즈데바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그의 인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보다 강하게 느끼고, 보다 깊이 인식함에 따라서, 그는 아무런 의혹도 없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 삼라만상은 질서 속에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바즈데바는 이미 일찍부터, 아니 처음부터 언제나 이러했었다. 다만 나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도 그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느꼈다 ―― 나는 이 늙은 바즈데바를, 마치 사람들이 신을 우러러 보듯이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오래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마음 속으로 바즈데바에게 작별을 고하기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바즈데바는 그 다정하고, 얼마간 쇠약한 눈을 그에게로 돌리더니, 말은 없이, 무언의 사랑과 명랑으로, 이해와 지식의 빛으로 그에게 응답했다. 늙은이는 싯달타의 손을 잡고 강가로 데리고 가서, 늘 앉는 곳에 그와 함께 앉더니, 강을 향해서 미소를 보냈다.
"당신은 강이 웃는 소리를 들었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덜 들었소. 자, 귀를 기울입시다. 당신은 더 많은 것을 듣게 될 것이오."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여러 가지 소리로 부르는 강의 노래가 정답게 들려왔다. 싯달타는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흐르는 물 속에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났다. 아들 생각으로 슬퍼하는 자기 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자기 자신의 외로운 모습도 나타났다. 자기 역시 멀리 가 버린 아들에 대한 애착의 굴레에 묶여 있었다. 아들의 모습도 나타났다.
그 역시 외로운 모습이었다. 온갖 젊은 욕망이 불타오르는 길을 미친 듯이 돌진하는 젊은 모습이었다. 저마다 자기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저마다 자기의 목표에 얽매여 있었고, 저마다 고뇌를 짊어지고 있었다.
강은 고뇌의 소리로 노래불렀다. 강은 애모의 소리로 노래 불렀다. 강은 괴로운 듯이 목표를 향해서 흘러갔다. 그 소리는 애소(愛訴) 하듯이 슬프게 들려왔다.
"들으시오?" 하고 바즈데바의 말 없는 눈이 그에게 물었다.
싯달타는 끄덕였다.
"더 잘 들어보시오!" 하고 바즈데바는 속삭였다.
싯달타는 더 잘 들으려고 애썼다. 아버지의 모습, 자기 자신의 모습, 아들의 모습이 뒤섞이고 한데 엉클어졌다. 카마라의 모습도 나타나서 한데 엉클어졌다. 그리고 고빈다의 모습, 그 밖의 갖가지 모습, 이러한 것들이 서로 뒤얽히고 뒤섞여서 강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 목표를 바라고 흘러갔다 ―― 애모(愛慕)하면서, 갈망하면서, 괴로와하면서, 그리고 그 강의 소리는 애모와 몸을 지지는 듯한 신음과 억제할 수 없는 욕망에 차서 울리고 있었다. 목표를 바라고 강은 흐르고 흘러갔다.
싯달타는 자기 자신, 자기의 육친, 그리고 이제까지 만났던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강이 바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았다. 모든 물결, 모든 물이 고뇌하면서 목표를 향해서, 무수한 목표를 향해서, 서둘러 흘러갔다 ―― 목표를 향하여, 호수를 향하여, 여울을 향하여, 바다를 향하여, 그리하여 모든 목적에 도달했다.
그러자 그 모든 목적들 뒤에 또 하나의 새로운 목적이 잇따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물은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졌다. 샘이 되고,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새로운 것을 향하여 흘러갔다.
그러나 그 애모의 소리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고뇌에 차고, 갈구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다른 여러 가지 소리가 거기에 더해졌다 ―― 기쁨의 소리와 고통의 소리, 선과 악의 소리, 웃는 소리와 슬퍼하는 소리, 백 가지 소리, 천 가지 소리가!
싯달타는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었다. 이 때 그는 완전히 귀가 되었다. 그의 몸과 마음은 듣기 위해서 있었다. 완전히 무아의 경지에서 그 무엇인가를 자기 몸 속에 빨아들이려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는 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듣는 법을 완전히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까지도 그는 이미 그 모든 것을, 강에서 나는 숱한 소리들을 듣기는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전혀 새롭게 들렸다.
이미 그는 그 숱한 소리들을 하나하나 분간하기는 불가능했다. 기쁨의 소리와 통곡의 소리, 아이의 소리와 어른의 소리, 그것은 모두 뒤얽히고 뒤섞여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어리석은 애모의 비탄과 지자의 홍소, 분노의 부르짖음과 죽어가는 자의 신음――이 모두는 하나였다.
모든 것은 서로 얽히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헝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일체를 합친 것―― 일체의 소리, 일체의 목표, 일체의 애모,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악을 합친 것이 이 세상이었다. 일체를 합친 것이 생성과 현상의 강이요, 삶의 음악이었다.
그리하여 싯달타가 이 강의 물소리에, 이 천만 가지 소리들의 합창에 귀를 기울였을 때, 고뇌와 웃음을 구별하지 않고, 자기의 정신을 어느 특정한 소리와 결부시켜 거기에 자아를 몰입시키는 일 없이, 모든 소리, 전체, 단일을 들었을 때, 천만 가지 소리의 위대한 합창은 오직 하나의 말, 즉 '옴' ―― 완성 ―― 으로 되어 있었다.
"들리시오?" 하고 다시 바즈데바의 눈이 물었다.
바즈데바의 미소는 환하게 빛났다. 그의 늙은 얼굴을 덮은 모든 주름살 위에는, 마치 강의 모든 소리들 위에 '옴'이 감돌 듯이, 밝은 미소가 감돌았다. 벗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바즈데바의 미소가 밝게 빛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싯달타의 얼굴에도 같은 미소가 빛났다. 그의 묵은 상처에서 이제야 꽃이 피어났다. 그의 고뇌는 빛을 내었다. 그의 자아는 '단일'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순간 싯달타는 운명과의 싸움을 그만두고, 번뇌를 버렸다. 그의 얼굴에는 모든 야욕(我慾)의 기반(羈絆)에서 벗어나고, 완성을 알고, 생성의 강, 생명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남과 함께 괴로와하고, 남과 함께 기뻐하고, 흐름에 몸을 맡겨, '단일'로 돌아간 예지의 빛이 피어나 향기를 풍겼다.
바즈데바가 강가의 자리에서 일어나 싯달타의 눈을 들여다 보고, 그 속에 빛나는 그의 예지의 빛을 보았을 때, 그는 그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벗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대고 말했다.
"나는 이 때가 오기를 기다렸소. 벗이여! 이제야 마침내 그 때가 왔소. 그럼, 이만 나를 떠나게 해 주시오. 나는 오랜 동안 이 때가 오기를 고대했었소. 나는 오랜 동안 나루터지기 바즈데바였소. 이제는 그 일도 끝났소. 잘 있거라, 오막살이여. 잘 있거라, 강이여. 안녕히 계시오, 싯달타여!"
싯달타는 떠나가는 사람 앞에 머리를 깊이 숙였다.
"나는 알고 있었소" 하고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숲으로 가시겠지요?"
"나는 숲으로 가오. 나는 '단일' 속으로 가오." 하고 바즈데바는 온 몸이 광명으로 싸이면서 말했다. 빛에 싸인 채 그는 멀어져 갔다.
싯달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깊은 환희, 깊은 엄숙 속에, 싯달타는 평화로 가득 찬 그의 걸음을 보았다. 윤광(輪光)을 인 그의 머리를 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