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리랑
김덕남
총성은 멎었어도 의족의 피, 아직 붉다
평상 위 깽깽이가 아리랑을 타는 소리
십리도 못 간다는 사랑
구만리를 건넌다
수척한 그림자로 선율이 흐느낀다
이방인을 세워둔 채 속눈썹 떨고 있는
깡통에 곤두선 동전
넘어질 듯 조아린다
동란의 그날 다시 지뢰밭을 건너온다
허리를 잘리운 채 벼랑 끝 짚고 짚어
바이욘* 돌탑을 돌아 이끼되어 앉는다
* 캄보디아에 있는 사원, 정부는 상이용사들에게 연금을 주지 못해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함.
(시인의 에스프리)
한민족의 DNA가 아리랑으로 흐른다
김덕남
우리는 즐거워도 슬퍼도 노래를 부른다. 즐거워 부르는 노래는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때문에 박자도 빨라지고 동작도 신명이 난다. 밀양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은 흥겨운 가락에 속한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면 더욱 흥이 난다. 반면 삶의 애환, 이별의 정한이 담겨 있는 정선아리랑은 고요히 눈을 감고 들으면 가슴을 내리누르는 아픔이 전해지면서 콧날이 시큰해진다. 어떻든 아리랑은 구음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노동요 내지는 집단성, 시대성, 사회성이 가미되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매기는 소리를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고 받는 소리(후렴)를 합창하여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아리랑을 캄보디아의 사원을 순례하는 길에서 들었다. 지뢰나 내전으로 다친 상이용사들이 길가의 평상에서 깽깽이로 합주를 하고 있었다. 순간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이들에게 정부가 연금을 줄 수 없어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거리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50 ~ 60년대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울컥했다. ‘십리도 못 간다는 사랑, 구만리를’ 건너와 먼 먼 이국에서 동정을 자아내고 있다. 아직도 허리가 잘린 채로 벼랑을 걷고 있는 내 나라를 생각하며 「슬픈 아리랑」을 나도 몰래 따라 불렀다.
- 《시와소금》2018.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