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역사를 품다 9> 《시조21》 2023. 가을호 연재
다산, 길을 열다
김덕남
‘세상이 왜 이래?’라는 노랫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파싸움에 해 지는 줄 모르던 200여 년 전이나 여소야대의 당리당략에 발목 잡는 오늘이나 닮은꼴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민중이 깨어있고 세계의 이목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이런 시기에는 책을 읽고 어지러운 내면을 추스르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정약용 지음, 박지숙 엮음)를 동시에 읽는다. 같은 뜻의 다른 번역문장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잔잔한 감동은 덤이다. 다산은 폐족으로 전락한 아들들이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기를 편지에서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또 흑산도에서 귀양살이하는 형님 손암에게 학문을 토로하거나, 제자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세상의 지혜를 가르치는 글을 써 보낸다. 오늘날에 비추어도 길잡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유배지에서 읽고 쓰고 고뇌한 현장을 찾아 그 길을 밟아 본다.
천주학을 믿는다는 죄목으로 다산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맏형 약현의 처남으로 다산 형제들에게 처음으로 하늘과 세상, 인간 본성을 담은 천주학을 전파한 이벽은 유교 사회의 규범을 넘지 못하고 집 안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1979년 이벽의 묘 이장 시 검시한 확인서에는 치아가 검게 변색하여 독극물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진 바 있다. 매형인 이승훈은 다산 형제들에게 영세를 준 인물로 옥사했다. 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은 백서사건으로 능지처참 되고 그 가족과 노비는 사방으로 유배되었다. 셋째 형 약종은 아들 철상과 함께 참수되고, 둘째 형 손암 약전은 다산 본인과 함께 대역죄인이 되어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유배길에 올랐다. 나주 율정에서 흑산도로 가는 형님과 헤어진 후 영암을 거쳐 강진에 도착하니 천주학쟁이라고 아무도 유배의 거처를 내어주지 않았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처마 밑 노숙이라도 해야 할 처지였다. 그때 동문 밖 주모의 배려로 무너지려는 몸을 간신히 누일 수 있었다.
강진읍 사의재길에 그 동문주막이 복원되어 있다. 주모와 외동딸이 살았던 초가로 바깥채는 지금도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팔고 있다. 안채의 방 둘 중 작은방 문 위에 ‘사의재四宜齋’란 현판이 걸려있다. 마당에는 그 시절의 우물이 있고 주모와 딸의 석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여기가 바로 강진의 첫 유배 거처로 절망과 분노 대신 붓을 든 다산실학의 첫 산실이다.
삶의 해독 강요하는 봄볕들 수런댈 때
그 어디 갈 데 없고 마음도 둘 데 없어
앞서간 그 마음 따라 / 그대 뜰을 걷습니다
‘겨울 냇물 건너듯이 사방을 조심하라’
스스로 경계의 말 큰 울림 결이 되어
몇 벌 죄 다 부려 놓고 / 바람 한 짐 졌습니다
누옥의 남창 열고 밤 별자리 헤아린 뒤
해서는 안 되는 짓 하지 말아야 할 일
도덕경 책장 넘기며 / 바른길을 새깁니다
- 오종문 「여유당 다산 선생께」 전문
“겨울 냇물 건너듯이 사방을 조심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사람을 피하였는데, 소문을 들은 이웃 주민들이 글을 가르쳐 주기를 간청하자 겨우 몸을 추스른 다산은 “해서는 안 되는 짓,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은 현판을 내걸었다. ‘사의재四宜齋’다. 생각을 맑게, 용모를 단정하게, 말은 절제하며, 행동은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다짐한 것이다. 글을 가르치면서 고향의 아들과 흑산도에 유배 중인 둘째 형 손암에게 편지를 자주 쓴다. 손암에게 쓴 편지에는 사의재 주모를 보고 배운다는 글을 적기도 한다.
「어느 날 저녁, 주인집 노파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노파가 갑자기 제게 물었습니다. “나리께서는 글 읽는 사람이니 이 뜻을 아시겠지요? 부모의 은혜는 똑같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더 애쓰시지요. 그런데 옛 성인이 가르침을 펼칠 때 아버지를 중히 높이고 어머니는 가벼이 낮췄습니다. 또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서 상복을 입을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 등급 낮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하고, 어머니 집안은 도외시했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짓이 아닌가요?”하고 물었습니다. … 중략 … 노파의 말을 듣고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리고 크게 깨닫고 노파에게 공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밥 파는 노파가 세상의 오묘한 진리를 펼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정약용 지음 박지숙 엮음. p122)
주모의 말에 흠칫 놀라는 다산의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심히 당황했으리라.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깨달음을 주는 말이니 신분의 귀천을 떠나서 어찌 공경하는 마음이 일지 않았겠는가. 4년 동안 주모의 따뜻한 배려와 딸의 지극정성에 다산의 마음도 한때나마 훈풍이 불었으리라.
주막에서 듣고 쓴 시 「애절양哀絶陽」을 보면 참담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관청에서는 죽은 시아버지와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군역 대신 군포를 매겼다. 군포를 낼 수 없자 아전이 소를 뺏어갔다. 남편이 칼을 들어 ‘아이 낳은 죄로구나.’하며 자기 양물을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피가 뚝뚝 흐르는 양물을 가지고 관청에 가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문지기가 막아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통분에 젖어 쓴 시다. 시대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관리의 부패에 항의하는 백성을 보듬는 마음이 절절하다.
번잡한 주막 사의재에서 지내던 중 혜장스님의 도움으로 강진읍 고성암으로 거처를 옮긴다. 거처하는 방을 은혜에 보답하는 뜻의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 이름 지었다. 외로운 귀양살이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귀한 벗이 된 혜장은 오랫동안 갈망해온 배움의 갈증을 풀 수 있었다. 다산은 1년 가까이 머물면서 강진 여섯 제자에게 유학 경전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때 아들 학연이 농사지은 마늘을 팔아 마련한 여비로 천리 먼 길을 찾아왔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며 아들에게 주역과 예기 등 인간 도리를 가르쳤다. 문살에 귀를 대니 글 읽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듯하다.
이후 아전이자 여섯 제자 중 막내인 이학래 집에 2년간 머물면서 강진지역 서민들의 비참함을 눈으로 보고 느낀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실학연구에 매진하는 불세출의 실학자를 만나는 행운을 우리는 맞고 있다.
강진의 네 번째 유배 거처이자 마지막 거처인 다산초당을 찾아간다. 백련사 뒷길을 따라 천연기념물 151호 동백숲길에 들어섰다. 수백 년 된 동백숲에 직박구리가 꽃을 탐하며 어지러이 오간다. 신유년 순교자의 넋인 양 송이째 뚝, 뚝 지는 꽃에서 더운 피가 돌고 있다.
차마, 뒤돌아서서 올 수가 없었네
새들을 불러 모은 / 낭자한 핏빛 유혹
속세도 / 다 잊어버리고 / 숨은 듯 피고 있어
으늑한 남쪽 끝, 나비처럼 살다 간
무심의 그대 숨결 / 내 안에 젖어드네
한 백년 / 감금되어도 좋을 / 그 적요의 붉은 숲
- 윤경희 「백련사 동백숲」 전문
기다림, 애타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홍동백 꽃송이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샛노란 꽃술 세워 시위를 당길 듯한 꽃을 피해 이리저리 까치발을 옮긴다. “한 백년 / 감금되어도 좋을 / 그 적요의 붉은” 동백숲이 하늘을 가린다. “속세도 / 다 잊어버리고 / 숨은 듯 피”는 뜻은 속세와 부처님의 세상을 구분하기 위한 것일까.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를 울울창창 막고 있다. 막음은 뚫리기 위함일 것, 다산은 배움을 갈망해 수시로 찾아오는 혜장을 위해 밤 깊도록 문을 열어두었다고 한다. 유학과 불교의 세계에 소통의 길이 열렸으며 우정 또한 깊어갔다.
이즈음 혜장은 초의를 다산에게 소개한다. 초의는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와 동갑이니 다산에겐 아들뻘이다. 초의는 다산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우고 염불, 범패, 탱화와 단청, 다茶, 바라춤까지 추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갔다. 흠모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학문은 더욱 깊어졌다. 그들이 오가던 이 동백숲길을 “차마, 뒤돌아서서 올 수가 없”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1km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니 다산초당의 동암이 보인다. 주막과 제자의 집 등 7년여를 전전하다 1808년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거처를 옮겨 11년을 보냈다. 여기가 바로 18명의 제자를 길러낸 다산실학의 핵심적인 산실이다. 원래 이곳은 다산의 외가 해남윤씨 윤단의 산정이었다. 산정에는 1천여 권의 책이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학문을 탐구하기에는 최적이다. ‘백성을 돌보는 마음의 글’인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직접 돌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읽는다. 다산의 사상이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최대 역작이다.
초당 동쪽 뜰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의 잉어와 대화를 하며 날씨를 예측했다고 한다. 다산은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는 동암에서 집필하며 손님을 맞기도 하였다. 제자들은 서암에서 기거하며 다성각茶星閣이란 현판 아래 차와 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하였다. 그 결과 스승의 저술 자료를 수집, 정리, 정서, 편집 등 일사불란하게 작업하여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등 500여 권의 저서를 집대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름은 초당이나 와당이다. 툇마루에 앉으니 새소리가 아름답다. 사방이 숲이라 연구에 집중하려 해도 산새들이 울어대니 귀에 솜을 막고 연구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아무리 솜을 털어막아도 뻐꾸기는 울고 그 소리는 두고온 부인 홍 씨가 부르는 소리 같이도 들렸으리라.
다산은 연전에 부인이 보낸 편지를 꺼내 읽는다. “올해는 병인년(1806) / 시절은 이미 동짓날 / 눈 내리고 날은 차가우니 / 걱정스런 마음 날로 더해가네 / 등불 아래 한 많은 여인은 / 뒤척이며 잠 못 이루네 / 그대와 이별한 지 7년 / 서로 만날 날 아득하니 ……”라고 시로 읊었다. 몇 날 며칠을 바라보다 부인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짓고 같이 보내온 색 바랜 노을빛 치마를 꺼냈다.
복숭아 꽃잎처럼 날아온 편지 한 장
그 백지 그러안고 천일각에 올라서니
강물이 절뚝거리며 내게로 오고 있다
사금파리 날 같은 윤슬에 눈이 먼 새,
팽팽한 연줄 한 올 움켜쥔 흰 물새가
뉘엿한 붉새를 물고 내게로 오고 있다
미처 못다 부른 연서 한 필 펼쳐두고
말 없는 그 말들이 초당에 쌓이는 밤
야윈 강 뒤척일 때마다 / 일어서는 저녁놀
- 유헌 「노을치마 2」 전문
“붉새”(노을)치마를 펼치니 “복숭아 꽃잎처럼” 곱던 부인이 떠오른다. 유뱃길 뜨는 날 차마 인사말을 못 해 허겁지겁 따라오던 모습이 가슴을 짓누른다. “팽팽한 연줄 한 올”에 매달린 아슬한 목숨인 것을. 죽음도 삶도 내 것이 아닌 것을. 그렁한 눈을 들어 멀리 보던 그 얼굴을 살아서 만날 수 있으려나. 신혼 때 입고 온 진홍 치마가 뉘엿한 노을빛이 되었구나. 말 없는 말을 주고받는다. “미처 못다 부른 연서 한 필 펼쳐두고” 꼬박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야 다섯 폭의 치마를 자르고 한지를 바른다. 두 아들에게 주는 경계의 말로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듯 행서, 행초서, 전서, 예서로 된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어 고향집으로 보냈다.
하피첩은 다산의 후손들이 보관하다 한국전쟁 당시 분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었다. 하피첩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6년 KBS TV방송 진품명품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2004년 어느 날 수원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한 할머니 수레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후 하피첩은 개인 소유로 있다가 2015년 9월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매에서 낙찰받아 전시하고 있다.
나머지 한 폭은 딸에게 주는 ‘매조도’를 그리고 “사뿐사뿐 포르르 새들이 날아와 / 우리 뜰 매화나무 가지에 앉았네 / 매화꽃 향내 그윽하니 / 꽃향기 사모하여 홀연히 찾아왔으리 / 이제부터 여기에 깃들고 머물러 / 가정 꾸리고 즐겁게 살려무나 /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 그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라고 시를 써넣었다.
꿈 많고 탐구심 강한 다산이 유배란 중벌을 받아 좌절과 슬픔 대신 붓을 들어 자식들에게 ‘勤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물려주고, 18년 동안의 유배생활 중 과골삼천踝骨三穿, 즉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공부하여 500여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유배에서 풀려 고향에 돌아와 저술한 책을 정리하고 학문에 힘쓰다 1836년 일흔다섯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사내는 모름지기 사나운 매와 짐승처럼 치솟는 기상을 품어야 한다는 진취적인 생각을 심어준 천재 과학자요 인문학자이면서 대실학자 다산이다. 다산 정신은 오늘에도 살아 있어, 우리가 역경과 고뇌를 넘어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올해의시조집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 《시조21》 2023.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