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출신 대학자 정구(퇴계와 남명의 제자)가 가야산 기슭 대가천에 조성한 구곡
무흘구곡(武屹九曲)은 경북 성주 가야산 북쪽을 흐르는 대가천에 조성된 구곡
무흘구곡을 처음 설정하고 경영한 이는 성주 출신으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대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 1543-1620)
...........................................................................................................................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수도지맥’의 수도산에서 시작해 가야산을 휘감고 흘러온 대가천(大加川) 맑은 물줄기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이르러 양쪽에 너른 들판을 빚고 시내의 폭을 넓히면서 잔잔히 흐른다. 그 물길은 양정교 근처에 이르러 바위 언덕을 만나 잠시 멈추는데, 여기가 바로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鳳飛岩)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흘구곡의 제1곡 봉비암 위에 조성된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봉황 날갯짓 하는 바위 위의 회연서원
‘봉황이 비상하는 모습’인 봉비암 위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은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한강은 41세 때 이곳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짓고 침실을 불괴침(不愧寢), 창문을 매창(梅窓), 헌(軒)을 옥설헌(玉雪軒)이라 했다. 또 100그루의 매화와 대나무를 정원에 심고는 백매원(百梅園)이라 불렀다.
회연서원으로 들어서면 나그네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서원 입구와 뜰 앞에 가득한 매화나무들이다. 수백 그루의 매화나무들이 서원 둘레에 있는데, 한강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0그루의 매화나무는 세월이 흐르며 거의 고사했고, 지금은 세 그루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제2곡인 한강대(寒岡臺)는 회연서원에서 대가천 물길을 따라 약 1.5km 거슬러 오른 물가에 솟은 20~30m 높이의 암벽이다. 강둑에서 바위로 접근하려면 강변의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따라서 한강대 암봉 정상에 직접 오르려면 회연서원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져 있는 청주 정씨 집성촌인 수성리 갓말에서 뒷길로 5~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한강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청주 정씨 집성촌인 갓말에는 한강의 종손이 살고 있는 한강종택(寒岡宗宅, 문화재자료 제614호)이 남아 있다.
한강대 정상 바위에는 ‘한강대(寒岡臺)’라 새겨진 석각이 눈길을 끈다. 힘찬 필체를 감상하고 강 쪽으로 몇 발자국 더 내려가면 평평한 바위에 한강이 지은 〈우음(偶吟)〉이란 절구 한 수가 보인다.
“솔숲 사이 집에서 잠자리 들고(夜宿松間屋) / 물가의 누각에서 새벽잠 깨네(晨興水上軒) / 앞뒤에 우렁차다 솔과 물소리(濤聲前後壯) / 이따금 고요 속에 들려오누나(時向靜中聞)”
시를 읊은 다음, 바위 정상에서 대가천 냇물을 내려다보면 굽이도는 물줄기 너머로 성주의 아름다운 산천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제3곡 무학정(舞鶴亭)은 한강대에서 대가천을 따라 12.5km를 거슬러 올라야 한다. 성주호를 왼쪽에 끼고 달리다 보면 잔잔한 호수가 끝나고 다시 강줄기가 이어지는 물가에 솟은 바위가 눈에 띈다. 선암(船巖), 주암(舟巖)이라고도 하는 ‘배바위’인데, 바위 꼭대기에 앉은 정자가 주변의 자연 풍광과 잘 어울린다.
무학정에서 대여섯 물굽이를 돌면서 4km 정도 오르면 냇가 건너에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선바위’라 불리는 제4곡 입암(立巖)이다. 한강 정구는 이 굽이를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가야산 홍류동보다 빼어나다고 자부했다. 한강이 당시 보고 느꼈던 그 풍광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해,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이곳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고 간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1 한강대 정상 바위에 새겨진 석각. 강인한 느낌이 드는 필체다. 2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 원경. 3 무흘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제9곡 용추(龍湫). 바위 협곡을 울리는 우렁찬 폭포수 소리에 정신이 잠시 아득해진다.
입암을 뒤로하고 계속 대가천을 거슬러 오른다. 냇가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며 30번국도를 따라 3.8km 달리면 성주군의 가천면과 김천시의 증산면의 경계에 걸린 은적1교에 이른다. 다리 주변에는 깎아지른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맑은 옥류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제5곡 사인암(捨印巖)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흘구곡의 사인암은 은적1교 상류 10m 지점 왼쪽의 암벽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이보다 상류 250m 지점의 오른쪽 바위가 진짜 사인암임이 최근 밝혀졌다. 1990년대 초반 국도 확포장 공사 과정에서 사인암의 바위가 훼손됐고, ‘사인암(捨印巖)’이라고 새겨진 석각마저 분실되면서 은적1교 바로 상류에 솟은 바위가 사인암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사인암을 뒤로하면 김천시 증산고을이다. 수도산에서 북류한 수도계곡은 증산고을을 적시며 옥동천이라는 이름으로 백천교 부근에 이르러 대가천 본류에 합류하는데, 이 굽이가 바로 제6곡 옥류동(玉流洞)이다. 바윗덩이와 어우러진 계류는 맑고 옥빛 소(沼)도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너럭바위와 조화를 이룬 정자 풍광이 아름답다.
옥류동을 벗어나면 길은 수도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수도암(修道庵) 가는 길이다. 해발 960m에 터를 잡은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발견하고 7일 동안 춤을 췄을 정도로 터가 좋아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암자다.
수도계곡은 해발고도가 높고 아름다운 풍치에 계류도 맑아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경사가 약간 급해질 무렵, 갈림길에서 길가 오른쪽에 있는 ‘만월당 굿당’이라 적힌 팻말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로 70~80m 정도 개울을 향해 내려가면 냇가에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 바위 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풍경이 제법 괜찮다. 그 옆에는 ‘무흘구곡 7곡 만월담’이라 적힌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최근 밝혀진 진짜 제7곡 만월담(滿月潭)은 이 굽이에서 상류로 450m 올라간 지점이다.
최근 새로 밝혀진 진짜 만월담은 큼직한 너럭바위가 집채만 한 바윗덩이부터 호박돌에 주먹돌까지 다양한 크기의 바윗돌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길 쪽으로 평평한 터를 조성하느라 축대를 쌓으면서 경관이 많이 훼손되긴 했어도 물굽이만 본다면 옛 흔적이 그런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만월담에서 150m 정도 오르면 무흘정사가 있던 너른 터에 닿는다. 한강 정구가 학문을 닦고 연구한 무흘정사(武屹精舍)가 있던 ‘한강 무흘강도지(寒岡 武屹講道址)’다. 한강은 62세 때 무흘구곡 중 만월담과 와룡암 사이의 평평한 곳에 무흘정사를 짓고 저술 활동에 몰두하는 한편, 제자를 길러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때 한강이 노래한 절구 한 수가 귀에 쟁쟁하다.
“산봉우리 지는 달 시냇물에 어리는데 / 나 홀로 앉았을 제 밤기운 싸늘하구나 / 여보게 벗님네들 찾아올 생각 마소 / 구름 짙고 쌓인 눈에 오솔길 묻혔거니”
‘무흘강도지’를 뒤로하고 상류로 오르면 계곡의 풍치는 점점 좋아진다. 계곡 바닥은 온통 새하얀 너럭바위의 연속이며, 개울 건너에는 병풍 같은 암벽이 높게 솟아 있다. 그러다 문득 밝은 기운이 두루 퍼지면서 여러 개의 와폭이 연이어 반긴다. 제8곡 와룡암(臥龍巖)이다. 수도산에서 북류하는 수도계곡 맑디맑은 계류는 이 굽이에서 완만하게 누운 바위 위로 흘러내린다. 길 쪽에 붙은 너른 반석에 ‘와룡암(臥龍巖)’이라 쓴 글씨는 용의 모습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흘구곡의 제4곡인 입암. 맑은 냇물은 입암 아랫도리를 적시고 부드럽게 굽이돌면서 흘러간다.
우렁찬 폭포소리는 승천하는
용의 울부짖음인가
와룡암에서 2km 정도 시원한 물줄기를 따르면 문득 계곡을 울리는 우렁찬 물소리에 저절로 눈길이 길 아래 협곡 쪽으로 끌린다. 거기에 용추폭포가 숨어 있다. 수도산에서 발원해 흐르던 계류는 이 지점에 이르러 문득 17m의 낭떠러지를 만나 뚝 떨어지는데,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치며 안개와 무지개를 만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폭포수는 수량 많은 수도산의 모든 물을 끌어 모아 발원한 물길이 처음으로 빚어낸 수도산의 명품이다.
무흘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제9곡 용추(龍湫)는 도학의 절정이다. 그런데 한강 정구는 마지막 굽이에서 폭포를 노래하는 게 아니고, ‘샘물의 근원’을 노래한다. ‘학자의 정신이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리라. 한강은 이 용추에서 도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학문적 성찰을 이루고, 무흘구곡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아홉 굽이라 고개를 돌리고서 한탄한다 / 이내 마음 산천을 좋아한 게 아니거니 / 샘물 근원 이곳에 형언 못 할 묘리 있어 / 여기 이걸 놓아 두고 다른 세계 찾을쏘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여행 길잡이
무흘구곡의 아홉 굽이는 제1곡 봉비암(鳳飛岩), 제2곡 한강대(寒岡臺), 제3곡 무학정(舞鶴亭), 제4곡 입암(立巖), 제5곡 사인암(捨印巖), 제6곡 옥류동(玉流洞), 제7곡 만월담(滿月潭), 제8곡 와룡암(臥龍巖), 제9곡 용추(龍湫)다. 경북 성주군의 수륜·금수면부터 김천시의 증산면까지 총 35.7km에 걸쳐 있다. 제1곡부터 제6곡까지는 차량을 이용하는 게 좋고, 제7곡 만월담부터 제9곡 용추까지는 걷는 것도 괜찮다. 더위를 식히기에 좋은 곳은 제4곡 입암, 제8곡 와룡암, 제9곡 용추 주변이다.
<월간 산>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 → 33번국도 → 대가면 → 양정삼거리(좌회전) → 회연서원(봉비암)
출처: https://daewh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