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사회복지 시각으로 토른하며 야금야금 성장하는 우리
지역복지 활동가의 건강한 삶, 지속 가능한 성장의 마중물!!!
내일을 위한 시간, Two days one night
8:8, 반은 찬성하고 반은 반대한 순간 16명은 보너스를 받게 되었고, 한명은 해고 당하게 됩니다. 해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보다 더 약한 어떤 이가 해고되는 상황이 되었겠지요. 절반은 공감했고, 절반은 각자의 사연을 이유로 외면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흔히 많은 것들에 대해 ‘내’ 일 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일이 아닌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들의 일이기 때문에 고통 받거나 피해 받아도, 심지어는 목숨을 잃어도 무덤덤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누군가의 ‘해고’, 그리고 그 일을 사소화하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사연, 그리고 그 사연들을 받아 이겨내는 한 해고 예정자의 이틀 동안 벌어지는 싸움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발제자 민국이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꼽습니다.
“요즘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계약직이라는 자리이기에 드는 고민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고민들을 야금야금 자리에서 나누고 같이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놓쳤었거든요.”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함이다. 일을 하며 내가 서있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함도 분명하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분노는 약자에게로 향하도록 설계되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이상한 구도, 고용관계에서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 자본을 매개로 그들끼리의 갈등을 부추겨 원하는 바를 득하는 교묘함. 동료의 복직이 보너스의 착취가 되어 버리는 현실, 나보다 약한 누군가의 희생되어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 같은 삶 속에서 당사자이며 동료인 우리의 입장은 어떠한지..(발제문 중)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로는
끊임없이 격려하며 동료들을 만날 것을 권하는 남편,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관계를 기반으로 일하는 우리들에게 일과 삶의 경계는 어디쯤인지?
내가 ‘사소화’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로 이야기합니다.
남편, 조력자로서
극 중 남편을 봤을 때 사회복지사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으로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아내보다는,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합니다.
우직하고 한결같은 남편의 모습에 대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해고당했을 때의 무너짐,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무너짐.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상처와 마음 닫힘을 미리 방지하려고 한 건 아닐까? 우울을 극복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사람에게 받는 상처를 해결해주기 위한 역할이 아니었을까? 라구요. 마지막, 남편에게 하는 아내의 말은 남편이 조력자로서 함께 잘 싸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 잘 싸웠지??” 힘들고 외로웠던 싸움, 남편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있었을까요?
일과 삶의 경계
관계가 기반인 우리 일과 삶은 어떤 경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만나는 주민이든지 혹은 동료든지 어떠한 경계를 짓고 있나요? 경계가 허물어지기 쉬운 우리들은 그간의 고민들을 내어놓습니다.
일하기 위해 산다는 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돈이 들어온다라는 생각을 하며 일을 했다고 합니다. 기관이 바뀌고 직급이 생기는 변화를 맞을 때, 관리자가 되었을 때 전혀 분리되지 않았던 삶과 일을 조금씩 분리해보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몰입의 정도 차이라고 합니다. 일과 삶의 경계와 노동자성의 고민을 언제나 달고 산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고 합니다. 워커홀릭이 될까봐, 경계가 없어질까봐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동굴,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경계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삶과 가까운 일을 하면서, 혼자 충천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에, 경계가 분명해지면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노동자로서 조직에 있어서는 경계가 분명하나 주민을 만날 땐 경계가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 경계를 말할 때 사명감은 꼭 따라옵니다. 사회복지를 하는 노동자성을 어찌 정의해야 할까요? 사명감. 그것 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도 필요합니다.
영화와 비슷한 경험을 한 구성원이 있습니다. 실제로 직장 내 동료들 모두 급여가 깎이면서까지 동료를 지켜냈다고 합니다. 그 힘들었던 순간을 어찌 견뎌냈을까.. 왜 일을 하는 지 계속 얘기했던 과정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나가는 순간, 주민이 받는 서비스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퇴사하는 사람도 역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설득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나와 너의 ‘삶’으로 대했으면 어땠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사람들은 뭐래?’라며 체크하고, 다수에 서며 본인이 받을 이익을 계산하는, 철저히 일로 보았던 사람들과 동료를 지지하면 본인의 ‘일’이 없어질수도 있음을 인지하면서까지 기꺼이 한표를 던진 사람들. ‘나’와 ‘그들’의 삶,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사소화’라는 주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내가 ‘사소화’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사소화가 만연해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 여자, 남성(가해자)과 여성(피해자)로 나뉘는 젠더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이를 사회문제가 아닌 여성문제로 사소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합니다. 지금의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 동료들처럼, 다수에 서기를 원하고, 본능적으로 피해를 받지 않는 쪽에 손을 들기 마련입니다. 오래 내려온 남성중심의 전통은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사소화의 원인은 우리의 문화, 주입식 교육, 통일성을 강조하는 문화, 전통적인 관습에서 나오지 않을까? 라고 이야기합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모두가 YES 할 때 NO 하면 진짜로 NO 되는 통일사회, 그리고 남일에 관심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관습. 이러한 사회적 문화를 통해 우리는 많은 사소화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성사회에서 부적응자인가? 라고 스스로 던져보던 고민을 여성주의를 만나고 위로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라는 것에 대한 위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소화했던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이 영화!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푸는 티무르가 주인공의 손을 잡고 울어주는 장면을 꼽았습니다. 찾아와줘서 고맙다 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여졌다고 합니다. 일할 때 추억을 나누며 웃는 장면이 좋았다고 합니다.
토끼는 주인공과 남편, 동료친구가 차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꼽았다고 합니다. 힘든 상황, 그 상황은 문제이나 사람은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소녀장군은 마지막 장면을 꼽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라고 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결말로서 의외이기도, 그래서 좋기도 했다고 합니다.
피카추는 약을 다 먹은 여자에게 남편이 질릴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의연한 대응, 그리고 여자가 깨어났을 순간 키스를 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둘의 사랑을 느꼈다고 합니다.
민국이는 약을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살을 위해 약을 하나씩 정성스레? 까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하나씩 깔 때마다 무언가 생각을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올챙이는 주인공의 굽은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힘든 등이 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노동현장과의 차이, 사람들의 의식 차이, 그럼에도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잔인한 사회는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용기있는 사람의 미소, 작은 승리들, 마지막 장면의 웃음과 대사, 이혼을 선택한 동료의 미소, 수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약간씩은 다르지만 비슷한 큰 줄기를 보았습니다. ‘구조’가 저지르는 문제를 ‘개인’으로 보고 해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으로 본다면 누군가는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료와 보너스, 사람과 돈의 대결 구도로 가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 야금야금 잃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동료’이든, ‘보너스’이든 말이지요.
영화보고 사회복지 시각으로 토른하며 야금야금 성장하는 우리(내일을 위한 시간).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