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과 성결과 헌신
레 26,27장. 하나님의 언약과 이스라엘 백성의 서원(誓願) 관행의 중요성
기억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듣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14).
우리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그 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행된다. 마찬가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들 역시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개관: 성결과 헌신
레 26장 | 레 27장 |
인간의 서원 : 언약/저주 | 인간의 서원 : 헌물/십일조 |
약속은 신성하다
대개 굳은 인간관계는 서로 정직한 데서 비롯된다. 약속은 증서처럼 확실해야 한다. 약속은 신성한 것으로 조금도 어겨서는 안 된다. 만일 서로 맺은 약속을 신뢰할 수 없다면 사회는 혼란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사실은 영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분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말 3:6)느니라고 보증하신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하늘 아버지의 특성을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약 1:17)다고 묘사한다. 또한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히 13:8)신 분이라고 증거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서원. 기독교 신앙은 언약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언약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맺어진 관계이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우리가 이행해야 할 의무, 그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 가운데 하신 약속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서원이라는 주제 아래 레위기 26장을 연구할 것이다.
인간의 서원. 엄밀하게 말해서, 레위기 26, 27장은 레위기의 문학적 구조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그 두 장은 레위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레위기에서 1~16장은 희생제사 의식에 관하여, 17~25장은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레위기 2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하신 서원(축복과 저주)이, 27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강조되고 있다. 서원은 창조주와 맺은 거룩한 것으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의 본을 통하여 배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과 맹세의 신성성에 관하여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맹세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맺어진 약속 어음이 꼭 이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고 있다. 그 맹세는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 덜 중요하여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그 맹세는 어떤 전문적인 용어로 되어있지도 않고 법적으로 구속력도 없으니 그리스도인이 그 의무를 무시해도 되는가? 아니다. 하나님께 드린 맹세보다 더 철저히 지켜야 할 법적 증거나 계약서는 없다”(엘렌 G. 화잇의 주석, 본교 성경 주석 6권, 1056).
하나님의 서원: 언약과 저주(레 26장)
레위기 26장에 기록되어 있는 언약의 축복과 저주는 신명기 28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
레위기 26장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주요한 축복들을 약속하셨는가?
3~5절
6~8절
9, 10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을 따라 살 때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그 복된 결과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외에 또 무엇을 통하여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었는가?(사 60:1~6, 마 5:14~16과 비교)
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찬송과 영광을 삼으시기를 원하셨다. 영적으로 유익할 것은 무엇이나 다 저들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표 하는 자가 되게 하는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유익될 것은 아무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셨다. 저희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더라면 저희는 세계 만국 앞에 놀랄 만큼 창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온갖 정교한 일에 대하여 지혜와 기술을 주실 수 있는 주님께서는 계속하여 저희의 교사가 되시고 저들이 당신의 율법을 순종하는 방법을 통하여 저희를 고상하게 하고 향상하게 하셨을 것이다. 만일, 저희가 순종하였다면 저희는 다른 나라 백성을 괴롭게 한 질병을 피하고 왕성한 지능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엄과 전능이 저희의 모든 일 가운데 나타나게 되었었다. 저희는 제사장과 방백의 나라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가 되도록 온갖 편의를 주셨다”(실물교훈, 295, 296).
영적 이스라엘은 어떤 특정된 지역이 아니라 온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 이 영적 이스라엘은 옛 이스라엘에게 하신 물질적 약속을 어느 정도나 받고 있는가?(롬 9:6,7,23~26; 갈 3:27~29, 히 11:10, 16과 비교).
답:
언약 중에서 무엇이 가장 큰 것이었는가? 그 약속은 무엇을 예표 하는 것이었는가?(레 26:11~13; 마 1:23; 요 1:14; 계 21:3과 비교)
답: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 않고 언약을 깨뜨린다면, 어떤 저주 또는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었는가? 레위기 26장에서 아래의 성경절을 살펴보라.
첫째 저주. 14~17절
둘째 저주. 18~20절
셋째 저주. 21, 22절
넷째 저주. 23~26절
다섯째 저주. 27~39절
이 저주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저주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예정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회개와 자복으로 이끄시기를 원하셨다(레 26:40~43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할 때는 축복을, 그렇지 아니할 때는 저주를 내릴 것을 약속하셨다. 그 축복 또는 저주의 약속이 오늘날도 적용되는가? 나는 나 자신과 교회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서원: 헌물(레 27:1~25)
서원이 언약 관계의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원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만일 어떤 서원을 하고 어긴다면 그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서원은 종종 위기 상황에서 하게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질병에서 고쳐 주신다면, 원수들로부터 구해 주신다면, 아기를 낳게 해주신다면, 다시 집으로 데려가 주신다면 생명 또는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호소를 받을 때 성령에 감동되어 서원을 하게 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을 때 희생 서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서원할 때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때때로 회의가 일고 유혹을 받아 서원을 무시하게 된다. 레위기 27장의 율례는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막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어떤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거나 바칠 수 있었는가?
* 레 27:1~8
* 레 27:9~13
* 레 27:14~25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종종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자가 있었다. 시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압살롬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어떤 것이었는가?(삼하 15:8).
답:
압살롬의 훗날 행위는 그 서원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증거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은 유의 서원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이야기에서 압살롬은, 집으로 그를 다시 데려가 주시면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약속했다. 만일 규례가 허락했었다면 그는 성소에서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여생을 바쳤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레위기 27장 1~8절의 특례에 따라 돈을 드려 대체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性)과 나이에 따라 그 서원과 대체할 수 있는 값을 정하셨다. 한창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남자에게 가장 비싼 값이 매겨졌다. 그 값은, 당시 노동자의 월평균 삯이 약 1 세겔이었던 것을 볼 때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제사장은 값을 정할 책임이 있었다(레 27:8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자녀에 관하며 서원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없던 한나는 어떤 서원을 했으며, 결과는 어떠했는가? 왜 사무엘은 돈으로 대체되지 않았는가?(삼상 1:11,22,25~28).
답:
한나의 서원은 참으로 쓰라린 한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당시 아이 없는 여인은 크게 조롱거리가 되곤 했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당시 여인에게 있어 간절한 염원이었다. 한나는 사무엘을 성소에서 주님을 섬겨 봉사하며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다(삼상 1:11; 민 6:1~21). 한나의 서원은 그 제사장 아들 사무엘의 오랜 교역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영적 부흥을 가져 왔다.
한나는 서원을 이행하였다. “한나의 기도는 응답되어 그처럼 열렬히 간청하던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그 아이를 바라보고 그를 사무엘 - ‘여호와께 구하였다’ - 이라 불렀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와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자라자 한나는 서원을 이행하였다. 그녀는 모심(母心)의 온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사랑하였다. 날마다 한나는 사무엘의 힘이 강하여지는 것을 바라보고 아이답게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에 그녀의 애정은 사무엘과 더욱 밀접하게 뒤엉키게 되었다. 사무엘은 그녀의 외아들이었으며 특별한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성별한 선물로 받았으므로 주신 분의 소유를 주신 분께 돌려드리지 않으려 하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239.240).
만일 이스라엘 백성 중 어떤 사람이 주님께 짐승을 예물로 드리기로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면, 그는 그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무를’ 수 있었는가? 만일 그가 예물이 될 수 없는 짐승이나 집을 드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었는가? 이 경우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는 절차는 어떠했는가?(레 27:9~15).
답:
구약 성경에는 재산을-일부 또는 전부를-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행 5:1~11).
답: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다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깊은 죄의 뉘우침이 임하였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직접 성령의 감화를 받아 어떤 소유물을 팔아 그 수입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약하였다.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에 굴복함으로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후에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한 축복의 아름다운 감화를 잃었다. 그들은 저희가 너무 조급하게 했으므로 그들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사도행적, 73,74).
만일 서원이 요구되지 않은 것이라면, 왜 그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그처럼 심각한 문제였는가?(신 23:21~23; 전 5:4~6).
답:
“오늘날은 말을 가볍게 여기며 약속을 거의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시대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세상 사람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는 약속을 깰 어떤 구실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맹세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서약이 깨어지고 있다. 침례 서약이 깨어지고 있다. 안수 서약이 깨어지고 있다. 언약이 거절되고 협정이 위반되고 맹세가 잊히고 있다.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흔하고 책임을 등한히 여기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 세상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눅 18:8)”(M. L 앤드리어슨, 성소 봉사, 2nd rev).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47), 121.
인간의 서원: 십일조(레 27:30~33)
레위기 27장에서 십일조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이 서원이라는 주제 아래 그 일부의 내용으로 논의되고 있다. 왜 십일조에 관한 것이 서원으로서 구분되어야 하는가?
야곱이 집에서 도망하여 불안 가운데 있을 때,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꾼 후 어떤 서원을 엄숙하게 했는가?(창 28:20~22).
답:
야곱은 무엇을 주님께 보답하기로 했는가? “이곳에서 야곱은 하나님과 약정을 하고자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이미 그에게 번영을 약속하셨으며, 이 맹세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보증에 대한 감사로 그의 마음에서 넘쳐 나온 것이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요구하신 것들을 시인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또 자기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표에 보답하기를 요구한다”(부조와 선지자 상권, 235).
레위기 27장 20,31절에는 십일조에 대한 어떤 내용이 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 내용은, 나중에 20퍼센트를 더 드린다면 주님의 십일조를 지금 드리지 않고 쓸 수 있었다는 말인가?
답:
거룩한 백성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십일조 역시 그러하다. 십일조는 우리의 이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며, 그분의 목적을 위하여 거룩하게 된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 “만일 나중에 1/5을 가산할 경우 지금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질문은 성경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내용(레 27:30, 31)은 1/5을 가산하도록 요구된 것이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 내용은 물건으로, 즉 밀과 보리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관계된 문제였다. 말하자면, 소산물은 무엇이든지 십일조가 드려져야 했다. 어떤 사람이 밭에 뿌릴 밀이 필요하여 그 밀보다는 오히려 돈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게 더 좋을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그는 그 밀을 값으로 친 뒤 그 위에 1/5을 가산하여 십일조를 속할 수 있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 오직 곡물과 밭의 산물을 그처럼 속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소는 속하거나 대체될 수 없었다”(본교 성경 주석 1권, 818).
양과 소는 어떻게 십일조를 구분하게 되어 있었는가?(레 27:32,33).
답:
십일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 율법(레 27:30)은 그리스도를 예표한 희생 제물과 의식들과 함께 폐지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한 백성을 가지고 계시는 동안 그들에게 대한 당신의 주장은 동일할 것이었다. 모든 증가된 것의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당신 자신을 위하여 당신의 것으로 남겨 두셨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어느 제도 아래서도 이보다 더 적은 것을 받지 않으셨다. 이 의무를 등한시하거나 연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살 것이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그들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충실히 바친다면 그분의 창고가 가득히 찰 것이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67).
이스라엘에서는 십일조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민 18:20,21, 26~28; 히 7:5과 비교)
답:
우리는 이스라엘의 경제에서 ‘첫째’와 ‘둘째’ 십일조를 구별해야 한다. 매 3년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자기 성읍의 레위인과 이방인과 과부와 고아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 데 사용될 십일조가 드려졌다(신 14:28, 29 26:12, 13 참조). 어떤 학자들은, 이 십일조가 레위 인과 제사장들의 부양을 위하여 드려지는 십일조와 같은 것으로, 매 3 년마다 이 사람들을 위하여 전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것은 아니다. 레위 족속은 다른 족속처럼 영토를 분깃으로 받지 못하였다. ‘첫째’ 십일조가 그들의 분깃이었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때때로 사용된 그 십일조는 ‘둘째’ 십일조로 구별되어져야 한다(본교 성경 주석 1권에서 신명기 14장 29절, 26장 12절에 대한 설명을 참조).
사도 바울은 옛날 제사장들의 부양을 위해서 드려진 십일조 원칙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시대에서 복음 교역자들의 부양을 위해서도 여전히 적용되는 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고전 9:13,14).
답: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과 그 보조자들은 블레셋 땅에서 분깃을 갖지 말고 오직 성전에서 부양비를 얻어야할 것을 교훈하셨다(민 18:20~24, 26:57. 62; 신 18:1~8참조).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은 토지와 다른 재산을 관리하는 것과 관계된 책무를 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의 주요 업무를 위하여 전적인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하는 일로 인하여 염려할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회중이 드리는 십일조와 희생 헌물을 통하여 그 필요를 채워 주셨다”(본교 성경 주석 6권, 730).
“우리 시대에는 순서가 얼마나 변했는가? 주님의 요구나 주장은 그것이 배려를 받는다 하더라도 맨 나중에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사업은 유대인 시대에 필요했던 것보다 지금이 십 배나 더 필요하다.
사도들에게 주신 위대한 사명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업의 확장을 의미하고,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가중된 책임을 보여 준다. 만일 수천 년 전의 율법에 십일조와 헌물이 필요했다면 오늘날에는 얼마나 더 긴요하겠는가!”(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68,69).
적용
나는 기독교를 언약의 종교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은 신자로서 나의 특권과 책임은 무엇이겠는가?
나는 과거 하나님과 맺은 엄숙한 서원을 깨거나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깨어진 약속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연구와 명상) 교회증언 4권 462~476쪽을 읽어라.
요약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는 분이시며 모든 약속에 충실하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는 데 전적으로 신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