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의 난(안사(사사명)의 난)
안록산의 난은 너무나 유명하다. 양귀비 이야기와 얼키면서 흥미를 돋우어 우리는 더 잘 기억한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안록산의 난은 중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잡는다.
요약하면, 당나라 최전성기라는 형종 때 이민족 절도사인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어
장안을 점령하고,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당황행촉도는 이때 현종이 사천의 촉 땅으로 피난가는 길을 그렸다.)
8년을 끌던 전쟁은 반란을 진압함으로 끝이 났다. 이 전쟁을 전후로, 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전개, 그리고 전쟁 이후의 중국 사회가 겪는 크다란 변화가 중국 역사를 장식한다. 이 변화로 인하여 중국사를 고대와 중세로 나누는 분기점으로 삼는다.
균전제의 토지 제도에서, 세금을 거두는 제도, 군사를 모우는 제도 등등에 엄청난 변화가 왔다. 귀족 세력이 몰락하면서, 신흥 시민지주층이 권력층으로 부상하였다. 구체제의 변환을 가져옴으로 중세로 들어간다.(세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중국사에서 고대에서 중세로 바뀌는 변곡점을 안록산의 난으로 봅니다. 예술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왕유에서 문인화가 시작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려는 예술 분야, 즉 그림과 문학에도 변화가 오면서 중국 문화에 새로운 판이 펼쳐진다.
왕유의 그림과 문학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으로의 그림 이야기에서 짚어 보겠습니다.
첫댓글 안록산의 난 이야기 잘 공부했습니다.
아하! 안록산의 난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저는 현종과 안록산의 양귀비를 사이에 둔 치정의 난인줄로만 알았었는데...
감사합니다. 또 한번 예술과 문학에 눈을 뜹니다. 오늘도 배움이 또 하나 들었습니다... ^^*...
고대에서
중세로
바뀌는 변곡점이
'안녹산의 난'
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