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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1~21 예루살렘 회의
하나님은 구약에서 비교적 같은 시간대에 같은 마음을 선지자들에게 부어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대표적으로 이사야와 미가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예언을 한 것이다. 아마 성경의 연대기를 찾을 수 있다면, 비교적 하나님께서 메시지의 그루브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3중으로 메시지를 주시는데, 바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베드로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야고보를 통해서 정하신 것이다. 먼저는 예루살렘 교회와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통해서 복음과 율법에 대한 어떤 명확한 제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먼저 베드로가 이방인인 로마사람 고넬료 백부장의 구원사건을 보고,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과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또한 둘째로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방인들도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수없이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아모스서를 빌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교회가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회의를 개회하셨는데, 이것은 마치 니케아 회의, 또는 칼케돈 회의처럼, 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니케아 회의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본질이다. 그리고 칼케돈 회의는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 곧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는 것에 대한 성령 안에서 교회의 공통된 선포였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할례는 아브라함 때 주신 사람의 살에 표시하는 언약으로, 남자의 표피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도 믿어야 하지만,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이미 1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대에 무수히 부딪쳐 왔는데, 이 문제는 유대인이 있는 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붉어져 나왔다.
나도 처음에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이 깨달아지고 나서부터,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는데, 과도기적인 기간이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부딪치고,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하여간 이 문제를 두고, 바울과 바나바가 1차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오자마자, 또 이 문제가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까지 붉어져 나왔다.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 안 그래도 1차 여행 때, 무수히 싸워왔던 율법과 복음의 문제가 또 약방의 감초같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회로 날아와 또 시비를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교회는 이 문제가 피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또한 바울과 바나바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공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겪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이미 여기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은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교회사에서도 이같은 비슷한 경우를 보는데, 아타나시우스 또는 사막의 수도승인 안토니우스가 교회의 회의를 위해서 참석한 것이다.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중간에 베니게와 사마리아에서 선교여행의 경험을 간증하였는데, 그것은 베니게와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간증할 때, 예루살렘에서의 간증은 분위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사뭇 달랐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율법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의식과 전통이 있는 도시인데, 예수께서도 태어나셔서, 이곳에서 팔 일만에 할례를 받으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지키신 것이기 때문이고, 유대인들은 전통 곧 율법과 절기 등은 대대로 목숨같이 지켜오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라는 뜻도, ‘분리된’ 이라는 말로, 거룩을 위해서, 또한 외세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나님이 주신 율법준수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와 더불어 말씀과 같이 겪어온 역사가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에 예레미야는 새언약을 계시하였는데,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모세언약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과 새언약을 세우셨다. 그러나 새언약을 받기까지, 엄마가 아이를 잉태하여 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또는 다림줄을 그리고 거푸집을 짓고 집을 짓는 것처럼, 새언약을 받기 까지 율법과 절기는 지켜지고 있었다. 새언약이 무엇인가를 바울이 깨달은 것은, 예수가 새언약이시네. 예수가 메시야이시네. 곧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이 할례 받기 훨씬 전이었으므로(창15장), 그는 다만 할례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창17장) 그러므로 의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듯이, 그러므로 할례를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신 것은, 의식적으로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다.
롬4:3~12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시이라
할례는 ‘의식’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먼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중에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만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식을 하면 이상한 것이다. 결혼식은 사랑의 의식일 뿐이다. 그러나 결혼의식만 중요하게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 그러므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많은 회의를 한 후에, 비로소 사도의 수장격인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을 빌어서 선포하였다. 바로 베드로가 충격받은 사건, 곧 고넬료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환상과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를 깨닫게 하신 사건인데, 베드로야 잡아 먹으라.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오는데, 거기엔 도저히 유대인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었다. 아마도 돼지고기, 개고기, 늑대고기, 비늘없는 생선 등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것이 무슨 환상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 때 고넬료를 만나고,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도 자기들에게 임한 성령을 주심으로 놀랐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보니 와 하나님이 로마 사람 그것도 우리 민족을 압제하는 백부장 로마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시네. 베드로는 주로 유대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유대 지역에 있는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목격했고, 대표적으로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로마 백부장을 구원하시는 것을 목격했고, 그의 집안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조상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하였다. 열외가 없다. 모세 다윗 사무엘 등 흠이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메시야를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전에 메시야가 얼마나 소중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메시야를 절대적으로 필요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 첫 번째로 베드로가 입을 열어 율법과 복음의 해석을 하였더니, 두 번째로 안디옥에서 온 바나바와 바울이 보충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이방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방인들도 은혜의 복음을 통해서 주께로 돌아왔노라고.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다고 두 번째로 증거하였다.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 그리고 세 번째로 야고보가 입을 열었는데, 암9:11~12의 내용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보이는데, 야고보는 베드로를 시므온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는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의 증언을 보충하였다. 이방인들에게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드로와 바울 바나바의 활동을 보니,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될 것이란 예언대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 이스라엘의 전통과 율법은 이스라엘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규례를 낮추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던지,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 못한다던지 하는 것 등이다.
우상의 더러운 것이라는 것은 29절에서 말하듯이, 우상제물을 말한다. 어떤 목사님이 우상제물을 먹었더니 설사를 하더라고, 하여간 바울은 모든 음식이 음식이므로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상숭배에서 나온 이방인들의 경우, 그들의 양심이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양심이 더럽혀질까봐 우상제물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의 각종 규례를 지키라 하지 말고, 우상제물을 먹지 말라. 그리고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먹지 말라고 이 정도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하자는 것이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음식을 말하는데, 동물을 목매어 죽이면, 피가 그 안에 있어서 피를 먹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피를 빼고 음식을 먹는다. 그러므로 피를 먹지 말고,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는 정도로만 이방인에게 규례를 정하여 주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미루어볼 때, 마태복음이 유대인 전용 복음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산상수훈에 예수께서 율법이 일점일획도 다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리라 하시고, 또한 이것을 작은 것이라도 행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편안할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비늘있는 생선만 먹는 것이 편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대로 지켜온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이나 계시록 에스겔서를 볼 때,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인정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역사성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롬9:1~5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하여간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유대로부터, 이방에 이르기까지 예나 지금이나 관심사가 되는데, 이방인인 나도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았는데, 성경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모든 말씀이 다 옳은 말씀이고,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다. 요한사도가 말한대로이다.
요일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까, 구원받는 믿음과 상급 받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역시 가장 핵심은 예수복음이 구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율법을 비롯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차이가 있는 것은 자발성의 문제이다.
고후9:5~7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예루살렘 회의대로, 복음 중심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