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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27~2:9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현미 권사님은 과거 미신을 믿을 때 교회가 무서워서 오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이유는 벼락을 맞을까봐, 그리고 부적을 곳곳에 붙이고 살았는데, 또 교회 가려고 하면 물만 마셔도 토를 한다고 하였는데, 어느 시점에 마음에 결단을 하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보니, 어떤 친구가 있었는데, 교회만 오면, 친구 어머니 꿈에 조상 할아버지가 나타나 교회가지 말라고 타령을 하고 또 어머니 몸이 아파서 친구가 내가 교회만 가면 울 엄마가 아프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하여, 교회를 잘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벨론에서 나올 때, 데라 아버지는 우상숭배자였다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세겜에서 말하는데,
수24:1~2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우상숭배자였던 데라는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그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심을 하고, 아브람과 나홀 셋째 아들 하란의 아들 손자 롯을 데리고 나왔으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그만 하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대개 믿는 가정들 모태신앙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옛적의 죄의 익숙한 곳에서 나올 때 대단한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을 봅니다. 아무튼 데라 아버지가 죽고, 이제 가나안으로 건너오는 것은 아브라함의 몫이 되었습니다. 먼저 데라의 족보를 봅시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 하란을 낳았는데, 하란은 아버지 가슴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 그런데 아브람을 제외하고, 나홀은 죽은 작은 아버지 하란의 딸에게 장가를 갔습니다. 사래는 우세한, 지배적인, 밀가는 여왕, 이스가는 경계하는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 사래는 이삭을 낳기까지 임신하지 못하였는데, 언제 결혼하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삭을 낳는데 25년 걸렸습니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 데라는 어느 순간 바벨론에서 나올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솔들을 다 이끌고 아들 며느리까지 다 이끌고 하란에 이르렀으나, 죽은 아들 하란의 이름과 겹치는 하란이라는 곳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 데라는 205세를 살았습니다. 노아 이후로 인간의 나이는 900살에서 점점 하나님께서 정하여주신 나이 120살로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데라가 하란에서 운명하였을 때, 데라의 가족들 곧 아브람 나홀 그리고 하란의 자식들은 하란 땅에서 아버지를 여기 묻었으니, 그냥 여기서 살자. 그랬을 수 있습니다. 하란은 밧단아람으로 보이는데, 하여간 거기 주저 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무덤도 있고.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안 부르셨으면, 아브람은 그냥 가족들과 같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바벨론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복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면 그도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면 그도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사는 복입니까. 물론 그런 복도 있지만, 이 복은 성경을 볼 때, 믿음의 조상 아브람 곧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복입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 아브람은 75세에 하란에서 나왔는데, 데라는 아브람을 130세에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아버지의 바턴을 받았습니다. 곧 가나안으로의 이주입니다.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그리고 아브람은 아버지가 가려고 하였으나 가지 못한 땅,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처럼 아내와 조카 롯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형제인 나홀의 집과 하란의 딸 이스가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 아브람이 가나안에 올 때, 그 곳은 가나안 족속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모레 상수리 나무는 모레라는 사람의 상수리 나무인 것 같습니다. 세겜은 어깨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 아브람은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어깨에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 그리고 아브람은 세겜 아래쪽으로 내려가 벧엘 근처에 장막을 쳤고,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세겜, 벧엘, 예루살렘, 헤브론, 브엘세바까지 제사를 드리거나 우물을 팠습니다. 마치 혈자리에 뜸을 놓는 것 같습니다.
초기 아브람의 경로는 바벨론에서 애굽까지 그리고 가나안 땅이었는데, 아브람은 출바벨론을 하기도 하고 출애굽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 범위 안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지경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 때 아브람은 미래의 이스라엘의 지계석을 놓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경을 모를 때, 분쟁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경이 나뉘는 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로, 언어가 나뉘어 흩어진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나라와 민족은 같은 언어의 사람들끼리 모인 것일 것입니다. 데라와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간 것은 우상숭배와 자기팽창이 싫어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가나안 땅의 언어가 통하는 언어이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안에서, 언어를 너머, 하늘의 언어, 곧 예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사람들이 모으십니다. 이는 혈통이나 민족이나 언어와 상관이 없습니다.
골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곧 믿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됩니다.
엡2:11~15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유대인 교회나 이방인 교회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마치 유대인 벽돌에 이방인 벽돌이 쌓여지는 것으로 결국 영적으로 볼 때 예수 안에서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건축업자같은 말을 하였는데,
엡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곧 아브라함의 후손 유다지파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 반석이고, 그 다음이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 시므온 반석이고, 그리고 여러 사도들의 돌이 쌓이고 성도들의 돌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교회는 많아도 결국 한 건축물 곧 한 몸입니다. 특별히 복, 복은 복된 소식, 복음인데, 이것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창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복은 갈라디아서를 보면,
갈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도 미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에서의 복음 곧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복, 곧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은혜의 복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강과 은혜의 복이 이스라엘을 넘쳐 이방에 흘러가게 하심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죽은 인간을 마지막 아담 세컨드 아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시는 역사입니다.
롬5:17~19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멘.
특별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복은 부활입니다.
행13:33~37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부활로 인하여 믿는 자들은 새 삶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인데, 아직 아무도 부활하지 않았고, 마지막 부활할 때 예수께서 과일가게의 과일처럼 몽땅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십니다.
고전15:22~2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러므로 성도는 부활 때문에 경건하게 삽니다. 부활이 없으면 막 살아도 됩니다. 성경은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부활 시험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입니다. 어렵게 낳은 외아들인데, 번제는 가축을 죽여 조각을 내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고 죽여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을 믿었습니다.
롬4:17~18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은 죄사함입니다.
행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아담 안에서 태어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 율법으로도 안되는 인간. 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도리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신을 십자가에서 드리시고, 영원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영 단 번입니다.
히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또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고 죄를 고백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세 번째로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음입니다.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은 예수를 발견하고, 의롭다 칭함 곧 칭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해도, 아무리 양심적으로 살려고 해도, 의롭다고 여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 아담 안에서 유전된 죄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터도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다가 믿음을 발견하였습니다.
행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율법이나 양심이나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하나님을 믿음으로 삽니다.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회심 후에도 죄가 하나도 없어서 천국에 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깨달은 것은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에서 속량된 자,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막 짓고 살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되거나 죽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 곧 죄의 옛사람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3차 여행 때는 믿음과 회개를 말합니다.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이 그동안 칭의를 말하다가 3차 여행 중 회개를 말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개인적으로 칭의를 강조하면서 깨달은 것은 회개인데, 율법주의의 반대 극단이 있었는데, 곧 니골라당입니다. 니골라당은 율법주의의 반대입니다. 니골라당은 구약의 발람 선지자같은 발람당으로, 한 마디로 구원받은 후에는 막살아도 된다는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아니냐. 내가 하고 싶은데로 놔둬라. 예를 들어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믿음 후에 삶이 회개도 필요 없고,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역 말기에 그런 율법주의와 정반대인 사조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칭의를 강조하니까 이들이 맘대로 살아도 되는 줄 아는구나. 만약 그렇다면, 베드로는 불신자들의 운명이 차라리 낫다고 하였습니다. 벧후2:21, 예를 들어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우상숭배나 부모공경이나 십계명이 나와 무관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 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죄를 율법이 책망합니다. 아이고 내가 잘못했구나. 죄를 고백해야지.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칭의 의롭다함을 입었다고 해서, 우리가 내 맘대로 살면 안 됩니다. 바울은 양심을 쫓아, 성령을 따라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도 사도 회의를 통해서 예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제하지 않되, 율법의 기본을 제시하였습니다. 곧 가장 큰 틀인 우상숭배와 음란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예수 안에서 바울처럼 자유와 양심에 따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안에 있는 예수 안에서 이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