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구 제정구장학회 상임이사, 씨알지기 회장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거울이 되고 나침반이 되는 참으로 귀한 성현들의 말씀들이 동서고금에 많이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나에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다석 선생님의 “몸성히, 맘놓아, 뜻태워”이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고 또 그러한 말씀대로 살아볼려고 해도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탐진치 삼독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라는 소리를 듣고 가슴에 새긴다고 하여도 탐진치 삼독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육신과 마음에 들어차 있다. 하긴 그래서 수양을 하고 자기를 돌아보고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하는 삶을 산다고 하여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고 정신을 세우기가 힘들다.
인류의 등대가 되어 빛을 밝혀주는 성인들은 물론이고 자기를 초월하고 자기를 극복하면서 생명진화의 역사를 이끌어온 의인들과 현인들의 삶을 이어받아 나 역시 그 영원한 생명의 길에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않고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곤욕을 치루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곤욕을 치르고 있지 않는가 싶다. 하기는 마음하나 잡기 위해서 불가의 스님들은 출가를 하면서 이산 저산을 넘어 수십년을 고행을 해도 잡기 힘든 것이 마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석 선생님은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몸성히, 맘놓아, 뜻태워’ 라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매일 매일 이 말씀을 생각하며 지금 내가 몸성히 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활동이 내 몸을 성하게 하고 있는가? 또 내가 지금 마음을 놓고 있는가? 마음이 편한가? 지금 내 정신이 사람과 일을 사랑하면서 고결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뜻, 얼을 생각하며 내 정신이 위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나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몸성히, 맘편히, 뜻태워’ 는 아주 구체적이고 쉽다. 물음과 동시에 먼저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게 된다. 자세가 바르게 되니 호흡이 편하고 고르게 되고 깊어진다. 어떠한 동작이나 행위를 하고 있더라도 그 동작이나 행위가 좀 더 바른 자세로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밤늦게 까지 잠을 자지 않는 행위라든가,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면서 기운을 소모시키는 행위, 먹는 행위, 특히 맑은 정신을 빼앗는 술을 과하게 먹는 행위 등등의 순간들에서 지금 내가 내 몸을 성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 정신이 확 깨인다. 그리고 아예 그러한 몸 상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조심하게 된다. ‘몸성히’ 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따지고 보면 몸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천사보다 높다는 말도 바로 인간이 몸이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몸이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써 창조사업을 계속 해 나갈 수가 있다. 하지만 또 이 몸이 있기에 온갖 고통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진다. 다석 선생님이 ‘몸성히’를 가장 첫 번째로 놓은 것이 수양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몸이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떠 올리는 생각이 ‘맘편히’ 이다. 지금 내 마음이 편한가? 편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긴장하고 있지나 않은지, 또 스트레쓰로 짜증이 나는 것인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하고 있지나 않은지......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은 마음을 놓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몸을 성하게 하면 자연히 마음도 놓여지고 편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속에서 마음을 상하게 되고 아파하게 된다. 어쩔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어쩔 수있는 것은 바꾸어가는 용기를 내면서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히 놓여질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마음을 편하게 놓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인연 따라서 이루어졌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게 되는 세상이치를 이해하여, 왔다가 가는 무상함속에 욕심과 집착함을 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비우는 것이다.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초월하여 전체 하나 속에 온전히 의탁하여 거짓나인 자기를 죽이고 참나, 영원한 나로 거듭나는 것이다.
‘몸성히’와 ‘맘편히’는 ‘뜻태워’로 이어진다. ‘뜻태워’에서 생명진화의 사다리를 타고 솟구쳐 올라가면 개체의 ‘거짓 나’는 사라지게 된다. 이때 주체와 전체가 하나가 되는 마음자리가 바로 우주의 한 복판이다, 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쏘아 맞히듯이 곧이 곧아 신성(神聖) 하고, 영명(靈明) 하고 영원한 나의 한 복판을 똑바로 맞추어 ‘참 나’를 깨닫는 것을 다석 선생님은 가온찍기「ㆍ」라 하셨다. 내 맘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원한 생명의 긋(빛)을 따라 자신의 마음을 한 점으로 찍어 없이할 때 우리의 마음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고 하셨다. 이를 시원하다고 표현하셨다.
“내가 지금 내 정신을 위로 향하고 있는가? 생명진화의 사다리를 타고 솟구쳐 올라가고 있는가? ” 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점검한다.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진화의 끄터머리에서 내 삶이 영원한 생명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가?’ 를 살펴봄으로써 내 몸과 마음은 하루 하루, 한달 두달, 일년 이년이 지나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온전해져 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몸성히 맘편히 뜻태워’를 순간순간 점검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면 분명히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을 한다. 그리고 방법이 구체적이고 쉽다. 요즘처럼 내공의 중요함을 절감하는 경우가 없다. 그만큼 지친 탓이기도 할까, 아니면 나이 오십 중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하고, 살아가면서 무엇이 우선적이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박재순 박사님을 통해 씨알사상을 알고 유영모선생님, 함석헌선생님을 알게 된것이 너무나 큰 복이다. 씨알지기 공부모임을 하면서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사람을 힘있게 살리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명진화의 역사에서 개체의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되었고 개체의 죽음이라는 것이 전체 생명의 자리에서는 오히려 축복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또 다른 씨알을 잉태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몸성히, 맘편히, 뜻태워’를 실천해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요즘처럼 행복하고 살아가는데 있어 힘이나는 경우가 없다. 이 행복과 기쁨을 토대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촛불과 같은 역할을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내 나름대로 행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나름대로 노력해본다. 내 몸이 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나 혼자서 잘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사회가 건강해야 하고 내 이웃이 건강해야 하며, 우리의 자식들이 건강해야 한다. 그 속에서 내 몸이 건강해진다. 또한 마음이 진정으로 편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내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과 배고픔에 고통받는 이웃들이 없어야 하고 억울하게 우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진리와 정의가 사회에 살아 있어야 한다.
세상은 혼탁스럽다. 100년전이나 천년 전이나 성인들이 사셨던 이천년 전이나 이천오백년 전이나 그리고 그 이전에나 세상은 언제나 혼탁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에 비하면 생명진화의 역사가 이루 말할 수없이 계속되면서 사상적으로 문명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고 가장 폭력적인 전쟁들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환경재앙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원전사고가 지구촌 전체를 위협한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자본의 탐욕과 위력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왜소해지고 비참해진다. 어찌보면 더 큰 재앙앞으로 생명전체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꾸역꾸역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정의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현실, 생존의 어려움에 처한 씨알들의 비참한 모습들, 진실은 묻히고 착취와 불공정의 구조적 현상은 너무나 강고하여 도저히 깨어질 수없는 벽처럼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절망의 늪속으로 우리 모두가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좌절할 때가 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생명진화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생명진화의 역사를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근본의 열쇠가 ‘씨알사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씨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깊이 파고 파서 생명 전체와 하나가 되어나갈 때, 물질을 극복하고 생명으로 나아갈 때, 몸성히를 실천하고 맘 편하게 살아가면서 뜻을 태워 생명의 사다리를 솟구쳐 올라 전체와 하나가 되어갈 때, 세상은 본격적으로 생명진화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려갈 것이다.
물질에서 생명이 나오고, 생명에서 본능이 나왔고, 본능에서 아름다운 감성이 나왔다면 이제 아름다운 감성을 넘어 거룩한 영성, 신성의 단계로 씨알들이 본격적으로 넘어가야 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이 넘어가면 백 명, 천 명, 만 명, 십만 명, 백만 명이 넘어갈 것이다. 씨알들의 시대, 씨알누리가 앞으로의 미래시대에 반드시 예견되어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그 때는 오고야 말 것임을 확신한다. 나부터 그러한 확신을 가슴속에 품고 오늘도 ‘몸성히, 맘편히, 뜻태워’를 실천해 가면서 이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씨알이 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