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가 정치적 경제만이 아니라 생태적 경제도 고민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맑스를 이해하는 이들이 맑스의 정치경제학적 변화과정을 설명한다. 초기의 유물변증법에서, 중기 이후로 역사변증법으로 발전, 그리고 세계 체제의 변화로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변혁의 필연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초기에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으로, 산업화에서 노동 소외와 연관하여 인간이 자연과 소외로 대입시켰고, 그리고 세계의 산업화에서 자연과 지구의 변화와 연관하여 맑스가 어느 정도 자연 황폐화를 언급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주목하지 않았다가, 생태계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맑스도 산업화의 발전과정에서 생산양식의 변화에 자연(생태)이 문제될 수 있다는 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심이 제기된 저술들이 이 논문으로 보아 21세기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맑스 이후 한 세기가 지난 것이다.
산업화의 발전과정에서 생산양식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논의가 주로 이루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들뢰즈가 말하는 자본의 영토화와 탈영토를 거쳐서 재영토화를 하는 만큼이나, 인민의 다양체가 흐름이 있는데 자본의 재영토화와 달리 탈영토화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필연) 속에서 자유의 실행을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철학적 오랜 사유에서 상부는 심층을 지배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자연의 흐름과 생태의 자기 활동 방식이, 상층(제국)의 체제와 지배의 재영토화 방식에서 보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상층이 심층을 자기 방식으로 지배 또는 포로로 삼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19세기말 종교권세, 국가권력, 지식권위의 야합(카르텔)에서 정보소통과 지식재생산을 과도하게 하면서 당연히 상층이 심층을 포획한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그런 적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들뢰즈/가타리의 견해이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백성이 사대부에 장악되었지만, 숫적 다수이지만 권력적으로 소수인 백성이 흐르고 보존한 것이지 상부가 보존한 것은 아니다. 또한 사대부는 일제를 지나면서 일제에 포획되거나 포로가 된 것이지만 백성은 입말로 흐르고, 제국에 저항과 항쟁(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민중은 흐르고, 상층은 미국에 등을 입었지만 소수이면서 권력적으로 다수처럼 보일 뿐이었다. 21세기에 김건희-윤석열도 그렇지 않는가? 광화문 촛불시위와 응원봉 시위에서 국민주권이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일본과 연결 속에 있는 자본에 포획된 자들은 세계 속으로 흐르고 있다는 의미에서 금융제국의 탈영토화가 더 많이 더 넓게 흐르고 있는 것 같지만, 인민의 흐름은 오지에서도, 또 한류에서도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탈영토화를 어느 쪽에서 볼 것인가? 맑스를 읽는 방식을 산업화에서 보았던 관점에서도, 자연의 생태계로 보는 관점에서도 두 가지 다른 방향의 탈영토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산업화 시대(19세기후반)에도, 21세기의 규소시대의 발전에서도 생산양식은 달라지고 있다. 정보의 지배라는 측에서는 흐름의 탈영토화에 대해 상층에서 인민을 개돼지처럼 볼 것이고, 자연과 섭리 속에서 심층의 흐름은 여전히 분출하고 용솟음치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 또는 생태에서 보면, 백성, 민중, 인민의 흐름은 지속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상층의 지배 권력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입말이 살아있는 흐름에서 이제는 탈영토화에 따라 세계 속에 흐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8RLA)
*
서양사에서 신석기/청동기 시대(신화시대) 또는 영웅시대에서 신학시대(중세)에 이르기까지 영웅이 또는 중요 인물이 시대와 터전을 이끌어 갔다고 한다. 헤겔이 한사람 또는 소수가 자유를 누렸다고, 역사철학에서 서술했다고 한다. 백성과 대중 또는 인민이 결정하고 지도(la dictature, 독재)를 하는 것이 중우(衆愚)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라고 하는 데, 학문적으로 선전제에 대한 신뢰(독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짧은 아테네 민주정은 곧바로 알렉산드리아 황제(참주)제에 눌렸고, 그리고 아테네를 배운 로마 공화제는 곧이어 시저이후의 황제제로 바뀌면서, 상층의 지배하에서 어쩌면 백성들의 열망은 물밑으로 민주제(공화제)가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민주제의 인민지도(la dictature)는 현자들의 이상과 향수로 남았을 것 같다. 마치 부족시대의 샤먼이나 신라의 화백제도처럼.
르네상스라는 그리스 민주정 시대를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현자들의 열망이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유일신앙의 반동들의 인민에 대한 저항은, 중세를 교대히야 프로테스탄트들을 만들었고, 이들은 황제 대신에 군주들에게 의탁하였다. “빛들 세기” 현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데카르트에 이르러서야 자연의 자동장치(automatisme)에서 자연의 자치(autonomie)를 보기 시작했다. 자연의 자치처럼 인민의 자치로서 프랑스 대혁명에서 인민의 지도(독재)를 세웠다. 인민의 등장에 놀란 유일신앙의 성직자들은 자연의 이탈을 두려워하여 자연을 인간화하려고 하였다, 자연의 인간화는 산업화를 가져왔다. 성직자들의 인민지배의 권세화는 인민을 지배하는 국가 권력에게 동화하였다. 이에 반동의 저항에 대해 저항하는 인민이 이 시기에 사회주의로 진행에 등장한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연의 자치와 자율을 인정하하여, 인민의 자율과 자주로서 실천에서 공산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런 공동체 사회의 성립과 이탈을 두려워한 교권주의자와 왕권신수설주의자의 결탁이 반혁명으로 인민에 대한 저항(반동)을 일으켰다. 그 저항(반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기반을 바꾼 관념론의 변증법적 방향들이 아니었던가? 어떠한 이항들 사이의 길항관계로 절대자 또는 최고원리에 도달하는 길, 국가 또는 천국과 동일시하는 통일성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세계와 사건들은 다항관계이다.
서양 사상사에서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최고 권력 또는 최고 관념을 인정하는 것이 국가주의, 산업사회의 제국주의, 그리고 금융의 제국을 만드는 사고방식의 일방향(양식, bon sens)이라고 보는 것이 들뢰즈의 변증법 반대이며, 즉 플라톤주의(아리스토텔레스 논리)의 전복의 철학이라 한다. (58RKH)
*
참조:
맑스 물질대사론의 생태학적 함의
조영준, 시대와 철학, 2024 제35권 3호(통권 108호), 127-160.
참조 https://cafe.daum.net/milletune/S6O4/12
첫댓글 이상한 이해들이 있었군요
농업경제에 대한 이해없이 자본론이 나옸을까
그 시작은 자연과 생태 그리고 농업경제 토지의 이해로부터 맑스의 철학은 출발하는 것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