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제9일 차 南德裕山
(덕유산권 육십령 - 남덕유산)
◆ 산행개요
◐ 산행 지역 : 전북 장수 경남 함양
◐ 산행 일자 : 2008년 7월 17일
◐ 산행 지명 : 南德裕山 (1,507m)
◐ 산행 구간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영각사
◐ 산행 거리 : 12.0 km (8.4 km)
◐ 산행 시간 : 6 시간
◐ 참여 회원 : 33명
◆ 산행지도
◆ 산행후기
▶ 장마철 같지 않은 날씨 때문에 기상대 예보도 연일 빗나가 우의와 우산을 가방에 챙겨 넣고 단출하게 죽전 정류소로 백두대간 9일째 남 덕유산 산행을 나선다. 카페 예약방에서 미리 확인하였던 대로 일류 버스에는 종영에 들어간 극장 좌석처럼 이가 빠진 곳이 많아 썰렁한 바람이 인다. 옆 좌석에 이매동에서 처음 동참한 홍 준호 씨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한잠을 자고나니 산행 버스는 구름이 걷힌 장수 I C를 빠져나온다.
▶ 박 대장의 산행 설명이 간단하게 끝났지만 산행 코스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러움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열 시가 되어 행객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넓은 마당에 초라한 구멍가게가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는 육십령 고개에서 오늘 흘릴 땀을 대비하여 생수를 한 병 보충한다
六十嶺 !
경남 안의에서 육십 리,
전북 장수에서 육십리요
고개 굽이가 육 십 구비요
옛날 옛적에 산적이 출몰,
행인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여
고개 아래 주막집에서 장정 육십여 명이 모여 몽둥이와 죽창으로 무장을 하고 단체로 넘었다는 전설의 고개 육십령을 오늘은 대명천지에 두려움 없는 서른세 명의 산우가 오손 도손 줄지어 오른다.
▣ 육십령(六十嶺 734m)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을 잇는 고개.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며 도적떼가 많아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이 모여야 한다고 해 육십령이라 했다. 소백산맥이 동쪽의 남강 상류와 서쪽의 금강 상류인 장계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낮아진 부분으로, 남덕유산(1,507m)과 백운산(1,279m)의 안부에 해당한다. 조령(643m)·죽령(689m)·팔 량치(513m) 등과 함께 영남지방의 4 대령으로 꼽아왔다. 특히 육십령은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으며, 현재는 전주-대구를 잇는 국도가 지난다. 삼국시대부터 이용되었던 고개로 당시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다. 함양 사근산성(사적 제152호)·황석산성(사적 제322호) 등 삼국시대의 성곽들이 남아 있다.
봉우리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되어 등극할 때 제단을 설치하였다는 유적이 남아 있다.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구간에는 육십령 외에도 지경령(地境嶺)ㆍ월암령(月巖嶺)ㆍ팔 량치(八良峙)와 같은 많은 고개가 있어 예로부터 소백산맥의 통로 장애를 극복하여 왔으나, 그중에서도 육십령은 신라 때부터 개통된 오래된 고개이다. 따라서 육십령은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북부지역과, 진안을 거쳐 전주에 이르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26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육십령터널이 만들어졌고, 익산∼포항을 잇는 고속도로도 일부 준공되어 인근 장계면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 매번 산행에서 전신의 근육이 풀리고 호흡이 절제되는 시작 30분의 고통이 오늘도 예외는 아닌 듯 할미봉(1,026m) 고개를 오르니 벌써 익은 땀이 온몸을 적신다. 힘든 산행일수록 인내의 한계를 넓히는 약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독기를 피워 가면서 타잔님을 앞질러 선두 대열에 합류한다.
▶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에는 갈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멀기만 하다.
할미봉 내리막길을 지나면 해석도 분분한 대포바위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동서를 가르며 무딘 칼날처럼 솟아오른 낮은 능선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길 좌우에는 그 흔한 소나무 한그루 찾아볼 수 없고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치고 지나가는 산우들을 무심하게 굽어보고 멀리 북쪽 끝자락에는 암벽에 둘러싸여 하늘 가운데로 솟은 서봉과 남덕유산 영봉이 굽어보고 있다.
▶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한때 전체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소나무 숲이 이재는 25% 정도로 줄어드는 한편 민족의 기상을 대변하듯 원추형으로 곧게 뻗어 오르는 모습은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구불구불하고 힘없이 자라 문화재를 복원할 토종 소나무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서글픈 학설이 나오고 있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 이재까지 최선두를 지키며 뚝심을 보여 주던 박 고문이 슬그머니 합류하여 전 승중 박병식 산우와 넷이서 노란 원추리꽃이 끝없이 피어나 비단이불을 드리운 것 같이 드넓은 초원에 기암과 괴석이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경계에 흠뻑 취하고 겨울철 산행객의 안전을 위하여 처 놓은 굵은 밧줄을 잡고 철 맞추어 흐드러지게 피어난 싸리나무 꽃밭 길 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 지나온 백두대간 길이 겹겹이 조망되는 서봉 (1,492m) 정상에서 "山自分水嶺" 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한눈에 체험한다. 계절을 거스르며 지름길로 달려온 고추잠자리 하늘 가득히 춤추는 정상을 넘어선 헬기장에서 시장이 반찬이라 풋고추 한 입 베어 삼키는 맛으로 또한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원촌리 사이에 위치한 남덕유산은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남쪽에 있는 덕유산 제2봉이다. 남덕유산 명칭은 조선 시대에는 봉황산(鳳凰山) 또는 황봉(黃峯)이라고 하였으며『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봉황봉(鳳凰峯), 즉 덕유산 동쪽 지맥은 서북쪽 70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1872년 지방 지도』안의현의 북쪽에 황봉이 묘사되어 있으며 산에 영각사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지리산 다음으로 넉넉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덕유산이라고 하고, 덕유산의 연봉들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고 하여 남덕유산이라고 하였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삼봉산에서 시작하여 대봉·덕유평전·중봉·무룡산·삿갓봉 등 해발 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으며 동·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낙동강과 금강을 이루고 있다.
남덕유산과 향적봉 사이의 약 20㎞ 구간에는 해발 고도 1,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계곡은 총 8곳이 있으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약 30㎞의 무주 구천동 계곡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6월 초순에는 20㎞의 능선과 등산로를 타고 펼쳐지는 철쭉 군락이 유명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구천동 계곡이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또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겨울에는 눈 덮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장관이다. 산중에는 신라 헌강왕 때 김광 대사가 창건한 영각사가 있다.
▶ 안갯속에 수시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는 남 덕유산 정상에 올라 도전하는 자만이 쟁취의 기쁨을 맛본다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오후 2시가 지난 시간 굽이굽이 세워놓은 철 사다리 절벽을 내려가다 보폭을 잘못짚은 전 승중 산우가 다리에 쥐가 나는 힘겨운 하산길이 되어 안타깝다. 맥이 풀린 다리로 가누기 어려운 돌너덜을 한 없이 걸어서 영각 통제소 못 미친 계곡에 숨어들어 입은 옷 그대로 전신을 물속에 풍덩 담그며 안팎으로 흐르는 땀을 씻어낸다.
▶ 산우들보다 모처럼 선두로 하산하였다는 소박한 자신감으로 다음 산행의 의욕을 되살리며 산행 뒤풀이를 위하여 박 대장이 요리한 주물럭불고기 맛에 따라붙는 참이슬 한잔으로 심신의 殘汗을 털어낸다.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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