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네
여보 똑같네. 딸이 연휴를 집에서 보내고 근무지로 떠나는 딸을 보내고 아파트로 들어온 나에게 아내가 던진 말이다. 딸은 경주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른다. 갈 때마다 세탁한 옷이며 반찬 등 아내의 정성만큼이나 짐이 많다. 혼자서는 버거워 내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짐을 차에 실어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작은 내리사랑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지상으로 올라와서 한참을 기다리면 딸은 차를 몰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다시 딸이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나를 보고 들어가라고 하고, 나는 다시 도착하며 전화하라고 당부하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아내가 아파트 11층에서 창문을 열고 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다시 물었다. 뭐가 똑같다는 건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맏이인 나는 아내와 휴일이면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들르는 것이 중요한 주간의 일정이었다. 부모님 또 한 나이 들어 일주에 한 번씩 아들, 며느리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당신의 정으로 기른 푸성귀며 제철에 나는 작물들을 즐겁게 미리 준비하셨다. 늙어 가면서 자식을 위해 준비하는 그 일이 행복이고 보람이었다. 아들이 떠날 때는 하나라도 더 주려고 차에 이삿짐처럼 실어주셨다. 그리고 마당에서 출발하는 아들을 보고 조심하라며 당부를 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정을 가득 실은 나는 골목길을 나와 마을 앞 도로를 지나 동네 뒤의 큰 도로로 이용했다. 큰 도로 나무 아래는 마당에서 아들 며느리를 보낸 어머니가 언제 오셨는지 거기 계셨다. 내 차가 골목과 마을 길을 돌아 큰길까지 오는 동안에 어머니는 마을 지름길을 이용하여 큰길까지 단숨에 오셔 다시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손을 흔들며 조심하라고 당부하시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짧은 이별을 하셨다. 나도 후방 밀러로 어머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를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휴일이면 만남의 기쁨과 짧은 이별이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의 줄타기를 했다.
그때 어머님의 모습이 오늘 딸을 지하에서 보내고 지상 주차장에서 다시 마중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무엇을 느꼈을까? 한 번의 세대가 그렇게 훌쩍 지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어떤 내리사랑을 받았을까? 현대와 같은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다를 뿐 분명 똑같은 사랑을 받으셨고 그 사랑을 한 줌 더 보태어 나에게 내려 주셨다. 나도 부모님으로 받은 사랑을 양능(養能)이라는 본능에 따라 그렇게 딸에게 전하고 있다. 또 시간이 흐르면 딸도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귀하고 소중한 내리사랑을 실천할 것이다.
나는 20대에 농협에 다니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공무원 되겠다며 시골 아래채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속으로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다 큰 자식에게 담배 사서 피우라며 손때 묻은 10원짜리 지폐를 전해 주시던 그 어머니가 지금은 멀리 계신다. 오늘 마중한 딸도 공시생으로 몇 년을 가슴앓이했다. 실패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절였다. 같이 있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딸은 아마 부모보다 당사자로서 더 아파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묵묵히 참아서 공무원이 되고 주말에야 한 번씩 보게 되니 듬직하고 자랑스럽다. 아마 어머니도 내가 공무원이 되어 시골집을 떠날 때 오늘 딸을 마중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그때 당신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딸아 사랑한다.